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총 22,1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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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상정소 / 儀禮詳定所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 초기 국가 전례, 사서의 예제·정치·사회 제도 등을 연구, 제정하고 기타 중요 국가정책을 심의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특별관서. 1401년(태종 1) 의례상정사라는 이름으로 예조 산하에서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그 뒤 직무와 권한이 확대되어 최고급 특별 기구의 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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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적 구투 / 義理的 仇鬪 [예술·체육/영화]
한국 영화사의 기점을 이루는 최초의 작품. 1919년 10월 27일 개봉되었는데, 오늘날 이 날을 기념하여 '영화의 날'을 제정하였다. 이 영화는 연쇄활동사진극으로서 연극을 하다가 연극으로 나타내기 어려운 부분을 활동사진으로 연쇄적으로 상영하였다. 따라서 완전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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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림유증집요 / 醫林類證集要 [언론·출판/출판]
자부(子部) - 의가류(醫家類) 편자미상, 금속활자본(갑진자), 1책(영본), 전10권 7책. 표제와 판심제는 의림집요(醫林集要)이다. 일본 외, 우리나라에는 국립중앙도서관에만 소장 되어 있는 희귀 의서이다. 성종 연간의 갑진자본(甲辰字本), 표지의 당초문양(唐草文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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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문 / 疑問文 [언어/언어/문자]
화자가 청자에게 질문하여 그 해답을 요구하는 문장 종결의 유형. 의문문은 의문형의 어말어미와 의문수행억양 등을 통하여 표시된다. 의문형의 어말어미로는 해라체의 ‘-(으)냐, -니, -(으)ㄹ까’ 등과 하게체의 ‘-(으)ㄴ가, -나’, 합쇼체의 ‘-ㅂ니까’ 등을 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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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 疑問死眞相糾明委員會 [사회/사회구조]
2000년 1월 15일 제정된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같은 해 10월 17일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된 기구.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날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민주화 운동과 관련하여 공권력의 위법한 행사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온 사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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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물 / 儀物 [예술·체육/무용]
정재를 상연할 때 의장으로 쓰이는 여러 가지 물건. 의식에 쓰이는 도구나 물건, 즉 의장 중에서 최근까지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지고 사용되는 당악정재(唐樂呈才)의 의물과 일부 중요의물을 『악학궤범』에 의거하여 소개하면 죽간자(竹竿子), 인인장(引人杖), 용선(龍扇),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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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 / 義兵 [정치·법제/국방]
국가가 외침을 받아 위급할 때 국민 스스로가 일어나 조직하는 자위군. 즉, 국가의 명령이나 징발을 기다리지 않고 자원 종군하는 민군(民軍)이다. 의병의 전통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비롯되었으며, 고려·조선 시대를 거쳐 조선 말기에까지 이르렀다. 특히 조선 말기의 의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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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빈 / 儀賓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부마의 관부인 의빈부의 정1품·종1품 관직. ≪경국대전≫에서는 당·송제(唐宋制)에 따라 공주에게 장가든 의빈을 위(尉)로, 옹주에게 장가든 승빈도 위로, 군주에게 장가든 부빈을 부위(副尉)로, 현주에게 장가든 첨빈을 첨위(僉尉)로 고쳤지만 의빈부의 명칭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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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빈부 / 儀賓府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공주·옹주·군주·현주 등과 혼인한 부마에 관한 일을 관장했던 관서. 조선 초기에는 부마부(駙馬府)라 했다가 세조 때 의빈부라 개칭하였다. 부마들은 국초에는 정치에 관여했으나, 태종조부터 정치에 관여하는 것이 제한되어 이들의 생활보장책으로 설치된 관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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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 醫師 [과학/의약학]
의술(醫術)로써 질병의 치료와 예방을 업으로 하는 사람. 「의료법」에 의하면 의사는 의료와 보건지도에 종사함을 임무로 하고 있다. 또, 의료인은 의사·치과의사·한의사·조산사(助産師)·간호사(看護師)로 나누고 있다. 의사가 되고자 하는 자는 의학·치과의학·한방의학을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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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 / 義湘 [종교·철학/불교]
625-702. 신라의 승려. 우리나라 화엄종의 시조이다. 20세 황복사에서 출가하였다. 26세에 원효와 함께 당나라 유학 길에 올랐으나 고구려군에 잡혀 포기하였다, 36세에 다시 원효와 함께 당나라 유학을 떠나 중국 화엄종의 2대조인 지엄에게 화엄학을 배웠다. 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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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서습독관 / 醫書習讀官 [과학기술/의약학]
조선시대 의서에 정통한 문신을 기르기 위하여 두었던 관직. 습독관은 사족자제 중 총민한 자, 유음자제, 사관참외관, 성균관·사학유생 등으로서 25세 이하된 자로 하되. 이들에게는 체아직을 주었으며, 정원은 30인으로 3번(番)으로 3일씩 근무하는데 월강성적이 좋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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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빙계리 얼음골 / 義城氷溪里─ [지리/자연지리]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의 빙혈과 풍혈이 있는 골짜기. 2011년 1월 13일에 천연기념물 제527호로 지정되었다. 빙계리 얼음골은 동굴형 풍혈에 해당한다. 삼복더위에는 차디찬 물이 솟아나고, 엄동설한에는 더운 물이 흘러나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등산로를 따라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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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가마싸움 / 義城─ [생활/민속]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에서 전승되는 민속놀이. 매년 팔월추석에 행해지는 서당 학동들의 집단 겨루기 놀이로서, 그 기원 및 발생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신식학교가 설립되고 서당이 차츰 쇠퇴하던 1906년경을 마지막으로 중단되었다가 1974년부터 재연, 전승되고 있다. 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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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법 / 擬聲法 [언어/언어/문자]
사물의 소리나 인간이 내는 소리를 그대로 묘사하여 실제와 같이 표현하는 비유법. 이는 읽는 이나 듣는 이의 실감을 돋우어 주어 강한 인상을 남게 한다. 특히, 국어는 다른 언어에 비하여 의성어가 매우 풍부하게 발달되어 있어 동화·동요·시가·소설 등에서뿐만 아니라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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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어 / 擬聲語 [언어/언어/문자]
사물의 소리나 인간이 내는 소리를 흉내낸 낱말. ‘멍멍, 꼬꼬댁꼬꼬, 꾀꼴꾀꼴, 덜커덩덜커덩, 아삭아삭, 졸졸, 쿨쿨, 둥둥’ 등이 그 예이다. 의성어는 소리를 직접 모방한 것이기는 하지만,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각 언어 나름대로의 기호화 절차를 거침으로써 이루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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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승기 / 義勝記 [문학/한문학]
1664년(현종 5) 임영(林泳)이 지은 한문소설. 심통성정(心統性情)을 의인화(擬人化)한 의인소설(擬人小說)로 천군소설(天君小說)의 일종이다. 작자의 문집인 『창계집 滄溪集』 권16에 실려 있다. 「의승기」는 임영이 이단상(李端相)의 문하에서 본격적으로 성리학을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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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요 / 儀式謠 [문학/구비문학]
의식(儀式)의 일부로 주술적 목적이나 기타 의식 진행상의 목적실현을 위하여 불리는 민요. 의식요는 노동요나 유희요에 비하여 빈약하다. 그러나 무가(巫歌)·불가(佛歌) 등도 넓은 의미에서는 의식요라고 할 수 있다. 민요에서의 의식요는 세시의식요(歲時儀式謠)와 장례의식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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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안 / 義安 [지리/인문지리]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옛 지명. 신라시대에 굴자군(屈自郡)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의안군(義安郡)으 로 고쳐 합포(合浦)ㆍ웅신(熊神)ㆍ칠제(漆隄)를 영현(領縣)으로 하였으며 양주(良州)에 예속시켰다. 1018년(현종 9) 금주(金州)에 속하였다가 뒤에 감무(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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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암댐 / 衣巖─ [경제·산업/산업]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의암리에 있는 북한강의 댐. 높이 23m, 제방길이 273m, 총저수용량 8000만t, 시설발전용량 4만5000㎾, 유역면적 7,709㎢이다. 호수면은 너비 5㎞, 길이 8㎞의 타원형으로 호수면의 수위는 해발 72m로 만수위 때의 수면면적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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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암별제가무 / 義巖別祭歌舞 [예술·체육/무용]
1868년(고종5) 진주성 촉석루에서 연행되기 시작한 논개 제사용 노래와 춤. 정현석이 1867년(고종4) 진주목사로 부임하여 이듬해 의기사(義妓祠)를 중건하고, 그해 6월의 좋은 날을 택해서 ‘의암별제’를 유교식으로 거행했다. 제사에는 3인의 제관(祭官) 이하 필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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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암서원 / 義巖書院 [교육/교육]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 향교리에 있었던 서원. 1607년(선조 40)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유희춘(柳希春)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69년(현종 10)에 ‘의암(義巖)’이라고 사액되어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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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암수력발전소 / 衣巖水力發電所 [지리/인문지리]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의암리에 있는 발전소. 북한강 본류와 소양강의 합류점에서 약 10㎞ 하류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 발전소는 제1차전원개발5개년계획에 따라 당초 화일전력주식회사에 의하여 1962년 3월 착공, 1966년말 준공될 예정이었으나, 여건 변화와 개발규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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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암유고 / 宜庵遺稿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문인 서경조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65년에 간행한 시문집. 6권 2책. 목활자본. 1865년(고종 2) 5대손 영지(榮智)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그 뒤 1928년이왕직(李王職)의 소장본을 등사한 필사본도 남아 있다. 권두에는 1863년(철종 14) 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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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암호 / 衣巖湖 [지리/자연지리]
강원도 춘천시에 둘러 싸여 있는 호수. 의암호는 북한강 중류 수계에 있는 인공호이다. 호수면은 너비 5㎞, 길이 8㎞의 타원형으로 수면 면적은 만수위대 15㎢이고 호수면의 수위는 해발 72m이고, 유역 면적은 7,709㎢, 총 저수용량 8,000만t이다. 1967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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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동참 / 議藥同參 [과학기술/의약학]
조선시대 내의원 소속의 의관. 약을 진공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1673년(현종 14)에 설치되었다. 정원은 12명으로, 당상관·당하관을 막론하고 어의라 칭했다. 의술에 정통할 경우 양반들이 맡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내의원은 어약(御藥) 조제를 맡았기 때문에,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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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분업사태 / 醫藥分業事態 [사회/사회구조]
1999년 말부터 2000년 말까지 1년 여 동안 의약분업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과정. 의약분업은 의사와 약사의 전문성에 따라 진단과 처방은 의사에게 맡기고, 처방된 의약품을 조제하는 것은 약사가 담당하는 제도이다. 구체적으로 환자에 대한 진찰과 처방, 조제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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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청 / 議藥廳 [과학기술/의약학]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의약을 관장하였던 임시관서. 평상시에는 내의원과 전의감이 있었으나, 왕과 왕비의 병환이 위독할 때에는 특별히 시약청(侍藥廳)과 의약청을 설치하여 담당자를 궁중에 상주하게 하여 투약에 신중을 기하였다. 그러므로 의약청은 필요에 의하여 그때그때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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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양서원 / 宜陽書院 [교육/교육]
경상남도 의령군 유곡면 칠곡리에 있었던 서원. 1861년(철종 12)에 문청공(文淸公) 남효온(南孝溫, 1454∼1492)·남진(南振)·남용익(南龍翼, 1628∼1692) 등을 제향하기 위해 의령남씨(宜寧南氏) 후손들이 세운 서원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은 1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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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단 / 義烈團 [역사/근대사]
1919년 11월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당시 만주와 중국 본토지역에 조직된 많은 독립운동단체가 미온적이고 온건한 독립운동을 전개한다고 판단, 이에 대한 반성으로서 과격하고 급진적인 폭력투쟁을 목적으로 하였다. 의열단은 의거 외에도 제3차 폭탄계획·대구부호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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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묘도 / 義烈墓圖 [예술·체육/회화]
의열묘역을 중심으로 외반식의 경물 구성에 산세의 보양을 방향별로 실경산수화풍에 가깝게 그린 그림. 18세기 유행한 진경산수화의 미점법을 활용하여 묘사, 정선의 소나무 묘법이 나타난 것이 특징이다. 묘역 왼편으로는 전답, 가장자리 쪽에는 가옥 몇 채에 가을 분위기를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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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묘산도 / 義烈墓山圖 [예술·체육/회화]
의열묘의 풍수적 지세를 그린 산도의 형식의 그림. 산도는 채색 없이 수묵으로 그리는 것이 관행이었다. 안현(鞍峴)은 태조산으로 하여 아래로 간룡과 감룡의 지세가 굴곡을 이루며, 그 끝 자락에 혈이 위치하는 형세이다. 좌우로는 청룡과 백호가 감싸는데 우측 백호 쪽은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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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비충효록 / 義烈妃忠孝錄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책. 국문필사본. 이 작품에서 저자는 비의 효행과 설승상의 충(忠)을 강조하여 두 주제를 하나의 구조 안에 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설중의 충심은 효과적으로 형상화되었다고 볼 수 없다. 간신인 적대자 최훈이 설정되어 이야기가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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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소유영빈이씨치제문 / 義烈昭裕暎嬪李氏致祭文 [역사/조선시대사]
1950년 9월 23일에 영친왕 이은(李垠)이 영빈이씨를 위해 치제를 올리려 했을 때 지어진 제문. 제문은 지어진 시점이 한국전쟁 중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당시 한·미 연합군은 9월 15일에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하고, 동월 24일에 서울 서쪽 안산(鞍山)을 점령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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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영빈이씨기제사축식 / 義烈暎嬪李氏忌祭祀祝式 [역사/조선시대사]
영빈이씨(暎嬪李氏)의 기일(忌日)에 제사를 올릴 때 사용하였던 축문(祝文)의 형식을 규정한 글. 글씨가 해정하지 않은 편이고 글을 고치거나 덧붙인 부분이 있으며, 마지막에 "己酉二月二十二日因傳敎改修"라고 부기되어 있고 연호가 "건륭(乾隆)"으로 되어 있어 17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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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영빈이씨축식 / 義烈暎嬪李氏祝式 [역사/조선시대사]
영빈이씨(暎嬪李氏)의 영전에 중삭제(仲朔祭)를 지낼 때 쓰이는 축문(祝文)의 형식을 규정한 글. 내용은 여느 축식과 마찬가지로 제사하는 날을 맞이하여 술과 제수를 올리니 흠향하시라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축문은 1754년(영조 30)에 쓰여진 <선자친화경숙빈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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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열영빈이씨치제문 / 義烈暎嬪李氏致祭文 [역사/조선시대사]
1766년(영조 42) 9월 10일에 광은부위(光恩副尉) 김두성(金斗性)을 보내어 영빈이씨에게 치제할 때 썼던 제문. 영조는 영빈의 삼년상이 끝나고 상복을 벗는 담제(禫祭)를 앞두고 있었기에, 이를 서글퍼하는 마음을 먼저 표현하였다. 그리고 전월에 의례를 치른 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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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염창 / 義鹽倉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소금의 저장 및 배급을 맡아보던 관서. 고려는 초기부터 전매물로 정하여 도염원(都鹽院)을 설치하고 이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게 하였다. 국가에서는 공로가 특별히 큰 사람에게 염분을 하사하였다. 고려 중기 이후에는 왕실과 귀족이 사리사욕으로 염분을 점탈하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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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영고 / 義盈庫 [생활/식생활]
고려·조선시대 궁중에서 쓰이는 기름·꿀·과일 등의 물품을 관리하던 관서. 1308년(충렬왕 34) 충선왕이 즉위하여 관제개혁을 단행하면서 설치하였다. 관원으로는 종5품의 사 1인, 종6품의 부사 1인, 종7품의 직장 1인을 두었는데, 공민왕 때 종8품의 주부1인을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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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 醫員 [과학기술/의약학]
의료에 종사하던 기술관. 의원은 잡과인 의과에 합격하거나, 취재에 입격한 자로서, 의업을 배우는 존재인 의생과는 엄연히 구별된다. 조선시대의 의원 대다수는 내의원·전의감 및 활인서에 소속되어 근무하면서 동반체아직을 받았지만, 의정부·육조·충훈부·종친부 및 도총부에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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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 醫院 [과학기술/의약학]
진료 장비를 갖추고 의원(醫員)이나 의료 종사자가 의료 행위를 하는 시설. 대체로 병원보다 크기가 작고 시설이 열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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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유당 / 意幽堂 [문학/고전시가]
조선후기 『의유당관북유람일기』,『의유당유고』 등을 저술한 문인. 남편 신대손의 누이가 혜경궁(惠慶宮) 홍씨(洪氏)의 친정숙부인홍인한(洪麟漢)에게 출가했으므로 혜경궁홍씨의 숙모에게는 친정올케가 되며, 형부인 김시묵(金時默)이 정조(正祖)의 비인 효의왕후(孝懿王后)의 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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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유당관북유람일기 / 意幽堂關北遊覽日記 [문학/고전산문]
조선 후기에 지어진 수필집. 단권. 필사본. 이 작품은 조선조 여인의 글로는 매우 개성적이고도 우수한 작품이다. 소재가 특이할 뿐 아니라, 사물을 관찰하는 격조 높은 안목과 탁월한 표현력은 지은이의 문학적 역량이 어떠한가를 보여준다. 이병기는 「동명일기」를, “그 신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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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 / 宜人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외명부인 문무관처에게 내린 정·종6품 작호. 문무관 정6품의 승의랑·승훈랑·돈용교위·진용교위의 적처와 종6품의 선교랑·선무랑·여절교위·병절교위의 적처에게 내린 작호이다. 의인은 조선 초기 태조 때에는 문무관 5품의 적처에게 봉하여졌는데 세종 때에는 정5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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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 / 宜仁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안동 지역의 옛 지명. 본래 안덕현(安德縣)의 지도보부곡(知道保部曲)이었는데, 1369년(공민왕 18) 의인현(宜仁縣)으로 승격시켜 안동부의 속현으로 하였다가, 1390년(공양왕 2) 예안군(禮安郡)에 이속시켰다. 그 뒤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예안군이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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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법 / 擬人法 [언어/언어/문자]
무생물이나 동식물, 그리고 추상적 개념과 같은 인격이 없는 대상에다가 인격을 부여하여 표현하는 방법. 의인법은 한 문장 속에서 인격이 없는 대상에다가 인격을 부여하여 표현하는 경우 이외에 「토끼전」·「장끼전」·「이솝우화」 등에서처럼 한 작품 전체가 의인화된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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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소설 / 擬人小說 [문학/고전산문]
무생물이나 동식물, 추상적 개념과 같은 대상을 의인한 소설. 의인이란 비인격적인 사상(事象)이나 동식물 등에 형태적 또는 심리적으로 인격을 부여하는 수법을 말한다. 이러한 의인 수법이 소설구조를 관통하면서 나타날 경우 이를 의인소설이라 한다. 한국 의인소설의 역사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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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장고 / 儀仗庫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각 전의 의장을 담당하던 병조 승여사 소속의 관서. 의장은 크게 길의장과 흉의장으로 나누어진다. 길의장은 궁궐의 길례·가례에 사용되는 것으로 왕·왕비·왕세자가 갖추는 양산·개·선·금고·기·당·등·과·부 등이 있었다. 흉의장에는 만장·방상식·삽·우보 등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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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장기 / 儀仗旗 [사회/사회구조]
각종 의전행사에서 위의(威儀)를 갖추기 위하여 사용하는 기. 기에는 국가나 단체 기타의 상징을 위하여 사용하는 상징기, 위험을 경고하거나 신호를 전달하기 위한 신호기, 단순히 장식을 위하여 사용하는 장식기, 기타 축의기·의장기 등이 있다. 의장기는 신분이나 지위가 높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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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전기술 / 宜田記述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문인 육용정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12년에 간행한 시문집. 7권 7책. 신활자본. 『의전기술』은 1912년 아들 종윤(鍾允)과 손자 정수(定洙)가 간행하였다. 『의전기술』 3책, 『의전문고』 2책, 『의전시고』 1책, 『의전속고』 1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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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 / 醫正 [과학기술/의약학]
고려시대 태의감의 종9품 관직. 정원은 2인. 목종 때 이미 설치되어 있었으며, 문종 때 품계와 정원이 정하여졌다. 이후 1308년(충렬왕 34)에 태의감이 사의서(司醫署)로 개칭되고 직제가 개정될 때 폐지되었으며, 그 뒤로는 설치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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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관 / 議政官 [역사/근대사]
구한말 일제의 침략과정에서 임시로 설치된 관직. 일제는 군제이정소, 관제이정소, 제실제도정리국 등에 의정관을 두어 각각의 제도를 식민지 형태로 개정하였다. 군사제도와 중앙관제의 무력화, 왕실 재산의 탈취 등 군사제도와 재정, 외교분야에서 침략이 노골화되었다. 의정관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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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대신 / 議政大臣 [역사/근대사]
구한말 설치되었던 의정부의 수석대신. 현재의 국무총리격으로, 1896년 9월부터 1905년 2월에는 명칭이 의정이었다가 그뒤 의정대신으로 바뀌었고, 1907년 6월에 다시 총리대신으로 바뀌었다. 의정대신은 칙임관 정1품으로 각부 대신을 통솔하여 정부 각 부서의 행정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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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 議政府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백관의 통솔과 서정을 총괄하던 최고의 행정기관. ≪경국대전≫이 반포된 이후 의정부의 실제 기능은 왕권의 강약과 왕의 자질 여부, 의정부대신의 자질, 의정부와 육조·삼사(사헌부·사간원·홍문관)의 상호관계, 원상제(院相制), 비변사의 대두, 당쟁, 세도정치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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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제고 / 義濟庫 [사회/사회구조]
고려시대 빈민구호를 위하여 설치한 관서. 1361년(공민왕 10)에 설치되었는데, 이듬해 이와 유사한 기관으로 혜제고(惠濟庫)가 설치되어 서로 그 업무가 중복됨으로써 1391년(공양왕 3) 혜제고에 병합되었다. 관원으로는 영(종7품) 1인, 승(종8품) 1인, 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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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조 / 儀曹 [종교·철학/유학]
고려 후기 예의·제향·조회·교빙·학교·과거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중앙관청. 1275년(충렬왕 1)에 원나라의 간섭으로 상서육부의 상서예부와 상서이부를 병합하여 전리사를 설치, 1298년에 이를 의조로 고치고 이부를 따로 분리하여 전조(銓曹)를 설치하였다. 의조의 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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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존명사 / 依存名詞 [언어/언어/문자]
문장 안에서 홀로 쓰이지 못하는 비자립적 명사. 불완전명사(不完全名詞) 또는 형식명사(形式名詞)라 한다. 의존명사는 문장 안에서 단독으로 쓰일 수 없고, 반드시 관형사나 그 밖의 수식어가 선행되어야만 쓰일 수 있다. 이를테면, ㉠ “그분은 언제나 물건은 새것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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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주 / 義州 [지리/자연지리]
지명. 고려 예종(睿宗) 때에 내원성과 포주를 귀속시켜 포주를 의주(義州)로 개칭. 공민왕(恭愍王) 15년(1366)에 의주목(義州牧)으로 삼고, 공민왕(恭愍王) 18년에는 여기에 만호부를 두었던 것이 조선왕조에 이어졌다. 의주(義州)는 ‘일국의 서문’으로 명사(明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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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주 / 宜州 [지리/인문지리]
함경남도 문천 지역의 옛 지명. 원래 고구려의 천정군(泉井郡, 또는 於乙買)이었는데, 문무왕 때 신라에 예속되었다. 757년(경덕왕 16) 정천군(井泉郡)으로 바꾸어 삭주(朔州)에 예속시켰고 송산(松山)ㆍ산산(蒜山)ㆍ유거(幽居)의 3개 현을 영현(領縣)으로 하였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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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주군 / 義州郡 [지리/인문지리]
평안북도 북서단에 위치한 군. 동쪽으로는 삭주군·구성군, 남쪽으로는 용천군·철산군·선천군, 북서쪽으로는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만주지방)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동경 124°20′∼ 125°02′, 북위 39°55′∼ 40°28′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 1,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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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주로 / 義州路 [지리/인문지리]
한성(漢城)에서 의주를 연결하는 조선 시대의 간선로. 조선 시대 9대 간선로 중 가장 중요한 도로의 하나로 총 연장 약 1,080리의 교통 통신로였다. 이는 역원제(驛院制)가 국지적으로 실시되던 고구려 시대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하여 전국적으로 실시된 고려 시대에 그 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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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주원앙새살이터 / 의주원앙새살이터 [지리/인문지리]
평안북도 의주군 대화리에 있는 원앙새서식지. 북한 천연기념물 제406호. 대화리에서 압록강 기슭을 따라 올라가면 가마리비탈의 경사면 앞 강에서 원앙의 무리가 서식한다. 가마리비탈 앞에는 압록강 줄기가 갈라져 내려오면서 수구도라는 섬이 있는데, 이 섬에도 많은 원앙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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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주재비둘기서식지 / 의주재비둘기서식지 [지리/인문지리]
평안북도 의주군 의주읍에 있는 비둘기서식지. 북한 천연기념물 제95호. 의주읍에서 덕현 방향으로 약 2㎞되는 곳에 용운산이 있는데, 산의 북쪽 기슭에 비둘기번식지인 바위절벽이 있다. 비둘기가 번식하는 용운산은 높이가 80m이고 산 정상에는 관서팔경의 하나인 통군정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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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주향교 / 義州鄕校 [교육/교육]
평안북도 의주군 의주읍 향교동에 있는 향교. 조선 전기에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당시의 경내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재(東齋)·서재(西齋) 등이 있었으며,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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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창 / 義倉 [경제·산업/경제]
평시에 곡식을 저장해 두었다가 흉년이 들었을 때 기민을 구호하거나 궁민에게 대여해 생업에 종사하게 하던 구호 기관. 고려 태조가 흑창을 설치해 궁민에게 진대하는 법을 마련, 986년(성종 5)에 이름을 의창으로 바꾸고 지방에까지 확대하였다. 993년에는 양경 및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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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천 / 義天 [종교·철학/불교]
1055-1101. 고려의 승려. 성은 왕씨, 이름은 후이다. 고려 문종의 아들이다. 11세 축가하여 영통사에 있었다. 15세에 우세라는 호를 얻고 승통이 되었다. 31세 송나라로 유학을 떠나 화엄사상과 천태사상을 공부하였다. 32세에 귀국하였다. 이때 3천여 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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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태법 / 擬態法 [언어/언어/문자]
사물이나 인간의 모양이나 태도·행동 등의 양태를 묘사하여 표현하는 비유법의 하나. 의태법은 사물이나 인간의 양태에 대한 묘사력이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현실감을 자아낸다. 특히, 문학작품에서는 지은이의 정밀한 묘사력과 주의깊은 관찰력에 따른 훌륭한 의태법의 구사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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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태어 / 擬態語 [언어/언어/문자]
사물이나 인간의 모양이나 태도·행동 등의 양태를 묘사한 낱말. ‘덥석, 끄떡, 갸우뚱, 후닥닥, 촐랑촐랑, 기웃기웃, 방긋방긋, 울긋불긋, 들썩들썩, 반짝반짝, 사부랑삽작, 엎치락뒤치락, 붉으락푸르락, 헐레벌떡헐레벌떡’ 등이 그 예이다. 사물에서 나는 소리나 인간이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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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 醫學 [과학/의약학]
인체의 구조와 기능을 조사하여 인체의 보건, 질병이나 상해의 치료·예방 등에 관한 방법과 기술을 연구하는 학문. 조선 의학은 초기에는 고려 의학의 전통을 주로 이었으나, 새 나라의 행정이 차차로 정돈되어 감에 따라 의료제도들의 개혁, 의육 및 의과취재(醫科取才)의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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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항운하 / 蟻項運河 [지리/인문지리]
충청남도 태안군 남면 신온리와 안면읍 창기리에 있는 운하. 고려 인종 때에 태안반도에 굴포를 개착할 계획을 세우고 착공하였으나 총 17리 거리에 10리를 완성, 불과 7리를 남겨두고 중지하였다. 그 뒤 조선 세조 때에도 삼남지방의 세미(稅米) 수송을 위하여 운하를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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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화군(의친왕)정자단자 / 義和君(義親王)定字單子 [정치·법제]
고종과 귀인장씨 사이에 태어난 고종의 제5왕자 의화군의 자를 의정하고 작성한 왕자정자 단자. 《고종실록》등에 의하면 의화군이 1892년(고종 29) 7월 20일에 관례를 행했으므로 이 단자도 이 무렵에 작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단자의 작성 주체는 빈청 또는 승정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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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화군길례시명례궁거행물목 / 義和君吉禮時明禮宮擧行物目 [정치·법제]
1893년 10월 명례궁에서 의화군 이강(李堈)의 길례를 거행할 때 소요되는 음식 등의 물품을 기록한 문서. 《고종실록》을 살펴보면 1893년 10월 29일에 이강의 가례가 거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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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화단사건 / 義和團事件 [정치·법제/외교]
19세기 말 중국 화북지역 민중이 일으킨 반제국주의운동. 의화단 사건은 협의의 의미로는 의화단운동만을 가리키나 주로 광의의 의미로 사용되어 의화단운동 및 이를 진압하기 위해 발발한 의화단운동진압전쟁을 모두 포함한 국제적인 대사건을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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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설립운동 / 議會設立運動 [역사/근대사]
1898년 독립협회가 민중과 제휴하여 추진한 의회설립을 위한 일련의 운동. 1898년 3월 서재필, 윤치호 등 독립협회 지도자들간에 의회설립문제가 논의되고, 4월 3일 독립협회토론회에서 ‘의회원을 설립하는 것이 정치상에 제일 긴요함’이라는 주제로 의회의 필요성을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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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효전재기제향수납입문 / 懿孝殿再朞祭享需納入文 [정치·법제]
1906년 10월 30일 명주, 무명, 삼베 등을 내장사로 하여금 납입하도록 한 문서. 문서의 끝에 작은 글씨로 순명황후의 혼전인 의효전(懿孝殿)에 대한 제사를 지낼 때 공이 있는 사람에게 상을 주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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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흥 / 義興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군위 지역의 옛 지명. 의흥(義興)은 신라 때 구산현(龜山縣) 지역이었고, 고려 때 구산현과 부계현(缶溪縣)을 병합해 의흥군이 되었다. 이후 조선 1413년(태종 13)에 의흥현(義興縣)이 되었고 1895년(고종 32)에 대구부 소속 의흥군(義興郡)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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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흥삼군부 / 義興三軍府 [정치·법제/국방]
조선 초기 군령과 군정을 총괄하던 관서. 고려 말기인 1391년(공양왕 3) 종래의 오군체제를 삼군체제로 바꾸어 삼군도총제부를 두었는데, 이를 조선 초기인 1393년(태조 2) 9월에 개칭한 것이다. 이 관서가 설치되면서 태조의 친위 부대인 의흥친군위(義興親軍衛)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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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흥위 / 義興衛 [정치·법제/국방]
조선시대 초·중기에 군사조직의 근간을 이루었던 오위의 하나. 중위이다. 조선 건국 초부터 중앙군사조직은 여러 차례의 변화를 거쳐 1451년(문종 1)에 오사로 되는 가운데 하나가 의흥사였고, 이것이 1457년(세조 3)에 의흥위로 개편되었다. 병종별로는 처음에 갑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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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흥향교 / 義興鄕校 [교육/교육]
경상북도 군위군 의흥면 읍내리에 있는 향교. 조선 인종 때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때 건물은 모두 소실되었으나 이곳 유림 손돈암(孫遯巖)이 위패를 선암산(船巖山)으로 피난시켜 병화를 면하였으며, 이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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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순 / 李家淳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1768∼1844). 참봉으로서 1813년 증광시에 급제하여, 후에 사간원정언·사헌부장령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하계문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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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우 / 李嘉愚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83∼1852). 철보 증손, 할아버지는 학원, 아버지는 전수, 어머니는 서명민의 딸이다. 1816년(순조 16) 정시문과에 급제하였다. 후에 판의금부사·이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1839년에는 동지정사로 청나라를 다녀왔고, 1848년에는 함경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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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환 / 李家煥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1742∼1801). 천문학과 수학에 정통한 대학자로, 정약용등 천주교 신자와 학문적으로 교유하며 신자가 되었으나, 신해박해 때는 광주부윤으로 천주교를 탄압하여 대사성·형조판서 등을 지냈다. 주문모 신부사건에 연루되어 파직되고, 천주교를 연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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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간 / 李柬 [종교·철학/유학]
1677-1727. 조선 숙종때의 유학자. 권상하의 제자이다. 인물성동론과 미발순선설을 주장하여 동문인 한원진과 일대 논쟁을 벌였다. 이것이 유명한 호락논쟁이다. 그의 입장이 낙론이고 한원진과 그 스승인 권상하의 입장이 호론이다. 저서에 <외암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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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감 / 李敢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조선 전기 문신. 아버지는 광식, 어머니는 이세응의 딸이다. 1543년(중종 38)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그해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병조참판, 도승지, 형조참판,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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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조 / 李甲祚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제21호 「승전무」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1901∼1974.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나 태평동에서 살았다. 17세 때부터 노덕규(盧德奎)로부터 피리·대금·해금·장구를 배웠고, 1968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1호 승전무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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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 / 李堈 [역사/근대사]
1877-1955. 조선 말기의 왕족. 고종의 다섯째 아들이다. 1895년 특파대사로 영국·독일 등 유럽의 여러 나라를 차례로 방문하였다. 적십자사총재가 되었고, 1910년 이후에는 항일독립투사들과 접촉하고 1919년 상해 임시정부로의 탈출을 모의하여 실행에 옮기던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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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 / 李剛 [역사/근대사]
1878-1964. 독립운동가. 호는 오산(吾山). 평안남도 용강 출신. 1902년 미주개발회사(美洲開發會社)에서 모집한 이민에 합류, 하와이로 건너가 1년간 영어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고 1903년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갔다. 안창호(安昌浩)를 만나 그의 권고로 학업을 단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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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년 / 李康埏 [정치·법제/정치]
1858년(철종 9)∼1908년. 한말의 의병장. 1880년(고종 17) 무과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으나, 갑신정변으로 낙향하였다. 1896년 1월 11일 가산을 털어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켜 안동관찰사 김석중과 순검 이호윤·김인담을 체포하여 효수하였다. 19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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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서원 / 伊江書院 [교육/교육]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면 이천리(梨川里)에 있었던 서원. 1639년(인조 17)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서사원(徐思遠)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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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개립 / 李介立 [종교·철학/유학]
1546(명종 1)∼1625(인조 3). 조선 중기의 의병장. 욱의 증손, 할아버지는 선동, 아버지는 준, 어머니는 권공례의 딸이다. 김성일의 문인이다. 1591년 장현광과 함께 유일로 천거되어 참봉이 되었다. 1596년 산은현감에 임명되고, 이후 고향에 돌아와 후진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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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 李健 [종교·철학/개신교]
항일기의 기독교인·목사(1900-?). 1931년 경성성서학원의 교수로 일제 말 폐교되기까지 인재를 양성하였고, 광복과 함께 다시 개교한 서울신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1950년 8월 23일 납북되었다. <성서영해전집>, <성서인물강화> 등을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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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 李健 [종교·철학/유학]
1614(광해군 6)∼1662(현종 3). 조선 후기의 종실. 할아버지는 선조, 아버지는 공이다. 일찍이 인성군이 반정공신 이귀의 핍박으로 역모혐의, 1628년에 대역처분을 받으면서 형 길·억 등과 더불어 역신의 자손으로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그 뒤 1633년(인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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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기 이천도호부사 해유문서 / 李建基 利川都護府使 解由文書 [정치·법제/법제·행정]
해유문서. 1845년(헌종 11) 12월 일에 후임관이 호조에 첩정을 올렸고, 동년 12월 29일에 경기관찰사겸순찰사가 호조에 문서 이관, 1846년(헌종 12) 2월 일에 호조에서 이조로 문서 이관, 동년 2월 초10일에 이조에서 이건기에게 조흘하였다. 이건기는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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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명 / 李健命 [종교·철학/유학]
1663(현종 4)∼1722(경종 2). 조선 후기의 문신. 유록 증손, 할아버지는 경여, 아버지는 민서, 어머니는 원두표의 딸이다. 1686년 춘당대 문과에 을과로 급제, 서장관, 우승지, 이조판서, 좌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시문과 소차를 모은 ≪한포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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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승 / 李建昇 [문학/한문학]
일제강점기 『해경당수초』를 저술한 유학자.양명학자. 영재(寧齋)이건창(李建昌)의 아우이며 난곡(蘭谷)이건방(李建芳)의 재종형이다. 하곡(霞谷)정제두(鄭齊斗)에서 연원하는 강화학파(江華學派)의 학맥을 이어서 양명학(陽明學)의 사상을 지녔다. 매천(梅泉)황현(黃玹)과 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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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창 / 李建昌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대문장가(1852∼1898). 강위·김택영·황현 등과 교분이 두터웠으며 용모가 청수했다고 전한다. 갑오경장 이후로는 새로운 관제에 의한 각부의 협판·특진관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거절했다. 고향인 강화에 내려가서 서울과는 발길을 끊고 지내다가 4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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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창묘 / 李建昌墓 [문학/한문학]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건평리에 있는 이건창의 묘.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9호. 묘는 단분(單墳)이며 특별한 장식이 없다. 전주이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1995년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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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하 / 李乾夏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35∼?). 1864년(고종 1)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부교리가 되었다. 이후 형조판서·중추원부의장 등을 지냈다. 1904년 상소를 올려 일본의 황무지개척권 확보를 저지하였다. 국권강탈 후 일본정부로부터 남작의 지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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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호 / 李建鎬 [역사/근대사]
1885-195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충청남도 부여군(夫餘郡) 규암면(窥岩面)이다. 전국에서 국채보상운동이 전개되자 지방운동단체도 참여하였는데, 전라북도 지방에서는 조병관(曺秉灌)·최동주(崔東柱)를 중심으로 19명이 발기하여 1907년 3월 국채보상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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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격 / 李格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무신(1748∼1803). 아버지는 부만이다. 1769년(영조 45)에 무과에 급제하여 병마절도사·도총부총관 등을 역임했다. 홍국영과의 갈등으로 남양에 유배되었다. 아들 이현직이 어영대장에 오르자 좌참찬에 추증되었다.

종교·철학(42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