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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순 / 李泰淳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59∼1840). 1801년(순조 1) 즉위별시전시에 병과에 급제하였다. 1810년 장령이 되었을 때 시무4조를 진소하여 왕으로부터 가납을 받았다. 1718년 정약용의 사학지원을 소론하였으나 윤허를 받지 못하였고, 1823년 대사간의 지위에 올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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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연 / 李泰淵 [종교·철학/유학]
1615(광해군 7)∼1669(현종 10). 조선 중기의 문신. 게 증손, 할아버지는 도, 아버지는 덕사, 어머니는 박정로의 딸이다. 1642년(인조 20) 진사로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정자·검열을 거쳐 이듬해 대교가 되고, 1646년 설서·정언·지평 등을 역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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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 梨泰院 [사회/촌락]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로서 주한 미군을 비롯한 외국인, 외국 상품, 외국 문화의 집결지. 조선시대 말에는 일제가 식민지 통치를 위한 군사기지를 용산에 두었고, 1945년 해방 후에는 그 자리에 미군이 주둔해왔다. 외국군의 주둔은 이태원 일대의 성격을 규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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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조구산지설화 / 李太祖求山地說話 [문학/구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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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좌 / 李台佐 [종교·철학/유학]
1660(현종 1)∼1739(영조 15). 조선 후기의 문신. 항복 현손, 정남 증손, 할아버지는 시술, 아버지는 세필, 어머니는 박세모의 딸이다. 영의정 광좌 재종형이다. 1699년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검열에 올랐다. 그후 이조정랑, 강원도관찰사, 형조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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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중 / 李台重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94∼1756). 신임사화 때 화를 입은 노론 4대신의 신원을 주장하다가 탄핵받았다. 1740년에 지평이 되어 좌의정 유봉휘, 영의정 조태구를 파직시킬 것을 주청하다가 갑산에 유배, 풀려나와 부교리·황해도관찰사·평안도관찰사를 거쳐 예조참판·부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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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직 / 李台稙 [문학/고전시가]
개항기 주차일본조선공사관 참서관, 대리공사 등을 역임한 외교관. 한흥군(韓興君)이여발(李汝發)의 6대손이다. 아버지는 이승기(李承耆)이며, 어머니는 전주 이씨(全州李氏)이다. 서울에서 출생하여 과거에는 급제하지 못하였으나, 형 이경직(李庚稙)이 정만조(鄭萬朝) 등과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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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환 / 李台煥 [종교·철학/유학]
1697년(숙종 23)∼1774년(영조 50). 조선 후기 문신·유학자. 부친은 이은이다. 1738년(영조 14)에 서원철폐령이 있자 임사자로 추대되었는데, 의리로써 논쟁해야 함을 주장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높은 학문과 덕망으로 인해 안동부사에게 초빙되어 안동훈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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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 / 李澤 [종교·철학/유학]
1651(효종 2)∼1719(숙종 45). 조선 후기의 무신. 아버지는 진백이다. 1676년(숙종 2) 무과에 급제, 선전관을 거쳐 고산진첨절제사로 나갔다. 그 뒤 남구만·이상진 등과 교유하였는데, 이들의 추천으로 도총부경력이 되었다. 선전관, 훈련원정, 전라좌도수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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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히로부미 / 伊藤博文 [정치·법제/외교]
1841-1909. 일본 초대 내각총리대신. 초대 한국 통감. 1885년 행정제도를 개혁해서 근대적 내각제도를 확립하고 초대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하였다. 1888년 추밀원을 창설하고 초대 추밀원의장이 되었다. 1905년 한국과 을사늑약 체결을 주도하고 1905년 12월부

종교·철학(42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