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총 22,1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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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매화마름군락지 / 江華梅花─群落地 [지리/자연지리]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에 위치한 논습지. 강화 매화마름군락지는 2008년 10월 13일에 오대산국립공원습지, 물장오리오름습지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아홉 번째로 람사르습지에 등록되었다. 논습지로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등록되었는데, 등록면적은 3,01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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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볼음도 은행나무 / 江華 乶音島 銀杏─ [과학/식물]
인천광역시 강화군 서도면 볼음도리에 있는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304호. 높이 24.5m, 가슴높이둘레 8m인 노거수로서, 나무의 나이는 추정하기 어렵다. 가지의 길이는 동쪽 13.5m, 서쪽 12.2m, 남쪽 12.8m, 북쪽 10.3m이다. 이 은행나무는 바닷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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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사기리 탱자나무 / 江華 砂器里─ [과학/식물]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에 있는 탱자나무. 천연기념물 제79호. 높이 3.8m, 뿌리 근처의 지름 53㎝인 노거수로서 나이는 400년으로 추정하나 확실하지 않다. 가지는 동쪽으로 4m, 남쪽으로 2.7m, 북쪽으로 3.9m 정도 퍼져 있다. 서쪽에서 불어오는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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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선원사지 / 江華 禪源寺址 [예술·체육/건축]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있는 고려시대 대몽항쟁 당시 고려대장경 목판을 조각하던 곳으로 추정되는 사찰터.사적. 사적 제259호. 선원사는 고려시대에 몽골의 침략을 받아 강화도로 도읍을 옮긴 후 1245년(고려 고종 32)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최우(崔瑀)가 자신의 원찰(願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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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외성 / 江華外城 [예술·체육/건축]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에 있는 고려후기 강도시기에 축조된 토축 성곽.산성. 사적. 강화외성(江華 外城)은 고려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여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한 시기인 강도(江都) 시기(1232~1270년)에 조성된 성으로, 강화군 동해안(선원면, 불은면, 길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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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장정리 오층석탑 / 江華長井里五層石塔 [예술·체육/건축]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에 있는 고려후기 일반형 석조 불탑.석탑. 보물. 보물 제10호. 높이 3.5m. 일찍이 쓰러져 파손되었던 것을 1960년에 각 부재를 수습하여 보수 재건하였다. 파손이 심하고 없어진 부재도 적지 않아 현재는 3층 이상의 옥신(屋身)과 5층 옥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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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전등사 대웅전 / 江華傳燈寺大雄殿 [예술·체육/건축]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전등사에 있는 조선후기 에 중건된 사찰건물.불전. 보물. 보물 제178호. 전등사는 강화도의 남쪽 끝 정족산의 한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정족산의 세 봉우리와 능선을 따라 삼랑성(三郞城, 일명 정족산성)이 있는데, 이 성은 단군이 세 아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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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전등사 약사전 / 江華傳燈寺藥師殿 [예술·체육/건축]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전등사에 있는 조선후기 다포계 팔작지붕의 사찰건물.불전. 보물. 보물 제179호. 전등사는 강화도 삼랑성(三郞城, 일명 정족산성) 안에 있는 사찰이다. 약사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다포계 단층 불전으로 대웅전의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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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전성 / 江華塼城 [예술·체육/건축]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해안가에 있는 조선후기 벽돌로 축조된 성곽.전성. 시도기념물. 강화 전성(江華塼城)은 조선 영조 때 강화유수 김시혁(金始㷜)이 벽돌로 쌓은 성으로, 고려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여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한 시기인 강도(江都) 시기(123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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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정수사 법당 / 江華淨水寺法堂 [예술·체육/건축]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정수사에 있는 조선전기 에 중창된 사찰건물.불전. 보물. 보물 제161호. 정면 3칸, 측면 4칸의 겹처마 맞배지붕건물. 1957년 보수공사 때 발견된 1689년(숙종 15) 수리 당시에 만든 상량문에 의하면 1423년(세종 5)에 중창하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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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중성 / 江華中城 [예술·체육/건축]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과 선원면 일원에 있는 고려후기 강도시기에 축조된 성곽. 강화 중성(江華 中城)은 고려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여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한 시기인 강도(江都) 시기(1232~1270년)에 조성된 성으로, 강화군 강화읍과 선원면 일원에 걸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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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참성단 소사나무 / 江華塹星壇─ [과학/식물]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문산리 참성단 내에 소재한 소사나무. 2009년 9월 16일에 천연기념물 제502호로 지정되었다. 수령은 약 150년으로 추정된다. 나무의 높이는 4.8m, 뿌리 근처의 줄기둘레는 2.74m이다. 수관 폭은 동서 방향이 7.2m, 남북 방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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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갑곶돈 / 江華甲串墩 [예술·체육/건축]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 있는 조선후기 갑곶나루에 설치한 돈대.성곽시설. 사적. 강화도 해안에 설치된 53돈대(墩臺) 가운데 하나이다. 1637년(인조 15) 병자호란이 끝난 뒤 조선 정부는 강화도 방어책의 하나로 12진보(鎭堡)를 설치하였고, 그 뒤 진보와 진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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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광성보 / 江華廣城堡 [예술·체육/건축]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에 있는 조선후기 신미양요와 관련된 성곽.진보. 사적. 강화 12진보(鎭堡) 가운데 하나이다. 1658년(효종 9)에 강화유수 서원이(徐元履)가 설치하였다. 그 뒤 1679년(숙종 5)에 축조된 오두(鰲頭)·화도(花島)·광성 등의 돈대(墩臺)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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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 江華郡 [지리/인문지리]
인천광역시 북서부 한강의 입구 황해에 위치한 군. 동쪽은 경기도 김포시, 남쪽은 인천광역시 옹진군, 북쪽은 경기도 개풍군과 황해도 연백군에 접하고 있다. 동경 126°2′∼126°33′, 북위 37°31′∼37°48′에 위치한다. 면적은 411.33㎢이고 인구는 6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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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대교 / 江華大橋 [경제·산업/교통]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면 갑곶리와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성내리를 잇는 다리. 1969년에 완공된 구교가 노후되어 전면 재시공을 통하여 1997년 완공하였다. 1965년 7월에 착공하여 1969년 12월에 완공된 구교는 폭 10m(차도 7m, 보도 3m), 교장 694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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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대산리지석묘 / 江華大山里支石墓 [역사/선사시대사]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대산리 서촌마을에 있는 지석묘.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31호. 1기. 강화읍에서 고려궁지(高麗宮址)를 지나 강화읍성(江華邑城) 북문에 이르면 북문 밖, 한강어구 너머로 멀리 북한지역의 산봉우리가 선명하게 보인다. 대산리 고인돌은 고려산의 동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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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 江華島 [지리/자연지리]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있는 섬.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큰 섬으로 강화군의 주도(主島)이다. 면적은 305.75㎢이고 해안선 길이는 106.5㎞이다. 경기만 북쪽의 한강 하구에 있으며, 동쪽의 염하(鹽河)를 사이에 두고 경기도 김포시와 접해 있다. 강화도는 원래 김포반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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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조약 / 江華島條約 [역사/근대사]
1876년 2월 강화부에서 조선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조약. 조약의 체결로 조선은 개항 정책을 취하게 되어 점차 세계 무대에 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으나, 불평등조약이었기에 일본의 식민주의적 침략의 시발점이 되었다. 한편, 이 조약은 척사위정세력과 개화 세력 사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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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만 / 江華灣 [지리/자연지리]
경기도 서쪽 해안에 있는 만. 한강의 하류부 해역, 즉 강화도 주변의 경기만 일부를 말한다. 강화만에 접하는 행정구역은 경기도 개풍군·김포시·시흥시·화성시·인천광역시 강화군·옹진군이며, 만(灣) 내에는 강화도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섬들이 많다. 인천광역시의 확장과 더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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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반닫이 / 江華- [예술·체육/공예]
강화지역에서 제작된 의복·옷감·제기 등을 넣어 두는 반닫이. 표준치수 높이 80∼100㎝, 앞 너비 90∼100㎝, 옆 너비 45∼50㎝. 과거의 왕실용 반닫이를 이곳에서 주로 제작하였던 까닭에 그 구조가 특이하고 정교하여 반닫이 가운데 가장 화려하고 비싸다.다른 반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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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부 / 江華府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수도 방위를 목적으로 강화에 설치되었던 특수 행정기관. 조선왕조는 수도 방위를 위해 한성부 주변의 행정적·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에 주·부·군·현의 일반적인 행정 체계와는 별도로 특수 행정 체계인 유수부를 설치,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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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부근리점골지석묘 / 江華富近里─支石墓 [역사/선사시대사]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 점골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지석묘.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32호. 1기. 점골 고인돌의 고임돌의 장축(서쪽)의 방향은 거의 편북(10°)으로 놓여 있다. 서쪽 고임돌의 크기는 길이 2.55m이고, 너비(실제로 높이에 해당) 1.55m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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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부지 / 江華府志 [지리/인문지리]
1783년(정조 7) 강화유수 김노진(金魯鎭)이 편찬한 경기도 강화부(지금의 인천광역시 강화군) 읍지. 2권 1책. 목판본. 장서각 도서·규장각 도서·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이밖에 고종 때 편찬된 『강화부지』 3종이 규장각 도서에 있다. 내용 구성은 심부전도(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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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산성 / 江華山城 [예술·체육/건축]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있는 고려후기 몽골 침입 당시에 축조된 성곽.산성. 사적. 강화산성은 고려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여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한 시기인 강도(江都) 시기(1232~1270년)에 조성된 산성으로, 강화읍과 내가면, 하점면 일대에 걸쳐 있다. 강화산성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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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삼거리유적 / 江華三巨里遺蹟 [역사/선사시대사]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삼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과 집터유적. 1966년 국립박물관이 발굴하였는데, 5기의 북방식 고인돌과 그 부근에는 고인돌로 보이는 10여개의 괴석(塊石)이 흩어져 있었다. 발굴이 이루어진 5기의 고인돌은 돌방의 장축이 북서쪽에서 남동쪽(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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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삼랑성 / 江華三郞城 [예술·체육/건축]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에 있는 고려시대 이후 개경과 한양의 방어 역할을 한 성곽.산성. 사적. 정족산은 5개의 산봉우리로 이어져 있는데, 산성은 능선과 계곡을 아우른 포곡식으로 축조되었다. 둘레는 2.3㎞ 정도로, 성곽은 산정상부에서 남문쪽 해발 75m 정도의 능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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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석수문 / 江華石水門 [예술·체육/건축]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 있는 조선후기 강화산성의 내성에 연결된 문(門).수문(水門).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0호. 수문의 길이 10m, 높이 3.8m, 너비 4m. 세 개의 수문으로 되어 있는데, 각 수문은 화강석을 다듬은 선단석(扇單石)을 4단 내지 5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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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순 / 姜和淳 [역사/근대사]
1873-미상. 일제 강점기 의병·독립운동가. 본적은 서울이다. 1907년(융희 1) 일제에 의해 고종 황제가 퇴위를 당하고 강압적으로 군대가 해산되자,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에 가담하면서 전국적으로 의병활동이 진행되었다. 1908년 1월 11일 당시 의병활동을 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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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온수리성공회사제관 / 江華溫水里聖公會司祭館 [예술·체육/건축]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에 있는 대한제국기 성공회의 사제들이 거쳐하던 건물.사제관·성공회한옥. 강화 온수리 성공회의 사제들이 거처하는 한옥 건물로, 2002년 2월 4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1호로 지정되었다. 건물 형식은 ㄷ자 모양의 연와구조의 한옥 건물로, 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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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온수리성공회성당 / 江華溫水里聖公會聖堂 [예술·체육/건축]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에 있는 대한제국기 에 건립된 성당.성공회성당·목조건물. 강화군 온수리 성공회의 본채인 예배당 건물과 2층 종탑 건물로, 2003년 10월 27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2호로 지정되었다. 성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중앙 1칸을 2층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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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유수부 이방청 / 江華留水府 吏房廳 [예술·체육/건축]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 있는 조선후기 강화유수부의 6방 중 하나인 관청.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6호. 한식 목조 단층기와집으로 ㄷ자형인데, 온돌방이 8칸이고 우물마루로 된 청마루가 12칸이며 부엌이 1칸으로 모두 21칸이다. 팔작지붕에 민도리 홑처마로 건평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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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유수부동헌 / 江華留守府東軒 [예술·체육/건축]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 있는 조선시대 강화유수부의 관청.시도유형문화재.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5호. 정면 8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건물. 건물이 있는 터는 고려 고종 때에 임시수도로 궁궐이 있던 곳이었는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그 자리에 유수부의 동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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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지석묘 / 江華支石墓 [역사/선사시대사]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지금까지 발견된 북방식 고인돌 가운데 대형에 속하는 것으로, 지상에서의 높이 2.6m,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7.1m, 너비 5.5m이며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부근리 고인돌은 모두 10기(基)로, 비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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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향교 / 江華鄕校 [교육/교육]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 위치한 향교. 1127년(인종 5) 3월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고려산(高麗山) 남쪽 기슭에 창건되었다. 1232년(고종 19)에 지금의 갑곶리(甲串里)로 옮겼다가 몽고군의 침입으로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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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황촌리지석묘 / 江華黃村里支石墓 [역사/선사시대사]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황촌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황촌리마을 뒷면의 낮은 구릉에 3기가 일렬로 분포되어 있는데 1967년 국립박물관에 의하여 조사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남쪽에 위치한 것은 지상에 노출된 뚜껑돌의 크기가 세로 2.1m, 가로 1.2m, 두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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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활 / 羌活 [과학/식물]
산형과에 속하는 2∼3년생 숙근초(宿根草). 키가 2m쯤 되고, 잎은 어긋나며 난형이고 끝이 뾰족하고 세번 깃모양으로 갈라지며 작은 잎자루와 톱니가 있다. 8∼9월에 복산형화서(複傘形花序: 꽃대 끝에 부채살모양으로 갈라져 피는 꽃차례)가 가지와 원줄기의 끝에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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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원 / 姜孝元 [종교·철학/유학]
1603∼1639(인조 17). 조선 중기의 서리. 아버지는 겸사복 강희룡이다. 1637년 소현세자가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을 때 시강원서리로 배종하였다. 필선 정뇌경이 당시 조선인으로서 후금의 통역관이 되어 온갖 횡포를 자행하던 정명수를 제거하려 할 때 적극 참가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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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맹 / 姜希孟 [종교·철학/유학]
1424(세종 6)∼1483(성종 14). 조선 전기의 문신. 강시 증손, 할아버지는 동북면순무사 강회백, 아버지는 지돈녕부사 강석덕, 어머니는 영의정 심온의 딸이다. 형이 인순부윤이자 화가 강희안이며, 이모부가 세종이다. 1447년(세종 29) 24세로 친시문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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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맹사안 / 姜希孟事案 [사회/가족]
조선시대 성종 때에 있었던 양자(養子)제도와 관련된 문제의 논의. 우리나라의 양자제도에 의하면, 이성불양(異姓不養)의 원칙에 따라 양자는 동성(同姓)으로 하되 동항렬의 근친자로 하였고, 일단 입양되면 그 집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양자로 입양되었다 하더라도 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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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자전 / 康熙字典 [언어/언어·문자]
소학류(小學類). 명석정에 소장되어 있는 책이다. 책수는 6책, 판종은 석인본(石印本)이다. 규격은 20.0×13.5cm, 반곽은 16.9×11.7cm이다. 표제와 판심제는 강희자전(康熙字典)이다. 권수는 10권 6책이다. 장옥서(張玉書), 진정경(陳廷敬) 등이 청(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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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 改嫁 [사회/가족]
과부나 이혼녀가 다시 시집가는 것. 부부 중 어느 일방이 사망하거나 이혼으로 인하여 부부관계가 해소되면 재혼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전통사회윤리는 그렇지 못했다. 조선시대에는 재혼은 거의 남성에게만 국한되어 있었다. 즉, 남성의 재혼과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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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간 / 開墾 [경제·산업/산업]
산림·황무지·하천부지 등을 농경지 등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관개시설·제방·도로 등을 신설 또는 조성하는 일. 개간의 형태에는 대체로 계단식 개간, 원지형 개간(原地形開墾), 개답(開畓) 등이 있다. 계단식 개간은 경사지 개발의 한 형태로서, 등고선에 따라 흙을 정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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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국문학사 / 改稿國文學史 [문학/현대문학]
김사엽(金思燁)이 지은 국문학사서. 제1편 개설(槪說)에서는 ‘문학(文學)의 의의(意義)’와 ‘국문학(國文學)의 성립(成立)’ 등 2장으로 나누어 문학의 개념과 국문학의 성립 과정을 개관하였다. 제2∼6편에서는 국문학의 발달사를 단계화하여 기술하고 있다. 먼저 제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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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곡유집 / 開谷遺集 [종교·철학/유학]
조선후기 문신·학자 이이송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11년에 간행한 시문집. 5권 2책. 목판본. 1780년(정조 4) 전후 그의 현손인 춘보(春溥)·택중(澤仲) 등이 유고를 모아 편집한 것을 1811년(순조 11) 후손인 종해(宗楷) 등이 간행하였다. 권두에 이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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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과몽선록 / 改過夢仙錄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책. 국문필사본. 단국대학교 율곡기념도서관 나손문고에 소장되어 있다. ‘과몽션녹’이라는 제목으로 엮어진 이 책에는 「노쳔녀가」와 「보응녹」이 실려 있으며 필사연대는 1901년이다. 이 작품은 잘못을 고치면 복되고 영화로운 삶을 얻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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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국기년 / 開國紀年 [역사/근대사]
조선 말기 갑오개혁 때 채택한 연호.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1392년을 원년으로 하고 채택년인 1894년을 503년으로 산정하였다. 군국기무처는 6월 28일 신분, 제도, 관습의 개혁과 아울러 모든 국내외의 공문서에 개국기년을 사용할 것을 의결하였다. 이 제도는 이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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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국사석등 / 開國寺石燈 [예술·체육/건축]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개국사에 있었던 고려전기 4각 형태 석등. 높이 4m. 1936년개성역사박물관으로 옮겨 세워졌다. 대석(臺石)·간주석(竿柱石)·화사석(火舍石)주 01)·옥개석(屋蓋石)으로 이루어져 있고, 기본적인 형태는 사각형이다. 대석에는 복련(覆蓮)을 두툼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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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국원종공신 / 開國原從功臣 [역사/조선시대사]
조선시대 개국공신을 늘리려는 의도에서 원종공신에게 내린 칭호 또는 그 칭호를 받은 사람. 조선에 들어와 신포상 제도로서 마련된 것이다. 정공신인 개국공신을 늘리려는 의도가 변경되어 28인의 원종 공신을 책봉한 데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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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권희희 / 開卷嬉嬉 [문학/구비문학]
편자 미상의 소담집(笑譚集). 1912년신문관(新文館)에서 발행된 『절도백화 絶倒百話』와 합본되어 있다. 두 책 모두 국한문 혼용으로 되어 있으며, 짤막한 이야기 각 100편씩을 싣고 있다. 『개권희희』의 편찬자가 누구인가는 확실하지 않으나, 본문 첫머리에 ‘개권희희

종교·철학(42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