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총 22,1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홈 > 검색결과
-
정민시 / 鄭民始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45∼1800). 평안도관찰사·병조판서·함경도관찰사·장용위대장·돈령부판사 등을 차례로 지냈다. 홍국영과 함께 발탁되어 요직을 지냈으나 항상 분수를 지켰다. 순조가 즉위하자 사리사욕을 도모한 죄로 삭탈관직되었다. 사후 복관되었다.
-
정발 / 鄭撥 [종교·철학/유학]
1553(명종 8)∼1592(선조 25). 조선 중기의 무신. 지례 고손, 할아버지는 세현, 아버지는 명선, 어머니는 남숙의 딸이다. 1579년(선조 12) 무과에 급제, 선전관이 되고, 곧바로 해남현감·거제현령이 되었다. 이어 비변사의 낭관이 되었으며, 위원군수·훈련
-
정방산 / 正方山 [지리/자연지리]
정방산줄기의 서쪽 끝, 황해북도 황주군과 봉산군의 경계에 있는 산. 산사성을 축성한 뒤 형태가 정방형이라 하여 정방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고 전하여지며,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정방산(政方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정방산의 높이는 480m로, 주변들에 비하여
-
정백창 / 鄭百昌 [종교·철학/유학]
1588(선조 21)∼1635(인조 13). 조선 중기의 문신. 매신 증손, 할아버지는 원린, 아버지는 효성, 어머니는 홍의필의 딸이다. 1611년(광해군 3)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도승지, 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현곡집』 7권 3책이 있다.
-
정번수포법 / 停番收布法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 후기 양역변통을 규정한 제도. 조선시대 군역 보포화 과정은 후기에 들어오면서 양역인구의 면역·투속·가탁이 날로 증가하여 군포의 국고수입이 날로 감축되어가자, 국가에서는 양정의 파악을 철저히 하고 소정의 군액을 강력히 징수하도록 노력하였다. 또한, 각종 전염병,
-
정범조 / 丁範祖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23∼1801). 1763년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사직서직장이 되었다. 왕명에 따라 〈건공가〉·〈백운고시〉를 지어 바침으로써 그 시명이 조야간에 크게 드러났다. 78세가 되던 정조말년까지 조정에 머물며 예문관·홍문관의 제학으로서 문사의 임무
-
정범조 / 鄭範朝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대신(1833∼1898). 기세 아들이다. 1859년(철종 10)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이듬해 홍문관에 등용되고, 1860년 대교를 거쳐 여러 청환직을 역임하였다. 1880년 통리기무아문이 설치되자 당상으로 취임하고, 이듬해 사대교린사당상·감공사당상경
-
정병 / 正兵 [정치·법제/국방]
조선시대 군사 제도의 기간을 이루었던 일반 양인 농민 출신의 병종. ≪경국대전≫에는 갑사와 더불어 궁성문 파수의 임무를 맡았다. 그러나 그 번상 근무가 규식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정병은 거관해서 종5품의 영직을 받도록 되어 있었다. 사만 64일이되면 가
-
정보통신산업 / 情報通信産業 [경제·산업/산업]
정보의 생산·가공·처리·제공 등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통신기술을 이용하는 산업. 우리나라에서는 1983년 12월에 제정된 「공중전기통신사업법」을 통해 정보통신이란 용어가 처음 법률적으로 규정되었다. 동 법에서 정보통신은 “전기통신회선에 문자·부호·영상·음향 등 정
-
정복수 / 鄭福壽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신한권투구락부를 창설하여 후진양성에 공헌한 체육인. 1920∼1962. 서울 출신. 보인상업전수학교 재학시절에 권투를 시작, 1937년부터 국내외 여러 경기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고, 만년에는 권투구락부를 창설하여 후진양성에 공헌하였다. 1937년 전조선종

종교·철학(42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