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총 327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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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천불이서선농장소작쟁의 / 龍川不二西鮮農場小作爭議 [역사/근대사]
1925년부터 1932년까지 평안북도 용천 불이서선농장의 소작농민들이 벌였던 소작농민항쟁. 불이서선농장은 불이흥업주식회사가 1912년부터 용천군의 국유초생지와 간석지 5,000여 정보를 불하받아 간척사업을 일으킨 뒤 1915년에 완료한 개척농장이었다. 이곳으로 이주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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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금치전투 / 牛金峙戰鬪 [역사/근대사]
1894년 11월 동학농민군이 공주의 우금치에서 관군 및 일본군과 치른 전투. 1894년 9월 재봉기 이후 동학 남접의 접주 전봉준은 수원을 거쳐 서울을 공격하기 위해서 북접과 연합전선을 이루었다. 전봉준은 4,000명의 농민군을 이끌고 공주로 올라가다가 논산에서 손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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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국사건 / 郵政局事件 [역사/근대사]
1884년 갑신정변의 시발점이 된 사건. 개화당의 홍영식, 김옥균, 박영효 등은 정변을 일으켜 사대당인물들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하여 정치개혁을 실시하려고 하였다. 1894년 음력 10월 17일로 정하고, 별궁에 불을 질러 거사의 신호를 삼기로 하였다. 당일 연회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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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요호사건 / 운요號事件 [역사/근대사]
1875년 9월 20일 일본군함 운요호(雲揚號)의 강화해협 불법침입으로 발생한 한일 간의 포격사건. 1873년 12월부터 고종의 친정이 시작되면서, 일본정부는 조선 침략을 노골화하기 시작했다. 1875년 5월초 운요호, 제이정묘호 등 군함 2척을 부산에 파견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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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민란 / 蔚山民亂 [역사/근대사]
1879년 4월 경상도 울산부(蔚山府)에서 일어난 민란. 이 난은 유리(由吏) 김양서가 사사로이 소비한 공전(公錢)을 민결(民結)에 분배하여 거두어들인 데서 발단되었다. 김양서는 공전 1만 5,800냥을 소비하였는데, 이를 채우기 위해 다시 민결에 5,000냥을 부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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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총파업 / 元山總罷業 [사회/사회구조]
1929년 1월 13일부터 4월 6일까지 약 4개월에 걸쳐 전개된 원산노동연합회 산하 전 노동조합원 2,200여 명의 총파업. 일제강점기 한국노동운동사상 최대규모의 파업으로, 1928년 9월에 있었던 문평제유공파업에서 비롯된다. 영국인이 경영하는 문평리 라이징 선 석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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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란 / 原州民亂 [역사/근대사]
1885년 강원도 원주목(原州牧)에서 발생한 민란. 원주목민들이 환곡의 폐단을 시정해줄 것을 호소하기 위하여 모였다가 마침내 관아로 쳐들어가 판관, 이서의 집을 파괴, 창고지기를 불에 태워 죽이기에 이르렀다. 이에 이서들도 별도로 무리를 지어 각 촌리로 나가 양반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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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내왕중국여조선국합약장정 / 輪船來往中國與朝鮮國合約章程 [정치·법제/외교]
1883년 조인된 조선과 중국 간의 해운 조약. 이 조약에 의한 초상국 선박의 조선항로 개통은 중국의 무역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초상국은 한중 간 무역품 운송업을 독점하게 되었고, 중국은 이를 통해 영국산 면제품을 비롯한 자본주의 열강의 공산품을 재수출하여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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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사변 / 乙未事變 [역사/근대사]
1895년 8월 20일 새벽 일본의 공권력 집단이 서울에서 자행한 조선왕후 살해사건. 을미사변은 단발령과 함께 19세기말 항일의병이 봉기하는 원인이 되었으며, 또한 신변이 위태롭게 된 고종이 이듬해 2월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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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의병 / 乙未義兵 [역사/근대사]
조선 말기 최초의 대규모 항일의병. 1895년 8월 20일 민비가 시해되고 뒤이어 왕후폐위조칙이 발표되자, 보수유생들은 ‘토역소(討逆疏)’ 등을 바쳐 친일정부의 폐위조처에 반대함은 물론, 일본군을 토벌, 구축하여 국모의 원수를 갚을 것을 주장하였였고, 의병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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