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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계조 / 朴啓祚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6인제 배구를 체계화하고 보급하는데 노력한 체육인. 인천광역시 강화 출생. 경성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의 전신)에 진학하여 4학년 때부터 배구선수로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하였다. 1935년 철도국에서 선수생활을 하던 중 1938년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 박광보 / 朴光輔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24∼?). 1764년 관학장의로 입시했을 때, 영조에게 외형이 바르면 그림자도 바르다는 직간을 했다. 그래서 어필 8구와《중용》1부를 하사받았다. 이후 정조에게《역학팔조》를 진상했다. 파계사에 배향되었다.

  • 박광석 / 朴光錫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64∼1845). 성균관전적에 임명되었고, 사헌부감찰을 거쳐 남포현감이 되었다. 남포현감으로 있을 때 선세를 시정하도록 하였으며, 안변부사로 있을 때 송사를 공정하게 처리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저서로는《노포문집》 3권이 있다.

  • 박광우 / 朴光佑 [종교·철학/유학]

    1495(연산군 1)∼1545(명종 즉위년).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정지, 아버지는 인, 어머니는 장유성의 딸이다. 1525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 1536년 재령군수로서 문장에 능하여 원접사를 수행하였고, 1545년 사간이 되었으나 을사사화로 하옥, 이어

  • 박광우묘출토유물 / 朴光佑墓出土遺物 [예술·체육/공예]

    조선 중기의 문신 박광우(朴光佑)의 묘에서 출토된 유물. 충청북도 민속자료 제6호. 박광우의 묘는 원래 경기도 파주시 조리면 오산리에 있었다. 묘의 위치가 해방 이후 육군 작전지역 내에 있었기 때문에 후손들의 출입이 불가능하였을 뿐만 아니라 묘 관리와 성묘를 제때에 할

  • 박광일 / 朴光一 [종교·철학/유학]

    1655(효종 6)∼1723(경종 3). 조선 후기의 학자. 상현의 아들, 어머니는 고부민의 딸이다. 1701년(숙종 27) 천거로 내시교관·시강원자의 등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퇴하였다. 송시열의 문하에서 수학, 권상하·정호 등과 교유하며 학문연구에 힘썼고, 왕명으로

  • 박광전 / 朴光前 [종교·철학/유학]

    1526(중종 21)∼1597(선조 30). 조선 중기의 의병장. 할아버지는 간, 아버지는 이의, 어머니는 최명기의 딸이다. 이황의 문하에서 수업하였고, 1568년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경기전참봉, 헌릉참봉, 회덕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1597년 다시 정유재란이 일어나

  • 박권 / 朴權 [종교·철학/유학]

    1658(효종 9)∼1715(숙종 41). 조선 후기의 문신. 희남 증손, 할아버지는 우, 아버지는 시경, 어머니는 부사 김인량의 딸이다. 1686년(숙종 12)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성균관 전적이 되었다. 경기감사, 강화유수, 병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 박규수 / 朴珪壽 [정치·법제/정치]

    조선 후기의 문신·개화사상가(1807∼1877). 신미양요 주도. 북학파 거두 박지원의 손자다. 연행사 부사를 역임하였다. 1848년 증광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다. 1864년 고종이 즉위하자 특별히 도승지에 임명되었다. 1866년 2월 평안도관찰사가 되었다

  • 박규순 / 朴奎淳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40∼?). 동부승지로 같은 시파 윤영희를 구출하려다가, 오히려 벽파에게 탄핵을 받아 위도로 유배되었다. 이후 교리가 되어 수입 물품 교역을 엄금하도록 하여 사치풍조를 막았다. 이어 우부승지를 역임하고, 공조참의가 되었다.

  • 박규양 / 朴奎陽 [종교·철학/유학]

    1840년(헌종 6)∼1903년(광무 7). 조선 말기 학자. 조부는 박재기, 부친은 박재망, 모친은 권석원의 딸이다. 조부 박재기로부터 가학을 전수받았다. 조부의 장원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일에 힘썼다. 김세락 등과 교유하였다. 문집으로《금남문집》4권이 전한다. 1

  • 박규진 / 朴煃鎭 [종교·철학/유학]

    1855년(철종 6)∼미상. 조선 말기 학자. 부친은 박시한이다. 어려서부터 부친으로부터 학문을 익혔으며, 장성하여서는 척암 김도화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뛰어난 문장으로 인해 당대 이름난 문장가 김진룡‧박기진‧박시주 등과 함께 이름을 나란히 하였다. 문집으로『창고집』

  • 박규희 철산부사 해유문서 / 朴珪熙 鐵山府使 解由文書 [정치·법제/법제·행정]

    해유문서. 1874년(고종 11) 10월 14일 후임관이 평안도관찰사에게 첩정을 올렸고, 동년 11월 초1일에 평안도관찰사겸병마수군절도사순찰사관향사평양부윤이 호조에 문서를 이관, 1876년(고종 13) 12월 일에 호조에서 이조로 문서 이관, 동년 12월 13일에 이조

  • 박금슬 / 朴琴瑟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춤동작』을 저술한 무용가.한국무용가. 1922년 경기도 여주에서 출생했다. 일본여자전문학교 상과를 졸업하고, 1939~1943년에 이시이 바쿠[石井漠] 무용연구소에서 현대무용을 배웠다. 귀국 후 부모님의 의견에 따라 수원의 법릉사에 기거하던 곽서순 스님과

  • 박기령 / 朴箕寧 [종교·철학/유학]

    1779(정조 3) -1858(철종 8). 저자는 1816년(순조 16 )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해서는 오직 책만 보며 족적이 인근의 관기교밖을 벗어나지 않아 아름다운이 행실이 알려졌다. 장석우, 응와 이원조, 운산 이휘재 등과 도의로써 교유하였다. 저자는 시

  • 박기상 / 朴岐爽 [역사/근대사]

    1888-1934.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이명(異名)은 박사국(朴士國)이다.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전라북도 익산군(益山郡) 출신이다. 아버지는 박병돈(朴秉敦)이다. 1919년 3월 19일 이정(李挺)·이병석(李秉釋)·정영모(鄭永模) 등과 함께 전라북도 익산시(益

  • 박기수 / 朴綺壽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74∼1845). 할아버지는 좌원, 아버지는 종신, 어머니는 최수일 딸이다. 1806년(순조 6)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대사헌, 성균관대사성, 홍문관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광주부유수가 되었으나 경기암행어사의 탄핵을 받아 파직당하였다.

  • 박길진 / 朴吉眞 [종교·철학/원불교]

    현대의 원불교인·교육자(1915∼1986). 일본 도요대학 철학과를 졸업, 1966년 동국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 1972년 대만문화학원에서 명예철학박사학위, 1981년 일본 불교대학에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42년부터 원불교에 봉직하기 시작하여 교단발전

  • 박난영 / 朴蘭英 [종교·철학/유학]

    ?∼1636(인조 14). 조선 후기의 무신. 선조 때 면천군수·중군 등을 거쳐, 1619년(광해군 11) 강홍립을 따라 후금 정벌에 나갔다가 포로가 되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후금군의 길잡이로 함께 들어왔다가 석방된 뒤, 회답관·선위사·선유사·추신사·

  • 박달나무 / Betula schmidtii REGEL. [과학/식물]

    자작나무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교목. 높이가 30m에 달하고 수피는 벗겨지지 않으며 검은 회색이다. 잎은 호생하고 난형이며 길이 4∼8㎝로서 가장자리에 뾰족한 톱니가 있다. 꽃은 5∼6월에 피고 과수(果穗)는 길이 2∼3㎝이고 원통형으로 위를 향한다. 높이 300∼2,00

  • 박달목 / 朴達木 [경제·산업/산업]

    자작나무과에 속하는 낙엽 활엽 교목으로, 재질이 치밀하고 견고하며 비중이 큰 나무. 박달목은 재질이 단단하여 각종 공사에 다양한 용도로 쓰였는데, 쓰임새에 따라 그 규격도 다양하였다. 운반 기기인 윤여나 수레 등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대여의 기둥과 초엽, 현주, 횡량,

  • 박달재 / 朴達─ [지리/자연지리]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면과 백운면 사이에 있는 고개. 박달재의 높이 504m로, 차령산맥의 지맥인 구학산(九鶴山, 971m)과 시랑산(侍郎山, 691m)의 안부(鞍部)에 해당한다. 박달재를 박달산·박달령·박달현(朴達峴)·박달치(朴達峙)로 부르기도 하였는데, 요즈음에는 천

  • 박대관 / 朴大觀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의병장(1756년(영조 32)~미상). 평안도 철산에 거주하던 진사로서, 홍경래가 반란을 일으키자 의병을 일으켜 반란군 진압에 일조하고자 하였다. 관군과 연합하여 반란군을 진압하였을 뿐만 아니라, 군량미를 공급하여 난을 진압하는 데 많은 공을 세웠다.

  • 박대완 / 朴大完 [종교·철학/원불교]

    1885∼1959. 원불교의 교무. 전라남도 승주 출신. 13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경도에서 소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인천통감부 직원·농장지배인 등으로 생활하다가 32세 때부터 만주·중국·러시아로 전전하며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27년 소태산을 만나 전

  • 박도욱 / 朴道郁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관료(1681∼?). 박성서의 아들이다. 1702년(숙종 28) 식년시에서 진사에 합격했다. 이후 1728년(영조 4)에 무신별시에서 병과에 급제하였다. 관직은 군수에 올랐다.

  • 박동길 / 朴東吉 [과학/과학기술]

    1897∼1983. 지질학자. 충청남도 연기 출생. 아버지는 박용순(朴容淳)이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고학으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거쳐 도호쿠제국대학[東北帝國大學] 이학부 지질광물학과를 1930년에 졸업하였다. 귀국 후 경성고등공업학교와 경성광산전문학교에

  • 박동명시장 / 朴東命諡狀 [정치·법제]

    조선 중기의 무신 박동명(朴東命) 시호를 추증하기 위해 1832년(순조 32)에 남병철(南秉哲)이 지어서 봉상시에 올린 시장. 이 시장은 이조판서 겸 홍문관대제학 예문관대제학 남병철이 지었다. 작성시기는 남병철의 생존 기간을 고려할 때 1832년으로 추정된다. 시장의

  • 박동선사건 / 朴東宣事件 [정치·법제/정치]

    <위싱턴 포스트>지가 재미실업가 박동선의 의회로비활동을 폭로한 데서 발단되어 한.미간의 외교마찰로까지 번진 사건. 1976년 10월 24일 <워싱턴 포스트>가 박동선이 한국정부의 기관요원으로 1970년대에 연간 50만 내지 1백만 달러 상당의 뇌물로 90여 명의 의원

  • 박동원승급문서 / 朴東元陞級文書 [정치·법제]

    1910년(융희 4) 8월 20일. 육군부위 박동원(朴東元)을 6품 승훈랑에 승급하는 임명장. 경술국치 9일 전의 문서이다. 이 문서의 발급 하루 전인 1910년 8월 19일《일성록》에는 박재빈(朴齊斌) 등을 대거 가자한 기록이 있다.

  • 박두세 / 朴斗世 [종교·철학/유학]

    1650(효종 1)∼1733(영조 9).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할아버지는 이건, 아버지는 율이다. 1682년(숙종 8)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홍문관직이 제수되었으며, 1686년 의금부도사로 권대운을 압송할 때 편리를 보아주었다 하여 파직되었다. 그 뒤 진주

  • 박람회 / 博覽會 [경제·산업/산업]

    한 나라 또는 지역의 문화상태나 산업상태를 소개하기 위하여 그에 관련한 각종 사물이나 상품을 진열해 놓은 곳. 대개 일정한 기간을 정해 놓고 일정한 장소에 산업·경제·학술·종교·교육·예술·보건위생 등의 국력 현황과 외국의 발전상 또는 그와의 비교 등을 나타낸 전시품을

  • 박만규 / 朴萬奎 [과학기술/식물]

    1906년∼1977년. 식물분류학자‧과학교육자. 전라남도 구례에서 출생하였다. 1925년 광주사범학교를 나와 순천국민학교 교사를 하다가 중학교 및 사범학교의 식물교사 검정시험에 합격하여 광복 때까지 경성중학교에서 생물교사를 하였다. 광복 후 군정청 문교부 편수관을 거쳐

  • 박문국 / 博文局 [역사/근대사]

    1883년 인쇄, 출판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 박문국은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의 산하기관인 동문학의 신문발행 업무를 담당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신문발행경비는 특수한 세수권을 부여받아 충당되었고, 각 지방관아에 배부되어 그 수익금으로 유지되었다.

  • 박문수 / 朴文秀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91∼1756). 1723년(경종 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예문관검열로 뽑혔다. 이듬 해 세자시강원설서·병조정랑에 올랐다가 1724년 노론이 집권할 때 삭직됐다. 이후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했으며 1730년 충청도 암행어사로 나가 기민에 힘

  • 박문수설화 / [문학/구비문학]

    조선 후기의 문신이면서 암행어사로 유명하였던 박문수에 관한 설화. 문헌설화는 『기문총화(記聞叢話)』 2편, 『계서야담(溪西野談)』 1편, 『청구야담(靑邱野談)』 3편, 『선언편(選言篇)』 2편, 『동야휘집(東野彙輯)』 2편, 『대동기문(大東奇聞)』·『실사총담(實事叢譚)

  • 박문수전 / 朴文秀傳 [문학/고전산문]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 1책. ‘어ᄉᆞ박문슈’ 또는 ‘어사박문수전’이라는 제목으로 명명되기도 한다. 1915년에는 유일서관(唯一書館), 1926년에는 경성서적업조합(京城書籍業組合), 1952년에는 세창서관 등에서 출판하였다. 필사본이나 목판본은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고

  • 박문욱 / 朴文郁 [문학/고전시가]

    조선 후기의 가인(歌人)·시조작가. 서리(書吏)출신이다. 『해동가요』에 수록된 고금창가제씨(古今唱歌諸氏) 56명 가운데 한 사람이다. 김수장이 경정산가단(敬亭山歌壇)에서 활동하던 사람들 중, 가장 뜻이 통하던 지기(知己)의 하나라고 밝힌 바 있다. 『청구가요 靑丘歌謠』

  • 박문원 / 博文院 [역사/근대사]

    1902년 궁내부에 소속되어 국내외의 고금도서, 신문, 잡지 등을 보관하던 관청. 대한제국 때 국내외의 온갖 서적을 보관하던 관청으로, 관원으로 장, 부장 각 1인, 찬의 2인, 감서 2인, 기사 3인이 있었다. 그 뒤 감서는 참서로, 기사는 주사로 바뀌었고, 참서와

  • 박문익임명문서 / 朴文益任命文書 [정치·법제]

    1907년(광무 11) 2월 6일. 박문익(朴文益)을 숭덕전 참봉 판임관 5등에 서임하는 임명장. 참봉직은 조선시대의 원, 능전을 비롯한 많은 관서에 속해 있었던 최말단직 품관으로 조선시대의 경우 참하관 7품에서 9품직에 해당한다.

  • 박문일 / 朴文一 [종교·철학]

    1822년(순조 22)∼1894년(고종 31). 조선 후기의 학자. 도정의 아들, 어머니는 김태려의 딸이다. 이항로의 문인, 1866년(고종 3) 사복시주부·평안도도사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취임하지 않았으며, 1882년 사헌부지평·사헌부집의 등의 직이 내려졌으나 모두

  • 박문일증시문서 / 朴文一贈諡文書 [정치·법제]

    1910년(융희 4) 8월 증규장각제학 박문일(朴文一)에게 '문헌(文憲)'이란 시호를 내리면서 발급한 칙첩. 문서에는 '박학다문왈문 행선가기왈헌'이라 적어 문헌이란 시호를 내린 연유를 적었다. 1910년 8월 20일 순종은 26명에게 시호를 주었다.

  • 박물관 / 博物館 [예술·체육/건축]

    고고학적 자료, 역사적 유물, 예술품 등을 수집과 보존, 진열하여 일반인에게 전시하고 학술연구 및 사회교육에 기여할 목적으로 만든 시설.

  • 박민 / 朴敏 [종교·철학/유학]

    1566(명종 21)∼1630(인조 8). 조선 중기의 학자. 정구의 문인이다.『대학』과『심경』을 배울 때 정구는 그의 기국이 충후함을 인정하여 제자들에게 그를 스승으로 삼을 것을 말하고는 하였다. 그 뒤 장현광을 만나 역리를 의논할 때 장현광은 그의 높은 학문에 감탄

  • 박민웅 / 朴敏雄 [역사/조선시대사]

    1674(현종 15)∼1732(영조 8). 조선 후기의 무신. 할아버지는 부사 원진, 청주에서 살았다. 도량과 재간이 뛰어나고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하여 소년 때부터 이름이 났다. 뒤에 장신 장붕익과 이봉상이 각각 국사로서 조정에 천거하였다. 충청병마우후겸창의사, 상주영

  • 박민효 / 朴敏孝 [종교·철학/유학]

    1672년(현종 13)∼1747년(영조 23). 조선 후기 학자. 부친 박용서와 모친 홍이사 딸 남양홍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권신경 등의 동학들과 더불어 권해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벼슬은 숭덕전참봉에 그쳤으나 후진교육과 학문에 힘써 이재·권상일 등 당대의 학자들과

  • 박병 / 朴炳 [종교·철학/유학]

    1587(선조 20)∼1663(현종 4). 조선 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응천, 아버지는 동민, 큰아버지인 동현에게 입양되었다. 어릴 때 김장생의 문하에서 노닐었고, 또 김현성으로부터 학업을 전수받았다. 사복시첨정, 임천군수, 청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 박병채 / 朴炳采 [언어/언어/문자]

    1925∼1993. 국어학자. 1963년 3월부터 정년에 이르기까지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많은 후학들을 교육하였고, 박물관장 등의 행정보직을 역임하였다. 1990년 정년퇴임하고 명예교수로 임명되었으나 3년 후 숙환으로 별세하였다. 국어의 역사적 연구에

  • 박병천 / 朴秉千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전통무용가. 1933년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인지리에서 박범준과 김소심의 2남 3녀 중 넷째(차남)로 태어났다. 세습무가 출신인 대금명인 박종기(朴鍾基)의 손자다. 18세 때부터 판소리 명인

  • 박봉령 / 朴鳳齡 [종교·철학/유학]

    1671(현종 12)∼1718(숙종 44). 조선 후기의 문신. 진환 증손, 할아버지는 증휘, 아버지는 성익, 어머니는 서정리의 딸이다. 현감 민종로의 딸과 혼인하였다. 1699년(숙종 25)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헌납·이조좌랑·부수찬·수찬·이조정랑·부교리·교리·

  • 박사 / 博士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성균관·홍문관·승문원·교서관 등의 정7품 관직. 정원은 성균관에 3인, 홍문관에 1인, 승문원에 2인, 교서관에 2인이다. 연산군 때 성균관을 혁파하면서 박사직도 다른 관서로 나누어 보냈다가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으로 원상회복되었다. 1895년(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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