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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호연 / 全浩然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극동프로모션을 설립하여 프로모터로 활동한 체육인. 황해도 출신. 14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나자와(金澤)대학 전기공학과를 졸업하였다. 충청남도 논산군 강경읍에 누이가 있어 본적지를 강경으로 바꾸었다. 복싱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59년이

  • 전화 / 典貨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내수사의 종9품 관직. 정원은 2인이다. 내수사는 왕실 소용의 미곡·포목·잡화 및 왕실 소속 노비 등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던 기관이다. 1년 4도목(都目)의 도목정(都目政)에 의하여 교대로 임명되는 체아직으로서, 재직기간이 514일이 되면 1품계씩 올리고 종

  • 전화 / 電話 [경제·산업/통신]

    음성이나 소리를 전기신호로 바꾸어 전송로를 통해 먼 곳까지 보내고 다시 소리로 변환시켜 소통하게 하는 통신 기기. 1896년 즈음, 경운궁(현재 덕수궁)을 중심으로 중앙부서를 연결하는 전화선과 더불어 서울과 조선의 대표적 개항장 인천 사이에 전화선 가설이 완료되어 공무

  • 전화교환기 / 電話交換機 [경제·산업/통신]

    경제적으로 교환을 원하는 상호간에 정보의 교환을 신속, 정확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고안된 전기통신기기의 가장 필수적인 장치. 우리 나라에서는 1896년 대한제국의 궁내부용 전화가 개설되면서 도입된 스웨덴의 엘엠·에릭슨사의 자석식 단식교환기가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이 교

  • 전화국 / 電話局 [경제·산업/통신]

    전화교환 중계 및 전화 영업업무를 취급하는 곳. 우리나라 전화국은 1897년 처음 세워졌다. 경운궁(현재의 덕수궁)을 중심으로, 이듬해 인천감리(仁川監理)까지 개통된 전화선을 운영, 관리하기 위한 곳이었다. 이 전화국은 궁내부의 통신사로 불렸으며, 1900년 통신원 창

  • 전환국 / 典圜局 [역사/근대사]

    1883년에 설치되었던 상설 조폐기관. 개화정책의 일환으로 근대 화폐를 주조할 상설조폐기관이 필요했기 때문에 전환국을 설치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서울에 설치되었으나, 1892년인천으로, 1900년에는 용산으로 옮겨졌다. 서울에서 인천으로 옮겨진 표면상의 이유는 서울과

  • 전황후황원삼 / 傳皇后黃圓衫 [생활/의생활]

    순종황제비인 윤황후가 착용하였던 오조룡보(五爪龍補)가 부착된 황후용 황원삼(黃圓衫) 1점. 문화재 지정 당시 황후가 착용하여 전해지는 것이라 하여 '전(傳) 황후 황원삼'으로 명명된 유물로서 금사로 수놓은 오조룡보가 부착되어 있다. 이 유물은 윤황후가 세종대학교(전 수

  • 전회 / 典會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내수사의 종7품 관직. 정원은 1인이다. 내수사는 왕실소용의 미곡·포목·잡화 및 왕실소유의 노비 등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던 기관이다. 이 직은 1년 4도목(都目)의 도목정(都目政)에 의하여 교대로 임명되는 체아직으로서, 재직한 기간이 514일이 되면 1품계씩

  • 전훈 / 典訓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종친의 교육을 담당하였던 종학의 정5품 관직. 1466년(세조 12)에 관제를 개혁할 때 도선 1인, 사회 2인과 함께 전훈을 1인 등 직명이 정해졌다. 1469년(예종 1)에는 사간원의 계에 의하여 성균관의 사성(정3품) 이하 전적(정6품)이 종학관을 품계

  • 절구 / 絶句 [문학/한문학]

    한시체의 하나. 절구는 오언절구와 칠언절구로 구분된다. 오언·칠언 다같이 기(起)·승(承)·전(轉)·결(結) 4수로 이루어진다., 산행(散行)으로 지은 것이 보통이나 때로는 대장(對仗)을 이룬 것도 있다(대장으로 지을 경우는 전반부만, 혹은 후반부만, 혹은 전체를 하기

  • 절도백화 / 絶倒百話 [문학/구비문학]

    1912년 민간에 구전되어 온 이야기를 국한문혼용으로 수록한 소담집. 1912년 신문관(新文館)에서 발간되었다. 『개권희희 開卷嬉嬉』와 합본되어 있으며, 양 책 모두 국한문혼용으로 짤막한 소담 100편씩을 싣고 있는 등 그 체재나 성격이 매우 비슷하다. 이 책의 편찬자

  • 절명사 / 絶命詞 [문학/고전시가]

    1748년(영조 24)에 곽내용(郭乃鎔)의 아내인 전의 이씨 부인(全義李氏夫人)이 지은 가사. 모두 63구로 되어 있다.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여 지은 애도가사로 『전의이씨행록(全義李氏行錄)』에 사림(士林)의 보장(報狀)과 통문(通文) 및 이씨 부인이 지은 산문인 제문과

  • 절명시 / 絶命詩 [문학/한문학]

    1910년황현(黃玹)이 지은 한시. 칠언절구 4수이다. 김택영(金澤榮)이 편한 『매천집(梅泉集)』(7권, 1911, 상해) 권5에 수록되어 전한다. 「절명시」는 작자 황현이 경술국치를 당하여 8월 7일(음력) 더덕술에 아편을 타 마시고 자결하면서 남긴 시이다. 「절명시

  • 절미운동 / 節米運動 [사회/사회구조]

    쌀소비를 줄이기 위해 벌인 정부 주도의 국민운동. 한민족은 주식(主食)인 쌀의 생산량 부족으로 인해 기아와 초근목피의 삶을 살아왔다. 조선시대에도 쌀 부족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었고 국가의 주요한 관심 사항이 되었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의 일환으로 절미운동(節米運

  • 절부암 / 節婦巖 [지리/자연지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용수리 해안에 있는 바위. 용수리 포구에 사철나무, 후박나무, 동백나무, 포나무 등 난대식물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 에 절부암이란 바위가 있다. 일명 언덕동산이라 하며, 높이는 약 70m 정도이다. 1981년 8월 26일 제주도 기념물 제9

  • 절제 / 節制 [언론·출판/언론·방송]

    1931년 1월 23일에 경성 조선여자 기독교 절제회 엽합회에서 창간한 잡지. 국한문 4단으로 내리 편집하여 부정기적으로 발행하였다. 이 잡지의 내용은 권두언, 논설, 보고, 잡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 절제도위 / 節制都尉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각 도의 병마절도사 밑에 있던 종6품의 서반외관직. 실제로는 동반의 현령·현감 등 수령이 겸대하였으며, 거읍은 종5품인 판관이 겸임하였다. 이것은 조선 건국초에 5·6품의 수령이 겸임하도록 되어 있었던 병마단련판관이 1466년(세조 12)에 병마절제도위로 개

  • 절제사 / 節制使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지방에 파견되던 관직. 병마도절제사는 1466년(세조 12) 병마절도사로, 수군도절제사는 1420년(세종 2) 수군도안무처치사로 직함이 변경, 1466년 수군절도사로 각각 개칭되었다. 2품 수장(守將)으로서 변방에 파견되던 병마절제사는 1455년 전국을 군익

  • 절충장군 / 折衝將軍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무신 정3품 당상관의 품계명. 1392년(태조 1) 7월 조선건국 직후 처음 관제를 정할 때 문산계에서 독립된 무산계 가운데 가장 높은 관계로 규정되었다. 그 뒤 1466년(세조 12)에 이르러 당상관으로 되었다. 한편, 무반관원으로서 절충장군에서 승진하여

  • 절충주의 / 折衷主義 [문학/현대문학]

    계급주의 문학론과 민족주의 문학론을 조화시킨 중도적 문학이론. 절충주의는 당시 이념적인 분열 상황을 극복하려는 당위성을 가지고 주장되었으나 구체성이 빈약하여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 또한, 절충주의가 국민문학의 변종이었으므로 반계급문학을 본질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양

  • 절화기담 / 折花奇談 [문학/고전산문]

    1809년(순조 9) 석천주인(石泉主人)이라는 호를 가진 사람이 지은 한문소설. 중국 어느 패설(稗說)보다도 조선 것에, 옛 것보다는 자기가 살고 있는 현실에, 꾸밈이 많은 글보다는 세속적이며 촌스러울 망정 자세하고 곡진함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런 점을 통해 우리 근

  • 점리비국 / 占離卑國 [지리/인문지리]

    삼한시대 마한의 소국. 마한 54소국 중의 하나이다. 『삼국지(三國志)』위지 동이전의 한조(韓條)에는 삼한의 여러 소국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는데, 그 나라이름의 한자표기는 우리말의 나라이름을 당시의 중국음에 의하여 표기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중국의 고대 북방음

  • 점복설화 / 占卜說話 [문학/구비문학]

    점을 치는 행위나 점괘에서 드러난 내용이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핵심적인 동기가 되거나 흥미의 초점이 되는 설화. ① 명복의 일화 : 흔히 「홍계관의 이야기」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점복자가 자기 자신의 운명을 점치고 죽을 운수를 피하려고 하였으나 실패한다는 이야기이다.

  • 점봉산 / 點鳳山 [지리/자연지리]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과 기린면 및 강원도 양양군 서면의 경계에 있는 산. 점봉산의 높이는 1,426m로, 일명 점붕산이라고도 한다. 태백산맥의 주맥인 설악산맥에 해당되며, 지리적으로 북위 38°02′35″, 동경 128°25′40″에 위치하고 있다. 망대암산(望對巖山,

  • 점쟁이 / 占─ [사회/사회구조]

    남의 신수(身數)를 점쳐주고 돈을 받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점쟁이는 무당에서 분화되었다. 무당은 몸에 신이 내려 인간의 소원을 듣고 또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해주는 능력을 지닌 반신반인(半神半人)으로, 제의를 주재하고 질병을 고치며 미래를 예언하는 일을 맡아 했

  • 점촌 / 店村 [사회/촌락]

    각종 장인(匠人)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며 생산활동을 하던 마을. 장인들의 집단 거주는 생산물의 종류에 따라 결정되었다. 우선 다수의 장인이 동원되어 대량적인 생산과 소비가 요구되는 물종(物種)이어야 하기 때문에, 점촌은 토기·유기·철기·옹기를 생산하는 마을이나 광산촌이

  • 점층법 / 漸層法 [언어/언어/문자]

    수사법 중 강조법의 하나. 하나의 대상이나 현상에 대하여 한 단계 한 단계 높아지거나 낮아지는 말들을 거듭해 가는 표현법이다. 이 표현법은 마치 층계를 하나 하나 밟으며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것과 같은 기법으로서, “한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열 사람을 당하리

  • 점필재집 / 佔畢齋集 [문학/한문학]

    조선전기 문신 김종직의 시·서(序)·기·발 등을 수록한 시문집. 25권 7책. 목판본. 김종직이 죽은 다음해인 1493년(성종 24) 그의 제자 조위(曺偉)에 의하여 편집되었다. 1494년에 원고를 모으라는 성종의 명이 있었으나 성종의 사망으로 간행하지 못하였다. 그

  • 접도 / 接島 [지리/자연지리]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금갑리에 있는 섬. 동경 126°18′, 북위 34°22′에 위치하며, 금갑리 해안에서 남쪽으로 0.5㎞ 지점에 있다. 면적은 4.35㎢이고, 해안선 길이는 12.30㎞이다. 1989년에 건설된 길이 260m, 폭 6m의 연륙교로 진도와 연결된다

  • 접도국 / 接塗國 [지리/인문지리]

    삼한시대 마한의 소국. 변한 12소국 중의 하나이다. 『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 한조(韓條)에는 삼한 소국들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다. 이들 소국들의 이름은 당시 중국 상고음(上古音)에 따랐을 것으로 보이는데 ‘접도’의 중국 상고음은 ‘tsi○p-dǔo’이고, 북경

  • 접동새 /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책. 국문필사본. 표지에 ‘丙午閏八月筆志(병오윤팔월필지)’라는 기록이 있지만 정확한 창작연대는 알 수 없다. 단국대학교 율곡기념도서관 나손문고(舊 김동욱 소장본)에 있다. 이 작품은 단편이지만, 한 집안의 4대에 걸친 이야기를 담고 있다.

  • 접동새설화 / ─說話 [문학/구비문학]

    계모에게 박대받던 처녀가 죽어 접동새가 되었다는 내용의 설화. 동물 유래담의 하나로 변신담에 속한다. 이 설화는 까마귀와 접동새의 생태계 내의 관계와 접동새 울음소리의 내력을 설명하면서, 전통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못된 계모를 둘러싼 가정비극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 접속문 / 接續文 [언어/언어/문자]

    문법론에서 구조적 특성에 따라 분류한 문장유형의 하나. 둘 또는 그 이상의 구(이은말)나 절(마디)이 접속성분이 되어 통사구조상 수평적인 선후관계로 대등하게 이어져 있는 문장이다. 접속관계에 있는 성분들은 형식상으로 동일한 것이어야 하는데, 접속성분들이 구로 되어 있는

  • 접시 / 接匙 [생활/식생활]

    반찬이나 과일 등 주로 물기가 없는 반찬류를 담을 때 쓰는 얇고 납작한 그릇. 여러 의궤 자료에서 첩과 접의 분포가 고르게 나타난다. 접의 출현이 비교적 후대 자료에 집중되는 것으로 보아 대접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첩에서 접으로의 교체가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당-유-

  • 젓갈 / [생활/식생활]

    어패류의 근육·내장 또는 생식소(生殖素) 등에 비교적 다량의 식염을 가하여 알맞게 숙성시킨 발효식품. 젓갈의 숙성은 원료가 되는 근육·생식소 등의 조직 자체에 들어 있는 자가소화효소와 내장에 들어 있는 효소의 작용에 의하여 진행된다. 그 중에서도 가장 관계가 깊은 효소

  • 정 / 正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각 관서의 정3품 당하관직. 봉상시·종부시·사복시·군기시·사섬시·사도시·내자시·내섬시·예빈시·선공감·군자감·관상감·전의감·사재감·제용감·사옹원·내의원·상의원·장악원·사역원·상서원 등 21개 관아의 장관과 종친부·돈녕부·훈련원의 관직이 있었다. 1443년(세종

  • 정2품배종무관장조동윤상언 / 正二品陪從武官長趙東潤上言 [정치·법제]

    1905년(광무 6) 6월 조동윤(趙東潤)이 고종에게 보름날 두 혼정에 올린 제전에 참석하지 못한 데 대해 무거운 처벌을 다시 내려 주기를 청한 상언. 전자는 헌종의 계비인 명헌태후 홍씨의 혼전이고, 후자는 순종의 황태자 때의 비인 순명비 민씨의 혼전이다.

  • 정간 / 鄭幹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92∼1757). 1725년 증광문과 병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역임했다. 경연관으로 재직 중《춘추》를 진강하여 말 1필을 하사받았다. 동래부사로 재직 중 선정을 베풀어서, 왜인들이 나무로 세운 청덕비가 있다.

  • 정감록 / 鄭鑑錄 [종교·철학/민간신앙]

    조선 중기 이후 성행한 예언서. 70여 종이 있다. 대체로 정감과 이심의 문답을 엮어놓은 감결, 산수비기, 도선비결, 무학비결, 남사고비결, 정북창비결 그리고 토정 유형원, 원효, 이서계, 율곡, 서산대사 등 수십 명이 저술한 비결들이 실려 있다.

  • 정강서원 / 鼎崗書院 [교육/교육]

    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 옥산리에 있었던 서원. 1694년(숙종 20)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정온(鄭溫)·강숙경(姜叔卿)·하윤(河潤)·유백온(兪伯溫)·이제신(李濟臣)·이염(李琰)·하천주(河天澍)·진극경(陳克敬)·박민(朴敏) 등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 정개청 / 鄭介淸 [종교·철학/유학]

    1529(중종 24)∼1590(선조 23).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아버지는 세웅, 어머니는 나씨이다. 북부참봉, 전생서주부, 곡성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1589년에 정여립의 모역사건 때 이의 처리과정상 연루자로 체포되어 함경도 경원 아산보로 유배되어 7월 그 곳에

  • 정건조 / 鄭健朝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23∼?). 1823년 증광 문과 병과에 급제하여, 규장각직각·병조정랑·대사성·이조참의를 지냈고, 사은 겸 동지정사로 청나라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이후 형조판서·예조판서·이조판서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 정견모주설화 / 正見母主說話 [문학/구비문학]

    대가야와 금관가야의 시조를 낳은 여산신에 관한 설화. 정견모주 설화는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권29 「경상도慶尙道」 고령현高靈縣 건치연혁建置沿革)을 통해 전승되는 이야기이다. 종래에 널리 알려진 신화는 난생 신화를 핵심으로 하는 육가야 시조

  • 정경부인 / 貞敬夫人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외명부인 문무관처에게 내린 정·종1품 작호. 문무관 정1품 대광보국숭록대부·보국숭록대부의 적처와 종1품 숭록대부·숭정대부의 적처를 봉작하여 통칭한 것이다.

  • 정경부인초계정씨행장 / 貞敬夫人草溪鄭氏行狀 [문학/고전산문]

    조선 중기에 지어진 행장수필. 필사본. 정경부인 초계정씨는 병자호란 때에 공조참의(工曹參議)로 인조를 모시고 남한산성에 들어가 청인들과 싸웠던 척화파 문신 나만갑(羅萬甲)의 부인으로, 우참찬 정엽(鄭曄)의 딸이다. 이 작품의 내용을 크게 세가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정경세 / 鄭經世 [정치·법제/법제·행정]

    1563년(명종 18)∼1633년(인조 11).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진주(晉州). 아버지는 좌찬성여관(汝寬)이며, 어머니는 합천 이씨(陜川李氏)로 가(軻)의 딸이다. 유성룡(柳成龍)의 문인이다. 대표관직으로는 홍문관교리에 경연시독관·춘추관기주관을 겸하였고

  • 정경옥 / 鄭景玉 [종교·철학/개신교]

    1903년∼1945년. 감리교 목사·조직신학자. 전라남도 진도 출신. 1927년 감리교신학교 졸업 후 미국 개렛신학교에서 수학. 1929년 다시 노스웨스턴대학원에 입학, 문학석사학위를 받고, 1931년부터 1937년까지 감리교신학교의 조직신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193

  • 정계서원 / 程溪書院 [교육/교육]

    황해도(현재의 황해남도) 신천군 문화면에 있었던 서원. 1669년(현종 10)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유관(柳寬)의 학문과 그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하였다. 1708년(숙종 34)에 ‘정계(程溪)’라 사액되었으며,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

  • 정계순 / 鄭啓淳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29∼1789). 1765년 진사시에 합격하여 헌릉참봉·중부직장·의금부도사·선공봉사 등을 역임했다. 1777년 증광시 갑과에 급제하여 풍천부사·공조참의·승정원승지·사간원 등을 거쳤다. 1785년에는 대사간이 되었다.

  • 정과정곡 / 鄭瓜亭曲 [문학/고전시가]

    고려 때 정서(鄭敍)가 지은 가요. 『고려사』 악지에 제작동기와 이제현(李齊賢)의 해시(解詩)가 수록되어 있으며, 우리말 노래는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전한다. 또, 『대악후보(大樂後譜)』에는 노래와 함께 곡조도 아울러 표시되어 있다. 우리말로 전하는 고려가요 가운데

  • 정관재집 / 靜觀齋集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이단상의 시문집. 본집 16권 6책, 별집 6권 2책. 목판본. 1682년(숙종 8) 이단상의 아들 이희조에 의해 편집되어 윤지선의 주선으로 간행되었다. 본집은 권1∼3에 시 240여수, 권4∼6에 교서 2편, 소 27편, 권7에 계 13편, 권

  • 정괄 / 鄭佸 [종교·철학/유학]

    1435(세종 17)∼1495(연산군 1). 조선 초기의 문신. 정부 증손, 할아버지는 정흠지, 아버지는 정창손, 어머니는 정지의 딸이다. 1465년 식년 문과에 정과로 급제, 병조판서, 대사헌, 이조참판,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연산군이 즉위한 뒤 1495년(연산

  • 정광경 / 鄭廣敬 [종교·철학/유학]

    1586(선조 19)∼1644(인조 22). 조선 후기의 문신. 복겸 증손, 할아버지는 유길, 아버지는 창연, 어머니는 한세건의 딸이다. 판서 광성의 아우이다. 1612년(광해군 4)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그해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상의원정, 사인, 응교

  • 정광묵 / 鄭光黙 [종교·철학/유학]

    1777~1825(정조1~순조25). 아버지는 형국, 어머니는 순천김씨, 부인은 풍양조씨이다. 난 지 여덟 달만에 부친을 여의고 어머니의 엄격한 훈육을 받으며 자랐다. 1814년 문과에 급제하여, 학유에 보임되어 가주서기주가 되었고, 이어 전적에 배명되어 봉상시주부가

  • 정광성 / 鄭廣成 [종교·철학/유학]

    1576(선조 9)∼1654(효종 5). 조선 중·후기의 문신. 복겸 증손, 할아버지는 유길, 아버지는 창연, 어머니는 한세건의 딸이다. 참판 광경의 형이고, 영의정 태화의 아버지이다. 1603년(선조 36)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수찬, 교리, 지평, 지돈녕부사

  • 정광적 / 鄭光績 [종교·철학/유학]

    1551(명종 6)∼? 조선 중기의 문신. 승근 증손, 할아버지는 기문, 아버지는 희적, 어머니는 홍정의 딸이다. 1579년(선조 1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83년 병조좌랑으로 있을 때 무과초시의 합격자 명단 일부를 삭제한 죄로 북방의 군역에 편입되었다.

  • 정광필 / 鄭光弼 [종교·철학/유학]

    1462(세조 8)∼1538(중종 33). 조선 전기의 문신. 구령 증손, 할아버지는 사, 아버지는 난종, 어머니는 이지지의 딸이다. 1492년(성종 23) 진사에 오르고, 그 해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 그 뒤 성균관학유·의정부사록·봉상시직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좌

  • 정교 / 鄭僑 [종교·철학/유학]

    1764∼1834(영조40∼순조34). 고조는 정요, 증조는 정지종, 조는 정태건이다.정교의 아버지 정형상은 원래 정연의 현손 정태복의 아들로서, 정요봉의 아들 정태건의 후사를 이었으며, 정요봉의 아들 정지집이 그의 본생고조부가 된다. 어머니는 풍양조씨,1764년 상주

  • 정구 / 庭球 [예술·체육/체육]

    경기장 중앙에 네트를 두고 양쪽에서 라켓으로 연식 공을 치고 받아 승패를 겨루는 운동경기. 테니스에서 파생된 것으로, 테니스가 단단한 경식 공을 사용하는 데 대하여 연식정구라고도 한다.경기장의 크기는 10.97×23.77m의 장방형이며, 네트의 높이는 1.06m이다.

  • 정구 / 鄭矩 [종교·철학/유학]

    1350(충정왕 2)∼1418(태종18).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아버지는 양생이다. 1377년(우왕 3) 문과에 을과 2등으로 급제, 전교시부령, 의정부찬성, 호조판서, 개성부유후 등을 역임하였다. 경기도 양주에 있는 건원릉신도비의 제액을 썼다.

  • 정구 / 鄭逑 [종교·철학/유학]

    1543(중종 38)∼1620(광해군 12).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윤증의 종손, 할아버지는 응상, 아버지는 사중, 어머니는 이환의 딸이다. 1563년에 이황, 1566년에 조식을 찾아 뵙고 스승으로 삼았다. 1563년 향시에 합격했으나 이후 과거를 포기하고 학문

  • 정구품 / 正九品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18품계 중 제17등급의 품계. 조선 건국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 문산계·무산계를 제정할 때 정9품 문산계만 종사랑(從仕郎)으로 정하고, 무산계는 정해지지 않았다. 무산계는 1436년(세종 18) 처음으로 진무부위(振武副尉)를 설치했다가 ≪경국대전

  • 정국공신 / 靖國功臣 [정치·법제/정치]

    1506년 중종반정에 공을 세운 사람에게 내린 칭호 또는 그 칭호를 받은 사람. 1등 병충분의협책익운정국공신에 유자광·신윤무·박영문·장정·홍경주 등 5명, 2등 병충분의익운정국공신에 운수군 효성·심순경·변수·최한홍·윤형로 등 13명, 3등 병충분의정국공신에 고수겸·심

  • 정국성 / 鄭國成 [종교·철학/유학]

    1526(중종 21)∼1592(선조 25). 조선 중기의 의병. 극공의 증손, 할아버지는 변, 아버지는 계함, 어머니는 황근의 딸이다. 1558년(명종 13) 사마시에 합격, 학행으로 천거되어 참봉에 제수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상주에서 창의하고 일어섰으

  • 정규양 / 鄭葵陽 [종교·철학/유학]

    1667(현종 8)∼1732(영조 8). 조선 후기의 학자. 아버지는 석주, 어머니는 김방렬의 딸이다. 종조부 시연과 이현일의 문하에서 형 만양과 함께 수학하였다. 경사는 물론 성리학·예학·천문·지리·역학·정치·경제·율려·과제 등에 두루 정통하였다. 형제간의 우애를 기

  • 정규창 / 丁奎昌 [종교·철학/유학]

    1872(고종 9)-1949. 아버지는 정춘섭, 어머니는 평해신씨이다. 젊어서부터 늙을 때까지 오직 학문을 익히고 몸을 수양하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았다. 용산 이만인에게 학문의 요체를 배웠으며, 간혹 과거공부를 하였지만 좋게 여기지 않았고, 한 번 서울에 시험을 치

  • 정극인 / 丁克仁 [종교·철학/유학]

    1401(태종 1)∼1481(성종 12). 조선 전기의 문신·문인. 아버지는 곤이다. 그러나『국조방목』에는 인의 아들로 되어 있다. 사간원헌납, 사간원정언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불우헌집』2권 1책이 전한다. 예조판서 겸 지춘추관성균관사에 추증됐으며 태인의 무성서원

  • 정극후 / 鄭克後 [종교·철학/유학]

    1577(선조 10)∼1658(효종 9). 조선 후기의 문신. 습명의 후손, 아버지는 삼외이다. 일찍이 장현광으로부터 학문을 배웠는데, 장현광은 그의 비범함에 감탄, 붕우의 예로 대하였다. 또, 그는 정구의 문인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문묘사향지>, <역년통고>, <서

  • 정기상 / 鄭璣相 [종교·철학/유학]

    1825년(순조 25)~미상. 조선 말기 문신. 정온의 봉사손, 증조는 정팔복, 조부는 정식이다. 부친은 정종필, 생부는 정기필이다. 외조부는 황희임, 생외조부는 이여민이다. 동생은 정현상‧정형상‧정규상이다. 1874년(고종 11) 증광시 문과에 병과 30위로 급제하였

  • 정기선 / 鄭基善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84∼1839). 1815년 한림소시에 선발된 뒤 함경도암행어사로 발탁되어 문란한 지방행정을 바로잡았다. 1829년 경상도관찰사로, 왜인들을 방어하는 대책을 수립하고 기민들을 구제하였다. 1833년에 예조판서에 올랐고, 이듬해는 대사헌이 되었다.

  • 정기세 / 鄭基世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14∼1884). 원용 아들, 범조의 아버지이다. 1862년 임술민란 때 판의금부사와 형조판서로서 이정청당상이 되었다. 고종 즉위 후 병조판서·한성부좌윤·철종실록찬집당상·제학·우찬성을 역임하였고, <대전회통> 편찬에 참여하였다.

  • 정기안 / 鄭基安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95∼1767). 1752년 동지사 겸 사은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보덕·승지를 거쳐 대사간이 되었고, 1766년 한성부우윤·지중추부사를 지냈다. 저서로《만모유고》가 있다.

  • 정기원 / 鄭期遠 [종교·철학/유학]

    1559(명종 14)∼1597(선조 30). 조선 중기의 문신. 한용의 증손, 할아버지는 순복, 아버지는 상신, 어머니는 이경의 딸이다.1585년(선조 18)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주서, 승정원동부승지, 우부승지, 예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동국문

  • 정기일 / 鄭基一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87∼1842). 1828년 예방승지로 익종의 대리청정을 보필하였다. 1836년(헌종 2) 황해도관찰사가 되어 학교를 정비, 유학을 진흥시키고 풍속을 교화하였다. 1838년 형조참판이 되어 내자시제조를 겸하였다. 1842년에 대사헌으로 비변사당상

  • 정기화 / 鄭琦和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천군본기」를 저술한 문인. 고려 현종 때에 십이공도(十二公徒)의 하나였던 정배걸(鄭倍傑)의 26대손으로 청은군(淸隱君) 정진로(鄭鎭魯)의 손자이고, 첨지중추 정홍진(鄭鴻晋)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경주 이씨로 이기만(李淇萬)의 딸이다. 숙부 정홍관(鄭鴻觀)에게

  • 정기회 / 鄭基會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29∼?). 1864년(고종 1)에는 참찬관으로, 민본사상과 왕위의 지고함을 강조하였다. 1874년 영의정 이유원의 추천으로 정2품에 올랐다. 1889년 영조의 묘호를 개정, 1892년 세조·인목왕후의 존호를 추상할 때에 악장문 제술을 담당하였다.

  • 정길보 / 鄭吉甫 [종교·철학/유학]

    1632~? . 조선후기의 문인. 1652년(효종 3) 진사가 되고, 1666년(현종 7)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1675년(숙종 1) 승지로서 인사와 형상 등에 환관을 간여케 하는 왕을 간하다 파직, 허적의 상소로 다시 기용되어 북한산성 축조때 도청을 지냈다. 그

  • 정난공신 / 靖難功臣 [정치·법제/정치]

    1453년 세조가 황보 인·김종서 등과 안평대군 제거에 공을 세운 사람에게 내린 칭호 또는 그 칭호를 받은 사람. 1등은 수양대군과 정인지·한확·박종우·김효성·이사철·이계전·박중손·최항·홍달손·권람·한명회 등 12명이고, 2등은 권준·신숙주·윤사균·양정·유수·유하·봉

  • 정난공신 / 定難功臣 [정치·법제/정치]

    1507년 이과의 옥사를 처리하는 데 공이 있었던 사람에게 내린 칭호 또는 그 칭호를 받은 사람. 1등은 추성보사우세정난공신으로 노영손·유순·박원종 등 5명, 2등은 추성보사정난공신으로 민효증·이계남 등 5명, 3등은 추성정난공신으로 설맹손·홍숙등 12명을 책정하였다

  • 정내성 / 鄭來成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44∼1835). 1785년 전라도도사에 제수되었으나 어버이가 연로하였으므로 사양 하였다. 그 뒤 다시 장악원주부·종묘서령, 병조참판·한성부좌윤 등의 벼슬을 역임 하였다.

  • 정년제 / 停年制 [사회/사회구조]

    정규직원이 일정한 연령이나 정해진 근무기간에 달하면 직장에서 자동적으로 퇴직시키는 제도. 종업원이 장기간 근속하여 일정한 연령에 도달하거나, 일정한 기간 동안 승진하지 못하고 동일 계급에 머물 경우 자동적으로 퇴직하게 하는 제도를 말한다. 정년퇴직 제도에는 미리 정해진

  • 정녕 / 定寧 [지리/인문지리]

    평안북도 의주지역의 옛 지명. 1396년(태조 5)에 정융(定戎)ㆍ영덕(寧德)ㆍ영주(靈州)ㆍ영삭(寧朔)의 4진(四鎭)을 합하여 정녕현으로 하였다. 1445년(세종 27) 군으로 승격시켰다가 1455년(세조 1)에 다시 현으로 강등시켰으며 다음해에 의주목에 예속시켰다.

  • 정당문학 / 政堂文學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 초기의 관직. 조선 건국 후 1392년(태조 1) 문무관제를 고칠 때 문하부(門下府)에 1인을 두었으나, 1401년(태종 1) 7월 문하부를 의정부(議政府)로 개칭할 때 의정부문학으로 개칭되었다.

  • 정대임 / 鄭大任 [종교·철학/유학]

    1553(명종 8)∼1594(선조 27). 조선 중기의 의병장. 아버지는 용, 어머니는 김응생의 딸이다. 증조부 윤식에게 수학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시 의병을 모아 당지산에서 적을 크게 무찌르고, 의병 100여명을 이끌고 의병대장 권응수의 휘하에 들어가 중총 직책을

  • 정덕대부 / 靖德大夫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의빈계의 종1품 상계의 위호. 조선 전기의 광덕대부(光德大夫)가 ≪속대전≫에서 정덕대부로 개칭되었다가 뒤에 동반관계가 통합되어 숭록대부(崇祿大夫)로 되었다.

  • 정도사조탑형지기 / 淨兜寺造塔形止記 [언어/언어/문자]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복성리 정도사에 있었던 고려시대 오층석탑의 조탑기(造塔記). 탑을 경복궁으로 옮길 때에 탑 안에서 나온 백지묵서(白紙墨書)에 쓰여 있었다. 1031년(태평 11, 현종 22)에 쓰여진 이두문으로 11세기를 대표하는 것이다. 군백성(郡百姓) 광현(

  • 정도응 / 鄭道應 [종교·철학/유학]

    1618(광해군 10)∼1667(현종 8). 조선 후기의 학자. 할아버지는 경세, 아버지는 심. 1648년(인조 26) 좌의정 이경석이 조정에 천거하였다. 교관에 임명, 다음해에 대군의 사부가 되었다. 효종이 즉위한 뒤 학행을 포상하여 자의에 임명하였으나 사직하고 향리

  • 정도전 / 鄭道傳 [종교·철학/유학]

    1337-1398. 여말선초의 유학자. 이색에게서 배웠다. 1383년 이성계의 참모가 되었고 1388년 위화도회군을 계기로 조선건국의 기초작업을 하였다. <조선경국전>을 지어 치국의 대요와 관제 등 모든 문물과 제도를 정비하였다. 제1차 왕자의 난때 이방원에 의해 참수

  • 정도홍 / 鄭燾洪 [역사/근대사]

    1878년(고종 15)∼미상. 조선 말기의 의병장. 전라남도 나주(羅州) 봉황면(鳳凰面) 칠전(七田)에서 태어났다. 1908년(융희 2) 고향 마을에 창의소를 설치하고, 각 고을에 격문을 보내 의병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에 600여 명이 참여하여 심남일 부대와

  • 정돈섭 / 丁敦燮 [종교·철학/유학]

    1870년(고종 7) 3월 17일∼1947년 6월 14일.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가. 증조는 정의찬, 조부는 정원교이다. 부친 정대진과 모친 이개립의 딸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박기양의 딸이다. 이병호의 문하에서 수학, 곽종석에게 나아가 주돈이의 태극통서를 공부하였다

  • 정동만 / 鄭東晩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53∼1822). 1804년(순조 4) 경릉참봉이 되었고 이후 진주목사가 되었다. 1819년 혜국랑이 되었으며, 추은의 혜택으로 통정대부에 올라 첨지중추부사를 거쳐 돈령부도정이 되었다.

  • 정동일 / 鄭東逸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66∼1820). 1816년(순조 16) 과거에 급제한 뒤 사옹원직장·사간원정언·세자시강원사서 등의 벼슬을 역임하였고 외직으로 전라도 무장현감이 되었을 때, 지방행정을 바로잡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병을 얻어 그 이듬해에 죽었다.

  • 정동제일교회 / 貞洞第一敎會 [종교·철학/개신교]

    기독교 대한감리회 소속 교회. 1887년 아펜젤러(H.G. Appenzeller)에 의하여 설립되었다. 근대교육과 개화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서재필이 정동교회청년회를 중심으로 협성회를 조직하였으며 노병선, 이승만, 신흥우 등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1897년 건립된

  • 정동진 / 正東津 [지리/자연지리]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 일대의 관광지. 정동진 일대는 계속되는 난개발로 인해 옛 모습을 잃은 지 오래이다. 정동진역 부근에는 기념품 판매점·모텔·횟집 등이 줄지어 들어섰고, 건물의 불법 증·개축과 용도 변경이 곳곳에서 이루어져 본래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해

  • 정동파 / 貞洞派 [정치·법제/정치]

    1894년 이전 고종의 반청 자주외교정책에 부응하여 외교관이나 유학생의 신분으로 일본, 미국에서 체류하였던 경력을 바탕으로, 서울 정동에 주재하는 각국의 외교관 및 선교사들의 후원을 받아 정계에서 세력을 황장하려 했던 친미친러파. 정동파는 세 집단으로 분류된다. 정동구

  • 정동후 / 鄭東後 [종교·철학/유학]

    1659(효종 10)∼1735(영조 11). 조선 후기의 문신. 갑손 후손, 돈 증손, 할아버지는 재흥, 아버지는 여탁, 어머니는 기수백의 딸이다. 사릉참봉·군자감봉사를 지낸 뒤 1705년(숙종 31) 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 사간원정언·사헌부장령·제주목사·부호군 등

  • 정랑 / 正郎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육조의 정5품 관직. 정원은 1405년(태종 5) 1인씩 증원해 각 조 3인이 표준이었다. 그러나 병조와 형조에는 4인이었고, 후기에는 이조 2인, 호조 3인으로 조정되었다. 정랑은 고려 초기 각 부에 두었던 정5품 낭중을 1275년(충렬왕 1) 6부가 4사

  • 정략장군 / 定略將軍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무신 종4품 상계의 품계명. 1392년(태조 1) 7월선건국 직후 처음 관제를 정할 때 선절장군(宣節將軍)이라고 하였다가, 1466년(세조 12)에 정략장군이라 개칭하여 ≪경국대전≫에 성문화되었다.

  • 정렬부인 / 貞烈夫人 [역사/조선시대사]

    전근대사회에서 정조와 지조를 굳게 지킨 부녀자에게 내려지던 칭호. 국가에서 특이한 행실을 가진 부인에게 시호로 내린 일도 있다. 충효열(忠孝烈)은 유학을 숭상하는 동양의 근본사상이다. 고려 때까지는 여자의 정조와 절개가 그렇게 소중하게 취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시

  • 정로 / 鄭魯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순절신(1751∼1811). 홍경래의 난때 적에 의하여 군아가 함락되자 난군에 합세하기를 거부하다가 피살되었다. 이때의 순절로 난이 평정된 뒤 집의에 추증되었다가, 다시 이조참판·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부총관에 가증되었다. 가산의 충렬사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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