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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창룡 / 趙昌龍 [역사/근대사]

    1899-1923.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평안남도 순천(順川)이다. 중국으로 망명하여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에 입단하였다. 1920년 김진준(金鎭俊)·장필석(張弼錫) 등과 함께 국내에 잠입하여 평안남도 성천(成川)과 황해도 신계(新溪) 등지에서 국내 조직

  • 조천가 / 朝天歌 [문학/고전시가]

    조선 중기에 이수광(李睟光)이 지은 가사. 전후 2곡으로 되어 있다 하나 현재 전하지 않는다. 신흠(申欽)이 『상촌집(象村集)』에서 평하기를 ‘고결하고도 유려한 가사’라고 극찬하였다. 작품의 제목으로 보아 중국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와서 그곳의 풍물과 감회를 보고형식으

  • 조천록 / 朝天錄 [문학/고전시가]

    저자 미상의 수필·가사·소설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문집. 한장(韓裝) 1책. 궁체 국문 필사본. 수록작품은 수필·가사·소설 등으로, 「됴텬녹」·「한화희등황후」·「쇼통현뎐」·「교구련뎐」·「사시풍경녹」·「됴비연합덕의뎐」 등 6편이다.

  • 조천비석거리 / 朝天碑石─ [지리/자연지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에 있는 지명.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31호. 조천은 제주에 이르는 관문이다. 이 비석거리에는 7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1. 목사채공동건휼민선정비(牧使蔡公東健憰民善政碑) : 1855년(철종 6) 8월∼1857년 6월까지 제주목사를

  • 조천사 / 朝天使 [정치·법제/외교]

    조선시대 명나라에 보내는 조선의 사절 또는 그 사신의 총칭. 조천사란 천조(天朝)인 중국에 조근(朝覲)하는 사행이라는 뜻이다. 조천사는 해마다 정례사행과 임시사행으로 나누어 파견하였다. 정례사행으로는 네 번이 있었다.

  • 조철제 / 趙哲濟 [종교·철학/신종교]

    1895년(고종 32)∼1958년. 태극도 창시자. 23세 때 강일순의《태극도리》를 읽고 개안영통하였다. 1918년 무극도를 창도, 증산사상을 포교하였다. 그뒤 3년 동안 120여칸의 교당을 짓고 10만의 신도를 가지는 대교단을 이루었다. 1948년에 본부를 부산 보수

  • 조철호 / 趙喆鎬 [정치·법제/정치]

    항일기의 독립운동가(1890∼1941). 1913년 일본육군 중앙유년학교, 사관학교를 졸업. 오산학교 체육교사로 재직하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전교생을 지도하여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31년 김성수의 신원보증으로 입국하여 동아일보사에 근무하는 가운데

  • 조청부산전선조약 / 朝淸釜山電線條約 [역사/근대사]

    1886년 3월 인천-한성-부산간의 전선가설에 관하여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체결된 6개조의 조약. 1885년 7월에 '조청전보조약'이 체결되자 일본은 1883년에 체결한 '조일해저전선부설조약'을 내세워 의주전선이 개통된다 하더라도 이 선을 통하여 조선이 공사간의 전보를

  •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 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 [정치·법제/외교]

    1882년 8월 23일(음력) 조선과 청 사이에 체결된 수륙통상조약. 1882년 8월 천진에 도착한 어윤중은 이홍장, 마건충 등을 만났다. 조선과 청과의 통상조약 협상때에도 마건충은 청 정부 대표의 한사람으로 참여하였다.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은 전문과 8개조의 본문으로

  • 조청전선조약 / 朝淸電線條約 [역사/근대사]

    1885년 7월 17일 인천-한성-의주 간의 전선 부설에 관해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체결된 조약. 전신, 전화는 근대 국가에 있어 중추신경 역할을 담당하는 근대 시설이다. 조선 정부가 인천-한성-의주-만주-봉황성에 이르는 전선을 설치해 줄 것을 국왕의 이름으로 청나라

  • 조충의전 / 趙忠毅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 소설. 1책. 국문 필사본. 내용에 효종이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저작 연대는 효종 이후가 분명하다. 이 작품은 민간에 유전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서 구성면에서도 수준이 떨어지는 작품이다. 그리고 내

  • 조칙 / 詔勅 [문학/한문학]

    한문문체의 하나. 대개 왕의 말을 조(詔), 황후·태자의 말을 영(令)이라고 한다. 이들이 문서로 발포하는 것을 총칭하여 조령이라 한다. 고(誥)·조(詔)·영(令)·유(諭)·새서(璽書)·교(敎) 책명(策命) 등은 명칭은 비록 다르지만 모두 조령에 속한다. 우리 나라는

  • 조침문 / 弔針文 [문학/고전산문]

    조선 순조 때 유씨부인(兪氏夫人)이 지은 고전수필. 부러진 바늘을 의인화하여 쓴 제문(祭文)이다. 미망인 유씨의 작품으로 알려졌을 뿐 연대와 작자의 인적사항은 알려진 바 없다. 다만 작자는 사대부 가문의 청상과부인로 생각되는데, 그 문장실력과 고사(故事)에 능통한 점으

  • 조탁 / 曺倬 [종교·철학/유학]

    1552(명종 7)∼1621(광해군 13). 조선 중기의 문신. 한필 증손, 할아버지는 언전, 아버지는 몽정, 어머니는 홍신의 딸이다. 1599년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공조참판, 한성부좌우윤 등을 역임하였다.

  • 조태구 / 趙泰耉 [종교·철학/유학]

    1660(현종 1)∼1723(경종 3). 조선 후기의 문신. 존성 증손, 할아버지는 계원, 아버지는 사석이다. 어머니는 권후의 딸이다. 태채·태억의 종형이다. 1686년 별시문과에 종제 태채와 함께 병과로 급제, 설서·문학·승지를 거쳐, 1702년 충청도관찰사로 나갔다

  • 조태수 / 趙泰壽 [종교·철학/유학]

    1658년(효종 9) 10월 9일∼1715년(숙종 41) 6월 24일.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조기, 조부는 조희보이다. 부친 조형과 모친 이장영의 딸 전주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심권의 딸 청송심씨이다. 44세에 처음 관직에 올라 내시교관을 시작으로, 금부도

  • 조태억 / 趙泰億 [종교·철학/유학]

    1675(숙종 1)∼1728(영조 4). 조선 후기의 문신. 존성 증손, 할아버지는 계원이다. 아버지는 가석, 어머니는 윤이명의 딸이다. 태구·태채의 종제이다. 최석정의 문인이다. 1702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검열·지평·정언 등을 지냈다. 1707년 문과중시에

  • 조태채 / 趙泰采 [종교·철학/유학]

    1660(현종 1)∼1722(경종 2). 조선 후기의 문신. 존성 증손, 할아버지는 계원, 아버지는 희석이다. 어머니는 백홍일의 딸이다. 태구의 종제이며, 태억의 종형이다. 1686년(숙종 12) 별시문과에 종형 태구와 함께 병과로 급제하였다. 평안감사, 좌참찬 겸 판

  • 조택원 / 趙澤元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한국민속무용단 단장 등을 역임한 무용가.친일반민족행위자. 1907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대한제국 군관학교 제1기 출신으로 참령(參領)의 지위에 올라 있던 종완(鐘玩)이며, 어머니는 김금오(金琴梧)이다. 7세 때 홍원보통

  • 조포사 / 造泡寺 [예술·체육/건축]

    사찰. 조포사(造泡寺)는 능(陵)이나 원(園)에 딸려서 제향에 쓰는 두부를 맡아 만드는 사찰이다. 헌릉(獻陵)의 조포사는 용인의 봉서사(鳳棲寺)이다. 예전에는 봉헌사(奉獻寺)를 조포사로 삼았으나, 사찰이 무너지고 승려가 흩어진 탓에 봉서사를 조포사로 삼게 되었다. 광교

  • 조학경 / 趙學經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조선시대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학업에 몰두한 문인이다. 검간 정의 5세손이며 조언기 아들이다. 어려서 밀암 이재 문하에서 배웠다. 깨달은 바가 있어 과거에 뜻을 접고 오로지 학문에 매진했다.《심경》‧《근사록》‧《주자서》에 공을 들였으며 문장이 날로 발전했

  • 조학래 / 趙學來 [종교·철학/유학]

    1899년(고종 36)∼1964년. 조선 말기의 문인이다. 고조부는 조성헌, 증조부는 조방규, 조부는 조용진, 부는 조창제이다. 7, 8세에 부형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 근면하고 나태하지 않아 문의를 쉽게 깨우쳤다. 이후 집안의 여러 어른들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육

  • 조한규 / 趙翰逵 [종교·철학/유학]

    1740∼181? (영조15∼순조?) 아버지 조영근과 어머니 청주 한씨사이에서 2남 1녀의 셋째로 태어났다. 각정산아래에서 성장하여 평생을 보냈으므로 호를 각정이라 지은 것으로 보인다. 증조할아버지가 문충공 조태억이다. 16세 때에 형과 함께 미상에서 최수인․ 수원

  • 조함세 / 趙咸世 [종교·철학/유학]

    1607년(선조 40)∼1690년(숙종 16). 조선 중기 유학자. 부친 조형도의 5남 중 막내, 형으로 조함영‧조함희, 조함장‧조함철이 있다. 장현광의 문하에서 수학, 1652년(효종 3) 증광시 생원 3등 8위로 합격, 호조판서를 역임했던 김세렴의 천거로 참봉에 올

  • 조해 / 趙楷 [종교·철학/유학]

    1639(인조 17)∼1699(숙종 25). 조선 후기의 문신. 아버지는 봉원, 어머니는 정시혁의 딸이다. 서인이다. 1681년(숙종 7) 천거로 공릉참봉, 경안도찰방, 예빈시직장, 의금부도사, 순창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 조헌 / 趙憲 [종교·철학/유학]

    1544(중종 39)∼1592(선조 25). 조선 중기의 문신·유학자·의병장. 황 증손, 할아버지는 세우, 아버지는 응지이다. 어머니는 차순달의 딸이다. 이이·성혼의 문인이다. 1567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공조좌랑, 보은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1604년 선

  • 조현례 / 朝見禮 [정치·법제]

    왕비 또는 왕세자빈이 혼례를 마친후 처음으로 부왕, 모비 등 왕실의 어른을 뵙는 의식. 국혼은 납채, 납징, 고기, 책비, 친영, 동뢰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지막 절차인 동뢰연를 마친 후 조현례를 거행하였다. 헌종 계비인 효정왕후 홍씨의 가례를 보면 동뢰연을 마친

  • 조현명 / 趙顯命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90∼1752). 이인좌의 난이 진압된 뒤 분무공신 3등에 책록되고, 풍원군에 봉해졌으며, 이후 도승지·경상도관찰사·공조참판·부제학, 이조·병조·호조판서 등의 요직을 거쳐 우의정·좌의정·영의정에 이르렀다. 영조의 탕평책을 지지하였다. 저서로는《

  • 조형 / 趙珩 [종교·철학/유학]

    1606(선조 39)∼1679(숙종5). 조선 후기의 문신. 세찬 증손, 할아버지는 기, 아버지는 희보이다. 1626년(인조 4)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했으나 파방, 1630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대교를 거쳐 사국으로 옮겼다. 좌참찬,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

  • 조형균 / 趙衡均 [교육/교육]

    1873-1948년.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정주 출신. 1892년(고종 29) 정주에 교회를 세우고 신문화운동을 통하여 애국사상을 고취하였고, 1904년 이승훈(李昇薰)과 오산학교(五山學校)를 설립, 교육을 통한 민족의식 고취에 힘썼다. 또, 남녀청년단을 조직하고, 식

  • 조형도 / 趙亨道 [역사/조선시대사]

    1567(명종 22)∼1637(인조 15). 조선 중기의 무신. 생육신 여 5대손이다. 아버지는 지이다. 큰아버지 우에게 입양되었다. 부인은 오운의 딸이다. 1583년(선조 16) 첨지 민추에게 수학했다. 1587년 정구를 사사한 뒤 3년 간 향시에 연이어 장원하였다

  • 조형보 / 趙衡輔 [정치·법제/법제·행정]

    1659년(효종 10)∼1697년(숙종 23). 조선 후기 학자. 본관은 풍양이다. 홍문관전한 조종경(趙宗敬)의 후손으로, 증조는 현감 풍옥헌(風玉軒) 조수륜(趙守倫)이고, 조부는 창강 정속(鄭涑)이다. 부친 현령 매창(梅窓) 정지운(鄭之耘)과 모친 승지 정면(鄭勔)

  • 조호익 / 曺好益 [종교·철학/유학]

    1545(인종 1)∼1609(광해군 1).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치우 증손, 할아버지는 효연, 아버지는 윤신이다. 어머니는 장중우의 딸이다. 이황의 문인이다. 저서로 『지산집』·『심경질의고오』·『가례고증』·『주역석해』 ·『역상추설』·『논위학지요』·『이기유석등변』·『

  • 조홍시가 / 早紅枾歌 [문학/고전시가]

    1601년(선조 34)박인로(朴仁老)가 지은 연시조. 모두 4수. 작자의 문집인 『노계집(蘆溪集)』 권3에 실려 있고, 『청구영언』·『해동가요』 등에도 전한다. 이덕형(李德馨)이 도체찰사로서 영천에 이르렀을 때에 홍시를 보내자 그 자리에서 이 시조를 지은 것이라 한다.

  • 조홍진 홍산현감 해유문서 / 趙弘鎭 鴻山縣監 解由文書 [정치·법제/법제·행정]

    해유문서. 1782년(정조 6) 10월 일에 후임관이 병조에 첩정을 올렸고, 동년 10월 초9일에 공충도관찰사겸순찰사가 병조에 문서 이관, 동년 10월 일에 병조에서 호조로 문서를 이관하였다. 조홍진(趙弘鎭)은 재검(載儉)의 아들로 양부는 재운(載運)이다. 1780년(

  • 조화정부 / 造化政府 [종교·철학/신종교]

    강증산(姜甑山)이 지난 세상의 잘못들을 공정하게 바로잡늗다는 증산교의 사상. 이 사상의 배경에는 사자(死者)도 생자(生者)의 일원이 된다는 선조사상과 땅에서의 다스림이 하늘의 것이라는 정치사상이 깔려 있다. 증산교도들은 조화정부가 하는 일이 앞으로 올 인존시대(人尊時代

  • 조황 / 趙晃 [역사/근대사]

    1882-1934. 항일독립운동가. 경기도 포천 출신. 1919년 3·1운동 당시부터 국내에서 의열단 활동을 하였다. 1923년 3월 황옥경부폭탄투척의거(黃鈺警部爆彈投擲義擧)에 가담하여 김시현(金始顯) 등과 더불어 붙잡혔다. 같은해 8월 21일 경성지방법원 합의부에서

  • 조훈 / 趙勳 [역사/근대사]

    1886-1938. 독립운동가. 일명 덕묵(德默). 함경남도 단천 출신. 1910년 만주로 가 독립운동에 종사하였다. 1919년 장백현(長白縣) 17도구(道溝)에서 이태걸(李泰杰)·김찬(金燦) 등과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을 조직, 외교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2

  • 조휘영 / 趙徽榮 [종교·철학/유학]

    1805년(순조 5)∼1854년(철종 5). 조선 후기 유학자. 부친은 조현상이다. 초시에는 합격, 1850년(철종 1)에 실시된 전시에서 실패한 후, 과거에 대한 뜻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후 고향의 문사들과 교유하며,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기며 여생을 보냈다.

  • 조흘강 / 照訖講 [역사/조선시대사]

    조선시대 과거제 운영에 있어서 일종의 예비 시험. 소과, 즉 생원·진사시의 경우 초시와 복시, 그리고 문과의 경우 복시 실시 전에 응시자에게 각각 과했던 예비 시험이다. 조흘의 ‘조’는 확인 또는 대조를 뜻하며, ‘흘’은 그러한 절차를 ‘마쳤다’는 뜻이다. 조흘강의

  • 조흥진 / 趙興鎭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48∼1814). 홍경래 난에 의주를 지키고, 철산·용천 등 7읍을 수복하는 데 전공을 세웠으나 논공행상에 불만, 사직하였다. 양사의 건의로 병조참판에 기용되고, 이어서 한성부우윤·부총관을 역임하였으며, 사후 이조판서·대제학에 추증되었다.

  • 조희룡 / 趙熙龍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화가(1789∼1866). 서화에 뛰어났던 여항문인화가로서 글씨는 추사체를, 그림은 남종문인화를 따랐으나 김정희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였다. 그가 저술한 《호산외사》는 중인들에 대한 생생한 기록으로 사료적 가치가 높다.

  • 조희백 / 趙熙百 [문학/고전시가]

    조선후기 진산군수, 함열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아버지는 형조참의와 동부승지를 지낸 조규년(趙奎年)이며, 어머니는 해평 윤씨(海平尹氏)로 윤정렬(尹鼎烈)의 딸이다. 31세 때인 1855년(철종 6)에 진사가 되고, 이듬해에는 참봉이 되어 진산군수에 음서(蔭敍)되었다.

  • 조희유 / 曺喜有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1742∼1814). 문과 급제 후, 성균관전적·장악원주부·병조좌랑·예조정랑 등을 지냈다. 그 뒤 사헌부지평·사간원헌납·사헌부장령이 되었으며, 그해에 서산군수로 부임하였으나, 다음해에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갔다. 학행이 뛰어나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

  • 조희필 대구도호부판관 해유문서 / 趙熙弼 大丘都護府判官 解由文書 [정치·법제/법제·행정]

    해유문서. 1868년(고종 5) 10월 일에 후임관이 겸도순찰사에게 첩정을 올렸고, 동년 10월 22일에 행경상도관찰사겸도순찰사가 호조에 문서 이관, 1870년(고종 7) 9월 일에 호조에서 이조로 문서 이관, 동년 9월 22일에 이조에서 조희필(趙熙弼)에게 조흘하였다

  • 족보 / 族譜 [사회/가족]

    한 종족의 계보. 부계를 중심으로 혈연관계를 기록한 책이다. 조상에 대한 존숭, 종족의 단결, 후손간의 화목을 이루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나라의 최초 족보는 1476년에 간행된 <성화보>로서 안동권씨의 족보이다. <연려실기술>에 의하면, 1562년 <문화류보>가

  • 족징 / 族徵 [경제·산업/경제]

    조선 후기 삼정문란의 한 사례인 군정의 폐해. 국법으로는 생활의 곤궁으로 군역을 피하여 도피한 자가 10년이 경과해도 행방불명인 경우 면역조처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규정을 무시하고 도피자의 미납분을 족징이라 하여 그 친족에게 대신 군포를 납부하게 하던 일을

  • 족친위 / 族親衛 [정치·법제/국방]

    조선시대 중앙군으로서 호분위에 소속되었던 병종. 기원은 미상. 왕실과 혈연 관계에 있는 자들이 속해 체아직을 받으면서 일정한 복무를 마쳐 거관되도록 한 일종의 우대 기관. 왕실의 친척들을 구체적으로 나누어 보면 왕과 선왕의 단면 이상의 동성친, 왕후·선후의 친가의 시

  • 존경각 / 尊經閣 [교육/교육]

    1475년(성종 6) 성균관 안에 건립된 도서관 건물. 기본 장서는 사서·오경·제사와 성리학 중심의 유가 도서이고, 불교는 물론 노장 및 기타 잡류 그리고 농학 등 기술계 도서는 금지되었다. 도서의 수집 방법은 주로 ≪경국대전≫에 정해진 반서제도에 따라 교서관 등에서

  • 존재가첩 / 存齋歌帖 [문학/고전시가]

    조선후기 학자 위백규와 위세보의 시조 「농가」와 가사 「자회가」·「금당별곡」 등을 수록한 가집.첩·가곡류. 위백규의 「농가」 9장은 농부화의 추세 속에 놓인 향촌사족층인 서생(書生)이 자영농(自營農)의 자리로 이전해가는 단계를 전형적으로 반영한 작품으로 평가되며, 위백

  • 존재사 / 存在詞 [언어/언어/문자]

    품사의 하나. 동사·형용사와 함께 활용을 하는 용언으로서, ‘존재’나 ‘소유’의 뜻을 나타내는 ‘있다, 없다, 계시다’가 이에 속한다. 존재사는 ‘사물의 존재여부를 표시’한다는 의미적 범주로도 독자성을 가지지만, 특히 그를 동사나 형용사와 따로 나누어 세우는 근거는 활

  • 졸고천백 / 拙藁千百 [문학/한문학]

    고려후기 문신 최해의 서(序)·기·후제·행장 등을 수록한 문집. 『졸고천백』에는 45편의 산문이 시대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권1은 서(序) 6편, 기(記) 4편, 후제(後題) 2편, 발 1편, 묘지 3편, 묘지명 4편, 문책(問策) 1편, 권2는 서 5편, 묘지 9편,

  • 졸곡 / 卒哭 [종교·철학/유학]

    사람이 죽은 지 석 달 되는 초정일이나 해일에 지내는 제사. 졸곡은 무시곡을 마친다는 뜻으로 대개 삼우를 지낸 후 초정일이나 해일에 행한다. 졸곡의 절차는 우제의 절차와 같으나 초헌과 사신의 경우에는 우제와 차이가 있는데, 축이 주인의 왼쪽에 동향하여 선다. 졸곡 후에

  • 졸수재집 / 拙守齋集 [언론·출판]

    조성기(1638-1689), 목판본. 12권 6책. 선장본. 책의 구성은 12권 6책 이다. 서문과 발문은 없다. 맨 앞에 총목이 있으며, 1책은 권별로 각 권의 앞에 목록이 있고, 2~6책은 책 별로 각 책의 맨 앞에 두권씩의 목록이 함께 실려 있다. 권1~11이 본

  • 졸와집 / 拙窩集 [종교·철학/유학]

    정광묵의 문집. 석인본, 서: 권상규(1944), 발: 김철희, 정승모(1959), 정진한(1959), 2권 1책. 권1에는 시가 17제 25수, 소 1편, 서 6편, 잡저에 사단칠정설 1편, 책문에 문독서 1편이 수록되어 있고, 권2에는 만사 15인, 제문 18인,

  • 졸재집 / 拙齋集 [종교·철학/유학]

    채소권의 문집. 석판본, 발: 채석진(1938)‧채묵진(1938), 2권 1책. 권1은 부 4편, 시 139제 211수가 있고, 권2는 시 21제 23수, 만 11제 12수, 사 2편, 계 3편, 소 3편, 제문 1편, 서 1편, 잠 2편, 명 3편, 갈명 4편, 묘지

  • 좁쌀 한 알로 장가든 총각 / [문학/구비문학]

    과거를 보러 가는 젊은이가 좁쌀 한 알로 점점 이득을 보는 교환을 하여 성공한다는 내용의 설화. 형식담(形式譚)에 속하며, 그중에서도 누적적형식담(累積的形式譚)에 속한다. 즉, 한 행위가 원인이 되어 다음 행위가 생기는 결과가 계속되어, 끝 결과는 가장 큰 기대를 실현

  • 종각 / 鐘閣 [예술·체육/영화]

    1940년대 일제하의 암담한 상황을 배경으로 두 남녀의 사랑의 비극을 그린 영화. 원작 강노향, 각색 강청남, 감독 양주남, 촬영 유장산, 음악 김대현. 소개업자의 꾀임으로 광산촌 위안부로 팔려간 영실은 이곳에서 강제징용되어온 청년을 사랑하게 된다. 그들은 참담한 광산

  • 종교교육 / 宗敎敎育 [언론·출판/언론·방송]

    조선 주일학교연합회가 1925년부터 월간으로 간행해온 주일학교잡지가 폐간되어, 1930년 1월 1일에 변경 창간하여 1-3단으로 내리 편집하여 월간으로 발행한 잡지. 당시 교계 및 국내 명사들이 필진으로 참여했으며, 사설, 논문, 문예, 잡문, 교육, 축사 등으로 구

  • 종교시보 / 宗敎詩報 [언론·출판/언론·방송]

    장로회총회 종교교육부가 1932년 12월 8일에 크리스마스 순서 특별호로 창간하여 국한문 2-3단으로 내리 편집하여 매월 발행한 월간지. 내용으로는 보고, 성탄특집, 기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 종교학 / 宗敎學 [종교·철학]

    종교현상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현대 경험과학. 종교학은 '하나만 아는 것은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다'라고 주장한 뭘러의 입장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는 종교학이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하는 학문분야임을 나타내 주는 말이다. 19세기 말에 종교학이 탄생하였다. 우리나라는 19

  • 종구품 / 從九品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18품계 중 최하위 품계. 1392년(태조 1) 7월 문산계와 무산계를 제정할 때 종9품 문산계의 장사랑만 정하였다. 1436년(세종 18)에 무산계의 종9품으로 진의부위가 설치되었다. ≪경국대전≫에는 종9품 문산계의 장사랑과 무산계의 진의부위가 개칭된 전력

  • 종남총지 / 終南叢志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문신 김득신이 어무적에서부터 남용익에 이르는 주요 인물들의 시를 평가한 시화집. 1책. 필사본. 홍만종(洪萬宗)의 『시화총림(詩話叢林)』 제4책과 임렴(任廉)이 편찬한 『양파담원(暘葩談苑)』 제4책에 수록되어 있다. 규장각 도서와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

  • 종덕신편언해 / 種德新編諺解 [언어/언어/문자]

    김육(金堉)이 편저한 『종덕신편』을 한글로 번역한 책. 『종덕신편』은 소학을 읽고 덕을 함양시키기 위하여 그 요령을 경전 중에서 뽑아 펴낸 책으로 그 간기가 없기 때문에 언제 간행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김육 생존시에는 전혀 간행된 일이 없는 듯하다. 비록, 김육의 서

  • 종두소 / 種痘所 [과학기술/의약학]

    구한말 우두의 접종과 두묘(痘苗)를 제조하거나 종두의양성(種痘醫養成)을 담당하였던 의료사업기구. 종두소가 설치되기 전에 이미 지석영과 이재하에 의하여 1882에서 1893년 사이에 전주, 공주, 대구, 한성에 우두국(牛痘局)이 설치되어 종두를 실시하였다. 그러다가 18

  • 종두의양성소 / 種痘醫養成所 [과학기술/의약학]

    구한말 천연두의 예방을 목적으로 종두를 하는 의사를 양성하기 위하여 설치한 교육기관. 갑오개혁과 함께 내무아문에 위생국을 신설하여 각종 유행성 전염병예방 및 소독법의 법규를 제정하면서, 1895년 10월 내부령으로 '종두규칙'을 공포하고, 곧 우두종계소를 위생국에 설치

  • 종로 / 鍾路 [지리/인문지리]

    서울의 광화문(光化門)에서 동대문까지 연결되어 있는 도로. 6번 국도로 지정되어 있는 대표적인 도로의 하나이다. 조선 시대에 밤 10시에 종을 쳐 통행 금지를 알리는 인정(人定)과 새벽 4시에 다시 종을 쳐 통행 금지를 해제하는 파루(罷漏)로 도성의 8대문을 여닫게 하

  • 종로경찰서투탄의거 / 鍾路警察署投彈義擧 [역사/근대사]

    1923년 의열단원 김상옥이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사건. 1923년 1월 12일 밤 8시 10분경 종로경찰서 투탄에 성공한 김상옥은 그날 밤으로 삼파동에 있는 매부집에 은신하고 있다가 일본경찰에 포위되었다. 이 곳에서 총격전을 전개하여 형사부장 마에무라를 비롯하여

  • 종묘 / 宗廟 [종교·철학/유학]

    조선 왕가의 제사를 지내는 장소. 또는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봉안한 사당. 사적 제125호. 우리나라는 신라 시대는 5묘제, 고려 시대는 7묘제로 하였고, 조선 시대 초기에도 7묘제로 하였다. 종묘의 건축은 중국의 제도를 본떠 궁궐의 좌변에 두었다. 1608년

  • 종묘대제친행홀기 / 宗廟大祭親行笏記 [정치·법제]

    국왕이 직접 참여하여 거행한 종묘 대제의 진행 순서를 적은 홀기. 이 문서에는 종묘대제섭행홀기와 진설도 등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홀기는 각 종 의식의 그 진행 순서를 기록한 문서로 절차를 미리 정해 놓고 그대로 시행함으로써 절차의 오류를 막기 위해 사용된다. 이왕직

  • 종묘서 / 宗廟署 [정치·법제/법제·행정]

    왕실 능원의 정자각과 종묘를 수호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 처음 설치는 고려 문종 때로서, 처음에는 영 1인, 승 2인을 두었다. 충렬왕 때 침원서로 개칭, 전의시에 속하면서 승 1인이 줄었다. 공민왕 때 대묘서로 개칭되면서 주부 1인을 증원하였고, 다시 능원서로

  • 종묘선원전영녕전효덕전경효전등제향시 축문제진거행문 / 宗廟璿源殿永寧殿孝德殿景孝殿等祭享時 祝文製進擧行文 [정치·법제]

    종묘 및 선원전, 영녕전, 효덕전 및 홍릉, 명성황후의 혼전인 경효전, 순종 비인 순명효황후의 혼전인 의효전, 사성당 등에서 제향을 지낼 때 사용하는 축문을 지어 올린 사실을 적은 문서. 축문의 규모와 지어 올린 날짜를 함께 기록하였다. 이 문서는 문서 7장과 함께 묶

  • 종묘악장 / 宗廟樂章 [문학/고전시가]

    조선조 역대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신 종묘의 제례악에 올려 부른 한시 형태의 노랫말. 1463년(세조 9) 12월에 만든 종묘 악장은 ‘영신(迎神) 희문(熙文)/전폐(奠幣) 희문(熙文)/진찬(進饌) 풍안(豐安)/초헌(初獻) 보태평지무(保太平之舞) 희문(熙文)·기명(基命

  • 종묘영녕전고유제진설도 / 宗廟永寧殿告由祭陳設圖 [정치·법제]

    종묘와 영녕전에 고유제(告由祭)를 올릴 때 제물을 제상에 배열하는 진설도. 판심에 이왕직이 찍힌 용지로 보아 기존에 있던 진설도를 이왕직에서 정리하여 재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 종묘영녕전대제급친제진설도 / 宗廟永寧殿大祭及親祭陳設圖 [정치·법제]

    종묘와 영녕전에서 매년 정기적인 대제(大祭)를 올릴 때 제상에 배열하는 진설도. 판심에 이왕직이 찍힌 용지로 보아 기존에 있던 진설도를 이왕직에서 정리하여 재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 종묘영녕전대제섭행전배친행홀기 / 宗廟永寧殿大祭攝行展拜親行笏記 [정치·법제]

    종묘와 영녕전에서 대제를 지낼 때의 의식 절차를 적은 홀기. 판심에 이왕직이 찍힌 용지를 보아 일제강점기 이왕직에서 작성하였다. 이 문서 안에는 <종묘영녕전전배홀기>와 <종묘대제친행홀기>가 함께 묶여 있다.

  • 종묘의궤 / 宗廟儀軌 [종교·철학/유학]

    조선시대의 종묘와 영녕전에 관한 의절을 기록한 책. 원편 4책과 속록 5책으로 되어 있다. <국조오례의>와 <국조속오례의>의 종묘에 관한 의례를 바탕으로 하고 <조선왕조실록>, 제가의 문집 등에서 관련부분을 채록하였다.

  • 종묘제례 / 宗廟祭禮 [종교·철학/유학]

    종묘의 제향의식. 조선시대의 종묘대제에는 정시제와 임시제가 있었다. 정시제는 사계절의 첫 달과 납일에 지냈다. 그후 납일제향은 폐지되고 1, 4, 7, 10월의 상순에 지내는 춘하추동 제향만 시행되었다. 임시제는 나라에 흉사나 길사가 있을때 올린 고유제과 햇과일과 햇곡

  • 종묘제례악 / 宗廟祭禮樂 [종교·철학/유학]

    조선시대에 종묘제례를 봉행할 때 사용한 음악과 무용의 총칭.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제향에 음악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시대부터이고, 1116년에는 송에서 전래된 대성아악을 연주하였다. 세종때 연주한 정대업과 보태평은 다소의 개정을 거쳐 종묘제례악으

  • 종묘집탈기 / 宗廟執頉記 [정치·법제]

    종묘의 건물과 각 실 내부에 파손되거나 누수된 곳을 기록한 문서. '집탈'이란 잘못된 것을 조사한다는 의미이다. '경술(1910년) 8월'이라는 기록과 장례원, 내장원 등 궁내부에 속한 관서가 나오고 있다. 국망 직전에 대한제국기 궁내부에서 작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종백부 / 宗伯府 [역사/근대사]

    구한말 봉상시, 종묘서, 사직서, 전생서 등의 소관사무와 각 전, 묘, 능, 원, 궁의 일을 관장하였던 관서. 궁내부, 종친부, 종백부 산하 각 사에서 종전에 응입하였던 전곡도 탁지아문으로 하여금 담당하도록 하여 전국의 재정이 일원화되었다. 그러나 전국 재정이 일원화되

  • 종부시 / 宗簿寺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왕실계보인 선원보첩의 편찬과 종실의 잘못을 규탄하는 임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된 관서. 종부시는 1392년(태조 1) 태조의 관제신정 때 전중시로 출발하여, 1401년(태종 1)에 종부시로 개칭되었다. 1430년(세종 12)에 재내제군부가 종친부로 개칭되어

  • 종사 / 從史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세손위종사의 종7품 관직. 정원은 2인이다. 좌우 각 1인씩을 두어 세손의 배위를 담당하였다. 입직 1인이 왕세손을 위한 경서 강독과 질의·응답에 참석하였다. 1448년(세종 30)에 세손위종사가 세손강서원으로 분리되면서 동반의 다른 관직이 겸임하였다. 사만

  • 종사랑 / 從仕郎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문신 정9품의 품계명. 조선이 건국한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 문산계가 제정될 때 정9품으로 정하여졌다. 정9품에 해당하는 관직으로는 전경·정자·기사관·검열·학록·규장각대교·부봉사·세마·훈도·사용·수문장 등이 있다.

  • 종사품 / 從四品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18품계 중 제8등급의 품계. 조선 건국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 문산계와 무산계를 제정할 때 문산계의 종4품 상계는 조산대부, 하계는 조봉대부로, 무산계의 상계는 선절장군, 하계는 선략장군으로 정하였다. 그런데 무산계의 상계인 선절장군은 뒤에 정략

  • 종산서원 / 鍾山書院 [교육/교육]

    함경북도 종성군(현재의 새별군) 용계면 부계동에 있었던 서원. 1667년(현종 8)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기준(奇遵)·유희춘(柳希春)·정엽(鄭曄)·조석윤(趙錫胤)·유계(兪棨)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십주도회서원(十州都會書院)을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16

  • 종삼품 / 從三品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18품계 중 제6등급의 품계. 조선이 건국된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 문산계와 무산계가 제정될 때 문산계의 종3품 상계는 중직대부, 하계는 중훈대부로, 무산계의 상계는 보의장군, 하계는 보공장군으로 정하였다. 그런데 무산계의 상계 보의장군은 뒤에 건

  • 종상법 / 種桑法 [경제·산업/산업]

    양잠을 권장하기 위하여 뽕나무를 의무적으로 심도록 하는 제도. 1459년(세조 5) 6월에 제정하여 중외에 반포한 것으로 일명 양잠조건(養蠶條件)이라고도 한다. 조선의 식상정책(植桑政策)은 태종 때부터 시작되어 1423년(세종 5)에는 경복궁에 3,590그루, 창덕궁에

  • 종성 / 終聲 [언어/언어/문자]

    『훈민정음』(해례본)에서, 음절의 말음(末音)을 설명하기 위하여 붙인 이름. 『훈민정음』(해례본)의 본문(예의편)에서는 “종성부용초성(終聲復用初聲).”이라고만 하였으나, 제자해(制字解)에서는 “대개 자운(字韻)의 중심은 중성에 있는 것이니, 초성·종성과 합하여 음절을

  • 종성군 / 鍾城郡 [지리/인문지리]

    함경북도 북단에 있는 군. 동쪽은 경원군, 서쪽은 두만강을 경계로 중국 동북 지방, 남쪽은 회령군·경흥군·나진시, 북쪽은 온성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9°44′∼130°15′, 북위 42°17′∼42°53′에 위치하며, 면적 1,122.69㎢, 인구 3만7953명(

  • 종성부용초성 / 終聲復用初聲 [언어/언어/문자]

    『훈민정음』 「예의」와 ‘해례’ 「제자해」에서, 종성은 새로 만들지 않고 초성을 다시 쓴다고 설명한 ‘훈민정음’ 종성의 제자와 운용 원칙. 이 ‘종성부용초성’은 초성, 중성, 종성으로 구성된 음절에서, 그 요체는 중성이고 이 중성에 초성과 종성이 결합된다는 음절 인식을

  • 종성해 / 終聲解 [언어/언어/문자]

    종성의 분포적 특성, 4성(四聲)의 완급(緩急)에 따른 종성의 대립, 8종성가족용법 등을 설명한 『훈민정음』 ‘해례’의 네 번째 장. 「종성해」는 『훈민정음』 ‘해례’의 네 번째 장으로서, 음절에서 종성이 분포하는 위치, 초성, 중성과 어울려 음절을 이루는 방법, 4성

  • 종성향교 / 鍾城鄕校 [교육/교육]

    함경북도 종성군(현재의 은성군) 종성면 주산동에 있는 향교. 1441년(세종 23)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575년(선조 8)에 객사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건하였다. 당시의 경내 건물로는 대성전·동무(東廡)·서

  • 종오품 / 從五品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18품계 중 제10등급의 품계. 1392년(태조 1) 7월 문산계와 무산계를 제정할 때 종5품 문산계의 상계는 봉직랑, 하계는 봉훈랑으로, 무산계의 상계는 현신교위, 하계는 창신교위로 정하였다. 그 뒤 ≪경국대전≫에는 그대로 수록되었다. 종친계는 1443년(

  • 종옥전 / 鍾玉傳 [문학/고전산문]

    1803년(순조 3) 목태림(睦台林)이 지은 고전 소설. 1권 1책. 한문 필사본. 이 작품의 주제는 판소리계 문학인 「춘향전」·「배비장전」·「변강쇠전」·「매화타령」·「신선타령」·「무숙타령(武叔打令)」 등과 함께 상류층 귀족 계급의 호색적인 생활을 풍자하려는 데에 두고

  • 종용록 / 從容錄 [문학/한문학]

    강양 요산정사에서 심재덕의 처 김씨부인 의 유서와 행실을 칭양한 글을 묶어 1909년에 간행한 언행록. 3권 1책. 목판본. 1909년 시당숙부인 심학환(沈鶴煥)에 의하여 강양(江陽) 요산정사(樂山精舍)에서 간행되었다. 『종용록』 권두에 김도화(金道和)의 서문과 권말에

  • 종육품 / 從六品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18품계 중 제12등급의 품계. 종6품 문산계 선무랑과 무산계 병절교위 이상을 조회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해 참상관이라 하였다. 조선 건국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 종6품 문산계의 상계는 선교랑, 하계는 선무랑으로, 무산계의 상계는 승의교위, 하계는

  • 종이품 / 從二品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18품계 중 제4등급의 품계. 조선 건국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 문산계와 무산계를 제정할 때, 종2품 문산계의 상계는 가정대부(嘉靖大夫), 하계는 가선대부 (嘉善大夫)로 정하였다. 그런데 종2품 이상은 무산계가 없었는데, 이는 문존무비를 나타내는

  • 종인학교관제 / 宗人學校官制 [교육/교육]

    1899년 왕족(王族)을 가르치기 위해 설치한 학교와 관련된 제도. 종인학교는 1900년에 설치되었다. 관원은 교장(校長:宗正院卿이 겸무) 1명, 도선(導善:勅任官) 1명, 전훈(典訓:勅任官) 2명, 사회(司誨:奏任官 2, 判任官 1) 3명, 전부(典簿:判任官, 宗正院

  • 종일품 / 從一品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18품계 중 제2등급의 품계. 조선 건국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 문산계와 무산계를 제정할 때 종1품 문산계의 상계는 숭록대부, 하계는 숭정대부로 정하였다. 한편, 1443년(세종 25) 12월 종친계의 상·하계로 소덕대부와 가덕대부가 신설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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