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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석 / 赤舃 [생활/의생활]
임금이 정복을 입을 때 신는 붉은색의 신. 대전의 법복인 면복과 평천관 또는 강사포와 원유관을 착용할때 적말과 함께 신는 왕의 신이다. <국조보감>과 <조선왕조실록>에 임금은 면류관에 곤룡포 차림으로 인정전에 납시고, 왕세자는 칠장관ㆍ공정책ㆍ적말ㆍ적석 차림으로 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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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성 / 積城 [지리/인문지리]
경기도 파주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의 칠중성(七重城, 또는 及別)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중성(重城)으로 고치어 내소군(來蘇郡)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 초기에 적성이라 고치고 1018년(현종 9)에 장단현에 속하였다가 1062년(문종 16)에 개성부에 예속시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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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성 / 赤城 [지리/인문지리]
전라북도 순창지역의 옛 지명. 본래 백제의 역평현(礫坪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적성(赤城, 또는 磧城ㆍ硳城)으로 고쳐 순화군(淳化郡)의 영현으로 하였다. 고려 현종 때남원부에 귀속시켰다가 뒤에 복흥(福興)과 함께 순창으로 다시 이속시켰다. 조선 말기까지 적성방(赤城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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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성의전 / 赤聖儀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책. 국문필사본·목판본·활자본. 이 작품은 크게 성의가 일영주를 구하러 오는 과정, 공주와의 결혼과정, 세자로 책봉되는 과정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내용은 ‘집을 떠나서→모험과 고난 끝에 무엇을 찾고→돌아와 명예를 얻는’ 서사구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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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성향교 / 積城鄕校 [교육/교육]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구읍리에 있는 향교. 조선시대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그 뒤의 사항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며, 1950년 6·25동란 때 소실된 것을 1970년에 복원하였다. 1971년에 명륜당을 신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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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순부위 / 迪順副尉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무신 정7품 품계명. 부위계(副尉階)의 상한이다. 1392년(태조 1) 7월 조선건국 직후 처음 관제를 정할 때 돈용부위(敦勇副尉)라고 하였다가, 1466년(세조 12)에 적순부위로 개칭하였다. 그리고 적순부위 이하를 참하관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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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유령 / 狄踰嶺 [지리/자연지리]
평안북도 희천군 동창면과 강계군 화경면 사이에 있는 고개. 높이 963m. 적유령산맥의 백산(白山, 1,875m)과 증봉(甑峰, 1.258m)간의 안부에 위치한다. 남북방향의 고개로 남쪽사면은 명당진(明堂津)에서 분기하는 청천강의 상류 백산천(白山川)의 깊은 계곡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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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유령산맥 / 狄踰嶺山脈 [지리/자연지리]
낭림산맥에서 갈라져 평안북도를 북부와 남부로 가르는 산맥. 북쪽에 이웃한 강남산맥(江南山脈)과 남쪽의 묘향산맥(妙香山脈)과 함께 동북동∼서남서 방향의 산맥으로 요동방향의 산계이다. 기반암은 중한지괴(中韓地塊)의 일원인 요동지괴(遼東地塊)와 일체인 평북육괴이다. 이는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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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 翟衣 [생활/의생활]
왕비의 법복. 원래 중국에서 후부관복으로 착용하던 예복이다. 우리 나라에서 왕비가 법복으로 적의를 착용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 말기인 1370년(공민왕 19) 명나라 태조후인 효자황후가 중국관복을 보내온 데서 비롯한다. 조선 말기까지 착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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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 適宜 [문학/고전시가]
조선후기 무신 이용의 「북정록」·「서행록」·「북정가」 등을 수록한 시문집. 1권(56장). 한문 필사본. 이 책의 내용은 제1엽에서부터 39엽 전면까지 「북정록」이 실려 있으며, 제39엽 후면부터 47엽 후면까지 「서행록(西行錄)」이 실려 있다. 48엽 전면부터 54엽

종교·철학(42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