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총 22,1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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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 / 李膺 [종교·철학/유학]
1365(공민왕 14)∼1414(태종 14).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아버지는 희충이다. 1385년(우왕 11) 문과에 급제, 1400년(정종 2) 방간의 난을 평정하는 데 기여한 공으로 1401년(태종 1) 익대좌명공신 4등에 책록되고 영양군에 봉작되었다. 좌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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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로선생사적지 / 李應魯先生事蹟地 [예술·체육/건축]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산41번지에 있는 이응로의 사적지. 충청남도 기념물 제103호. 고암 이응로는 홍성 출신으로 필묵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시도와 시대정신에 투철한 작품세계로 국내는 물론 프랑스와 유럽 화단에 큰 영향을 미친 대가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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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윤 / 李應胤 [종교·철학/유학]
1573∼1620. 조선후기의 문신. 이세기 후손, 부친은 이대립이다. 한백겸의 문인이다.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벼슬은 첨정에 이르렀다. 광해군 때 낙향하였다. 저술로『삼서집의록』,『관향요결』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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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종 / 李應鍾 [종교·철학/유학]
생졸년 미상. 조선 중기 유학자‧의병장. 완풍대군의 8세손이다. 윤교형의 문인이다. 1558년(명종 13)는 생원으로 성균관에서 수학하였으나 붕당의 조짐을 보고 귀향하였다. 예학을 연구하여『가례부기』를 저술하였다. 임진왜란시 호남 의병에 가담하여 광주의 의병 진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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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진 / 李應辰 [종교·철학/유학]
1817년(순조 17)~미상. 조선 말기의 문신. 아버지는 이화면이다. 1860년(철종 11) 유학으로서 증광문과 복시에 합격한 뒤 이듬해 관록에 들었다. 사간, 우통례, 부호군, 성균관대사성, 예방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883년 이조참판에 올랐고, 1886년 지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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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해장군묘출토복식 / 李應獬將軍墓出土服飾 [생활/의생활]
2002년 강원도 원주에 소재한 조선 중기 무관 이응해(李應獬) 장군의 묘를 이장하던 중 수습된 복식관련 출토품. 중요민속문화재 제246호. 출토된 복식은 단령(團領) 4점, 철릭[帖裡] 6점, 도포(道袍) 3점, 중치막[中赤莫] 7점, 창의(氅衣) 2점, 직령포(直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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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강 / 李義綱 [종교·철학/유학]
1742년(영조 18)∼미상. 조선 후기 문신. 부친은 이정중이다. 1781년(정조 5) 임천군수, 1787년(정조 11) 정시 문과에 갑과로 급제한 후, 1788년(정조 12) 대사간·형조참의를 지냈다. 1797년(정조 21) 외직인 밀양부사 재직 시절 영운도차사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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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건 / 李義健 [종교·철학/유학]
1533(중종 28)∼1621(광해군 13). 조선 중·후기의 학자. 여 5대손, 아버지는 수한, 어머니는 경주최씨이다. 1564년(명종 19)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뒤에 학행으로 돈녕부직장이 되었으나 친상으로 곧 사직하였으며, 1610년(광해군 2) 이항복의 주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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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무 / 李宜茂 [종교·철학/유학]
1449(세종 31)∼1507(중종 2). 조선 중기의 문신. 양 증손, 할아버지는 명신, 아버지는 추, 어머니는 윤회의 딸이다. 1477년(성종 8)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정자, 홍문관응교, 사헌부지평, 사헌부장령 등을 역임하였다. 1510년 예조참판에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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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배 / 李義培 [역사/조선시대사]
1576(선조 9)∼1637(인조 15). 조선 후기의 무신. 할아버지는 흥준, 아버지는 흡, 어머니는 이우직의 딸이다. 1599년(선조 32) 무과에 급제해 선전관, 명천부사, 전라좌수사, 안동부사, 공청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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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승 / 李宜繩 [역사/조선시대사]
1665년(현종 6)∼1698년(숙종 24). 조선 후기의 학자. 자는 승혜(繩兮), 호는 원옹(園翁), 본관은 용인(龍仁)이다. 시로써 명성을 떨쳤다. 문집으로 『원옹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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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연 / 李義淵 [종교·철학/유학]
1692(숙종 18)∼1724(영조 즉위년). 조선 후기의 학자. 할아버지는 제형이다. 일찍이 어버이를 여의었으나 학문에 정진하여 문장과 글씨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성품은 엄정하고 청렴하여 항상 몸가짐을 단정히 하였다. 1784년(정조 8) 통정대부 이조참의에 추증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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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윤 / 李宜潤 [종교·철학/유학]
1564년(명종 19)∼1597년(선조 30). 조부는 이언적, 부친은 이응인이다. 일찍이 한강 정구의 문인이 되어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독서와 효행을 독실히 행하다가 34세에 요절하였다. 사림에서 그를 추도하여 사원을 세웠고 저술로『무첨당선생문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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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익 / 李宜翼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94∼?). 이종억 아들이다. 1857년(철종 8) 강화부유수·이조참판을 지냈으며, 동지성균관사·경연관을 지냈다. 고종이 즉위 후, 대원군의 신임을 받아 1864년(고종 1) 예조판서를 비롯하여 1865년 이조판서로 중용되었고, 이듬해에는 경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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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천 / 李倚天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76∼1753). 1713년(숙종 39)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헌납·지평·장령·사간을 거쳐 1726년(영조 2) 좌부승지에 이르렀다. 신임사화 때에는 조태구·유봉휘를 주살하기를 주장하는 계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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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현 / 李宜顯 [종교·철학/유학]
1669(현종 10)∼1745(영조 21). 조선 후기의 문신. 후천 증손, 할아버지는 정악, 아버지는 세백, 어머니는 정창징의 딸이다. 김창협의 문인이다. 숙종 때 대제학 송상기에 의해 당대 명문장가로 천거되었다. 1694년(숙종 20)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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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 / 李珥 [종교·철학/유학]
1536-1584. 조선 중기의 유학자. 1554년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하고 1년 뒤 하산하여 다시 유학에 전념하였다. 1558년 이황을 만났다. 과거에 여러 번 장원급제했고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 임진란이 일어나기 전에 10만 양병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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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명 / 李頤命 [종교·철학/유학]
1658(효종 9)∼1722(경종 2).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밀성군 6대손, 할아버지는 경여, 아버지는 민적, 어머니는 황일호의 딸이다. 작은아버지 지평 민채 양자로 들어갔다. 1680년(숙종 6)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홍문관정자, 이조판서, 병조판서,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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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송 / 李爾松 [종교·철학/유학]
1598(선조 31)∼1665(현종 6).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희성 증손, 할아버지는 득춘, 아버지는 의준, 어머니는 김대현의 딸이다. 김응조의 문인이다. 1635년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전적, 예빈시정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개곡문집』 4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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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순 / 李頤淳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54∼1832). 음양서와 농공기술 에 두루 통달하였고, 후세의 규범으로 〈무첨가〉를 지었다. 이황의 문집을 교검, 개간하고 몽재·청벽·만호 등의 유문을 수습하여《계산세고》 3책을 만들었다. 문집으로《후계집》이 있으며, 작품으로〈화왕전〉과 〈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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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첨 / 李爾瞻 [종교·철학/유학]
1560(명종 15)∼1623(인조 1). 조선 중기의 문신. 극돈의 후손, 수훈의 증손, 할아버지는 범, 아버지는 우선, 어머니는 유유일의 딸이다.1582년(선조 15) 사마시에 합격, 1593년(선조 27) 광릉참봉을 지냈다. 이조정랑, 예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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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 / 李瀷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실학자(1681∼1763). 1706년 둘째 형이 장희빈을 두둔하는 상소로 말미암아 옥사하자, 과거에 응시할 뜻을 버리고 안산으로 내려가 저술과 학문 연구에 힘썼다. 실학의 대가로서 천문, 지리, 의학 등에 업적을 남겼다. 정약용의 학문에 큰 영향을 미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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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달 / 李益達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조선 후기 무신. 이조판서 이승길의 후손이다. 1644년(인조 22) 별시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1656년(효종 7) 전라우수군절도사로 수군을 조련시키던 중 악천후로 인해 수군 1천여 명을 포함하여 진도군수 이태형이 익사하였는데 이 사건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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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명 / 李益命 [정치·법제/법제·행정]
생졸년 미상.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세종의 아들인 밀성군(密城君)의 6대손으로, 조부는 영의정(領議政) 이경여(李敬輿)이다. 부친 대사헌(大司憲) 이민적(李敏迪)과 모친 의주부윤(義州府尹) 황일호(黃一皓)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형은 경종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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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보 / 李益輔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08∼1767). 이일상 증손, 할아버지는 이성조, 아버지는 이우신, 어머니는 윤빈의 딸이다. 민정중이 제정한 상정제를 홍계희와 함께 개정하였다. 그뒤 판의금부사·우참찬·회양부사·병조판서·이조판서·판돈령부사·좌참찬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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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수 / 李益壽 [종교·철학/유학]
1653(효종 4)∼1708(숙종 34). 조선 후기의 문신. 무 증손, 할아버지는 지항, 아버지는 원구, 어머니는 이준구의 딸이다. 1682년(숙종 8)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그해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대사간, 판의금부사, 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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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운 / 李益運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48∼1817). 정조가 영남 22읍에 견휼의 윤음을 내릴 때, 경상도위유사로, 여러 가지 시무책을 건의하였다. 1801년(순조 1) 경기도관찰사 재직 중 주문모와 관련된 천주교신자 18인을 잡아들여 심문한 뒤 그 중 3인을 참형하였다. 벼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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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정 / 李益炡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99∼1782). 1744년 동지사 겸 사은사의 부사가 되어 청나라에 갔는데 국위를 손상시켰다는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으나 곧 복관되어 1746년 병조참판으로 기용되었으며, 이후 대사간·대사헌·우참찬을 거쳐 1754년 예조판서에 올랐다. 그 후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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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 / 李䄄 [종교·철학/유학]
1755년(영조 31)∼1801년(순조 1). 조선 후기의 왕족. 사도세자의 서자로서 어머니는 영빈 임씨이다. 10세에 작호를 받고, 13세에 유학 송낙휴의 딸과 혼인하였다. 영조가 죽자 수릉관에 임명되어, 그때의 공으로 1777년(정조 1)에 가자되어 흥록대부에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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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로 / 李仁老 [문학/한문학]
고려시대 예부원외랑, 비서감우간의대부 등을 역임한 관리.문신. 증조부는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이오(李䫨)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기록을 볼 수 없다. 이인로는 25세 때에 태학에 들어가 육경(六經)을 두루 학습하였다. 1180년(명종 10) 2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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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상 / 李麟祥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1710∼1760). 시·서·화를 갖춘 삼절로 불렸다. 산수화와 글씨 전서·주서 등에 탁월하고, 전각에 능했다. 저서로는《능호집》이 있고, 그림에 〈옥류동〉·〈은선대〉·〈설송도〉 등이 있고, 글씨에〈대사성김식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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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소 / 李寅熽 [종교·철학/유학]
1637(인조 15)∼1698(숙종 24). 조선 후기의 문신. 대건 증손, 할아버지는 시발, 아버지는 경억, 어머니는 윤원지의 딸이다. 1693년(숙종 19)에 57세의 나이로 알성문과에 병과로 동생 인병과 함께 급제하였다. 1696년 수찬으로 있으면서 화폐유통의 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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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엽 / 李寅燁 [종교·철학/유학]
1656(효종 7)∼1710(숙종 36). 조선 후기의 문신. 대건 증손, 할아버지는 시발, 아버지는 경억, 어머니는 윤원지의 딸이다. 1684년(숙종 10)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2년 뒤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이조판서, 홍문관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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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 / 李麟榮 [정치·법제/국방]
조선 후기의 의병장(1867∼1909). 명성황후 시해로 의병을 일으키고 관동창의대장을 거쳐 원수부13도 총대장에 선출, 의병 1만을 이끌고 서울로 진격할 때 부친상을 당해 낙향한 후 일본헌병에 잡혀 옥사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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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재 / 李寅梓 [종교·철학/유학]
1870년(고종 7)∼1929년. 유학자. 곽종석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이인재 또한 주리론으로 계승되고 있다.1912년《철학고변》이라는 서양고대철학사에 관한 저술을 내었다. 이 저서는 한말 유학자인 이정직이 저술한《칸트철학설대략》과 함께 국내에서는 초기의 서양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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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좌 / 李麟佐 [종교·철학/유학]
?∼1728(영조 4). 조선 후기의 역신. 할아버지는 이운징, 윤휴의 손서이다. 영조의 즉위로 소론이 정계에서 배제되자 정희량·이유익·심유현·박필현·한세홍 등 소론 과격파와 갑술환국 이후 정계에서 물러난 남인들과 공모하여 밀풍군 탄을 추대하고 무력으로 정권쟁탈을 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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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좌의 난 / 李麟佐의 亂 [정치·법제/정치]
1728년(영조 4) 3월 정권에서 배제된 소론과 남인의 과격파가 연합해 무력으로 정권탈취를 기도한 사건. 이인좌가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이인좌의 난이라고 하며, 무신년에 일어났기 때문에 무신란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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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중 / 李仁中 [종교·철학/유학]
1825년(순조 25)∼1896년(고종 33). 조선 말기의 학자. 아버지는 이승헌, 어머니는 정태휴의 딸이다. 이종상의 문인이다. 성리학 연구에 힘을 기울였다.《성리대전》과 《도산언행록》을 즐겨 읽었다. ‘간우선생’이라 일컬었다. 1855년(철종 6)에는 융릉의 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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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직 / 李人稙 [문학/현대문학]
1862-1916. 신소설작가, 언론인, 신극운동가. <국민신보>, <만세보> 주필, <대한신문>을 창간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언문일치 신소설 작가로 <혈의 누>를 발표, 신연극운동의 선구자로 <은세계>를 원각사 무대에 올렸다. 작품 <귀의 성>, <치악산>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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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철증시문서 / 李寅轍贈諡文書 [정치·법제]
1910년(융희 4) 8월 고 궁내부특진관 이인철(李寅轍)에게 '효헌(孝憲)'이란 시호를 내리면서 발급한 칙첩. 문서에는 '자혜애친왈효 행선가기왈헌'이라 적어 효헌이란 시호를 내린 연유를 적었다. 1910년 8월 26일 순종은 57명에게 시호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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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행 / 李仁行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58∼1833). 1790년(정조 14)에 응제대책으로 온릉참봉에 발탁되었고, 벼슬이 세자익위사익위에 이르렀다. 서연에 입시·진강하여 동료들로부터 진강관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저서로는《신야문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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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혁 / 李寅爀 [종교·철학/유학]
1634년(인조 12)∼1710년(숙종 36). 조부는 이시발, 부친은 이경휘이다. 1657년(효종 8) 사마시에 합격하여 음직으로 공조좌랑에 제수되었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으로 인현왕후가 폐위된 뒤,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1694년(숙종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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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환 / 李寅煥 [종교·철학/유학]
1633(인조 11)∼1699(숙종 25). 조선 후기의 문신. 대건 증손, 할아버지는 시발, 아버지는 경휘, 어머니는 심대복의 딸이다. 1665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검열·정언·수찬 등을 지냈다. 지평·부수찬을 거쳐 1675년(숙종 1) 암행어사가 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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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 / 李鎰 [종교·철학/유학]
1538(중종 33)∼1601(선조 34). 조선 중기의 문신. 1558년(명종 13) 무과에 급제해 경성판관 등을 거쳐 1583년(선조 16) 전라좌수사·경원부사를 지냈다. 지중추부사, 비변사당상, 훈련원지사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증보제승방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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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 李一榮 [종교·철학/유학]
1773∼1833. 조선후기의 문신. 부친은 이집두, 어머니는 권세모의 딸이다. 1805년 명릉참봉에 임명된 이후의 관력을 서술하고, 평소 박식하고 재능이 출중하였음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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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 / 李耔 [종교·철학/유학]
1480(성종 11)∼1533(중종 28).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이색의 후손, 이예견의 아들이다. 1501년(연산군 7) 진사, 1504년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해 사헌부감찰을 지냈다. 천추사의 서장관으로 북경에 다녀온 뒤 이조좌랑, 의성현령을 역임하였다. 15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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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성리서 / 李子性理書 [종교·철학/유학]
유가류(儒家類). 명석정에 소장되어 있는 책이다. 책수는 1책, 판종은 필사본(筆寫本)이다. 규격은 27.7×17.3cm이다. 표제는 이자성리서(李子性理書)이다. 조선시대 이이(李珥)가 쓴 책이다. 서문(序文)은 이도중(李度中), 발문(跋文)은 박기직(朴基稷)이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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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잠 / 李潛 [역사/조선시대사]
1561(명종 16)∼1593(선조 26). 조선 중기의 무신. 보 7대손, 태빈의 아들이다. 무과급제하여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도체찰사 정철의 막료로 있었는데, 적개의병장 변사정이 그의 현명함을 듣고 청하자 부장이 되었다. 신상필벌을 강화하고 사졸과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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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곤 / 李長坤 [종교·철학/유학]
1474(성종 5)∼1519(중종 14). 조선 중기의 문신. 신지 증손, 할아버지는 호겸, 아버지는 승언, 어머니는 이래의 딸이다. 김굉필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495년(연산군 1) 생원시에 장원으로 합격, 1502년 알성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홍문관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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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백전 / 李長白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한문 필사본. 책 표지에는 ‘丁香傳(정향전)’이라 쓰고 ‘附李長白傳(부이장백전)’이라 기록하고 있다. 안에는 「일석화(一夕話)」·「정향전(丁香傳)」·「이장백전(李長白傳)」이 합철되어 있다. 『조선학보(朝鮮學報)』 90집에 전권을 영인으로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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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장가 / 李璋長歌 [문학/고전시가]
1532년에 이장(李璋)이 조정의 신하들을 비방하여 지은 시가 작품. 『중종실록』 권74, ‘28년 3월’ 기사 등에 실린 「이장장가」는 다음과 같다(기사별로 표기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으며, 괄호 속은 차자표기를 성호경이 당시의 한국어로 옮긴 것임). “鄭光弼 細筆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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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 / 李縡 [종교·철학/유학]
1680(숙종 6)∼1746(영조 22). 조선 후기의 문신. 유겸 증손, 할아버지는 숙, 아버지는 만창, 어머니는 민유중의 딸이다. 김창협의 문인이다. 1702년(숙종 28) 알성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가주서·승문원부정자를 거쳐 예문관검열, 형조참의, 병조참의,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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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 / 李栽 [종교·철학/유학]
1657(효종 8)∼1730(영조 6). 조선 후기의 학자. 아버지는 현일, 어머니는 박늑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작은아버지 휘일과 숭일에게 배웠다. 1700년(숙종 26) 유배에서 풀려나자 안동군 금수에서 살았다. 벼슬은 주부에 이르렀으나 사직하고 오직 학문에만 몰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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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 / 李梓 [종교·철학/유학]
1606(선조 39)∼1657(효종 8). 조선 후기의 문신. 해수 증손, 할아버지는 권, 아버지는 성신, 어머니는 권질의 딸이다. 1638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예문관에 들어갔다. 1649년(효종 즉위년)에 호남지방의 암행어사를 거쳐 이듬해에 집의에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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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간 / 李在簡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33∼1789). 벼슬은 교리·헌납·부수찬·사간·응교·필선 등을 역임하여 주로 언관 계통의 관리로서 활약하였다. 정조 즉위 후 이조참의·대사성을 거쳐 이조참판이 되었으며, 양전의 실시를 주장하였다. 1789년 흉언사건에 연루되어 반역죄로 처형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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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관 / 李在寬 [예술·체육/회화]
조선 후기의 화가(1783∼1837). 화원으로 태조의 어진을 모사해 등산첨사가 되었다. 화조·초충·물고기·구름은 물론 초상화에 특히 뛰어났다. 영모화는 일본에서도 유명했다. 대표작〈송하처사〉·〈미인사서도〉·〈월하신선도〉·〈총석정〉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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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난고 / 頤齋亂藁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 이재 황윤석의 유고. 50책 6,000장. 황윤석은 다산정약용보다 1세대쯤 앞서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1829년(순조 29)에 후손 수찬과 당시의 전라도관찰사 조인영에 의하여 간행된 ≪이재유고≫ 12권 7책과 이 유고가 간행된 지 114년 뒤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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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면 / 李載冕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 후기의 정치가(1845∼1912). 흥선대원군의 장남, 고종의 형이다. 임오군란 때 무위대장으로서 사태수습에 힘쓴 후 호조판서·지삼군부사·훈련대장 등을 겸했다. 흥선대원군의 재집정한 후 제1차 김홍집내각 때 궁내부대신을 지냈다. 흥친왕에 책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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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 李在明 [정치·법제/정치]
조선 후기의 의사(1890∼1910).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려 하였으나 실행하지 못하였다. 이후 이재명·김정익 등의 동지들과 친일 매국노를 척결하기로 계획하고 직접 이완용을 수차례 칼로 찔러 상처를 입히고 체포된 뒤 사형을 언도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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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선의모역 / 李載先의謀逆 [역사/근대사]
1881년 안기영, 권정호 등이 고종을 몰아내고 고종의 이복형인 흥선대원군의 서장자(庶長子) 이재선을 추대하려다 실패한 사건. 민비일파가 실권을 쥐고 개국정책을 펴자, 이에 불만을 품은 전승지, 안기영, 권정호 등이 민비일파를 몰아내고 이재선을 추대하여 대원군을 복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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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순 / 李載純 [정치·법제/정치]
대한제국 궁내부대신. 반일 외교정책 견지(1851∼1904). 형조판서를 지냈으며, 특파대사로 일본에 파견되었다. 국왕을 궁성 밖으로 모셔와 새 정부를 새우려한 춘생문사건을 일으켰다. 이 일로 향리방축의 벌을 받았다. 전권대사로 유럽 각국을 방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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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영언 / 頤齋詠言 [문학/고전시가]
조선시대 문신 조우인의 가사「매호별곡」·「자도사」·「출새곡」등 4편을 수록한 가사집. 1권. 필사본. 만든 연대와 사람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책 끝에 이 책의 편찬경위와 편찬연월일, 편찬자의 이름을 적어놓았다. 내용은 「매호별곡(梅湖別曲)」·「자도사(自悼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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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협 / 李在協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31∼1790). 1757년(영조 33) 정시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사간원지평·홍문관교리 등의 요직을 역임, 1760년 암행어사로 호서지방을 감찰했다. 사헌부헌납·홍문관수찬을 거쳐 대사간에 올랐다. 이어 승지를 역임하였고, 1776년 정조가 즉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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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저국 / 已柢國 [지리/인문지리]
삼한시대 진한의 소국.진한 12소국(小國) 중의 하나. 『삼국지(三國志)』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에 수록된 삼한(三韓) 소국의 이름은 당시의 중국 상고음(上古音)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그 표기는 우리나라의 고대 한자음에 가까우므로 ‘이저국’도 우리나라의 한자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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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의 / 李適意 [종교·철학/유학]
1652년(효종 3)∼1725년(영조 1). 조선 후기 문신·학자 증조는 이개립, 조부는 이휘음이다. 부친 이숭언의 6남 중 5남으로 태어났다. 외조부는 이상백이다. 형으로 이달의·이원의·이수의·이술의가 있고, 동생으로 이첨의가 있다. 서형으로 이철의가 있다. 부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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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 李㙉 [종교·철학/유학]
1558(명종 13)∼1648(인조 26). 조선 중기의 학자. 아버지는 수인, 동생이 준이다. 동생 준과 함께 유성룡의 문하에서 이황의 학설을 배웠다. 1603년(선조 36) 사마시에 합격, 세마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인조 때에는 지례현감에 제수되었으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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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 / 里正 [사회/촌락]
조선시대 지방행정조직의 최말단 단위인 이의 책임자. 조선 후기에 와서 그 담당자들이 낮은 신분 출신으로 동네의 심부름꾼과 다름없이 되었으므로 이정(里丁)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군현 이하의 하부조직으로는 면(面)·사(社)·방(坊)·동(洞)·이(里)·촌(村) 등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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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 / 李瀞 [종교·철학/유학]
1541(중종 36)∼1613(광해군 5). 조선 중기의 문신. 중현 증손, 할아버지는 무, 아버지는 경성이다. 조식의 문하생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함안군수 유숭인의 휘하에서 소모관으로 의병을 모집하고 진해·창원 등지에서 전공을 세웠다. 상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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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 / 李霆 [종교·철학/유학]
1554(명종 9)∼1626(인조 4). 조선 중기의 묵죽화가. 세종의 현손으로 익주군 이지의 아들이다. 석양정에 봉해졌다. 뒤에 석양군으로 승격되었다. 그의 작품으로는 <죽도>, <우죽도>, <문월도> 등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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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구 / 李廷龜 [종교·철학/유학]
1564(명종 19)∼1635(인조 13). 조선 중기의 문신·문인. 석형 현손, 아버지는 계, 어머니는 김표의 딸이다. 윤근수의 문인이다. 1590년(선조 23)에는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병조판서, 예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시문집으로는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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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국 / 李禎國 [종교·철학/유학]
1743년(영조 19)∼1807년(순조 7). 조선 후기 유학자. 부친 이인섭과 모친 유성구의 딸사이에서 태어났다. 대산 이상정에게서 수학하였다. 1773년(영조 49) 증광시 생원 3등 60위로 합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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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귀 / 李廷龜 [문학/한문학]
조선시대 예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문인. 세조 때의 명신인 이석형(李石亨)의 현손이며 아버지는 현령이계(李啓)이고, 어머니는 김표(金彪)의 딸이다. 윤근수(尹根壽)의 문인이다. 이정귀는 문장으로 이름 높던 가문에서 출생해 가문 내에서의 가르침을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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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규 / 李廷圭 [종교·철학/유학]
1587(선조 20)∼1643(인조 21). 조선 후기의 문신. 양녕대군 8대손, 원성 증손, 할아버지는 운손, 아버지는 개, 어머니는 윤충남의 딸이다. 1615년(광해군 7) 사마시에 합격, 1627년(인조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동부승지에 이르렀다. 일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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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규 / 李鼎揆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35∼?). 1768년 급제 후 주서가 되자 영조가 비망기를 읽게 하고 《명사강목》, 표피 등을 하사하였다. 교리, 수찬, 승지, 장령, 사간원대사간 등을 거쳐 사헌부대사헌이 되었다. 항상 직위가 바뀔 때마다 낙향하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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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기 / 李廷機 [종교·철학/유학]
1613(광해군 5)∼1669(현종 10). 조선 후기의 문신. 여해 증손, 할아버지는 광준, 아버지는 민환, 어머니는 홍구상의 딸이다. 좌승지 민성에게 입양되었다. 장현광의 문인이다. 1635년(인조 13) 사마시에 합격하여 참봉을 지내다가, 1648년(인조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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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기 / 李貞基 [종교·철학/유학]
1872년(고종 9)∼1945년. 일제 강점기 성리학자. 이총언의 후예, 부친은 이원하이다. 장복추·김흥락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05년(광무 9) 을사조약에 대한 소식을 듣고, 일본의 침략을 배척하는〈양이설〉을 저술하여 영남유림의 경각심을 고취시켰다. 저서로《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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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로 / 李正魯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38∼1923). 을미사변 때 폐비에 관계된 자들을 다스릴 것을 상소하였다.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서 환궁할 것을 상소하였다. 중추원1등의관·봉상사제조·경효전제조 등 궁내부 각 아문의 장을 지냈다. 일제로부터 남작의 작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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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병 / 李鼎秉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1759∼1834). 통례원상례가 되어 동궁의 입학을 주관하였다. 병조참지·동부승지·우승지를 지냈다. 풍천부사가 되어 환곡 만석을 경감 조치하였다. 돈령부도정이 되고, 오위도총부부총관에 올랐다. 저서로《금파문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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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보 / 李鼎輔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93∼1766). 1732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수원부사·도승지·이조판서 등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지평에 재임 중 시무십일조를 상소하는 등 여러 번 탕평책을 반대하다 면책받았다. 1762년 기로소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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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소 / 李廷熽 [종교·철학/유학]
1674(현종 15)∼1736(영조 12). 조선 후기의 문신. 아버지는 상휴이다. 1696년(숙종 22) 진사, 1714년 증광문과에 장원급제, 노론으로서 지평·정언에 이르렀다. 소론파의 유봉휘 등은 시기상조론의 항소와 그 뒤 김일경 등의 노론 4대신을 4흉으로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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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암 / 李廷馣 [종교·철학/유학]
1541(중종 36)∼1600(선조 33). 조선 중기의 문신. 거 증손, 할아버지는 달존, 아버지는 탕, 어머니는 김응진의 딸이다. 이조참판 정형의 형이다.1561년(명종 16)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병조좌랑, 연안부사, 공조참의, 충청도관찬사 등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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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운 / 李鼎運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43∼1801). 검열·정언·지평 등을 거쳐 홍충도 암행어사가 되고, 1784년 서장관으로서 사은사 박명원 등과 함께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승지 등을 지내다가 한때 안치되었고, 충청도관찰사·함경도관찰사·형조판서가 되었다. 문명이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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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익 / 李鼎益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53∼1826). 1804년 진사시 합격하였다.《주서절요》·《심경》등의 책을 깊이 연구하였고, 후학 양성에 힘썼다. 경주부윤 이덕현이 그와 상의하여 향약을 정하였다. 문집으로《감화문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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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직 / 李定稷 [종교·철학/유학]
1841-1910. 한말의 유학자. 1869년 청나라에 가서 학자들과 교유하였다. 양계초의 <음빙실문집>에 근거하여 칸트와 베이컨의 서양철학을 소개하고 그것을 유학사상과 비교하였다. 실학자로서 1900년대를 전후하여 조선 최초로 서양철학을 도입하여 성리학과의 접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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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청 / 釐整廳 [경제·산업/경제]
조선시대 군정 또는 삼정의 문란을 시정하기 위해 설치했던 관서. 1703년(숙종 29) 이정청을 설치하고 1704년 수군의 군포 3필 중 1필을 감해줌으로써 종래 고르지 못하던 군포를 2필로 균일하게 하였다. 같은 해 12월에는 5군영의 군액을 감하는 동시에 수군을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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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 / 里程標 [사회/촌락]
도로나 선로(船路) 등의 길 가장자리 일정한 곳에 이르는 거리를 적어 세운 푯말이나 표석(標石). 이정표가 언제, 어떤 형태로 발생했는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기능상으로 볼 때 우리 나라의 고대 신앙형태인 솟대나 장승, 성황당을 이와 유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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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혐 / 李廷馦 [종교·철학/유학]
1562년(명종 17)∼미상. 증조부는 이거, 조부는 이달준, 부친은 이탕이다. 1588년(선조 21) 무자 식년시 진사 3등 3위로 합격하였고, 1594년(선조 27) 갑오 별시 병과 6위로 합격하였다. 벼슬은 이조참판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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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형 / 李廷馨 [종교·철학/유학]
1549(명종 4)∼1607(선조 40). 조선 중기의 문신. 거 증손, 할아버지는 달존, 아버지는 탕, 어머니는 김응진의 딸이다. 지중추부사 정암의 아우이다. 정윤희의 문인이다. 1568년(명종 23) 별시 문과에 갑과로 급제해 형조좌랑, 사간원정언, 예조좌랑,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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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효 / 李廷孝 [종교·철학/유학]
1832년(순조 32)∼1917년 6월 7일. 조선 말기 유학자. 조부는 이우하, 부친 이익선과 모친 김양규의 딸사이에서 태어났다. 1838년(헌종 4) 숙부 이익만에게 나아가 배웠는데, 총명하여 한 번 배운 것은 잊지 않았다. 1905년(광무 9) 충정공 민영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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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 李濟 [종교·철학/유학]
1654(효종 5)∼1714(숙종 40). 조선 후기의 문신. 후재 증손, 할아버지는 형, 아버지는 영휘, 어머니는 박정의 딸이다. 박세당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닦았고, 1687년(숙종 13)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이후 문음으로 관직에 나아가 공조정랑, 충청도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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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겸 / 李濟兼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83∼1742). 1725년(영조 1) 을사 증광시 병과에 4위로 급제한 후, 승문원정자와 율봉도찰방을 역임하였다.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강필신이라는 인물이 ‘율봉도찰방이 반란군에게 역마를 제공하였다’고 무고를 하여, 이 일을 빌미로 선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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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마 / 李濟馬 [과학/의약학]
1837(헌종 3)∼1900(광무 4). 조선 말기의 의학자. 이제마(李濟馬)는 전주이씨로 태조 이성계의 고조(高祖)인 목조(穆祖)의 2남 안원대군(安原大君)의 19대손이다. 1837년(헌종 3) 3월 19일 갑신일 오시(午時)에 함경남도 함흥군 주동사면 둔지리 사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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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삼 / 李齊杉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86∼1773). 이석형의 후손이다. 한원진, 이간, 윤봉구 등과 친하게 지냈다. 1723년(경종 3) 계묘 증광시 진사 3등 39위로 합격하였다. 영조 37년(1761)에 침랑에 제수되었고, 80세에는 중추부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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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상 / 李濟相 [종교·철학/유학]
1863년(철종 14)∼1932년. 일제 강점기 유학자. 부친은 이희일이다. 김흥락의 문하에서 학문에 정진하였다. 1899년(광무 3) 학문과 덕행으로 추앙을 받아 학부박사를 제수받았으나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1919년 고종이 승하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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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원 / 李濟遠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09∼1752). 문과 급제 후 예문관검열·세자시강원문학·승문원교리·사간원헌납·사헌부장령 등을 역임하고, 1749년 대사간이 되었다. 이때 노론·소론의 당론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신임사화의 김창집 등의 복관이 옳지 않다는 상소를 올림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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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한 / 李齊漢 [종교·철학/유학]
1618년(광해군 10)∼1676년(숙종 2). 조선 중기 문신‧유학자. 이성중 후손, 고조는 이양필, 증조는 이영, 조부는 이귀남이다. 부친 이경과 모친 이복록의 딸 사이에서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 이광한‧이지한이 있다. 부인은 이희전의 딸이다. 헌릉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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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현 / 李齊賢 [종교·철학/유학]
1287-1367. 고려 말의 유학자. 백이정에게서 배웠다. 1314년 원나라 연경에 가서 조맹부 등과 고문학을 연구하였다. 귀국 후 왕명으로 실록을 수찬하고 종묘, 위패의 차례를 정하였다. 최승로의 <시무 28조>를 높이 평가하였다. 그의 학문은 고려 유학의 원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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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황 / 李濟晃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유도연구원장, 대한유도회 전임이사 등을 역임한 체육인. 서울 출생. 북경대학을 졸업하고 1932년 중앙기독청년회 유도부 정기승급단전에서 초단을 딴 뒤 1938년에 4단, 1939년에 5단으로 승단하였고 뒤에 10단까지 올라갔다. 1930년 9월 제2회 재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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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 / 吏曹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조선시대 문선·훈봉·고과 등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관서. 육조의 하나이다. 조선시대에는 1392년(태조 1) 문선·훈봉·고과 등에 관한 일을 맡도록 규정되었는데 이것이 ≪경국대전≫에서 확정되었다. 그러나 실제 기능은 왕권이나 여러 정치기구와의 역학관계로 강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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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 / 李肇 [종교·철학/유학]
1666(현종 7)∼1726(영조 2). 조선 후기의 문신. 상질 증손, 할아버지는 훤, 아버지는 한익, 어머니는 남일성의 딸이다. 1696년(숙종 22)에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예문관검열, 강원도관찰사, 평안도관찰사, 예조참판, 예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종교·철학(42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