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총 22,1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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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한문학사 / 朝鮮漢文學史 [문학/한문학]
1931년 국문학자 김태준의 한국한문학사에 관한 학술서. 한문학사의 시대를 상대·고려·이조로 크게 나누었고, 각 시대를 중국문학의 영향, 문장가·학제·문풍 등을 중심으로 서술하였으며, 시 등을 예문으로 넣었다. 시·문 등 정통적인 한문학을 중심으로 다루었으며 한문소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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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혁명당 / 朝鮮革命黨 [역사/근대사]
1930년대 만주에서 활약한 대표적인 독립운동단체. 조선혁명당은 그 산하에 조선혁명군을 두어 총사령관에 이진탁, 부사령관에 양세봉, 참모장에 이웅을 임명하고 활동하였다. 1931년 9월의 만주사변 이후 만주를 벗어나 국내로 남하하여 1932년 11월에는 대일전선통일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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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환여승람 / 朝鮮寰輿勝覽 [언론·출판/출판]
사부(史部) - 지리류(地理類) 이병정(李秉廷)편, 안병태(安秉台) 교, 목판본, 불분권 1책(51장). 이병정이 우리나라의 지리총설과 충남 여천군지를 편집하여 만든 인문지리지이다. 내용은 서, 지리총설, 충남지리총설로 되어 있다. 발은 목판본, 여천군은 목활자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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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교 / 趙性敎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18∼1876). 예조판서·전라도관찰사·사헌부대사헌 등을 지냈다. 전라도관찰사 때 극심한 수재가 나자 납세 기일을 늦추는 등의 백성 구휼과 부족한 병조의 번포를 돈으로 대납하게 하는 등의 선정을 베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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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도감 / 造成都監 [예술·체육/건축]
고려시대에 토목·영선사업을 관장하였던 관부. 조성도감에서 관장한 영선사업은 궁궐건축은 물론 연복사 등 사찰과 탑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였다. 조성도감에서는 단순히 토목·영선만을 담당하였던 것이 아니라, 이에 필요한 목재·석재 등 재료의 징수와 요역을 징발하였으며 이에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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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복 / 趙聖復 [종교·철학/유학]
1681(숙종 7)∼1723(경종 3). 조선 후기의 문신. 박 증손, 할아버지는 현소, 아버지는 시채, 어머니는 최득일의 딸이다. 1702년(숙종 28)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지평·정언을 지냈다. 신임사화 때 삼학사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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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환 / 曺成煥 [역사/근대사]
1875-1948.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청사(晴簑). 1906년 안창호 등과 함께 신민회를 조직하여 항일운동에 투신하였다. 1919년 3.1운동 직후에 상해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군무부차장에 임명되었다. 1936년 임시정부 국무위원 겸 군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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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걸 / 趙世傑 [종교·철학/유학]
1648년(인조 26)∼1722년(경종 2). 조선 후기 유학자·효자. 증조는 조인, 조부는 조정익이다. 부친 조유와 모친 이정길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파평윤씨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우애가 돈독하였다. 1689년(숙종 15) 인현왕후가 폐출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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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창 / 漕稅倉 [경제·산업/산업]
조운할 전세를 보관하는 창고. 초기의 조창은 아래 세주에 명기되었다. 그 가운데 황해도의 금곡포창과 조읍포창 등은 경기우도 수운판관이 겸하는 벽란도승의 관장 아래 수참선으로 전운되었다. 금곡포창은 배천군의 동쪽 20리에 소재하며, 배천·해주·연안·풍천·강령·옹진·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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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앙 / 趙素昻 [역사/근대사]
1887-1959.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정치사상가. 임시정부 외무총장·의정원의장을 지냈고, 한국독립당을 창당했으며, 해방 후 비상국민회의의장으로 임시정부의 정통성 고수를 주장하기도 했다. 1948년 남북협상차 평양에 다녀왔고, 제2대국회의원이 되었으나, 6·25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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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속 / 趙涑 [종교·철학/유학]
1595(선조 28)∼1668(현종 9). 조선 후기의 서화가. 수륜 아들, 지운의 아버지, 박태상의 장인이다. 덕산현감, 장령, 진선, 상의원정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창강일기>가 있으며 광주의 수곡서원, 과천의 호계서원, 서천의 건암서원, 김제의 백석사에 제향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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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손별서 / [문학/고전시가]
개화기 때 의성김씨(義城金氏)가 지은 가사. 318구. 작자는 상해 임시정부의 초대국무령이었던 이상룡(李相龍)의 부인이다. 일제강점기를 맞아 광복운동에 투신한 남편 이상룡을 따라 중국으로 망명했던 의성김씨가 조국에 남아 있는 손녀에게 보낸 편지이다. 모두 318구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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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숙하 / 趙肅夏 [종교·철학/유학]
1844년(헌종 10)~미상. 조선 후기 문신. 조재호 후손, 고조는 조관진, 증조는 조운익, 조부는 조용화이다. 부친은 조연권, 모친은 이유원의 딸이다. 생부 조연흥과 생모 박영원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정기세의 딸이다. 1866년(고종 3) 정시 문과에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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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술도 / 趙述道 [종교·철학/유학]
1729년(영조 5)∼1803년(순조 3). 조선 후기 유학자. 증조는 조군, 조부는 조덕린이다. 부친 조희당의 5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형으로 조준도·조운도·조근도·조진도가 있다. 부인은 김주우의 딸이다. 이상정과 김낙행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저서로《운교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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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시광 / 趙是光 [종교·철학/유학]
1669년(현종 10)∼1740년(영조 16). 조선 후기 성리학자. 부친 조영과 모친 권확의 딸사이에서 태어났다. 이현일·이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고향에서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김성탁·정만양 등과 교유하며 학문을 토론하였다. 시문집《주강문집》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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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식 / 曹植 [종교·철학/유학]
1501-1572. 조선 중기의 유학자. 여러 번 관직에 천거되었으나 모두 사양하고 학문과 강학에만 힘썼다. 주자학의 입장에서 도가와 불가를 비판하였다. 노자는 인간에게 내재한 도덕을 문화적 소산으로 보는 잘못을 범했으며, 불가는 형이상학만 있고 형이하학은 없어 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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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씨삼대록 / 曺氏三代錄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40권 40책. 한글궁체 필사본. 조씨가문의 3대에 걸친 사건을 다루고 있는 가문소설(家門小說)로 대하소설에 속한다. 이 작품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된 「현몽쌍룡기」와 연작관계에 있다. 「현몽쌍룡기」에는 「조씨삼대록」과 연작임을 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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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씨전 / 趙氏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권. 국문 필사본. 불교적인 인과응보 및 전세·현세·내세의 횡적인 연관성과 유교의 효도를 표방한 가정사를 다룬 일종의 계모형 소설이다. 이런 유형으로 「장화홍련전」·「콩쥐팥쥐」 등의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두 작품에서는 피학자(被虐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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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알례훈서 / 朝謁禮訓書 [정치·법제]
관례 뒤 조알례를 시행할 때 국왕이 왕세자에게 내리는 훈서. 이 문서에 실린 의식 관련 내용은《국조오례의고이》<왕세자관의>편에 실려 있다.《조선왕조실록》에는 1670년(현종 11)기사에서부터 이 글귀가 나오고 있다. 조알례의 의식적인 훈서와 대답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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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야기문 / 朝野記聞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 서문중이 지은 기사본말체의 책. 30권 23책. 서문에 1626년(인조 4)까지의 국조기사년과 총기, 국조대사기, 본편에 종계변무·개역·서변정토·을해옥사와 이시애의 토평, 무오사화·윤비폐의·폐신비의·복소릉의·기묘사화·복성군옥사·을사옥사·벽서옥사·기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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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야시선 / 朝野詩選 [문학/한문학]
1916년에서 1919년 사이에 이기가 조야(朝野)의 시인 233명의 시 1,130수를 수록한 시선집.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활동한 조야의 시인 233인의 시 1,130수를 모아 엮었다. 권두에는 1922년에 정만조(鄭萬朝)가 쓴 서문이 있다. 오세창(吳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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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도 / 助藥島 [지리/자연지리]
전라남도 완도군 약산면에 있는 섬. 동경 126°57′, 북위 34°24′에 위치하며, 완도에서 동북쪽으로 15.2㎞ 지점에 있다. 면적은 23.84㎢이고, 해안선 길이는 45.0㎞이다. 남서쪽에 신지도, 동쪽에 평일도, 서쪽에 고금도가 있다. 약산면의 유일한 유인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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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 / 兆陽 [지리/인문지리]
전라남도 보성지역의 옛 지명. 본래 백제 때의 동로현(冬老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이 조양으로 고쳐 분령군(分嶺郡)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 현종 때 보성군에 귀속시켰다가 조선 태조 때 일시적으로 고흥현에 예속시켰으나 세종 때 다시 보성현에 편입하였다. 이 시기에 조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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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폭포 / 朝陽暴布 [지리/자연지리]
북한 강원도 금강군 단풍리(옛 고성군 외금강면 온정리)에 있는 폭포. 높이는 31m이고, 너비 3m의 2단 폭포이다. 1단의 높이는 10m이고 2단의 높이는 21m이며, 떨어진 물은 넓이 200㎡의 깊은 폭호(瀑壺), 즉 소를 만들고 있다. 구룡폭포(九龍瀑布)ㆍ비봉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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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어법 / 造語法 [언어/언어/문자]
단어의 구성 규칙. 단어의 하위단위인 형태소(形態素)들이 결합하여 단어를 구성하는 방식이 곧 조어법(word―formation)이다. 조어법을 다루는 분야를 조어론이라 하는데 굴절론(屈折論)과 함께 형태론의 한 하위류를 이룬다. 형태론은 다시 통사론(統辭論)과 함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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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어업 / 釣漁業 [경제·산업/산업]
각종 조어구(釣漁具)를 사용하는 어업의 총칭. 조어구는 일반적으로 수산동물을 미끼로 유인하여 조침(釣針)에 걸리게 하는 어구라고 할 수 있다. 조어업은 일본조어업(一本釣漁業)과 연승어업(延繩漁業)으로 나누어진다. 일본조어업에 사용되는 조구류(釣具類)는 조어구를 조작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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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엄 / 趙曮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19∼1777). 경상도관찰사·대사헌·부제학·승지·대사간·한성부우윤, 공조·이조의 판서 등을 지냈다. 문장에 능하고 경서와 사기에 밝았다. 민생문제에 관심을 가져서 1763년 통신정사로 일본에 갔을 때 대마도에서 고구마의 종자를 가져와 보관·재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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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창 / 趙然昌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10∼?). 민화의 아들이다. 1835년(헌종 1) 증광 별시 문과 병과 급제 후 대사헌·공조판서·의정부좌참찬·판의금부사·예문관제학 등을 지냈다. 1866년 상호도감에서 익종대왕옥책문의 금보전문서사관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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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수호통상조약 / 朝英修好通商條約 [정치·법제/외교]
1883년 조선과 영국이 체결한 조약. 조선과 영국정부는 1883년 11월 26일에 새로운 조영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은 조영 양국 정부가 1884년 5월 1일(음력 4월 7일)조선에서 비준서를 교환함으로써 정식으로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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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순 / 趙榮順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25∼1775). 희석 증손, 할아버지는 태채, 아버지는 겸빈, 어머니는 민계수의 딸이다. 대사성·이조참판·병초참판·호조참판 등을 지냈다. 부수찬 때 왕세자에게 영의정 이천보를 매도하는 글을 올렸다가 유배, 사직 때 소론의 영수 최석항의 신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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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진 / 趙榮進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03∼1775). 1761년 도승지 때 사도세자 처형을 강력히 반대하다가 영조의 노여움을 사 파직되었으나 다시 대사헌으로 기용, 예조참판·경기도관찰사·오위도총부도총관·지중추부사·형조판서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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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오수호통상조약 / 朝奧修好通商條約 [정치·법제/외교]
1892년 조선과 오스트리아 사이에 체결된 조약. 조선과 오스트리아는 1892년 5월 29일(양력 6월 23일) 양국의 전권대신 주일 대리공사 권재형과 주일 오스트리아공사 로저 디 비게레벤 사이에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였다. 조약의 체결 장소는 일본 도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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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완구 / 趙琬九 [종교·철학/유학]
1880년(고종 17)∼미상. 독립운동가. 일찍이 대종교에 입교하여 1915년 5월 대종교를 포교할 목적으로 북간도 용정 일대에 가서 수많은 주민 동포를 상대로 약 3년간 선교활동에 종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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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석 / 曺龍錫 [종교·철학/유학]
1705년(숙종 31)∼1774년(영조 50). 조선 후기 성리학자. 부친은 조한혁이다. 14세부터 정재 정만양·지수 정규양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경전과 사서를 익히며 과거 공부를 시작하였다. 과거에 대한 뜻을 접고 밀암 이재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성리학에 뜻을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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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석 / 趙庸錫 [역사/근대사]
1861-1920.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경술국치 후 만주 통화현으로 건너가 1918년 항일민족교육기관인 배달학교를 설립했다. 통화현 만세시위 주도, 한족회 간부로 활약했다. 만주대학살 때 손자 조용주와 함께 학살당했다. 197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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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자 / 趙勇子 [예술·체육/무용]
일제강점기 「봉선화」·「부여회상곡」·「영봉찬무」 등에 출연한 무용가. 1924년 부산에서 출생했고, 서울로 이사한 후 배화고등여학교에서 수학하다 성악가가 되기를 꿈꿔 고등학교 3학년 때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음악학교에 입학했으며 그곳에서 성악은 물론 무용에도 흥미를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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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 / 趙鏞夏 [종교·철학/유학]
항일기의 독립운동가·외교관(1882∼1937). 조소앙(趙素昻)의 형으로, 대한제국 주독·주프랑스 공사관 참사관을 역임하고,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북경으로 망명해 경학사에 참가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하와이에서 한국독립단·한인협회 등을 조직해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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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임명문서 / 趙鏞夏任命文書 [정치·법제]
1907년(광무 11) 7월 25일. 전 시어 조용하(趙鏞夏)를 시종원 좌시어 판임관 9급에 서임하는 임명장. 시종원은 1895년(고종 32) 4월 궁내부 관제를 개정할 때 시종과 시강 사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청이다. 1900년에 좌시어 8명, 우시어 12명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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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화 / 趙容和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93∼?). 재호 증손, 할아버지는 관진, 아버지는 운익, 어머니는 이득일의 딸이다. 1822년(순조 22) 식년 문과 병과급제 후 홍문관에 등용되어 이조참판·비변사제조·형조판서·대사헌·한성부판윤·형조판서 등을 지냈다. 문장에 뛰어나 경사제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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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신 / 趙又新 [종교·철학/유학]
1583∼1650(선조16∼효종1) 아버지는 상이다. 정경세·이현영의 문인이다. 1613년(광해군 5) 진사시에 합격, 광해군의 폐모론에 반대하여 정인홍·이이첨·유희분의 3적신을 참할 것을 주장하는 소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환을 단념하고 향리에 은거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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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인 / 曺友仁 [종교·철학/유학]
1561년(명종 16)∼1625년(인조 3). 조선 중기의 문신. 계형의 증손자이다. 1588년(선조 21)에 사마시에 합격, 1605년에 문과에 급제해 여러 벼슬을 지내다가 1616년(광해군 8)에는 함경도경성판관을 지냈다. 1621년에는 제술관으로 있으면서 광해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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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규 / 趙雲逵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14∼1774). 태동 증손, 할아버지는 봉빈, 아버지는 영국, 어머니는 한배하의 딸이다. 1740년(영조 16) 정시문과 병과급제 후 좌참찬·교동수사·판의금부사·지성균관사·호조판서 겸 판중추부사 등을 지냈다. 전라도관찰사 때 소론 윤지일당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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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도 / 趙運道 [종교·철학/유학]
1718년(숙종 44)∼1796년(정조 20). 조선 후기 유학자. 증조는 조군, 조부는 조덕린. 부친 조희당의 5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 조준도와 동생 조술도·조진도·조근도가 있다. 부인은 이륜의 딸이다. 과거 공부를 포기하고 자신의 수양을 닦기 위한 공부에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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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익 / 趙雲翊 [종교·철학/유학]
1765년(영조 41)~미상.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조문명, 조부는 조재호이다. 부친 조관진과 모친 유성제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이득일의 딸이다. 1802년(순조 2) 한림소시에 참여하여, 김시근‧서유순‧홍병철 등과 함께 선발되었고, 1804년(순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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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흘 / 趙云仡 [문학/한문학]
고려후기 밀직제학, 서해도관찰사, 첨서밀직사사 등을 역임한 관리.문신. 1357년(공민왕 6) 문과에 급제해 안동서기(安東書記)가 되었다. 합문사인(閤門舍人)을 거쳐서 1361년형부원외랑에 올랐다. 홍건적의 침입으로 말미암아 남쪽으로 피난하던 왕을 호종해 1363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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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웅전 / 趙雄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책. 국문 필사본. 전체적 구성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조웅과 이두병의 대립, 조웅과 번왕의 대립, 조웅과 이두병의 대립순으로 전개되어 간다. 이 작품은 ‘영웅의 일생’의 형식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러나 다른 작품에 비하여 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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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희 / 趙瑗熙 [예술·체육/체육]
일제강점기 『신편체조법』을 발간한 체육인.교육자. 생몰년 미상. 서울 출신. 우리나라 근대 체조를 학교체조로 발전시킨 체조지도자이며 이론가이다. 육군무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보병 참위(參尉)에 임관되어 휘문의숙(徽文義塾) 체육교사를 겸임하였고, 뒤에는 학감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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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위 / 曺偉 [종교·철학/유학]
1454(단종 2)∼1503(연산군 9). 조선 전기의 문신. 조경수의 증손, 할아버지는 조심, 아버지는 조계문이다. 어머니는 유문의 딸이다. 1472년(성종 3) 생원·진사시에 합격, 1474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정자·예문관검열, 홍문관정자·저작·박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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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위경 / 趙緯經 [종교·철학/유학]
1698년(숙종 24)∼1780년(정조 4). 조선 후기 성리학자. 부친은 조언철이다. 경전을 익히며 학문에 매진하였다. 남을 대할 때에도 한결같이 예의에 어긋나지 않아서 사람들로부터 군자다운 모습을 지녔다는 칭송을 받았다. 박손경과 이상정·이광정 형제들과 도의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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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수 / 趙裕壽 [종교·철학/유학]
1663(현종 4)∼1741(영조 17). 조선 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형, 아버지는 상변이다. 1688년 관학의 유생으로서 박세채의 신원을 상소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694년 천거로 희릉참봉을 거쳐, 장흥고주부·연풍현감·옥천군수·회양부사를 지냈고, 이어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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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대 / 曺允大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48∼1813). 헌주 증손, 할아버지는 하망, 아버지는 명준이다. 어머니는 한사억의 딸이다. 1779년(정조 3) 정시문과에 급제, 여러 벼슬을 거쳤다. 소론계 인물로 옥사를 일으키기도 하였으며,《정조실록》편찬에도 참여하였다. 이후 이조참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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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수 / 曺允遂 [종교·철학/유학]
1753년(영조 29)∼미상.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조헌주, 조부는 조하망이다. 부친 조명억과 모친 한사덕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1785년(정조 9) 알성시에 병과 2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1793년(정조 17) 남포현감으로 있을 때 백성을 진휼한 치적으로 아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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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옥 / 趙壽玉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국가축구대표팀 감독, 대우 프로축구팀 감독 등을 역임한 체육인. 조윤옥은 서울 출생으로 서울 동북중학교 2학년 때인 1954년 축구를 시작하여 1968년까지 15년간 선수생활을 하였고, 1973년 포항제철축구팀 코치를 시작으로 1990년까지 18년간 축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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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형 / 曺允亨 [종교·철학/유학]
1725∼1799. 조선후기의 문신. 부친은 조명교, 어머니 윤춘교의 딸이다. 문음과 학행으로 천거되어 1766년(영조 42)처음 벼슬길에 나간 이후의 관력을 서술했고, 특히 그림과 글씨에 능했는데, 공사간의 비문들이 대부분 그의 손으로 이루어졌음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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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읍포창 / 助邑浦倉 [경제·산업/경제]
황해도 금천군 조읍포에 설치되었던 조선 전기의 조창. 조읍포창에서는 강음·황주·서흥·평산·봉산·곡산·수안·안악·재령·신계·우봉·토산 등 12고을의 세곡을 수납, 보관하였다가 일정한 기일 안에 경창으로 운송하였다. 운송항로는 금곡포창과 마찬가지로 예성강과 한강의 수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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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수호통상조약 / 朝伊修好通商條約 [역사/근대사]
1884년 6월 26일에 조선과 이탈리아 사이에 체결된 수호통상조약. 이탈리아는 주청공사인 루카(Luca, F. de, 盧嘉德)를 전권대신으로 조선에 파견하여 조선의 전권대신인 김병시와 조약 체결을 교섭하게 하여 1884년 6월 26일에 전문 13조로 된 이 조약을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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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익 / 趙翼 [종교·철학/유학]
1579(선조 12)∼1655(효종 6). 조선 중기의 문신. 안국 증손, 할아버지는 간, 아버지는 영중이다. 어머니는 윤근수의 딸이다. 장현광·윤근수의 문인이다. 정포만호,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위의 논술 외에 문집으로 ≪포저집≫ 35권 18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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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익정 / 趙益貞 [종교·철학/유학]
1436(세종 18)∼1499(연산군 5). 조선 전기의 문신. 신 증손, 할아버지는 안평, 아버지는 온지, 어머니는 오축의 딸이다. 1465년(세조 11)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 공조참판, 춘추관동지관사, 경상우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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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규 / 趙仁規 [종교·철학/유학]
1237(고종 24)∼1308(충렬왕 34). 고려 후기의 문신. 아버지는 조영이다. 평양부 상원의 미미한 가문 출생이었으나 몽고어 통역관으로 출세해 충선왕의 장인이 되었으며 권문세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의 아들은 조서, 조련, 조연수, 조위 등인데, 모두 재상의 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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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영 / 趙寅永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82∼1850). 1819년 식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다. 1826년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한 뒤로 이조참의·대사성·세손좌유선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1839년 천주교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주도하였고, 우의정에 올라《척사윤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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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희 / 趙寅熙 [정치·법제/정치]
1822-?. 조일수호조규 당시 강수관. 1875년 진위 겸 진향부사에 임명되었다. 1876년 6월 5일 일본국 이사관 미야모토가 제물포에 도착, 당시 행호군으로서 강수관에 임명되었다. 따라서, 미야모토와의 접촉과정에서 선박의 항세 및 화물 수출입의 관세를 면제하는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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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수호조규속약 / 朝日修好條規續約 [역사/근대사]
1882년 8월 30일 조선 전권대신 이유원과 일본 관리공사 하나부사 사이에 체결된 전 2조로 된 조약. 수호조규속약은 조일수호조규부록을 협상할 때 우리측의 강력한 반대로 후퇴할 수 밖에 없었던 간행이정(間行里程)을 확대하는 것과, 일본인 외교관과 그 수행원 및 가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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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약장합편 / 朝日約章合編 [언론·출판/출판]
사부(史部) - 정법류(政法類)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編), 금속활자본(전사자), 불분권 1책(45장). 1876년 병자한일수호조약부터 1889년 조선, 일본 양국통어장정까지 조일간에 맺어진 11조약을 수록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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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잠정합동조관 / 朝日暫定合同條款 [역사/근대사]
1894년 조선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조약. 조선에서의 일련의 이권, 즉 경부·경인간 철도 부설권 및 전신선 설치·관리권, 목포항 개항 등을 획득하기 위해 일본공사 오토리는 7월 30일자로 조선에 조약체결을 요구하였다. 한동안 정세를 관망하던 조선은 드디어 8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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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재 / 趙一齋 [예술·체육/연극]
1863-1944년. 소설가·신극운동가. 본명은 중환(重桓). 일재(一齋)는 호이다. 서울 출생. 개화기에 가장 많이 활약한 번역문학가·소설가였으며 동시에 신파극운동가였다. <매일신보>의 기자로 있으면서 1912년 윤백남(尹白南)과 함께 신파극단 문수성(文秀星)을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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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통상장정 / 朝日通商章程 [정치·법제/외교]
1883년 조선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장정. 1881년 10월 조병호가 일본에 제출한 조선측 통상장정안인 신수통상장정초안에는 조사시찰단의 통상관련 보고 내용이 반영되었다. 이후 조선측 전권대신 민영목과 일본측 전권대신 다케조에는 1883년 6월 22일(양력 7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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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임도 / 趙任道 [종교·철학/유학]
1585(선조 18)∼1664(현종 5). 조선 후기의 학자. 식 아들, 어머니는 유상린의 딸이다. 김중청·고응척·장현광 등을 사사하였다.1604년(선조 37) 향시에 합격, 그 이듬해인 21세 때 『관규쇄록』을 저술하였다. 1608년(광해군 즉위년)「거상대절」10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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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원임명문서 / 趙在元任命文書 [정치·법제]
1907년(광무 11) 1월 11일. 조재원(趙在元)을 조경묘 참봉 판임관 8등에 서임하는 임명장. 조경묘는 전주이씨의 시조 이한(李翰) 부부의 위패를 봉안한 전각이다. 조재원이 서임된 참봉직은 조선시대의 원, 능전을 비롯한 많은 관서에 속해 있었던 최말단직의 품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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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호 / 趙載浩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02∼1762). 아버지는 문명, 어머니는 김창업의 딸이다. 1739년(영조 15) 천거로 등용되어, 승정원승지·경상도관찰사·이조판서·우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천의소감》의 편찬을 담당했으며, 1762년에는 장헌세자를 구하려다가, 역모로 몰려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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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적명 / 趙迪命 [종교·철학/유학]
1865(숙종 11)∼? 조선 후기의 문신. 형 증손, 할아버지는 상변, 아버지는 유수, 어머니는 안평대군의 딸이다. 1721년(경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대사간, 한성부좌윤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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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전권 / 曺專權 [종교·철학/원불교]
1909년∼1976년. 원불교 전무출신. 아버지는 송광, 어머니는 최공엽이다. 13세에 보통학교 졸업, 18세 때 아버지가 소태산 박중빈의 제자가 된 것을 알고 아버지를 찾으러 원불교중앙총부에 왔다가 소태산의 제자로 출가하여 전무출신이 되었다. 그뒤 총부공양원·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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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전주 / 曺殿周 [종교·철학/유학]
1580(선조 13)∼1635(인조 13). 조선 중기의 문신. 집현전부제학 상치 후손으로, 아버지는 한영, 한상에게 입양되었다. 1600년(선조 33) 진사시에 합격한 뒤 1612년 음보로 출사하여 담양부사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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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 / 漕艇 [예술·체육/체육]
정해진 거리에서 여러 명으로 이루어진 각 보트의 팀이 노(櫓)를 저어 속도를 겨루는 수상경기. 정하여진 거리를 여러 명으로 이루어진 각 보트의 팀이 노를 저어 도착하는 순서에 따라 순위가 정하여진다. 주로 호수·하천·바다 등에서 맑은 공기와 함께 자연을 접하면서 실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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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 / 趙靖 [종교·철학/유학]
1555(명종 10)∼1636(인조14). 조선 중기의 문신. 윤영의 증손, 할아버지는 희, 아버지는 광헌, 어머니는 홍윤최의 딸이다. 김성일의 문인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활약, 1603년 사마시에 합격, 1605년 좌랑으로 증광문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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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룡 / 曺挺龍 [종교·철학/유학]
1694년(숙종 20)∼1769년(영조 45). 조선 후기 유학자. 조계룡의 후손, 고조는 조윤방, 증조는 조정, 조부는 조백령이다. 부친 조필대와 모친 장도견의 딸사이에서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 조정봉·조정구가 있다. 진우직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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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만 / 趙正萬 [종교·철학/유학]
1656(효종 7)∼1739(영조 15).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아버지는 경망, 어머니는 유식의 딸이다. 송준길·송시열의 문인이다. 1681년(숙종 7) 진사시에 장원하여 성균관유생이 되고, 1694년 의금부도사가 되었다. 공조·호조의 낭관, 제용감·군자감판관,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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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빈 / 趙鼎彬 [종교·철학/유학]
1681년(숙종 7) ~ 졸년 미상. 조선 후기 유생. 증조부는 조계원, 조부는 조희석, 부친은 조태채, 외조부는 심익선이다. 동생으로 조관빈과 조겸빈이 있다. 1705년(숙종 31) 식년시에서 진사 3등 10위로 합격하였다. 성균관에서 수학하였다.1713년(숙종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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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수호통상조약 / 朝丁修好通商條約 [역사/근대사]
1902년 7월 조선과 덴마크(丁抹·丹國) 사이에 체결된 수호통상조약. 조선이 서구제국에 문호를 개방하자, 덴마크도 수호통상조약 교섭을 해왔다. 이에 조선은 외부대신임시서리이며 궁내부특진관이던 육군부장 유기환을 특명전권대신으로 임명하여 러시아 궁내부특진관 특명전권공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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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융 / 曺挺融 [종교·철학/유학]
1598(선조 31)∼? 조선 후기의 문신. 언홍의 증손, 할아버지는 몽신, 아버지는 우인, 어머니는 이열도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뛰어났으며, 사마시를 거쳐 1631년(인조 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내직에서 여러 관직을 거친 다음 사예가 되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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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익 / 趙廷翼 [종교·철학/유학]
1599(선조 32)∼1637(인조 15). 조선 후기의 순절자. 인규 후예, 보 증손, 유의 아버지이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아내 이씨와 함께 강화도로 피란하였으나 청병이 쳐들어와 강화도가 함락되고 말았다. 이에 자살을 기도, 이씨가 먼저 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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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준 / 趙廷俊 [과학기술/의약학]
생몰년 미상. 조선 영조 때의 명의. 1728년(영조 4) 동궁의 병을 입진하였고, 1749년 우리나라 소아과 전문의서의 효시인《급유방》을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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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희 / 趙定熙 [종교·철학/유학]
1845년(헌종 11)∼미상. 조선 말기의 문신. 휘림의 아들이다. 1863년(철종 14) 정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한림·집례를 지낸 뒤 1869년(고종 6)동지 겸 사은사행때 정사 이승보, 부사 조영하를 수행하여 서장관장령으로 청나라를 다녀왔다. 이조참의, 사간원대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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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 朝祖 [생활/주생활]
상례에서 죽은 자의 시신을 사당에 옮겨 조상을 알현하고 하직 인사를 올리도록 하는 의식. 조조는 발인에 앞서 사당에 모셔진 조상에게 하직 인사를 올리는 의식이다. <주자가례>의 상례 절차에 의하면 발인 하루 전에 빈소에 있던 영구를 사당으로 옮겨 조상을 뵙는 조조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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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잡기놀이 / 曹操─ [생활/민속]
여러 사람이 각각 괘를 들고 둘러앉아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간웅(奸雄) 조조를 찾아내어 벌을 주는 아이들놀이. 놀이방법은, 사람수대로 마련한 종이쪽지에 조조를 비롯하여 유현덕(劉玄德)·제갈량(諸葛亮)·한신(韓信)·장량(張良)·조자룡(趙子龍)·관우(關羽)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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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 / 朝宗 [지리/인문지리]
경기도 가평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 때의 심천현(深川縣, 또는 伏斯買縣)이었는데, 신라의 영토가 된 뒤 757년(경덕왕 16) 준천현(浚川縣, 또는 浚水縣)으로 고쳐 가평군(嘉平郡)의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940년(태조 23) 조종현으로 고치고, 1018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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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도 / 趙宗道 [종교·철학/유학]
1537(중종 32)∼1597(선조 30). 조선 중기의 문신. 아버지는 언, 어머니는 강로의 딸이다. 정두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58년(명종 13) 생원시에 합격한 뒤 천거로 안기도찰방이 되었다. 이 때 이황의 문하생들인 유성룡·김성일 등과 교유하였다. 양지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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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필 / 趙鐘弼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40∼?). 1874년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대사성·이조참의·형조참판·공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정부당상·태의원경·궁내부특진관이 되고 각 도의 관찰사를 두루 역임하였다. 1901년에는 정헌대부 정2품에 승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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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현 / 趙宗鉉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31∼1800). 대사간·대사성·대사헌을 지냈고, 시파의 탄핵으로 삭탈 당했다가 재 등용 되었다. 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함경도관찰사·병조·형조·공조의 판서 등을 역임하였고, 한성부판윤 때 호적단자 소실사건으로 포천에 유배되었다. 이후 판중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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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 / 趙浚 [종교·철학/유학]
1346(충목왕 2)∼1405(태종 5). 여말선초 때 문신. 인규의 증손, 아버지는 덕유이다. 아들 대림이 태종의 둘째딸 경정공주와 혼인, 태종과는 사돈이 된다. 판문하부사, 좌정승, 영의정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정도전의 ≪조선경국전≫ 및 ≪경제문감≫ 편찬에 영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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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도 / 趙遵道 [종교·철학/유학]
1576(선조 9)∼1665(현종 6). 조선 후기의 학자. 아버지는 지, 어머니는 권회의 딸이다. 재종숙인 개에게 입양되었으며, 김언기의 문인이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에는 고을사람들과 함께 창의하고 사재를 털어 군수물자를 조달하였고, 1629년 행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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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우 / 趙重遇 [종교·철학/유학]
미상~1720(경종 즉위년). 조선 후기 유생. 1720년(경종 즉위년) 조중우는 왕의 생모인 희빈장씨가 경종이 왕위를 계승한지 오래되었음에도 아직까지 서인의 지위에 있다며 작호를 더하기를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러자 승지 홍치중‧권엽‧한중희‧홍계적‧윤석래 등이 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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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진 / 趙重鎭 [종교·철학/유학]
1732년(영조 8)~미상. 조선 후기 문신. 부친은 조재민, 동생은 조경진이다. 1754년(영조 30) 증광시 생원에 3등 18위로 합격하였다. 감조관‧평강현감‧직산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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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회 / 趙重晦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11∼1782). 정언으로 왕의 사묘 참례와 사행의 폐를 논박해 삭탈되었고, 탕평에 반대한 윤급을 변호하여 파직됐으나, 곧 기용돼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사도세자 죽음의 부당함을 극간하여 무장에 유배되었고, 홍국영 사후 이조판서에 임명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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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겸 / 趙持謙 [종교·철학/유학]
1639(인조 17)∼1685(숙종 11). 조선 후기의 문신. 영중 증손, 할아버지는 익, 아버지는 복양. 어머니는 이경용의 딸이다. 1670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대교·설서·이조좌랑·사간·응교·승지·대사성·부제학·형조참의, 고성군수, 경상도관찰사 등을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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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빈 / 趙趾彬 [종교·철학/유학]
1691년(숙종 17)∼1730년(영조 6).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조계원, 조부는 조가석이다. 부친 조태억과 모친 심구서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처부는 이조이다. 1718년(숙종 44)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관직 초기에 홍문록 15인 중 한 사람으로 뽑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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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서 / 造紙署 [경제·산업/산업]
조선시대에 종이 만드는 일을 관리, 담당하였던 관서. 1415년(태종 15)에 서울의 창의문 밖 장의사동(壯義寺洞)에 조지소라는 명칭으로 설치되어 1446년(세조 12)에 조지서로 바뀌었다. 저화지·표·전과 자문, 그리고 서적에 필요한 여러 가지 종이를 제조, 관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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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관 / 趙鎭寬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39∼1808). 조엄의 아들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고, 홍국영에게 아버지가 무고 당하자 신문고를 치고, 옥중에서 자살을 기도하며 항거하고, 소를 올려 마침내 원을 풀었다. 대사간·병조·이조판서·대사헌이 되었고, 호조판서 때 영동·관서의 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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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석 / 趙晉錫 [종교·철학/유학]
1610(광해군 2)∼1654(효종 5). 조선 후기의 문신. 남 증손, 할아버지는 존성, 아버지는 계원, 어머니는 신흠의 딸이다. 신익성의 사위이다. 1640년 창릉참봉을 거친 뒤 전설사별검·사옹원직장·의금부도사를 역임하고 임실현감으로 부임하여 많은 치적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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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탁 / 曺振鐸 [역사/근대사]
1867-1922.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강서 출신. 1919년 대동군 금제면 원장리 장날인 3월 4일을 기하여, 최능현(崔能賢)·송현근(宋賢根) 등과 함께 강서군 사천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반석면 반육리에 있던 반석교회의 장로로서 1919년 2월 28일 평양에 갔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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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 / 漕倉 [경제·산업/경제]
조세미를 경창으로 수송하기 위해 수로 연변 또는 연해안 요충지에 설치한 창고. 조창제도가 정비된 때는 일반적으로 992년(고려 성종 11)이라고 이해되었으나, 근래에는 정종 때 창설되었다고 한다. 조창의 분포를 보면, 고려 초기에 세곡 운송을 맡은 포를 모체로 하여,

종교·철학(42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