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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글문화연대 / [언어/언어/문자]

    2000년에 2월에 우리 말과 글을 가꾸어 독창적인 한글 문화를 일구기 위해 설립된 민간단체. 한글문화연대는 2000년 2월 22일 창립되었다. 한글에 대해 연구하고 외래어에 잠식되어 입지가 좁아지는 한국어를 지키고 가꾸어 나가기 위해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학술

  • 한글소리본 / [언어/언어/문자]

    정인승·유열이 함께 지은 우리말 소리 지도서. 우리말 소리의 이해와 연습을 위한 입 모양 및 발성 기관 그림책이다. 그림책 성격의 책의 특성상 특별한 목차는 없으며 ‘지도하는 방법’이라는 일러두기 다음에 ‘소리틀의 그림’을 제시하고 발성 기관의 각 부분을 번호로 매겨

  • 한글의 기원 / 한글의起源 [언어/언어/문자]

    이상백(李相佰, 1904∼1966)이 『훈민정음해례』에 근거하여 한글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 지은 한글 연구서. ‘고전모방설(古篆模倣說), 범자모방설(梵字模倣說), 몽고 파스파 문자 모방설, 서장문자기원설(西藏文字起源說), 상형설’ 등 기존의 훈민정음 기원설을 정리하여

  • 한글의문법과실제 / ─文法─實際 [언어/언어/문자]

    1946년에 한글문화보급회 경남지부(文化普及會慶南支部)에서 발행한 문법서. 겉표지에 ‘이극로 박사 교열(李克魯博士校閱)’, ‘군정 경남도 학무과장 추천(軍政慶南道學務課長推薦)’이라고 되어 있으며, 한글문화보급회 경남지부장 안준상(安駿相)의 ‘발간(發刊)에 제(際)하여’

  • 한글의바른길 / [언어/언어/문자]

    1937년에 최현배(崔鉉培)가 한글 운동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펴낸 책. 『한글의 바른 길』은 한글 운동의 역사와 내용에 대해 논한 8편의 논문과 박승빈의 철자법을 비판한 「붙임」 1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붙임」을 포함한 9편의 논문의 제목은 1) 한글 운동의 유래

  • 한글의투쟁 / ─鬪爭 [언어/언어/문자]

    최현배(崔鉉培)가 펴낸 한글연구서. 한글전용론자인 저자가 한글전용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담은 논설들을 중심으로 엮은 것이다. 내용은 주장·논난·여러가지·맞춤법 관계·한글투쟁의 성명서 모음 등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러나 여록의 성격을 지닌 「여러가지」와 붙임

  • 한글적새 / [언어/언어/문자]

    1916∼1919년경에 집필한 문법표와 국어자료를 집대성한 이규영(李奎榮)의 국어연구 초고. 전6권.‘적새’는 적(기술) 새(구조)의 뜻으로 해석되며, 저자는 이규영의 『온갖것』이나 『말듬』의 필적에 따라, 저술연대는 그 문법용에 따라 추정된 것이다. 내용은 첫재떼 말

  • 한글지문자 / 한글指文字 [언어/언어/문자]

    손과 손가락으로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표현하는 농인들의 의사소통 수단. 농인들이 의사소통할 때 수화로 표현하기 곤란한 어휘를 손과 손가락으로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영어로는 핑거스펠링(fingerspelling)이라 한다. 국립서울맹아(현재 서울농학교와

  • 한글첫걸음 / [언어/언어/문자]

    1945년 11월 조선어학회에서 편찬하여 군정청 학무국에서 발행한 한글입문교본. 일제 말기 7년간이나 말살되었던 국어교육을 급속히 회복하기 위하여 국민학교의 『초등국어교본』과 중학교의 『중등국어독본』을 각각 편찬하였으나, 특수한 사정은 상급학년일지라도 모두 한글을 배우

  • 한글파동 / ─波動 [언어/언어/문자]

    1954년 7월 공포된 정부의 「한글 간이화안(簡易化案)」을 중심으로 빚어진 일련의 문화적·사회적 파동. 1954년 3월 27일 “신구약과 기타 국문서에 쓰던 방식을 따라 석달 안에 교정해서 써야 할 것”이라고 발표한 그 당시 대통령 이승만(李承晩)의 담화문이 한글파동

  • 한글학회 / The Korean Language Society [언어/언어/문자]

    1908년 우리 말글의 연구와 통일 및 발전을 목적으로 창립된 학술단체. 1908년 8월 31일 주시경과 김정진 등 당대의 지식인들이 우리 민족의 문맹을 깨치고 나라의 주권을 지키고자 세운 민족학회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학술단체이다. 창립 초기부터 한글학회의 활동은 우리

  • 한기무 / 韓岐舞 [예술·체육/무용]

    신라 신문왕 9년(689) 임금이 신촌(新村)에서 잔치를 베풀었을 때 가무(笳舞) 등 악무(樂舞)와 함께 연출된 춤의 하나. 감(監) 3인, 금척(琴尺) 1인, 무척(舞尺) 2인으로 구성되었으나 춤의 내용은 알 수 없다. 이 시기에 연출되던 신라의 무악(舞樂)은 한기무

  • 한기수 / 韓淇洙 [역사/근대사]

    1879-1926.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한자명을 한기수(韓琪洙)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청웅면(靑雄面) 출신이다. 1919년 3월 16일부터 19일까지 임실군 청웅면 구고리(九皐里)의 주민 200여 명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고 마을을 돌면서

  • 한기악 / 韓基岳 [역사/근대사]

    1898년∼1941. 독립운동가. 자는 명오(明五), 호는 월봉(月峰). 강원도 원성 출신. 보성전문학교 법과를 졸업한 뒤 이승복(李昇馥)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였다. 1919년 국내에서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이동녕(李東寧)·이시영(李始榮)·조소앙(趙素昻) 등과

  • 한낮에 꿈꾸는 사람들 / 한낮에 꿈꾸는 사람들 [예술·체육/연극]

    1935년 10월 <동아일보>에 발표된 이무영의 희곡으로 그해 11월 극예술연구회에 의해 무대에 올려진 작품. 이 작품은 격렬한 사회투쟁을 그리고 있는데, 시대환경에 지배를 받는 얼치기 인간과 시대환경에 과감히 도전하는 정열적 인간을 대비시키고 있다. 이 작품은 당시

  • 한당유사 / 漢唐遺事 [문학/고전산문]

    1852년(철종 3)에 박태석(朴泰錫)이 지은 한문장편소설. 「한당유사」는 이야기의 성격에 따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는 남한(南漢)에서 성명(聖明)이 혁명을 일으켜 천자가 되는 부분부터 청(靑)이 삼국을 통일하여 대당(大唐)을 세우는 부분까지로, 「

  • 한도원 / 韓道源 [역사/근대사]

    1906-1984. 독립운동가. 일명 이국화(李國華)·왕소산(王少山).평안남도 대동 출신. 1925년 평양 숭실중학교(崇實中學校)를 중퇴하고 상해(上海)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상해전차회사의 차장으로 근무하면서 박창세(朴昌世)·강창제(姜昌濟) 등과 함께 항일무장단체인 병

  • 한돈석 / 韓敦錫 [역사/근대사]

    1896-1993.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삼계면(三溪面) 어은리(漁隱里)이다. 1919년 3월 지방 유지 이기송(李起松)·오병용(吳秉鎔)·이만의(李萬儀) 등은 독립운동을 계획하고 천도교 및 기독교와 은밀히 연락하여 거사를 준비하였

  • 한동인 / 韓東人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서울발레단 단장, 조선무용예술협회 발레부 위원 등을 역임한 무용가. 강원도 고성군 고성면 동리에서 부친 한기태와 모친 김인해의 사이의 3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고성 회양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의 배화중학교에 입학했다. 부친은 그가 의사의 길을 걸어갈

  • 한량무 / 閑良舞 [예술·체육/무용]

    진주(晋州) 지방에 전해 내려오고 있는 교방 계통의 무용극. 한량무는 한량과 승려가 한 여인을 유혹하는 내용을 춤으로 표현한 무언무용극으로 원래 이 춤은 조선 중기 이후 남사당패(南寺黨牌) 중 무동들에 의해 놀았던 것인데 그 후 조선 말까지 계속해서 연행되었으나 남사당

  • 한량춤 / 閑良춤 [예술·체육/무용]

    한량들이 추는 춤으로 주로 경상도 지역에서 발달한 남성 홀춤. 이 춤은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3호로 1979년에 지정된 무용극 「진주한량무」와 다른 춤이다. 경상도 지역에는 오광대놀이나 야류를 통해 남성춤이 발달하였고, 이 남성춤 중에 도포에 갓을 쓰고 부채를 들고 추는

  • 한러밀약 / [정치·법제/외교]

    1884-1885. 조선과 러시아의 비밀협상. 1884년 8월 조선의 참의통리아문사무였던 묄렌도르프는 북경주재 러시아 육군무관 쉬네우르 대령을 방문했다. 쉬네우르는 묄렌도르프와의 대담에서 러시아가 조선을 단독으로 보호해 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국경선의 확보라고 생

  • 한러은행 / [정치·법제/외교]

    1897년 12월 러시아 재무대신 비테가 주도하여 한국 자본의 참여 없이 순수한 러시아 자본으로 설립한 러시아 금융기관. 1897년 12월 비테의 주도로 설립된 한러은행은 비테의 경제적 대한침투정책의 산물이었다. 한러은행은 비테가 만주로의 경제침투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 한림내연발전소 / 翰林內燃發電所 [경제·산업/산업]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동명리에 있었던 내연발전소. 시설용량 2만 3100㎾의 내연발전소로 6·25사변 후 제주도 전원확보기본방침에 의거하여 국제 연합한국부흥위원단의 원조자금으로 미국의 유니온(Union)회사 제품의 100㎾급 내연발전기 4대를 도입하여 1956년

  • 한림별곡 / 翰林別曲 [문학/고전시가]

    고려 고종 때 한림의 여러 유자(儒者)들이 지은 경기체가. 가사의 형식을 보면 각 장은 앞 4구에 엽(葉) 2구가 붙은 6구형이고, 음수율은 제1·2구는 3·3·4, 제3구는 4·4·4(3·4장은 예외), 제5구는 4·4·4·4로 되어 있고, 제4구와 제6구는 『악장가

  • 한림소시 / 翰林召試 [문학]

    예문관검열 후보자에 대한 특별 시험. 적임자를 선발하여 임금께 아뢰면, 왕명으로 시•부•논•책문 등의 시험을 보아 합격자를 임용하였음.

  • 한말연구학회 / 한말硏究學會 [언어/언어/문자]

    1986년 4월 19일에 한말(한국어)과 한글을 연구할 목적으로 창립한 민간학술단체. 1986년 4월 19일,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소속의 김윤학 교수가 주축이 되어 한글전용 운동을 지지하고 우리말과 우리글 연구를 위하여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국어학 전공의 대학원생

  • 한문 / 漢文 [문학/한문학]

    한자로 이루어진 문어체의 문장. 중국에서 한문이라 함은 당시(唐詩)나 송사(宋詞) 혹은 원곡(元曲), 명청소설(明淸小說) 등과 대비되어, 한(漢)나라의 문(文)이라는 뜻으로 쓰여왔다. 그러나 주변국들, 특히 우리 나라나 일본은 이러한 구별을 하지 않고 한자어로 된 문장

  • 한문소설 / 漢文小說 [문학/한문학]

    한문으로 창작되고 읽혔던 고전소설. 한문소설의 연원은 고대 설화문학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 구체적 모습은 『삼국사기』·『삼국유사』 그리고 『수이전 殊異傳』의 잔편(殘篇; 남은 작품)에서 살필 수 있다. 이들 문헌에 수록된 설화 중에는 ‘전기(傳奇)’양식에 속할

  • 한문연본춘향전 / 漢文演本春香傳 [문학/한문학]

    여규형(呂圭亨)이 각색한 「춘향전」. 1권 1책. 필사본. 기존 국문본 「춘향전」을 순한문으로 개작한 것이다. 형식면에서는 중국의 「서상기(西廂記)」를 모방한 연희본(演戱本)이다. 저자는 원각사의 공연을 위하여 지었다고 밝히고 있으나 실제 공연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

  • 한문학 / 漢文學 [문학/한문학]

    중국의 문자인 한자로 기록된 문학양식. 우리 나라에서는 『동문선』이 갈래의 전범이 되고 있으니,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辭)·부(賦)·고시(古詩)·율시(律詩)·절구(絶句)·배율(排律)·조칙(詔勅)·교서(敎書)·제고(制誥)·책문(冊文)·비답(批答)·표전문(

  • 한미여성재단 / 韓美女性財團 [사회/사회구조]

    1963년 한인 여성들의 미국생활 적응을 돕기 위해 창립된 비영리단체. 1963년 7월 7일 워싱턴에서 발족한 한미여성재단은 준 도슨(June Dawson)씨를 비롯, 국제 결혼한 7명의 한인 여성들이 ‘한미부인회’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조직이다. 1984년 3월 19일

  • 한밭종합운동장 / ─綜合運動場 [예술·체육/체육]

    대전광역시 중구 대종로에 있는 종합경기장. 1959년 9월에 건설되었으며, 254,765㎡의 부지에 경기장 면적은 총 71,745㎡이다. 경기시설로는 주경기장(축구장), 충무체육관, 다목적체육관, 야구장, 정구장, 실내수영장, 씨름장, 게이트볼장, 육상보조경기장, 로울

  • 한백겸 / 韓百謙 [종교·철학/유학]

    1552(명종 7)∼1615(광해군 7). 조선 중기의 문신. 승원 증손, 할아버지는 여필, 아버지는 효윤, 어머니는 신건의 딸이다. 민순의 문인이다. 판결사, 호조참의, 강원도안무사, 파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저서로『구암집』이 있다.

  • 한백문화협회 / 韓伯文化協會 [사회/사회구조]

    브라질 한인 이민을 담당하였던 단체. 「한-백 문화협회」는 이종욱 중령이 브라질의 마두레이라(Madureira) 축구팀의 방한을 계기로 1961년 4월 중순 설립한 단체이다. 그런데 이 단체는 세계사격대회를 계기로 브라질에서 김수조와 정인규와의 만남으로 한국에서 브라질

  • 한백수호통상조약 / 韓白修好通商條約 [정치·법제/외교]

    1901년 한국과 벨기에 사이에 체결된 조약. 한국에서는 서구 열강과 조약 체결 이전부터 이미 벨기에, 덴마크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 조약 교섭에서 쟁점으로 부각된 사항은 한국정부가 이전에 다른 열강에게 허용한 특권을 벨기에도 최혜국대우를 통해서 균점할 수 있는가의

  • 한백흥 / 韓伯興 [역사/근대사]

    1897-1950. 일제강점기의 항일운동가.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출신지는 제주도 제주시(濟州市) 조천읍(朝天邑) 조천리(朝天里)이다. 1919년 3월 21일 조천리 만세운동은 서울에서 3·1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였던 김장환(金章煥)이 독립선언서를 숨기고 조천읍(朝

  • 한병기 / 韓炳基 [역사/근대사]

    미상-1919년 8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1919년 4월 15일 의병장 출신 박장호(朴長浩)·조맹선(趙孟善) 등이 조직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참여하였다. 길림성(吉林省)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 소재한 대한독립단이 본부·서간도·국내 각 지부에 재무

  • 한봉근 / 韓鳳根 [역사/근대사]

    1896년∼미상. 독립운동가. 호는 금산(錦山). 경상남도 밀양 출신. 정권이 일본에게 침탈당하고 일제의 무단정치가 극악해짐에 따라 만주의 길림성(吉林省)으로 망명하여 김원봉(金元鳳)·황상규(黃尙奎)·이종암(李鍾岩) 등을 만나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결의, 의열단(義烈

  • 한봉석 / 韓鳳錫 [역사/근대사]

    1893-1942. 독립운동가. 경기도 김포 출신. 1919년 조선총독부의 토목기사로 근무하고 있던 중 1919년 3·1운동에 참가하였으며, 그뒤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군에서 활동하였다. 1921년에 군자금모금의 사명을 띠고 귀국하여 활동하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혀 대구복심

  • 한봉수 / 韓鳳洙 [역사/근대사]

    1872-1970. 한말의 의병장. 일명 봉서(鳳瑞)·봉용(鳳用)·봉룡(鳳龍). 충청북도 청주 출신. 1907년 8월 의병장 김규환(金奎煥)을 만나 감화를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의병에 가담하게 되었다. 청주 세교장(細橋場)에서 기의하여 4년 6개월 동안 33전 1패

  • 한봉인 / 韓鳳仁 [역사/근대사]

    1898년∼1968. 독립운동가. 경상남도 밀양 출생. 1919년 만주 길림성(吉林省) 길림(吉林)에서 김원봉(金元鳳)·이성우(李成宇)·서상락(徐相洛)·한봉근(韓鳳根) 등과 함께 의열단(義烈團)을 조직, 독립운동을 위하여 무력으로 투쟁할 것을 모의하고 군자금을 조달하기

  • 한부 / 漢符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나무로 만든 궁궐 출입증. 작은 목재 표찰로서 여자들이 사용하는 것이었다. 주로 하급 궁녀·관비들이 궐문을 출입할 때 패용하였다. 남자들이 사용하는 것은 신부(信符)라 하였다. 한부는 매년 연말 병조 무비사에서 제작되어 궐내 각처에 배부되었는데, 해마다 사용

  • 한불자전 / 韓佛辭典 [언어/언어/문자]

    1880년 파리외방선교회 한국선교단에서 편찬한 한불대역사전(韓佛對譯辭典). ≪한불자전≫은 병인교난(1866) 때 우리 나라를 탈출한 리델(Felix-Clair Ridel)주교가 서울출신의 독실한 신도 최지혁(崔智爀)의 도움을 받아 만주 짜코우(岔溝)에서 편찬한 것인데

  • 한빛원자력발전소 / ─原子力發電所 [경제·산업/산업]

    전라남도 영광군 홍농읍 계마리 서해안에 있는 가압경수로형(加壓輕水爐型) 원자력발전소. 이 발전소에는 영광원자력 1·2·3·4·5·6호기가 가동 중이다. 영광1·2호기는 설비용량이 각각 95만㎾이며, 3·4호기와 5·6호기는 각각 100만㎾급 원전으로 총 6기 590만㎾

  • 한사직 / 韓師直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95∼1778). 1754년 급제하여 60세의 나이로 보덕이 되었고, 이어 지평·정언·헌납·장령을 지냈다. 강릉부사 재직 중 1756년 대기근이 들자 진휼에 힘썼다. 이후 대사관, 대사헌, 한성판윤 등을 역임하였다. 80세에 기로소에 들어갔다.

  • 한산도가 / 閑山島歌 [문학/고전시가]

    조선 선조 때 이순신(李舜臣)이 지은 시조. 1수. 진본(珍本) 『청구영언(靑丘永言)』을 비롯한 22종의 가집에 실려 있고,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도 기록되어 있다. 이 시조의 한역가는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 권1 및 『충무공가승(忠武公家乘)』에 전한다.

  • 한산두 / 韓山斗 [종교·철학/유학]

    1556년(명종 11)∼1627년(인조 5). 조선 중기 유생‧의병. 한서봉 후손, 고조는 한태, 증조는 한영년, 조부는 한필이다. 부친 한일취와 모친 진황의 딸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이윤복의 딸이다. 교유한 인물로 이개립‧전이성 등이 있다. 아들로 한원진‧한형진을

  • 한산유찰 / 韓山遺札 [문학/고전산문]

    조선후기 문신·학자 이집의 집안 사람들 사이에서 주고받은 한글편지를 모아 엮은 서간집.한글편지. 총 18편으로 이병기(李秉岐) 편주의 『근조내간선(近朝內簡選)』에 수록되어 있다. 그 원본의 소재는 알 수 없다. 이집은 영조 때 사람으로 그의 아들 병건(秉建), 손자 산

  • 한산이씨족보 / 韓山李氏族譜 [사회/사회구조]

    조선시대 문신 이덕수가 1643년에 편집하여 간행한 한산이씨의 족보. 분량은 상(上)·하(下) 1책이며, 원주의 강원감영에서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표제는 “한산이씨보(韓山李氏譜)”, 판심제는 “한산이씨족보”이다. 체제는 표지(表紙), 서문(序文), 범례(凡例), 보도(

  • 한산향교 / 韓山鄕校 [교육/교육]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에 있는 향교. 1518년(중종 13)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669년(현종 10) 유산(由山)지방에서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고, 1950년 6·25동란으로 소실되었다가 그뒤 복원하

  • 한상경 / 韓尙敬 [종교·철학/유학]

    1360(공민왕 9)∼1423(세종 5).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할아버지는 공의, 아버지는 수, 어머니는 권적의 딸이다. 1382년(우왕 8) 문과에 급제하여, 예의좌랑·우정언·전리정랑·예문응교·공부총랑·종부영을 거쳐, 1392년(공양왕 4) 밀직사우부대언에 승진

  • 한상렬 / 韓相烈 [역사/근대사]

    1876∼1926. 항일기의 의병장·독립운동가. 자는 문극(文極). 1907년 고종이 강제퇴위되자 횡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500여 차례의 전투를 치뤘다. 1920년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의용부·대한독립단 등 애국단체의 참모로 지내다 1926년 암살당했다. 1963년 건

  • 한상호 / 韓相浩 [역사/근대사]

    18990-1921. 독립운동가. 함경북도 경성 출신. 일찍이 간도에서 성장하여 명동중학교(明東中學校)를 졸업한 뒤 와룡소학교(臥龍小學校)교원으로 봉직하였다. 1919년 3·1 운동 이후 간도에서 윤준희(尹俊熙)·임국정(林國禎)·최이붕(崔以鵬) 등과 철혈광복단(鐵血光復

  • 한석동 / 韓石東 [역사/근대사]

    1893-1933.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한석동(韓錫東)이다. 본적은 경기도 이천(利川)이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독립만세운동을 시행하기로 결심하고 권중효 등과 함께 사전 준비 작업을 하였다. 1919년 4월 2일 경기도 이천

  • 한석영 / 韓晳瑛 [역사/근대사]

    1897-1964.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제주도 조천읍(朝天邑) 함덕리(咸德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에 걸쳐 일어나자, 광복회제주도지부와 공동으로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른바 조천만세운동이다. 조천만세운동은 서울에서

  • 한석지 / 韓錫地 [문학/고전시가]

    조선후기 「길몽가」, 『명선록』 등을 저술한 문인. 구체적인 인적사항은 확인할 수 없고, 부인이 이씨(李氏)라는 것만 『명선록(明善錄)』(일명 『온고록(溫故錄)』이라고도 함)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일생이 병고와 빈곤·고적의 연속이었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명선록』을

  • 한석필 / 韓碩弼 [종교·철학/유학]

    1672년(현종 13)∼1732년(영조 8). 조선 후기 유학자. 아버지는 한두추, 어머니는 수원백씨이다. 어려서부터 도량이 넓고 행동이 성숙하여 보는 사람이 기이하게 여겼다. 매일 일기를 기록함에 그날의 날씨, 방문한 손님, 집안의 대소사를 꼼꼼히 적었다. 그리고

  • 한석화 / 韓錫化 [역사/근대사]

    1898-1959.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제주도 조천읍(朝天邑) 함덕리(咸德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에 걸쳐 일어나자, 1919년 광복회제주도지부와 공동으로 조천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조천만세운동은 서울에서 3·1운동

  • 한성부 / 漢城府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왕조 수도의 행정구역 또는 조선왕조 수도를 관할하는 관청의 명칭. 한성부는 1910년 경성부(京城府)로 이름이 바뀔 때까지 515년간 조선왕조의 수도로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부분의 중심지였다. 또한 한성부는 수도를 관할하는 관청이었다.

  • 한성부 북부장호적 / 漢城府北部帳戶籍 [사회/가족]

    1663년 한성부에서 북부관내의 호구를 조사하여 면리별로 정리하여 엮은 관찬서.호구문서. 한성부 북부장호적의 공식적인 명칭은 『강희이년계묘식년북부장호적(康熙貳年癸卯式年北部帳戶籍)』이다. 한성부에서 1663년(현종 4)에 작성한 총 152장으로 된 필사본의 호적으로, 한

  • 한성북부호적대장 / 漢城北部戶籍大帳 [사회/촌락]

    1663년(현종 4)에 조사, 작성된 한성부 북부관 내의 호적책. 1책. 완본(完本)으로 필사본. 책의 크기는 세로 43㎝, 가로 42.5㎝이며, 분량은 150매이다. 조선시대의 호적대장 일반의 기재양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계(契)별로 오가작통(五家作統)하지 않고 있

  • 한성수 / 韓聖洙 [역사/근대사]

    1920-1945. 광복군. 일명 이상일(李相一)·한성수(韓成洙). 평안북도 용천 출신. 1944년 3월 학도병으로 일본군병영을 탈출하여 중국 푸양(阜陽)에 주둔한 광복군에 입대한 열혈청년으로서 제3지대의 발전을 위해서 자진 푸양에 잔류한 기간간부의 한 사람이다. 중

  • 한성순보 / 漢城旬報 [언론·출판/언론·방송]

    1883년(고종 20)에 창간되었던 순간(旬刊) 신문. 우리 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이다. 1883년 10월 1일(음력) 서울 저동(苧洞)의 통리아문(統理衙門) 박문국(博文局)에서 발행한 월 3회 발간된 순보로, 매월 1일자로 간행되었다.

  • 한성옥 / 韓成玉 [역사/근대사]

    1882-미상.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다. 제주도 표선면(表善面) 성읍리(城邑里)에서 태어났다. 어느 날 성산면(城山面) 온평리(溫平里)에서 마을 일을 보고 있을 때 성산포(城山浦)에서 일본의 선박이 침탈해오자, 주민들과 마찰이 자주 발생하였다. 1927년 5월 1

  • 한성우 / 韓聖佑 [종교·철학/유학]

    1633(인조 11)∼1710(숙종 36). 조선 후기의 문신. 응인 증손, 할아버지는 덕급, 아버지는 수원, 어머니는 이영선의 딸이다. 대사간, 판결사, 개성유수, 병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 한성재판소 / 漢城裁判所 [역사/근대사]

    1895년 4월부터 1907년 12월까지 한성부를 관장하던 법원. 1895년 3월 25일 개혁법률 제1호로 '재판소구성법'이 제정, 공포되면서, 한성부에서도 종래 행정관청인 한성부 관할 내 일체의 민사, 형사 소송과 외국인과 본국 민간의 민사, 형사 사건을 재판하기 위

  • 한성전보총국 / 漢城電報總局 [역사/근대사]

    1885년 서로전선을 운영하기 위하여 서울에 설치된 전보국. 1885년 6월 조선과 청 사이 조청전선조약이 체결되어, 8월 인천부터 서울간 전선가설공사가 완료되었다. 이에 따라서 전선의 전보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한성전보총국이 설치되었고, 인천, 평양, 의주에 분국을 두

  • 한성준 / 韓成俊 [예술·체육/국악]

    항일기의 고수·민속무용가(1875∼1941). 창극의 장단으로 평타령·중모리·진양조·엇모리·휘모리 등에 특히 능했으며 명창·명무로도 이름을 떨쳤다. 무용에도 뛰어나 민속무용에 전념하여 흩어져 있던 무용의 체계를 세워 승무·학무·태평무 등의 여러 무용을 무대화시켰다.

  • 한성태 / 韓成泰 [예술·체육/국악]

    1890-1931년. 일제강점기의 판소리 명창이다.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전라남도 담양군(潭陽郡) 운산리(雲山里)에서 태어났으나, 광주(光州)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가야금 산조의 명인인 한덕만(韓德萬)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가야금산조와 병창을 배웠으며, 5년

  • 한송정 / 寒松亭 [문학/고전시가]

    고려 전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요. 950년(광종 1) 이전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원가(原歌)는 전하지 않고, 『고려사(高麗史)』권71 악지 속악조(俗樂條)에 오언절구의 한문으로 된 해시(解詩)와 함께 그 내력이 수록되어 있으며, 같은 내용이 『증보문헌비고(增補

  • 한수 / 韓脩 [종교·철학/유학]

    1333(충숙왕 복위 2)∼1384(우왕 10). 고려 후기의 문신. 악의 손자이다. 1347년(충목왕 3) 15세의 나이로 과거에 합격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전리좌랑, 성균사예, 비서소감, 병부시랑, 국자감좨주 등을 역임하였다. 이색과는 일찍부터 교분이 깊었고,

  • 한수동 / 韓壽同 [예술·체육/국악]

    1895년∼1940년. 가야금산조 및 풍류의 명인. 전라남도 해남(海南) 출생. 대금·시나위·가야금의 명인이던 숙구(淑求)의 아들이다. 화순군 동복(同福)에서 살았다. 아버지에게서 가야금·풍류 및 산조를 배워 어려서부터 신동(神童)으로 이름이 났고 역대 가야금산조 명

  • 한수재집 / 寒水齋集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 권상하의 시문집. 35권 15책. 목판본. 1761년(영조 37)에 손자 진응에 의하여 경상감영에서 간행되었다. 윤봉구의 서문이 있다. 권1에 시 307수, 권2·3에 소 26편, 권4∼20에 서 187편, 권21에 잡저 9편, 권22에 서 3편, 기

  • 한숙원전 / 韓淑媛傳 [문학/한문학]

    조선 후기에 김려(金鑢)가 지은 전(傳). 광해군 때부터 인조 때까지 궁녀로 있던 숙원 한씨의 행적을 그녀의 절개와 지조를 중심으로 그린 내용이다. 작자의 문집 『담정집(藫庭集)』 권9의 『단량패사(丹良稗史)』에 수록되어 있다. 「한숙전」은 표면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을

  • 한순 / 韓楯 [종교·철학/유학]

    1555(명종 10)∼1592(선조25). 조선 중기의 무신. 아버지는 극심이다. 황정길의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하였다. 선전관·평양판관 등을 거쳐 1590년 남평현감에 임명되었다. 풍속을 바로잡고, 백성을 구제하며 군비에 충실하여 인근

  • 한시 / 漢詩 [문학/한문학]

    한자로 창작된 정형시. 한시는 자수(字數)·구수(句數)의 다소, 압운의 유무, 운자(韻字)의 위치 등을 기준으로 분류된다. 매구(每句)의 자수는 5언·7언이 가장 많고 4언·6언도 있다. 구수는 4구·8구 및 그 밖의 것으로 크게 나뉘며, 4구의 대부분은 절구(絶句),

  • 한시대 / 韓始大 [역사/근대사]

    미상∼198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황해도 해주(海州)이다. 1902년(광무 6) 캘리포니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신민회에 가입하여 위원장을 역임하며 임시 정부를 지원하는 일에 힘썼다. 1937년 미주 지역 애국단 대표로서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의에 참

  • 한씨보응록 / 韓氏報應錄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권 1책. 활자본. 한명회(韓明澮)의 전기를 미화하여 여러 민담에 연결시켜 지은 역사소설이다. 청주한씨의 시조모인 송씨와 청주 한씨의 시조 한란과의 결연담에 나오는 지네설화는 한씨세보(韓氏世譜)에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이다. 이 구성은 우리

  • 한양가 / 漢陽歌 [문학/고전시가]

    1844년(헌종 10) 한산거사(漢山居士)가 지은 풍물가사(風物歌辭). 형식은 4음보 1행을 기준으로 모두 704행이다. 조선 왕도인 한양성(漢陽城)의 연혁·풍속·문물·제도·도국(都局) 및 왕실에서 능(陵)에 나들이하는 광경 등을 노래하였다.

  • 한양가 / 漢陽歌 [문학/고전시가]

    김호직(金浩直)이 지은 장편가사. 지은이의 호가 우강(雨岡) 또는 현재(弦齋)이어서 ‘우강본’ 또는 ‘현재본’이라고도 한다. 조선 왕조의 역사를 노래한 가사로 작자의 아들인 기수(基秀)가 보관한 원본이 있고, 1955년에 김기수가 수정, 가필하여 간행한 석판본이 있다.

  • 한양가 / 漢陽歌 [문학/고전시가]

    작자·연대 미상의 가사. 향토 한양가계의 「한양가(漢陽歌)」로 이용기(李用基)가 편찬한 『악부(樂府)』라는 사본 가집에 수록되어 있다. 형식은 4음보 1행을 기준으로 모두 85행이다. 내용은 한산거사(漢山居士)가 지은 「한양가」와 같이 한양의 풍물을 노래한 것이다. 곧

  • 한양리 / 韓良履 [역사/근대사]

    1883-1946. 한말의 의병. 자는 여경(女敬), 호는 석초(石樵). 경상북도 문경 출신. 1906년부터 1908년에 걸쳐 이강년(李康埏)의 의병부대에서 종사관(從事官)으로 의병소집활동을 하였으며, 원주·단양·제천·갈평·안동·내성·재산, 경기도 관악산 등의 전투에

  • 한양물장구놀이 / [생활/민속]

    한양에서 물동이 담긴 그릇이나 바가지를 두드려 소리를 내는 민속놀이. 조선시대 한양에서 아이들이나 여성들이 동이 안에 물을 떠놓고 그 안에 둥근 그릇이나 바가지를 엎어놓고 두드리면서 노래를 부르던 민속놀이이다. 놀이방법은 물동이에 담긴 그릇이나 바가지를 젓가락이나 가는

  • 한양순 / 韓良順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서울올림픽경기대회 조직위원회 위원, 한국여성스포츠회 회장 등을 역임한 체육인. 학자. 서울 출생. 1946년에 진명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0년 이화여대학교를 졸업한 뒤 진명여자고등학교 체육교사를 시작으로 수도여자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 강사 등을 거쳐

  • 한양영화사 / 漢陽映畵社 [예술·체육/영화]

    1935년 차상은이 설립한 영화제작사. 이 회사는 이태원에 촬영소를 짓고 아리프렉스카메라 및 녹음, 현상시설도 갖추었다. 제1회작으로 <강 건너 마을>(나운규 감독)을 제작하여 그해 9월 14일 단성사에서 개봉했는데,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 계속해서 <아리랑 3편

  • 한양오백년가 / 漢陽五百年歌 [문학/고전시가]

    1913년사공 수(司空檖)가 지은 영사가사(詠史歌辭). 1책. “슬프다 친구님네/이 가사 들어보소/어느 가사 지었는고/한양가를 지었어라.”로 시작하여 “가련하고 가련하다/한양가를 짓고 보니/슬픈 심회 나는 것이/측량치 못할로다.”로 끝맺는 사공 수의 세창서관본 「한양

  • 한양조씨족보 / 漢陽趙氏族譜 [사회/가족]

    조선전기 문신 조원기·조세정 등이 1524년에 간행한 한양조씨의 족보. 조원기의 서문과 조세정의 발문에 따르면, 1책 분량으로 민세정의 임지인 함창(咸昌)에서 목판으로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원래 한양조씨는 15세기 후반경에 조원기의 아버지 조충손(趙衷孫)에 의해

  • 한어 / 韓語 [언어/언어/문자]

    1906년 안영중(安泳中)이 저술한 일본인 초학자를 위한 우리말과 글의 학습서. 권두 구마모토(隈本有尙)의 서에 의하면, 저자는 한문·시부(詩賦)·묵평에 능한 한국의 명사로서, 일본에서 10여년간 행한 한일 양국어의 비교연구와 경도(京都)·마쓰에(松江) 등지에서 한국어

  • 한어문전 / 韓語文典 [언어/언어/문자]

    1881년에 선교사 리델(Ridel, Félix Clair)이 프랑스어로 펴낸 한국어 문법서. 리델은 파리외방전교회(Société des Missions Étrangères de Paris) 소속 선교사로, 『한불자전(Dictionnaire Coréen-Francais

  • 한어입문 / 韓語入門 [언어/언어/문자]

    1880년에 호세코 시게가스(寶迫繁勝)가 일본인을 위해 만든 최초의 서구식 한국어 학습서. 권두에 있는 저자의 서언에 따르면, “종래에 한국어 학습에 10년이나 걸린 것은 문법서가 없었던 까닭이다. 문법은 마치 공장(工匠)의 규구(規矩)처럼 잠시도 없어서는 안 될 것이

  • 한어초 / 漢語抄 [언어/언어/문자]

    중국어 단어를 한국어 또는 한문으로, 그리고 중국어 단어를 만주어로 주석한 역학(譯學)의 유서(類書). 천부(天部)·시령부(時令部)·지부(地部)·제왕부(帝王部)·의식부(衣飾部) 등 그 의미에 따라 34개의 부로 나누고, 이를 다시 천문류(天文類)·시령류(時令類)·지여류

  • 한억길승급문서 / 韓億吉陞級文書 [정치·법제]

    1908년(융희 2) 3월 20일. 정3품 통정대부 한억길(韓億吉)을 종2품 가선대부에 가자하는 문서. 1882년(고종 19) 6월 일본식 군제 도입과 민씨정권에 대한 반항으로 임오군란이 일어났다. 1908년(순종 1) 황제에 등극한 순종은 조령을 내려 임오군란때 공로

  • 한여유 / 韓汝愈 [종교·철학/유학]

    1642년(인조 20)∼1709년(숙종 35). 조선 중기의 문인. 한예의 후손이다. 송시열에게 학문을 배워 경학에 능통했다. 저술로「선후천도설」, 「건곤변」, 「삼십육궁해」, 「왕노재조화론설」, 「중용혹문설」,「대학혈구장론」,「주례직방씨의」등이 있다. 저서로『둔옹집』

  • 한영문법 / 韓英文法 [언어/언어/문자]

    1890년 언더우드(H.G. Underwood)가 영문으로 지은 한국어 문법서. 이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Part Ⅰ)는 문법 설명(grammatical notes)으로서 총 12장(章)으로 되어 있고, 2부(Part Ⅱ)는 영한대조문(Engilsh int

  • 한영수임명문서 / 韓永洙任命文書 [정치·법제]

    1907년(광무 11) 2월 8일. 한영수(韓永洙)를 유강원(裕康園) 참봉 판임관 5등에 서임하는 임명장. 유강원은 조선 순종황제의 황후인 순명효황후의 원이다. 참봉은 조선시대의 원, 능전을 비롯한 많은 관서에 속해 있었던 최말단직의 품관이다.

  • 한영숙 / 韓英淑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제40호 「학춤」 전승자로 지정된 기예능보유자.고전무용가. 충청남도 천안출생. 13세때 할아버지 성준(成俊)으로부터 춤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첫 무대공연으로 1937년 10월 서울 부민관에서 열린 한성준무용발표회에서 승무·학

  • 한영애 / 韓永愛 [역사/근대사]

    1920-미상. 일제 강점기 광복군. 다른 이름은 한말다(韓末多)이다. 본적은 평안남도 평양(平壤)이다. 중국 섬서성(陝西省) 서안(西安)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광복군(光復軍)에 입대하여 제2지대(支隊) 대장 이범석 휘하의

  • 한영영한자전 / 韓英英韓字典 [언어/언어/문자]

    1890년 언더우드(Underwood,H.G. )가 편찬한 최초의 한영사전과 영한사전. 첫째권(Vol.Ⅰ)은 A korean-English, 둘째권(Vol.Ⅱ)은 An English-korean로 각각 독립되어 있다. 포켓판의 이름은 A Concise Dictionar

  • 한영자전 / 韓英字典 [언어/언어/문자]

    1897년 게일(Gale, J.S. )이 편찬한 한영사전(韓英辭典). 초판은 2부문으로 되어 있는 바 제1부는 한영사전(Korean-English Dictionary)(pp.1∼836), 제2부는 중영사전(Chines-English)(pp.837∼1096)이다.제1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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