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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양신 / 李亮臣 [종교·철학/유학]

    1689(숙종 15)∼1739(영조 15).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정구 현손, 아버지는 희조, 어머니는 김수흥의 딸이다. 1721년(경종 1)에 내시교관, 1726년(영조 2)에 한성부주부, 사복시주부와 공조좌랑을 역임하였다. 1727년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부

  • 이양연 / 李亮淵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71∼1853). 여 후손, 아버지는 상운이다. 1830년(순조 30) 음보로 선공감에 제수되었으나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후에 호조참판·동지돈령부사 겸 부총관 등에 임명되었다. 저서로《석담작해》·《가례비요》 등이 있다.

  • 이양오 / 李養吾 [종교·철학/유학]

    1737년(영조 13) 5월 6일∼1811년(순조 11). 조선 후기 유학자·문장가. 증조는 이문좌, 조부는 이시발이다. 부친 이의채와 모친 정탁의 딸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장한응의 딸이다. 1786년(정조 10) 모친상을 당한 이후 과거시험에 대한 뜻을 접고 경서

  • 이양증시문 / 李穰贈諡文 [정치·법제]

    1910년(융희 4) 8월 고 하령군 이양(李穰)에게 '충민(忠愍)'이란 시호를 내리면서 발급한 칙첩. 문서에는 '려국망가왈충 사민비상왈민'이라 적어 충민이란 시호를 내린 연유를 적었다.

  • 이언경 / 李彦經 [종교·철학/유학]

    1653(효종 4)∼1710(숙종 36). 조선 후기의 문신. 양열 증손, 할아버지는 시필, 아버지는 정린이다. 남구만의 문인이다. 1677년(숙종 3) 사마시에 합격, 1691년(숙종 17) 통덕으로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성균관학유·박사가 되었다. 대사간, 충청

  • 이언괄 / 李彦适 [종교·철학/유학]

    1494(성종 25)∼1553(명종 8). 조선 중기의 학자. 아버지는 번, 어머니는 손소의 딸이다. 대학자인 형 언적에게 글을 배웠다. 성리학과 경전에 밝았고, 후진의 교육에 힘을 기울였다. 사헌부지평에 추증되었고, 경주의 덕계사와 덕연사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농재

  • 이언순 / 李彦淳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74∼1845). 1804년(순조 4)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후에 충청도관찰사·대사간·이조참판 등을 역임했다. 1835년에는 사은부사로 청나라를 다녀왔다.

  • 이언언해 / 易言諺解 [언어/언어/문자]

    1884년경에 『이언』을 언해하여 간행한 책. 『이언』은 청나라 정관응(鄭觀應)이 청나라의 쇠퇴를 염려하여 서양의 정치·제도·국방·경제 등을 소개하여 국세를 만회시키고자 1880년에 한문으로 간행한 책이다. 이것을 다시 한글로 언해한 것이 『이언언해』인데, 모두 한글로

  • 이언인 / 俚諺引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이옥의 조선시에 대한 이론적 견해를 제시한 평론집. 한문필사본. 『예림잡패 藝林雜佩』에 수록되어 있다. 저자는 연안(延安)이옥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로는 김려(金鑢)의 『담정총서 潭庭叢書』에 수록된 「심생전」 등의 작자인 전주(全州)

  • 이언적 / 李彦迪 [종교·철학/유학]

    1491-1553. 조선 중종때의 유학자. 1514년 과거급제 이후 여러 관직을 지냈다. 1517년 조한보와 태극에 관한 논쟁을 일으킴으로써 조선 성리학사에 주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 논변에서 그는 태극을 도가나 불가적 입장에서 해석하는 것을 배격하였다. 조한보는

  • 이언진 / 李彦瑱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사역원주부를 역임한 역관.시인. 세거지는 서울이며, 대대로 역관을 지낸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용휴(李用休)에게 수학하였다. 1759년(영조 35) 역과(譯科)에 합격하여 사역원주부가 되었고, 1763년 통신사 조엄(趙曮)을 수행, 역관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어

  • 이언총림 / 俚諺叢林 [문학/구비문학]

    소담·수수께끼·희시 등을 수록한 소담집. 총 78면(39장). 한글 필사본. 이 책의 이름은 표지에 밝혀져 있는 대로 ‘이언총림’이 옳겠으나, 때로는 내용 첫머리에 있는 『뎡일남뎐』을 서명으로 쓰는 경우도 있다. 『이언총림』은 스킬런드(Skillend, W.E.)의

  • 이언충묘출토복식 / 李彦忠墓出土服飾 [생활/의생활]

    조선 중기의 문신 이언충(李彦忠)의 묘에서 출토된 복식 일괄. 수습된 복식류는 7종 24점으로, 답호 6점, 직령 4점, 철릭 4점, 액주름 1점, 적삼 2점, 바지류 6점, 명정(銘旌) 1점이 있다. 보공용으로 사용된 복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장례풍속에 의해 묘주의

  • 이여 / 李畲 [종교·철학/유학]

    1645(인조 23)∼1718(숙종 44). 조선 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식, 아버지는 신하, 어머니는 신후완의 딸이다. 1680년(숙종 6)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검열, 다음 해 홍문록에 등재되고 정자가 되었다. 이어 이조좌랑, 이조정랑, 이조참의, 대사간,

  • 이여빈 / 李汝馪 [종교·철학/유학]

    1556(명종 11)∼1631(인조 9). 조선 중기의 학자. 아버지는 효신, 어머니는 이귀윤의 딸이다. 한우의 문인이다. 1605년 증광문과 병과로 급제, 이듬해 벽사도찰방으로 나갔으나 1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1610년(광해군 2) 성균관전적으로 등용되었으나 정

  • 이여송설화 / 李如松說話 [문학/구비문학]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에 관한 설화. 인물전설의 하나로, 『기문총화(記聞叢話)』·『난중잡록(亂中雜錄)』·『대동기문(大東奇聞)』·『동야휘집(東野彙輯)』·『임진록(壬辰錄)』·『한국구비문학대계(韓國口碑文學大系)』 등에 실려 있다. 이여송은 임진왜란의 위기에서 조선을

  • 이여절 / 李汝節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조선 후기의 무신. 1789년(정조 13) 단천부사, 부령부사, 창원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재임시 형장을 남용하여 무고한 백성을 남살하였다는 죄목으로 지평 남이익과 영남암행어사 유경의 탄핵을 받아 1795년 위원에 유배되었다가 같은해 강계의 군졸로 충군

  • 이역죽지사 / 異域竹枝詞 [문학/한문학]

    조선 후기에 이유원(李裕元)이 지은 연작시. 외국의 풍물과 역사를 칠언절구로 노래하고 간략히 주석을 달아두었다. 『임하필기 林下筆記』 권39에 수록되어 있다. 「이역죽지사」는 조수삼(趙秀三)의 「외이죽지사 外夷竹枝詞」와 함께 청나라 우동(尤侗)의 「외국죽지사 外國竹枝詞

  • 이연서원 / 伊淵書院 [교육/교육]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매암리에 있었던 서원. 1587년(선조 20)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김굉필(金宏弼)과 정여창(鄭汝昌)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60년(현종 1) ‘이연(伊淵)’이라 사액되어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

  • 이연응 / 李沇應 [종교·철학]

    1818년(순조 18)∼미상. 조선 후기 문신. 부친은 이낙중, 생부는 남연군 이구의 사촌 이화중이다. 1866년(고종 3) 선파유무응제부로 전시에 직부하여 같은 해 별시에서 병과로 급제. 이후 홍문관부수찬·승정원동부승지·이조참의·종정경·이조참판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

  • 이연응증시문서 / 李沇應贈諡文書 [정치·법제]

    1910년(융희 4) 8월 효정공 이연응(李沇應)에게 '효정(孝貞)'이라 시호를 고쳐주면서 발급한 칙첩. 문서에는 '자혜애친왈효 청백자수왈정'이라 적어 효정이란 시호를 내린 연유를 적었다.

  • 이열비 / 爾列比 [지리/인문지리]

    신라와 가야의 국경지대에 있었던 지명. 『일본서기(日本書紀)』 게이타이기(繼體紀) 8년(514)조에 나오는 지명이다. 그 기록에 따르면 6세기 초에 반파(伴跛), 즉 고령의 대가야는 이열비와 마수비(麻須比)에 성을 쌓아 마차해(麻且奚)ㆍ추봉(推封)에까지 뻗치고 사졸과

  • 이염 / 李琰 [종교·철학/유학]

    1538(중종 33)∼1588(선조21). 조선 중기의 학자. 암 후손이다. 조식의 문하생이며, 평소에 최영경·하항·유종지 등 동인들과 친교를 맺고 있었다. 특히『대학』의「성의장」은 몸소 실천하여 체득하려 노력하였으며, 실제로 효우가 지극하여 부모를 섬김과 형제를 사랑

  • 이엽 / 李爗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1729∼1788). 1777년(정조 1) 증광문과 병과급제 후 부사과·선조보감찬집랑·전적 등을 거쳐 공조정랑에 이르렀다. 문장·재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특히《주역》에 조예가 깊고, 실학사상에도 관심이 많았다.

  • 이영 / 李泳 [종교·철학/유학]

    1650(효종 1)∼1692(숙종 18). 조선 후기의 문신. 시백의 증손, 할아버지는 흔, 아버지는 상윤, 어머니는 허계의 딸이다. 큰아버지 상주에게 입양되었다. 1674년(현종 15) 음서로 후릉참봉이 되고, 곧이어 예빈시봉사를 거쳐 군자감직장을 역임하였다. 그뒤

  • 이영 / 李栐 [종교·철학/유학]

    1670년(현종 11) 10월 19일∼1735년(영조 11) 5월 5일. 조선 후기 유학자. 증조는 이함, 조부는 이시명이다. 부친은 이융일, 모친은 김초의 딸이다. 부인은 성문하의 딸이다. 백부 이현일이 별세한 후에는 가학이 실추될까 염려되어 두 형과 함께 학문에

  • 이영민 / 李榮敏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조선야구협회 초대 이사장, 아시아야구연맹 한국대표 등을 역임한 체육인. 1905∼1954. 경상북도 출생. 배재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학창시절에 전 조선축구대표의 일원으로 일본·상해 등지에 원정하여 활약하였으며, 그 뒤 야구로 전향하여

  • 이영범 / 李榮範 [역사/근대사]

    1909-1961년.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나주군(羅州郡) 공산면(公山面)이다. 1926년 6월 광주고등보통학교(光州高等普通學校)에 재학하면서 비밀리에 광주독서회를 조직하였으며, 그해 11월 3일에 일어났던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하였다. 이후에도 독서

  • 이영준 / 李榮俊 [과학/과학기술]

    생몰년 미상. 조선 인조 때의 역관(曆官). 진주사(陳奏使)로 명나라에 가서 정두원(鄭斗源)과 함께 예수회 선교사인 로드리게스(Rodrigues, J., 陸若漢)에게 서양과학을 배웠다. 특히 서양식 천문추산법을 배워 그 지식을 조선에 전하였으며, 그들이 가지고 돌아온

  • 이영춘 / 李永春 [과학/의약학]

    1903∼1980. 의사·사회사업가. 본관은 평창(平昌). 호는 쌍천(雙泉). 평안남도 용강군 지성면에서 이종현(李宗鉉)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평양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29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다음, 모교에서 병리학을 연구, 1935년 일본 교토제국

  • 이예 / 李藝 [종교·철학/유학]

    1373(공민왕 22)∼1445(세종27). 조선 전기의 문신. 1396년(태조 5) 왜적에게 잡혀간 지울산군사 이은 등을 시종한 공으로 아전의 역에서 면제되고 벼슬을 받았다. 회례부사, 통신부사, 첨지중추원사, 동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학파실기』가 있다

  • 이오수 / 李五秀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1783∼1853). 아버지는 종주, 어머니는 유명휴의 딸이다. 1822년(순조 22) 진사시 합격 후 과거를 단념하고 후진양성에 힘썼다. 예학에 밝고, 시문에 능하였으며, 경학연구와 훈고에 심혈을 기울였다. 뜻있는 벗들과 세한계를 조직해 존현과 풍

  • 이옥 / 李沃 [종교·철학/유학]

    1641(인조 19)∼1698(숙종 24). 조선 후기의 문신. 창정 증손, 할아버지는 심, 아버지는 관징, 어머니는 최호의 딸이다. 1660년(현종 1) 즉위증광시에 병과로 급제, 사관, 예조좌랑, 사간원 정언·사헌부지평, 헌납·이조좌랑·응교·사간·우부승지·부제학 등

  • 이와대현조선인학살사건 / 岩手縣朝鮮人虐殺事件 [역사/근대사]

    1932년 5월 4일, 이와테현 케센군 소재 국철작업장인 오후나토센 공사장에서 자유노동자의 노동쟁의현장을 일본경찰, 소방대, 폭력단 등이 습격해 조선인 지도자 3명을 살해한 사건.

  • 이와쿠라 도모미 / 岩倉具視 [정치·법제/외교]

    1825-1883. 일본 정치가. 이와쿠라 사절단 정사, 1871년 조선사절단, 정한론을 반대. 1868년 왕정복고 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메이지정부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1871년 외무경으로 취임하였다. 1871년 11월 20일 이와쿠라 사절단이 일본을 출발하였다.

  • 이완 / 李浣 [종교·철학/유학]

    1602(선조 35)∼1674(현종 15). 조선 중기의 무신. 아버지는 수일, 어머니는 이귀년의 딸이다. 1624년(인조 2) 무과에 급제한 뒤 평안도병마절도사, 동부승지, 한성우윤, 공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 이완용 / 李完用 [정치·법제/정치]

    주미 조선대리공사. 총리대신.친일파(1858∼1926). 1882년 증광별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다. 1894년 김홍집 내각의 외무협판이 되었고, 이듬해 박정양 내각의 학부대신과 중추원의관을 지냈다. 1905년 학부대신으로 을사조약을 체결하는 데 앞장섰다.

  • 이왕가탄신일 / 李王家誕辰日 [정치·법제]

    고종대 왕실의 탄신일과 선원전다례(璿源殿茶禮)를 위해 양력으로 태조부터의 존호와 탄신을 흑색 인찰공책에 등사한 사본. 고종인 왕전하(王殿下)부터 흥선대원군의 4대손 이청(李淸)의 탄신일까지 기재된 것으로보아 1900년대 초에 작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이왕직 / 李王職 [역사/근대사]

    일제 강점기 이왕가(李王家)와 관련한 사무 일체를 담당하던 기구. 이왕직은 1910년 대한제국황실이 이왕가로 격하됨에 기존의 황실업무를 담당하던 궁내부를 계승하여 설치되었다. 일본의 궁내성에 소속된 기구였다. 이왕직의 이(李)는 조선왕실의 성인 전주 이씨를 지칭하고,

  • 이용 / 李溶 [문학/고전시가]

    조선후기 온성현감, 경성현감, 첨정 등을 역임한 무신. 무안대군(撫安大君)이방번(李芳蕃)의 후손이다.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관북지방에서 33년간이나 돌면서 영흥·북청·경흥·종성·온성·경성 등지의 현감을 지냈고, 중앙으로 올라와서는 첨정을 지내기도 하였다. 1776년(

  • 이용구 / 李容九 [정치·법제/정치]

    조선 후기의 친일민족반역자(1868∼1912). 1890년 동학 입교, 러일전쟁 중 일본군을 도왔다. 일진회 명의로 을사조약체결을 지지하는 선언서를 발표했다. 동학출교 후 시천교를 직접 창설했다. 일진회회장으로서 ‘합방성명서’ 등을 발표, 매국행위를 자행하였다.

  • 이용도 / 李龍道 [종교·철학/개신교]

    1901년∼1933년. 감리교목사·신비주의자. 황해도 금천 출신. 1915년 개성의 한영서원에 입학, 1928년 협성신학교 졸업, 1930년 전국주일학교연합회의 간사, 1931년 6월에는 감리교의 경성 지방 순회 부흥사로 일하였다. 1933년 6월 3일 조선예수교회가

  • 이용문 / 李容紋 [예술·체육/체육]

    대한제국기 이상필과 같이 사궁회(射弓會)를 조직하여 활동한 체육인. 생몰년 미상. 1909년 7월 15일에 이상필(李相弼)과 같이 사궁회(射弓會)를 조직하였다. 활쏘기는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맞지를 않고 안 맞으면 자신이 스스로 무디게 되므로, ‘군자지도(君子之道)’라

  • 이용사 / 理用司 [역사/근대사]

    구한말 통리기무아문 내 경리 등을 위해 설치되었던 관청. 1880년 12월 경리와 재용에 관계된 제반사항을 맡아보았다. 설치 당시 이용당상에는 김병덕과 민영익이 임명되었다.

  • 이용숙 / 李容肅 [종교·철학/유학]

    1818년(순조 18)∼미상. 조선 말기의 정치가. 1866년(고종 3) 미국상선 제너럴 셔먼호(General Sherman)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가 황주 삼전면 송산리 앞에 정박하자 역관으로 황주목사 정대식을 수행하여 접견하고 입국의 사유를 물었고, 1876년 4

  • 이용원 / 李容元 [종교·철학/유학]

    조선 말기의 문신(1832∼1911). 1890년 예조참판으로서 민씨 척속들이 고종의 왕위선양을 모의하자 이에 항의하다가 흑산도로 유배되었다 1894년 정치개혁으로 풀려났다. 이조판서·법무아문대신·우찬성·중추원일등의관·궁내부특진관 등을 지냈다.

  • 이용의 / 李容儀 [역사/근대사]

    1887-미상.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출신지는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 둔남면(屯南面) 용정리(龍井里)이다. 1919년 3·1만세운동이 터지자 당시 지방의 유지 이기송(李起松)·오병용(吳秉鎔)·이만의(李萬儀) 등은 거사를 미리 준비하고 3

  • 이용익 / 李容翊 [정치·법제/정치]

    1900년대 프랑스와 러시아 차관도입 주도 (1854∼1907). 내장원경으로서 왕실재정 관리를 잘했으며,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친러파로 러시아의 용암포 조차권 요구의 승인을 돕고, 일본세력 저지에 힘썼다. 1905년 보성전문학원(고려대학교)을 설립했고, 을사늑약에

  • 이용휴 / 李用休 [문학/한문학]

    조선후기『탄만집』,『혜환시초』,『혜환잡저』 등을 저술한 문인. 아버지는 이침(李沉)이다. 이잠(李潛)의 조카이며 남인 실학파의 중심이었던 이가환(李家煥)의 아버지이다. 어려서는 작은아버지 이익(李瀷)의 문하에서 배웠다. 일찍이 진사시에 합격하나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 이용희 / 李容熙 [역사/근대사]

    1811년(순조 11)∼1878(고종 15). 조선 말기의 무신. 자는 공습(公習), 호는 기원(淇園), 본관은 덕수(德水), 시호는 정의(靖毅)이다. 전라우도수군절도사‧경상우도병마절도사를 지냈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로즈(Roze, P. G.)제

  • 이우 / 李瑀 [종교·철학/유학]

    1542(중종 37)∼1609(광해군 1). 조선 중기의 서화가. 원수 아들, 이 동생, 어머니는 사임당신씨다. 1567년 진사시에 합격, 비안현감과 괴산·고부군수를 거쳐 군자감정에 이르렀다. 시·서·화·금을 다 잘하여 4절이라 불렸다. 그림은 초충·사군자·포도 등을

  • 이우 / 李㙖 [종교·철학/유학]

    1739년(영조 15)∼1811년(순조 11). 조선 후기 유학자. 조부는 이태화, 부친은 이광정, 외조부는 이재이다. 영남유생 1만여 명이 사도세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해명하는 상소를 올릴 때 앞장섰다가 전라남도 완도군 고금도로 유배되었다. 사면된 후에는 이상정의

  • 이우재 / 李愚在 [종교·철학/유학]

    1765년(영조 41)∼미상. 조선 후기 문신. 부친은 이의천이다. 1804년(순조 4) 식년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808년(순조 8) 외직으로 경상좌도암행어사로 파견되어 경상도를 감찰하고 돌아와 환곡의 폐단을 바로 잡아 혁신할 것, 여러 역을 부과하는 폐단을

  • 이우정 / 李宇鼎 [종교·철학/유학]

    1635(인조 13)∼1692(숙종 18). 조선 후기의 문신. 구경 증손, 할아버지는 홍장, 아버지는 익로, 어머니는 조빈의 딸이다. 1662년(현종 3)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우승지, 대사간, 예조참판, 형조판서, 한성부판윤, 예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 이우현 / 李禹鉉 [종교·철학/유학]

    1738년(영조 14)~1799년(정조 23). 조선 후기 무신. 조부는 이도병, 부친은 이종주이다.1765년(영조 41) 식년시 무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84년(정조 8) 서산현감으로 재직 중 고을을 잘 다스린 공로를 인정받아 품계를 올려 받았다. 1789년(정

  • 이우흠 / 李友欽 [종교·철학/유학]

    1673년(현종 14)∼1715년(숙종 41) 4월 30일. 조선 후기의 문신‧문장가. 자는 구이(久而), 본관은 덕수(德水), 출신지는 서울이다. 문예(文藝)에 일찍 성취하여 가르치지 않아도 번다하게 꾸미지 않았다. 특히 과거시험용 글인 공령문(功令文)을 정교하고 아

  • 이운사 / 利運社 [경제·산업/산업]

    1892년 관민합작의 특권회사로, 전운국에서 설립하였던 해운회사. 주로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운반하였으며 민간화물 운송도 담당하였다. 청일전쟁으로 이 회사 소속 선박이 일본군에 징발당하여 일본군 군수물자를 수송하였고, 청일전쟁 이후에는 일본우선주식회사가 이 회사 선박을

  • 이운선전 / 李雲仙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권 1책. 국문필사본. 이 작품의 구성은 다른 고전소설보다 비교적 단순하다. 전반부는 남녀주인공의 결연과정이 그려져 있는데, 그 결연과정을 점복사상에 의하여 전개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남자주인공을 사모하는 주모의 딸이 남자주인공을

  • 이운영 / 李運永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22∼1794). 1759년(영조 35)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으며 내외직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저서로《옥국재유고》가 있다.

  • 이원광산 / 利原鑛山 [경제·산업/산업]

    함경남도 이원군 차호읍 창흥리에 있는 철광산. 1917년에 자본금 100만원으로 회사가 설립되었고, 1918년부터 철광석의 채굴이 시작되었다. 이곳은 적철광(赤鐵鑛)이 산굴되며 함철품위(含鐵品位)가 45∼60%로 우수한 철광산이다. 철산이 해안에서 불과 2㎞밖에 떨어지

  • 이원구석 / 利原球石 [지리/자연지리]

    함경남도 이원군 나흥노동자구에 있는 자갈. 이원구석은 나홍만기슭에 길이 800m, 너비30m에 활등처럼 생긴 구역에 분포한다. 나홍만어구의 양쪽에는 바다기슭을 따라 상부원생대 작현통의 굳은 규암층으로 된 수십미터의 낭떠러지가 있다. 상부원생대에 형성된 규암이 나흥 앞바

  • 이원군 / 利原郡 [지리/인문지리]

    함경남도 동북부에 위치한 군. 동·남쪽은 동해, 서쪽은 북청군, 북쪽은 단천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8°26′∼128°47′, 북위 40°11′∼40°26′에 위치하며, 면적 447㎢, 인구 6만 4457명(1943년 현재)이다. 1개 읍 3개 면 78개 이로 되어

  • 이원록 / 李元祿 [종교·철학/유학]

    1514(중종 9)∼1574(선조 7). 조선 중기의 문신. 추의 증손, 할아버지는 의무, 아버지는 행, 어머니는 이조의 딸이다. 이조정랑으로 재직 중 을사사화가 일어나 많은 사림이 화를 입자, 당시 권신이던 숙부 이기를 비판하고 이황·정황 등 많은 선비들을 구하였다.

  • 이원만 / 利原灣 [지리/자연지리]

    함경남도 이원군 이원면과 차호읍 사이에 있는 만. 함경선이 만안(灣岸)을 따라 달리며 남대천이 만으로 흘러든다. 만의 연안에는 함경산맥의 여맥이 뻗어 있어, 취덕산(鷲德山, 1,001m)·마운령(摩雲嶺)·대덕산(大德山, 1,462m)·궐령(蕨嶺) 등의 산지가 높이 솟아

  • 이원배 / 李元培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1745∼1802). 이재형의 문인으로 경학에 밝아 정조로부터 포상을 받았으며 조정으로부터 여러 관직을 제수받았으나 모두 거절하고 학문에 열중하였다. 문집으로《구암집》이 있다.

  • 이원용 / 李源容 [예술·체육/체육]

    일제강점기 조선체육회 초대이사, 전조선야구대회 심판으로 활동한 체육인. 생몰년 미상. 오성학교(五星學校)와 중앙기독청년회 영어반을 졸업한 야구인으로 오성학교 시절부터 야구선수로서 활약하였다. 1917년 봄에 오성학교와 중앙기독청년회 출신의 야구선수들과 함께 고려야구구락

  • 이원익 / 李元翼 [종교·철학/유학]

    1547(명종 2)∼1634(인조 12). 조선 중기의 문신. 정은 증손, 할아버지는 표, 아버지는 억재, 어머니는 정치의 딸이다. 강서·조충남 등과 교유하였다. 키작은 재상으로 널리 불렸다. 1569년(선조 2)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이듬해 승문원권지부정자로

  • 이원익선생영정 / 李元翼先生影幀 [예술·체육/회화]

    조선 중기의 문신인 이원익의 영정.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0호. 이원익은 1569년(선조 2) 별시문과에 합격하여 관직에 오른 후 1573년 성절사(聖節使)의 질정관(質正官)으로 중국에 다녀왔으며, 1575년 이후 정언(正言)·헌납(獻納)·사간(司諫) 등을 지냈다. 1

  • 이원조 / 李源祚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92∼1872). 1809년(순조 9)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정언·경주부윤·공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사족들의 사치를 비판하고 백성들의 거듭된 흉년에 의한 어려움을 극간하였다.

  • 이원진 / 李元鎭 [종교·철학/유학]

    1594(선조 27)∼1665(현종 6). 조선 후기의 문신. 우인 증손, 할아버지는 상의, 아버지는 지완, 어머니는 이결의 딸이다. 1615년(광해군 7) 생원으로서 대북의 폐모론에 반대하다가 영의정 이원익 등과 함께 귀양갔다가 인조반정 후 풀려났다. 1630년(인조

  • 이원향교 / 利原鄕校 [교육]

    함경남도 이원군 이원면 교동리에 있는 향교. 438년(세종 20)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향선동에서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599년(선조 32)에 유생 김사영(金士詠)·강탁(姜濯)·강윤조(姜胤祖) 등이 동재

  • 이원호 / 李元鎬 [종교·철학/유학]

    1897년(광무 1)∼1930년 7월 21일.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단천군수와 면담하면서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였으나 일본 경찰에 의해 쫓겨나고 말았다. 이 일로 김계환·김득수·김을룡·김응철·김창언·심정붕·안경룡·안길현·안병환·유경을·이선식·장종형·최두필·최종협·

  • 이원회 / 李元會 [종교·철학/유학]

    1827년(순조 27)∼미상. 조선 말기의 무관. 이기석의 아들이다. 무과출신으로 1864년(고종 1)부터 1868년까지 선전관·금위영천총, 승정원의 동부승지·좌부승지, 좌·우승지, 그리고 태안부사를 역임하였다. 1881년초 군계선함사차정참획관, 같은해 11월 군무사

  • 이원휘 / 李源彙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이승간의 후손이다. 품행이 단정하고 효우가 돈독했다고 전한다. 학문에 뜻을 두고 성담 송환기의 문하에 나아가 배웠다. 학행이 뛰어났다. 스승 송환기가 죽자 그의 행장을 썼다.

  • 이원희 / 李元熙 [종교·철학/유학]

    미상∼1888년(고종 25). 조선 말기의 무신. 이익권 아들이다. 여러 무관직을 두루 역임한 뒤 1858년(철종 9) 경상좌도병마절도사, 이듬해 우포도대장 재직중 돈의문에서 발생한 괘서사건의 범인을 체포하지 못한 책임으로 파직당하였다. 1869년 형조판서, 어영대장·

  • 이위종 / 李瑋鍾 [정치·법제/정치]

    조선 후기의 외교관·독립운동가(1887∼?). 1907년 고종의 밀사로 이준·이상설과 함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려다 좌절, 만국기자협회에서 일본의 침략만행을 여론에 호소했다. 후에 러시아에서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수여되었다.

  • 이유 / 李濡 [종교·철학/유학]

    1645(인조 23)∼1721(경종1). 조선 후기의 문신. 여 후손, 후재 증손, 할아버지는 형, 아버지는 중휘, 어머니는 김광찬의 딸이다. 1668년(현종 9)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경상도관찰사, 대사헌, 병조판서, 영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송시열의 문인으로

  • 이유 / 李瑜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91∼1736). 1719년(숙종 45) 증광시문과 병과급제 후 장연부사·강화유수·부제학·이조판서·형조판서·병조판서 등을 지냈다. 1725년《선조실록》 편찬과 각사 서리 폐단을 건의, 시정토록 하였다. 1736년 원접사로 발탁되었다.

  • 이유민 / 李裕民 [종교·철학/유학]

    1658(효종 9)∼1729(영조 5). 조선 후기의 문신. 지란의 후손, 명로의 증손, 할아버지는 문주, 아버지는 핵, 어머니는 이승효의 딸이다. 1696년(숙종 2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등용, 병조좌랑·부안현감, 홍주목사, 형조참판, 공조판사, 지

  • 이유상 / 李有相 [종교·철학/유학]

    1623(인조 1)∼1673(현종 14). 조선 후기의 문신. 계 증손, 할아버지는 정구, 아버지는 소한, 어머니는 이상의의 딸이다. 1642년(인조 20) 사마시를 거쳐, 1660년(현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지평, 부교리·헌납, 이조좌랑, 이조정랑·응

  • 이유승 / 李裕承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35∼?). 이항복 9대손, 아버지는 이계선이다. 대한민국 초대부통령인 이시영의 아버지이다. 1864년(고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좌승지·한성부판윤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중국의 사신을 호송하는 반송사를 맡았고 일본과의 을사늑약을 반

  • 이유신 / 李裕身 [종교·철학/유학]

    1698(숙종 24)∼? 조선 후기의 문신. 초기 증손, 할아버지는 지성, 아버지는 준상, 어머니는 김이오의 딸이다. 1725년(영조 1) 통덕랑으로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대사간, 여주목사, 강원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 이유원 / 李裕元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14∼1888). 이계조의 아들이다. 1865년 《대전회통》 편찬 총재관을 지내고, 흥선대원군이 실각하자 영의정에 올랐다. 1882년 전권대신으로서 일본변리공사 하나부사(花房義質)와 제물포조약에 조인하였다. 저서로 《임하필기》·《가오고략》 등이

  • 이유일 / 李惟一 [종교·철학/유학]

    1577년(선조 10)∼미상. 증조부는 이징, 조부는 이척, 부친은 이구익이다. 1601년(선조 34) 신축 생원시에 급제, 1615년(광해군 7) 을묘 알성시 병과 1위로 문과에 급제했다. 인조반정 후에 전랑, 교리가 되었다. 수북 김광현, 창주 윤지경 등과 교우하였

  • 이유장 / 李惟樟 [종교·철학/유학]

    1625년(인조 3)∼1701년(숙종 27). 조선 중기의 문신. 조부는 이진, 부친은 이정발이다. 1657년(효종 8) 이휘일이 내방하여「심경」,「근사록」등을 강론하였다. 문집으로『고산집』이 있는데, 이유장의 증손 이홍진이 간행하였고, 원집 8권, 부록 2권으로 모두

  • 이유태 / 李惟泰 [종교·철학/유학]

    1607(선조 40)∼1684(숙종 10).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아버지는 서이다. 희릉참봉, 대군사부, 지평, 집의, 공조참의, 이조참의, 우부승지,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초려집≫ 26권이 전한다.

  • 이육사 / 李陸史 [문학]

    항일기의 시인·독립운동가(1904∼1944). 형무소수감번호 ‘이육사’에서 취음한 것이다. 1925년 대구에서 의열단에 가입했고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었다. 이후 17차에 걸쳐서 옥고를 치렀다. 1930년 1월 3일자 《조선일보》에 시

  • 이윤구전 / 李尹求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책. 국문필사본. 국립중앙도서관에 58장본이 있고, 사재동(史在東)이 110장본을 소장하고 있다.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주인공이 고난을 극복하고 행복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배경설정을 국내로 한 점, 여러 구전설화를 포함

  • 이윤례 / 李潤禮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제 제12호「진주검무」 전승자로 지정된 기예능보유자.무용가. 1903∼1995.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기예능 보유자. 경상남도 진주 출신. 진주검무 장단과 무용을 특기로 하였다. 1912년 제일 보통학교를 졸업하였고 13세에 진주에서

  • 이윤망 / 李贇望 [종교·철학/유학]

    1694년(숙종 20)∼1773년(영조 49). 조선 후기 유학자. 아버지는 이경배, 어머니는 정영주의 딸이다. 처부는 이의연이다. 재종숙 이명배에게서 수학하였는데, 모계는《소학》이 학문하는 근본임을 그에게 가르쳤다. 이후 밀암 이재를 찾아가 뵈었다. 슬하에 아들 이

  • 이윤보 / 李允甫 [문학/한문학]

    고려후기 사관, 사륜 등을 역임한 관리.문신. 단편적으로 전하는 자료를 통해 진화(陳澕)·손득지(孫得之)·이백순(李百順)·이규보(李奎報)·이인로(李仁老)·최자(崔滋) 등과 거의 비슷한 시대에 활동했음을 알 수 있다. 『보한집』에 “이윤보가 처음 과거에 합격하였을 때(李

  • 이윤성 / 李潤成 [종교·철학/유학]

    1719년(숙종 45)∼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이방협의 아들이다. 1736년(영조 12) 병조판서 박문수의 천거로 남행선전관에 제수되었다. 1758년에 제주목사로 나아가 수입된 호마의 방목에 힘썼다. 1769년에 양주목사가 되었다. 사후 형조판서에 추증되었다.

  • 이윤영 / 李胤永 [종교·철학/유학]

    1714년(숙종 40)∼1759년(영조 35).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 이색의 14대손, 이기중의 아들, 이태중의 조카이다. 노론의 문사들인 송문흠·김종수·김무택·신소·황경원 등과 교유하며 지은 많은 시문이《단릉유고》·《단릉산인유집》에 실려 있다. 글씨는 예서와 전서

  • 이윤재 / 李允宰 [교육/교육]

    항일기의 독립투사·국어학자·사학가(1888∼1943). 한글맞춤법 제정에 참여하였으며, 조선어사전 편찬 등 한글 보급을 통한 민족운동을 하였다. 조선어학회 《우리말 사전》 편찬위원을 맡았고, 진단학회로 국사 연구에 참여하였다.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옥사하였다. 저서로는

  • 이윤중 / 李允中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선비(?∼?). 이서 후손으로 일찍이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고향인 강화 송해에서 여생을 보냈다. 시문에 뛰어났으며, 저서에는《포상만록》이 있다.

  • 이율곡설화 / 李栗谷說話 [문학/구비문학]

    조선 선조 때의 명신 이이(李珥)에 관한 설화. 율곡의 탄생담, 임진왜란을 예언한 방화정이야기, 퇴계와 대좌한 이야기 등이 전한다. 퇴계와 대좌한 이야기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율곡이 퇴계와 대좌한 일이 있는데, 퇴계는 나이의 고하를 불문하고 제자들에게 절을 하도록

  • 이은 / 李溵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22∼1781). 1740년 진사, 남평현감을 역임했다. 1759년 정시문과 급제 후에 교리가 되었다. 수찬·승지·이조참의·대사헌·이조참판·대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1776년 정조가 즉위한 후 찬집청도제조를 거쳐 진하 겸 사은정사로 청에 다녀왔다

  • 이은 / 李垠 [역사/근대사]

    1897년∼1970년. 조선 말기의 왕족.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고종의 일곱째아들, 1900년 8월 영왕, 1907년에 황태자에 책봉되었으나 그해 12월 이토(伊藤博文)통감에 의하여 일본에 인질로 잡혀갔다. 1920년 4월 일본왕족 나시모토 맏딸인 마사코(방자)

  • 이을규 / 李乙奎 [종교·철학/유학]

    1508∼1545. 조선 중기의 문신. 수 증손, 할아버지는 구산, 아버지는 한주, 어머니는 조계량의 딸이다. 1531년(중종 26)에 진사가 되고, 1535년에 문과별시에 장원급제하여 벼슬이 형조좌랑을 거쳐 승문원교리에 이르렀다. 1537년(중종 30)에 사은사 겸

  • 이음전 / 李音全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의 검무, 장구 전승자로 지정된 기예능보유자. 1930년 진주권번에 입적하여 1937년최완자(崔完子)로부터 진주검무를 전수받았으며, 배울 당시 김자진(金子眞), 이윤례(李潤禮), 최예분(崔禮分) 등과 같이 전수받았다.진주검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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