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총 22,1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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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허일 / 柳虛一 [종교·철학/원불교]
1882년(고종 19)∼1958년. 원불교의 교무. 1932년에 박중빈 제자가 되었고, 그 이듬해 출가하여 전무출신이 되었다. 원불교 중앙총부 학원교무·공익부장·교감·예감·총무부장·순교감·교정원장 등을 역임, 1935년에는 수위단원에 피선되었다. 66세 때 재단법인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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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시 / 柳顯時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1667∼1752). 45세 때 생원시에 장원하였으나 대과를 포기하고 후진교육에 힘썼는데, 66세에 안동부의 추천으로 안동부내 도훈장이 되었고, 1749년 수직으로 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 만년에 《심경》, 《근사록》을 연구하였다. 저서는《호와유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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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석 / 柳瀅錫 [역사/근대사]
1914-1973.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강계 출신. 강계공립보통학교를 중퇴하고,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만주로 건너가 1932년 안동현립소학교(安東縣立小學校) 및 봉천초등학교(奉天初等學校) 등에서 수학하였다. 그뒤 항저우(杭州)의 중국항공학교에 입학하려 하였으나 거절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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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원 / 柳馨遠 [종교·철학/유학]
1622-1673. 조선 현종 때의 실학자. 1654년 과거에 급제했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평생 야인으로 학문연구에 전념하였다. 학문적 관심은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측면에 있었다. 실사의 문제와 부편적 인도로서의 천리를 문제를 조화시키려고 하였다. 저서에 <반계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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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서원 / 柳湖書院 [교육/교육]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에 있었던 서원. 정종로(鄭宗魯, 1738∼1816)의 행장에 따르면, 유호서원(柳湖書院)은 채응린(蔡應麟, 1529∼1584)과 곽재겸(郭再謙, 1547∼1615)을 제향하기 위해 1784년(정조 8)에 지묘동에 건립한 유호리사(柳湖里祠)에서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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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인 / 兪好仁 [종교·철학/유학]
1445(세종 27)∼1494(성종 25). 조선 전기의 문신·문장가. 음의 아들, 김종직의 문인이다. 1462년(세조 8)에 생원, 1474년(성종 5)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봉상시부봉사를 거쳐, 1478년 사가독서한 뒤 1480년에 거창현감으로 부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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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기 / 劉鴻基 [정치·법제/정치]
조선 후기의 개화사상가·개화운동가(1831∼?). 개화사상가. 개화운동 지도자. 1869년 한성판윤와 더불어 개화사상의 동지가 되었다. 1870년 초부터 박규수의 사랑방에서·김윤식·김옥균·박영효·유길준 등의 양반 자제들에게 개화사상을 교육하였다. 당대의 뛰어난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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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 / 柳和 [종교·철학/유학]
1691년(숙종 17)∼1757년(영조 33). 조선 후기 문신. 증조부는 유희사, 조부는 유영회, 아버지는 유동민이다. 외조부는 소명국이다. 유화 집안은 대대로 사관 벼슬을 지냈다. 1732년(영조 8)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사헌부전적, 예조정랑, 보령현감,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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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기몽 / 柳花奇夢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국문활자본. 목판본·필사본은 발견되지 않고 1918년에 보급서관(普及書館)에서 발행한 활자본만 전한다. 영웅소설의 일종으로, 주인공의 출생과정이 특이한 10회 장회소설(章回小說)이다. 이 작품은 1회부터 5회까지는 주인공의 비정상적인 탄생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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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황 / 兪榥 [종교·철학/유학]
1599(선조 32)∼1655(효종 6). 조선 후기의 문신. 군수 영 증손, 할아버지는 대의, 아버지는 성증, 어머니는 준의 딸이다. 1633년 상운찰방으로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 병조좌랑, 지평, 예조정랑, 이조참의, 부승지, 공조참의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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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황점 / 硫黃店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 후기 각 군문이 유황을 채굴하기 위해 설치한 광업소. 국방 무기와 관련되어 각 군문이 설치하고 감관을 파견해 경영하는 관영형태의 성격을 지닌 유황의 채굴 및 조달을 맡은 광업소이다. 유황은 ‘석류황(石硫黃)’ 또는 ‘황(黃)’이라고도 하며, 의약·공업약품·화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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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회상양민 / 諭會商兩民 [정치·법제]
1898년(광무 2) 11월 26일 고종황제가 만민공동회와 황국협회의 보부상에게 해산을 촉구하는 칙어. 박정양(朴定陽)이 내각을 의정부로 개혁하여 내정을 강화하자, 이것을 두려워한 보수세력이 공화정을 수립한다고 무고하였다. 마침내 고종황제는 황국협회를 만들어 이들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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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공선행록 / 柳孝公善行錄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2권 12책. 국문 필사본. ‘유공선행록(柳公善行錄)’·‘유효공전(柳孝公傳)’·‘유효공현행록’ 등 30여 종의 이본이 있다. 작품 내용은 이본 간에 큰 차이가 없으나, 현재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12권의 「유효공선행록」을 선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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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립 / 柳孝立 [종교·철학/유학]
1579(선조 12)∼1628(인조 6). 조선 후기의 모반자. 잠 증손, 할아버지는 자신, 아버지는 희견,어머니는 이현의 딸이다. 희분의 조카이다. 1609년(광해군 1)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14년 사헌부정언·병조정랑, 이듬 해 필선, 1616년 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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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후조 / 柳厚祚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98∼1876). 고종 때 이조참판, 공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지냈다. 주청사로 청나라에 다녀와 그곳 서양인들의 동정을 알렸는데, 병인양요 때 아들 주목에게 의병을 일으키게 하기도 하였다. 1872년에는 판중추부사로 퇴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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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경 / 劉希慶 [문학/한문학]
조선시대 『촌은집』을 저술한 시인. 아버지는 종7품인 계공랑(啓功郎)유업동(劉業仝)이고 어머니는 허씨(許氏)이다. 박순(朴淳)으로부터 당시(唐詩)를 배웠으며 어려서부터 효자로 이름이 났다.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으로 나가 싸운 공으로 선조(宣祖)로부터 포상과 교지를 받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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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량 / 柳希亮 [종교·철학/유학]
1575(선조 8)∼1628(인조 6). 조선 중기의 문신. 수천 증손, 할아버지는 잠, 아버지는 자신, 어머니는 정유길의 딸이다. 1608년(광해군 즉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검열을 거쳐 설서·정언·전한 등을 역임하였다. 이어 이조정랑·교리·수찬을 역임,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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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분 / 柳希奮 [종교·철학/유학]
1564(명종 19)∼1623(인조 1). 조선 중기의 문신. 수천 증손, 할아버지는 잠, 아버지는 자신, 어머니는 정유길의 딸이다. 1597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예조좌랑이 되고, 1599년 수찬 재임 때 유성룡을 탄핵했다가 민몽룡의 논척으로 파직되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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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요 / 遊戱謠 [문학/구비문학]
여러 가지 유희를 하면서 부르는 노래. 노동요나 의식요와 함께 기능요에 속한다. 노동요는 작업 능률을 올리며 일의 고됨을 덜기 위해 부르는 노래이다. 반면, 유희요는 놀이를 질서 있게 진행시키며 놀이 자체를 흥겹게 하기 위해, 또는 승부에 이기기 위해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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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춘 / 柳希春 [종교·철학/유학]
1513(중종 8)∼1577(선조 10). 조선 중기의 문신. 양수의 증손, 할아버지는 공준, 아버지는 계린, 어머니는 최부의 딸이다. 처부는 송준, 김인후와는 사돈간이다. 김안국·최두산의 문인으로 1538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정언, 장령, 전라도관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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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현전 / 柳希賢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책. 국문필사본. 이 작품은 「정을선전」과 작품 서사구조에 있어서 거의 같다. 다만 등장인물에서만 차이가 나기 때문에 「정을선전」의 한 이본 계열로 보아도 큰 무리가 없다. 이 작품은 중국을 배경으로 한 영웅소설과 가정소설의 복합형 소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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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가 / 六歌 [문학/고전시가]
6수(首)를 단위로 한 연시조. 육가는 이별(李鼈)의 「장육당육가(藏六堂六歌)」를 비롯하여 이황이 지은 「도산육곡(陶山六曲)」 2편이 있고, 이후에는 이별의 「장육당육가」의 전통을 이어간 경우와 이황의 「도산육곡」의 전통을 이어간 경우로 나뉜다. 이별의 육가 전통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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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가잡영 / 六家雜詠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위항시인 정남수·최기남 등 6인의 시 210수를 수록하여 1660년에 간행한 시집. 1권 1책. 운각필서체자(芸閣筆書體字). 정남수(鄭柟壽)·최기남(崔奇男)·남응침(南應琛)·정예남(鄭禮男)·김효일(金孝一)·최대립(崔大立) 등 6인의 시를 모은 것으로 절구(絶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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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갑시왕원불가 / 六甲十王願佛歌 [문학/고전시가]
1960년대 무형문화재 조사 과정에서 채록된 불교가사. 4·4조 위주 4음보 율격의 가사. 총 390구. 범패 분야 인간문화재인 이경협(李璟協, 1901~?)이 구술한 작품이다. 생전에 지은 죄를 참회하고 선심으로 공덕을 쌓고 염불로 극락왕생하자는 내용의 불교가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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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교시사 / 六橋詩社 [문학/한문학]
1870년대 후반 강위(姜瑋)를 중심으로 결성되었던 위항문인(委巷文人)들의 모임. 육교란 청계천 하류로부터 여섯째 다리, 곧 광교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 곳 주위에는 의(醫)·역(譯) 중인의 집단적 거주지가 형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참가동인은 강위를 비롯하여 변진환(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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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무관학교 / 陸軍武官學校 [교육/교육]
1920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상해에 설립한 사관학교. 항일독립전쟁을 수행하기 위하여 세운 이 학교는 1920년 3월 20일 개교식이 있었고, 입학생이 40명이라고 하나 5월 8일 19명의 제1회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이 학교는 김희선, 도인권을 중심으로 운영되었고,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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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법원 / 陸軍法院 [정치·법제/법제·행정]
1900년 9월부터 1907년 8월까지 설치되었던 육군에 관한 사법 관서. 1900년 9월 14일 ‘육군법원을 설치하는 건’에 관한 조칙을 발표해, 군대의 규율을 바로잡아 군인의 허물을 없애기 위해 원수부 내에 육군법원을 설치하여 군인심판을 전담하도록 하였다. 육군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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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연성학교 / 陸軍硏成學校 [교육/교육]
대한제국 때 설치되었던 현역장교 및 하사관의 재교육기관. 1904년 9월 교육부가 설치되면서 그 산하에 설치되었다. 현역장교나 하사관을 대상으로 전술, 사격술 및 체조, 검술 등의 학술을 숙달하게 하고, 그 원리를 이론적으로 연구하게 할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교육연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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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유년학교 / 陸軍幼年學校 [교육/교육]
대한제국 때에 설치되었던 초등군사교육기관. 1904년 9월 무관생도가 되는 데 필요한 보통학과 및 군인의 예비교육을 행하여 육군의 각 병과의 무관학도가 될 인원을 양성한다는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취학연령은 15세부터 19세로 하고 수업연한은 3년으로, 이를 졸업하면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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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담 / 肉談 [문학/구비문학]
남녀간의 색정(色情)이나 성생활(性生活), 그리고 이와 관련된 사항이나 현상을 소재로 한 이야기. 육담은 주로 성(性)에 관한 소재로 꾸며진 민담이기에 외설담이라고도 한다. 성에 관련된 것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민중 속에 퍼져 있으면서도 이를 저속하게 여기거나 공개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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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도가라 / 六度歌─ [문학/고전시가]
근대기에 시당산인이 지은 불교가사. 4·4조 위주 4음보 율격의 가사. 총 460구. 필사본 『육도가라』(연대미상, 성균관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에 순 한글로 수록되어 있다. 내용상 서사─본사─결사로 나누어진다. 작품의 끝에 “시당산인은 자슐자필하여 유젼만셰 ᄒᆞ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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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례 / 六禮 [정치·법제]
왕실 혼례의 주요 절차인 납채, 납징, 고기, 책비, 친영, 동뢰연의 여섯 가지 의식. 왕실 혼례는 육례로 구성되어 있다. 납채는 국왕이 혼인을 청하는 것, 납징은 성혼의 징표로 예물을 보내는 것, 고기는 혼인의 날짜를 정하는 것이다. 책비는 왕비로 책봉하는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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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륜회 / 六輪會 [종교·철학/불교]
고려시대에 널리 행하여졌던 불교의 수행법회 가운데 하나. 인간의 모든 감각기관으로 지은 죄를 참회하고, 앞으로 보다 많은 선행을 쌓을 것을 다짐하는 법회로서, 이 때 육륜법(六輪法)에 따른 의식이 병행된다. 육륜법에는 4면으로 된 윷짝 여섯 개를 사용한다. 육륜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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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방 / 六房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승정원의 조직편제. 즉, 이·호·예·병·형·공의 6방체제를 말한다. 이는 왕명출납에 있어서 육조의 사무를 각기 분장하기 위한 대응편제였다. 조선 후기에는 6방의 조직을 국왕이 직접 편성하였는데, 이를 위한 명단을 방단자(房單子)라 하였다. 이조에서 승지 6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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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백산 / 六百山 [지리/자연지리]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에 있는 산. 높이는 1,244m이다. 황조리ㆍ신리ㆍ무건리에 걸쳐 있으며, 태백산맥의 여맥인 해안산맥(海岸山脈) 중의 한 산으로, 북쪽에는 두리봉(頭理峯, 1,072m), 서쪽에는 대덕산(大德山, 1,301m), 남서쪽에는 백병산(白屛山,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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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경기 / 陸上競技 [예술·체육/체육]
달리고 뛰고 던지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움직임을 바탕으로 한 경기. 육상은 인간의 기본적인 움직임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므로, 육상경기의 기원은 인류의 발생과 함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즉, 달리고, 뛰고, 던지는 일련의 활동들은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방어와 공격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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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궁경우궁덕안궁작헌례급춘추분제진설도 친제동 / 毓祥宮景祐宮德安宮酌獻禮及春秋分祭陳設圖 親祭同 [정치·법제]
육상궁, 경우궁, 덕안궁에서 작헌례와 춘분, 추분에 올리는 제사에 제물을 제상에 배열하는 진설도. 판심에 이왕직이 찍힌 용지로 보아 기존의 진설도를 이왕직에서 정리하면서 재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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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궁노비하사교지 / 毓祥宮奴婢下賜敎旨 [정치·법제/법제·행정]
1751년(영조 27) 10월 29일 육상궁에 총 292명의 노비를 특별 사여하는 문서. 문서에는 육상궁에 노비를 하사하는 이유나 과정 등을 적지 않았고, 각 중앙 관서에서 차출된 노비의 명단만을 나열하였다. 각 관서에서 많게는 57명에서 적게는 1명까지 차출하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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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궁동향친제제문 / 毓祥宮冬享親祭祭文 [역사/조선시대사]
1670년 11월 6일에 출생한 영조의 생모 숙빈최씨에 대한 동향친제(冬享親祭)의 제문. 영조가 직접 지었다. 지은 해는 1762년(영조 38)으로 추정된다. 제문의 내용은 크게 여섯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째, 숙빈최씨가 영조인 자신을 어려서 애지중지 키워주신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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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궁사중삭시제절사축식 / 毓祥宮四仲朔時祭節祀祝式 [역사/조선시대사]
육상궁에 올리는 두 건의 축식을 담은 책. 하나는 한 해 네 번 지내는 중삭시제(仲朔時祭)의 축식, 다른 하나는 명절을 따라 지내는 절사(節祀)의 축식이다.《영조실록》영조 31년(1755) 6월 19일조에 따르면 육상궁의 중삭시제는 춘분과 하지, 추분, 동짓날에 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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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궁석년은사전지 / 毓祥宮昔年恩賜田旨 [역사/조선시대사]
영조가 육상궁의 은사전(恩賜田)에 대해서 쓴 명령서. 지난 해 육상궁에 내린 위전(位田)은 특별히 하사한 것인 바, 여기에 속하지 않는 결수는 육상궁에서 망정(望定)한다는 뜻을 경기감영에 통보하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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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궁작헌례제문 / 毓祥宮酌獻禮祭文 [역사/조선시대사]
정조가 육상궁의 두번째 회갑을 맞는 1790년에 작헌례를 시행하면서 지은 제문. 이 제문의 우측 하단에 '庚戌二月二十八日'이라 기재되어 있어 1790년(정조 14) 2월 28일에 지어진 글임을 알 수 있다.《정조실록》에 의하면 이날 정조는 육상궁에 작헌례를 행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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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궁작헌례친행의 / 毓祥宮酌獻禮親行儀 [정치·법제]
국왕이 직접 육상궁에서 작헌례를 행할 때 의식 절차를 기록한 문서. 1753년(영조 29)에 육상묘를 육상궁으로 격상시킨 사실을 미루어볼 때 이 문서는 1753년 이후에 작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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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궁재회수신친행동향제제문 / 毓祥宮再回晬辰親行冬享祭祭文 [역사/조선시대사]
정조가 육상궁의 재회(再回) 생신인 1790년 11월 6일에 동향제(冬享祭)를 시행하면서 지은 제문. 우측 하단에 '庚戌十一月初六日'이라 써 있어 1790년(정조 14) 11월 6일에 지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제문은 《홍재전서》권22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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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궁춘추분제축식 / 毓祥宮春秋分祭祝式 [역사/조선시대사]
춘분과 추분 때 육상궁 제사의 축식을 쓴 책. 축식은 제사의 진행 중 초헌(初獻)과 아헌(亞獻) 사이에 읽혀진다. 소령원 제사의 진설, 의식의 절차 등은 《소령원지》에 상세하다. 소화(昭和)란 연호를 통해 1926년 이후 일제강점기에 필사된 자료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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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묘고유제문초 / 毓祥廟告由祭文草 [역사/조선시대사]
1744년(영조 20) 숙빈묘를 소령묘(昭寧墓)로, 사당을 육상묘(毓祥廟)로 각각 승격하고 지낸 고유제의 축문 초고. 영조는 즉위 20년 후인 1744년 3월 7일, 영의정 이하 신료들에게 사친의 묘호와 묘호를 정하는 일에 대해 의논하여 올리라는 명을 내렸다. 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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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서심원 / 六書尋源 [언론·출판/출판]
경부(經部) - 소학류(小學類). 권병훈(權丙勳) 저, 등사본, 중동중학교(서울) 최규동(崔奎東), 1940년. 서문은 정인보(鄭寅普) 작성하였다. 구성은 서, 부수목록, 인용서적목록, 육서의례상하, 권1-27, 부록(6장), 별록(30장), 보편(색인)이다. 한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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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촌 / 六城村 [사회/촌락]
1869년 4월에 러시아 수이푼강 주변에 조성된 한인 마을. 러시아 연해주 일대로 이주한 한인들이 거주하였던 마을이다. 주변의 여러 한인 마을 가운데 가장 부유한 마을이자 러시아 최대의 한인 마을이었다. 마을의 이름은 마을 옆을 흐르는 류치헤자[六汊河子]강에서 유래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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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묘 / 六臣墓 [역사/조선시대사]
조선시대 단종에게 충절을 바친 사육신의 묘. 육신은 바로 참판 박팽년(朴彭年), 승지 성삼문(成三問), 교리 이개(李塏), 사예 유성원(柳誠源), 참판 하위지(河緯地)를 지칭한다. 노량진에 묘역이 조성되어 있는데 육신 가운데 5기의 표석이 세워져 있고 박, 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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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사기 / 六臣祠記 [문학/고전산문]
사육신을 기리는 사당. 조선시대 단종에게 충절을 바친 육신(六臣)을 기리기 위해 1685년(숙종 11) 7월 강원도 영월에 육신의 사당이 건립되었다. 이에 송시열(宋時烈)이 기문(記文)을 지었다.《송자대전(宋子大全)》권144에 <영월군육신사기(寧越郡六臣祠記)>라는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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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사치제문 / 六臣祠致祭文 [문학/고전산문]
치제문. 1791년(정조 15) 1월 19일 정조(正祖)가 동부승지 유문양(柳文養)을 파견하여 육신묘에 치제하게 하였다. 《홍재전서(弘齋全書)》권22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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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전 / 六臣傳 [문학/한문학]
조선 전기에 남효온(南孝溫)이 지은 사육신의 전기. 작자의 『추강선생문집(秋江先生文集)』 권8과 조기영(趙基永)의 『생육신문집(生六臣文集)』 권7에 수록되어 있다. 『추강선생문집』에는 「육신전」 외에도 계유정란 때 세조를 따르지 않았던 허후(許詡)의 전(傳)도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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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십령 / 六十嶺 [지리/자연지리]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과 전라북도 장수군 계남면 사이에 있는 고개. 호남과 영남을 연결하는 주요한 고개로 도계표시가 서 있다. 높이는 734m이다. 육십령은 거창을 중심으로 하는 경상남도 북부지역과, 진안을 거쳐 전주에 이르는 전라북도 동부지역을 잇는 교통의 요지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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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 / 六咏 [문학/고전시가]
권섭(權燮)이 지은 시조. 작자가 지은 시조 75수 중 일부이며, 권섭의 친필유고인 필사본 『옥소고(玉所稿)』에 여타 작품들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내용은 제악숙(祭樂肅)·군악정(軍樂整)·선악정(禪樂定)·여악탕(女樂蕩)·용악처(傭樂悽)·무악요(巫樂搖) 등 여섯 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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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우당유고 / 六友堂遺稿 [문학/한문학]
조선후기 문인 조위수의 부·서(書)·행장·시 등을 수록한 시문집. 4권 2책. 필사본. 권1은 부(賦) 2편, 시 2수, 서(書) 22편, 문(文) 4편, 행장 2편, 부록의 권1에 유서(諭書)·제문·기(記)·가전(家傳) 등 20편, 권2는 장덕록(狀德錄) 3편, 영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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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전소설 / 六錢小說 [문학/고전산문]
신문관(新文館)에서 발행된 값이 싼 문고본 소설책들. 1913년부터 발행되었으며, 우리 나라 두 번째의 문고본이다. 판형은 B6판의 소형이고, 값이 싸서(6전) 부담 없이 휴대용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남훈태평가>, <홍길동전>, <심쳥젼>, <흥부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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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 / 六曹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조선시대 국가의 정무를 나누어 맡아보던 여섯 조에 대한 총칭. 즉 이조·호조·예조·병조·형조·공조를 일컫는다. 육조의 법제적인 기능은 고려시대, ≪경국대전≫ 이전, ≪경국대전≫ 이후의 시기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경국대전≫에 의하면 육조는 국왕에게 직접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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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단경 / 六祖壇經 [종교·철학/불교]
혜능이 쓴 저서. 혜능은 중국 선종의 법맥을 이어받았다. 중국 선종은 달마를 초조로 삼고 6대조인 혜능에게로 전해졌다. 이 육조단경은 선정의 본질로서 견성성불과 돈오를 강조하고 남종선의 관점에서 신수를 조사로 하는 북종선의 점수의 수행법을 비판한다. 여기서 돈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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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진방언 / 六鎭方言 [언어/언어/문자]
두만강 중류와 하류에 위치한 함경북도 회령(會寧)·종성(鐘城)·온성(穩城)·경원(慶源)·경흥(慶興)에서 쓰이는 방언. 육진(六鎭)이라는 말은 조선조 세종이 이 지역을 개척하고 여섯 진을 설치한 데서 유래한다. 육진의 하나인 부령(富寧)은 이 방언권에서 제외한다. 육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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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창 / 陸昌 [지리/인문지리]
전라남도 영광 지역의 옛 지명. 본래 백제의 아로현(阿老縣, 또는 加位ㆍ何老ㆍ谷野ㆍ葛草縣) 이었는데, 신라의 영토가 된 뒤 757년(경덕왕 16) 갈도현(碣島縣)으로 고쳐 압해군(壓海郡)의 영현으로 하였다. 940년(태조 23) 육창으로 고쳤고, 유비니도(有比尼島)ㆍ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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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현가 / 六賢歌 [문학/고전시가]
조선 중종 때 주세붕(周世鵬)이 지은 경기체가(景幾體歌). 전 6장. 작자가 풍기군수로 있을 때인 1541년(중종 36)에서 1544년 사이에 지어진 것이다. 작자의 저서 『무릉잡고(武陵雜稿)』 별집과 『죽계지(竹溪誌)』에 수록되어 있다. 「육현가」는 도학 형성에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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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혈포강도 / 六穴砲强盜 [예술·체육/연극]
최초의 신파극단인 혁신단의 제2회 공연 작품인 탐정극. 신파극이란 용어가 광고에서 최초로 쓰였던 작품이며 신파극 중 가장 인기를 모았던 작품으로 푸에도 여러 번 재공연되었다. 이 작품은 이미 1908년 일본 신파극단이 공연한 바 있는 <피스톨강도 청수정길>을 현식단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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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화대 / 六花隊 [예술·체육/무용]
조선 초기의 당악정재(唐樂呈才)의 하나. 『고려사』악지에는 보이지 않고, 『악학궤범』과 『정재무도홀기』에 그 춤의 절차가 전한다. 따라서 성종조 이전에 창제된 것으로 추정되며, 그 뒤 400여 년 동안 보이지 않다가 1901년 7월의 진연(進宴)에서 재연되었다.당악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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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회 / 肉膾 [생활/식생활]
쇠고기의 살코기를 얇게 저며 양념에 날로 무친 회(膾). 동양 삼국 중에 특히 우리 나라에서 발달한 음식이다. ≪어우야담 於于野談≫에 “임진왜란 때 중국 군사 10만 명이 오랫동안 우리 나라에 주둔하였다. 그들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 회를 잘 먹는 것을 보고 더럽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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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효자전 / 六孝子傳 [문학/고전산문]
박건회(朴健會)가 편술한 고전소설집. 회동서관(滙東書館)에서 간행하였다. 초두에 ‘박건희 편술’이라 밝혔으며, 전래의 6편 효행담을 엮은 일종의 단편소설집이다. 장회(章回) 소설처럼 횟수로 하여 6편을 엮고 있다. 제1회는 김효증(金孝曾)의 효행담이다. 제2회는 이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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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가묵 / 尹家默 [종교·철학/유학]
1806년(순조 6)∼1890년(고종 27). 조선 말기 학자. 과거시험에 뜻을 두지 않고 평생 마음을 수양하는 공부와 성리학의 성명도설 연구에 힘썼다. 1855년(철종 6)에는 사도세자를 추존할 것을 건의하는「의리소」를 지어 간우 이인중과 함께 서울로 갔다. 유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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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각 / 尹慤 [역사/조선시대사]
1665(현종 6)∼1724(경종 4). 조선 후기의 무신. 아버지는 익상이다. 1699년(숙종 25)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 비변사낭관·도총부도사·초계군수 등을 역임하고, 전주영장을 거쳐 전라도수군절도사에 이르렀다. 1710년 해구의 발호가 심해지자 대신 이이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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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개 / 尹漑 [종교·철학/유학]
1494(성종 25)∼1566(명종 21).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구몽, 아버지는 이손, 어머니는 윤백연의 딸이다. 1516년(중종 11)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홍문관저작, 이조좌랑, 형조참판,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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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계 / 尹堦 [종교·철학/유학]
1622(광해군 14)∼1692(숙종 18). 조선 후기의 문신. 두수 증손, 할아버지는 휘, 아버지는 면지, 어머니는 경섬의 딸이다. 1662년(현종 3)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승문원에 들어갔다. 예조좌랑, 황해도도사, 한성판윤, 조참찬, 공조판서, 광주유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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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계 / 尹棨 [종교·철학/유학]
1583(선조 16)∼1636(인조 14). 조선 중기의 문신. 우신 증손, 할아버지는 섬, 아버지는 형갑, 어머니는 황치경의 딸이다. 1624년(인조 2) 사마시에 합격하고, 1627년 정묘호란 때 상소하여 척화를 주장하였다. 이 해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승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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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계겸 / 尹繼謙 [종교·철학/유학]
1442(세종 24)∼1483(성종 14). 조선 전기의 문신. 승례 증손, 할아버지는 번, 아버지는 사흔이다. 1457년(세조 3) 음보로 세자우참군에 처음 제수되고, 그 뒤 호조정랑을 역임하였다. 의빈부경력, 동부승지, 우부승지, 좌부승지, 호조참판, 강원도관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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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계 / 尹光啓 [종교·철학/유학]
1559(명종 14)∼? 조선 중기의 문신. 효정 증손, 할아버지는 행, 아버지는 화중, 어머니는 이희양의 딸이다. 1589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1601년 주서·세자시강원설서를 거쳐, 1603년 호조정랑으로서 지제교 겸 춘추관기주관이 되어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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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안 / 尹光顔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57∼1815). 유 증손, 할아버지는 서교, 아버지는 동미, 어머니는 이보순의 딸이다. 경상도관찰사 때 주자와 송시열을 배향한 영양의 운곡서원의 사당을 헐고, 영정을 철거한 일이 있었는데, 1808년 암행어사 이우재의 탄핵으로 사문난적으로 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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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집 / 尹光緝 [종교·철학/유학]
1710년(숙종 36)∼1761년(영조 37) 4월 22일. 조선 후기의 유생. 자는 학유(學有), 본관은 파평(坡平), 출신지는 충청남도 이산(尼山: 현 논산군(論山郡))이다. 노서(魯西) 윤선거(尹宣擧)의 가학(家學)을 계승하였다. 가법(家法)을 지키면서 학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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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구 / 尹衢 [종교·철학/유학]
1495(연산군 1)∼?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경, 아버지는 효정이다. 1513년(중종 8) 사마양시에 합격하고, 1516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사가독서를 하였으며, 다음해 주서에 이어 홍문관의 수찬·지제교·경연검토관·춘추관기사관 등을 역임하였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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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근수 / 尹根壽 [종교·철학/유학]
1537(중종 32)∼1616(광해군 8). 조선 중기의 문신. 계정 증손, 할아버지는 희림, 아버지는 변, 어머니는 현윤명의 딸이다. 영의정 두수의 동생이다. 김덕수·이황의 문인으로 1558년(명종 13)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권지부정자에 임용된 뒤 홍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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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급 / 尹汲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97∼1770). 이재·박필주의 문인으로, 예문제학·대사헌·좌우참찬·판의금부사·한성판윤, 형조·예조·이조·형조의 판서 등을 역임했다. 영조의 탕평책을 반대하며, 자주 파직·좌천되기도 했다. 글씨에 뛰어나 독특한 서체를 이룩하였고, 저서로는《근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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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현 / 尹冀鉉 [예술·체육/체육]
일제강점기 조선체육회 초대이사, 전조선야구대회 심판으로 활동한 체육인. 1889(고종 26)∼?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 재학중이던 1909년 1월변희준(邊熙駿)·장순익(張淳翊)·유동수(柳東秀)·윤교중(尹敎重)·어윤빈(魚允斌) 등과 함께 동경유학생들로 구성된 대한흥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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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노동 / 尹魯東 [종교·철학/유학]
1753년(영조 29)~미상.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윤세량, 조부는 윤광, 부친은 윤득수이다. 외조는 송징래, 처부는 조재홍이다. 1789년(정조 13) 식년시 진사 3등 56위에 합격, 1790년(정조 14) 증광시 갑과 3위에 문과 급제하였다. 1792년(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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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정본풀이 / 尹大靜本─ [문학/구비문학]
제주도 무속의 조상본풀이의 하나.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파평윤씨(坡平尹氏) 집안에 계승되는 수호신의 내력담이다. 이 수호신은 대정현감(大靜縣監)을 지낸 혈연조상이므로 윤대정(尹大靜)이라 일컫는 것이며, 벼슬을 한 조상의 내력담이므로 조상본풀이 중 ‘홍부일월[紅牌日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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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희 / 尹德熙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화가(1685∼1776). 아버지 윤두서의 화풍을 전수받아, 도석인물·산수인물·말 그림을 잘 그렸다. 산수화 등의 작품은 보수적이면서도 남종화풍을 비교적 깊게 수용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정릉현감을 지냈고, 작품으로《해남윤씨 가전고화첩》·《산수도첩》·《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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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돈 / 尹暾 [종교·철학/유학]
1551(명종 6)∼1612(광해군 4). 조선 중기의 문신. 시영 증손, 할아버지는 징, 아버지는 극신, 어머니는 남견손의 딸이다. 이황·기대승의 문인으로, 1579년(선조 12) 생원·진사 두 시험에 모두 합격했으며, 1585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정자·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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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도 / 尹東度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07∼1768). 순거의 증손, 할아버지는 진, 아버지는 혜교, 어머니는 이익수의 딸이다. 1745년(영조 21) 정시문과에 을과급제 후 사서·부교리·수찬·경상도관찰사·대사성·대사헌·이조참판·호조판서·우의정·좌의정·영의정 등의 청요직을 두루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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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수 / 尹東洙 [종교·철학/유학]
1674(현종 15)∼1739(영조 15). 조선 후기의 학자. 선거의 증손자로 자교의 아들이다. 처음 부모의 명에 따라 과시준비를 하였으나, 얼마 뒤 그 뜻을 버리고 성리학 공부에 전념하였다.1706년(숙종 32) 우의정 최석정의 추천으로 내시교관에 제수되고 승정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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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승 / 尹東昇 [종교·철학/유학]
1718년(숙종 44)∼1773년(영조 49). 조선 후기의 문신. 언교의 아들이다. 1746년(영조 22) 진사로 춘당대시에서 을과로 급제, 문한관을 거쳐 1755년에 문학이 되고 이어 수찬·부교리·사헌부집의·교리 등을 역임하였다. 그뒤 응교·검상·부응교·부수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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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엽 / 尹東燁 [종교·철학/유학]
1734년(영조 10)∼1793년(정조 17). 조부는 윤삼성, 아버지는 윤심진이다. 김원행의 제자이다. 부인 전지일당은 한시에 능하고, 며느리 강정일당은 성리학과 도가풍 시서화에 능한 여류 한학자며, 딸 정부인 파평윤씨는 남편 동지중추부사 장후시의 죽음을 슬퍼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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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 尹東柱 [문학/현대문학]
1917-1945년. 시인. 본관은 파평(坡平). 아명은 해환(海煥). 북간도 명동촌(明東村) 출생. 아버지는 영석(永錫)이며, 어머니는 김룡(金龍)으로 기독교 장로인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고 성장하였다. 아우 일주(一柱)와 당숙 영춘(永春)도 시인이다. 14세(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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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서 / 尹斗緖 [종교·철학/유학]
1668(현종 9)∼1715(숙종 41). 조선 후기의 선비 화가. 정약용의 외증조이자 윤선도의 증손이다. 장남인 덕희와 손자인 용도 화업을 계승하여 3대가 화가 가정을 이루었다. 정선·심사정과 더불어 조선 후기의 삼재로 일컬어졌다. 집안이 남인 계열이었고 당쟁의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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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수 / 尹斗壽 [종교·철학/유학]
1533(중종 28)∼1601(선조 34). 조선 중기의 문신. 계정 증손, 할아버지는 희림, 아버지는 변, 어머니는 현윤명의 딸이다. 근수의 형이다. 이중호·이황의 문인으로, 1558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이조정랑, 사헌부장령, 사복시정, 우승지, 대사간,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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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득경 / 尹得敬 [종교·철학/유학]
1702년(숙종 28~미상).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윤계, 조부는 윤세기, 부친은 윤식이다. 외조부는 박필하, 처부는 송요좌이다. 숙부로 윤급이 있으며, 동생으로 윤득민‧윤득서가 있다. 1736년(영조 12) 알성시에 장원급제하였다. 관직은 부수찬‧교리‧지평‧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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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득우 / 尹得雨 [역사/조선시대사]
1719년(숙종 45)∼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윤경(潤卿), 본관은 해평(海平)이다. 1751년(영조 27) 정시 문과에 장원급제하고, 1752년(영조 28)부터 세자시강원사서‧사헌부지평‧홍문관부교리 등을 지냈다. 1755년(영조 31) 유생들의 상소에 연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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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 / 尹理 [종교·철학/유학]
1636(인조 14)∼1694(숙종 20). 조선 후기의 문신. 인경 5대손, 사흠 증손, 할아버지는 영, 아버지는 지선, 어머니는 이종택의 딸이다. 1657년(효종 8) 진사시에 합격하고, 1663년(현종 4)에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병조·형조의 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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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렬 / 尹命烈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62∼1832). 40년 동안 내외 요직을 두루 거쳐 병조참판·강원도관찰사·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하고 가의대부에 올랐다. 동래부안핵사 때 왜어역관 등이 왜인과 모의하여 서계와 도서를 위조한 사건의 진상을 밝혀 엄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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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선 / 尹明善 [종교·철학/유학]
1547(명종 2)∼1608(선조 41). 조선 중기의 문신. 공 증손, 할아버지는 사정, 아버지는 원, 어머니는 김광호의 딸이다. 1580년(선조 13)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형조좌랑, 장흥부사, 양주목사, 평안도재상경차관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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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운 / 尹明運 [종교·철학/유학]
1642(인조 20)∼1718(숙종 44). 조선 후기의 문신. 아버지는 비경이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 때 스승 송시열을 변호하다가 해미에 유배되고, 1694년 갑술옥사 때 풀려나와 선릉참봉을 역임하였으며, 사재감첨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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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문거 / 尹文擧 [종교·철학/유학]
1606(선조 39)∼1672(현종 13).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아버지는 황, 어머니는 성혼의 딸이다. 김집의 문인으로 송시열·송준길 등과 교유하였으며, 조익·김상헌 등에게도 배웠다. 1630년(인조 8) 생원시에 합격하고, 1633년 식년문과에 급제, 승문원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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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박법 / 輪泊法 [정치·법제/외교]
조선시대 일본의 선박을 규제하기 위하여 삼포에 교대로 입항하도록 한 법. 일본의 사송선(使送船)·흥리왜선(興利倭船 : 商船) 등이 삼포에 무질서하게 입항하므로 이를 규제하기 위하여 삼포에 교대로 입항하도록 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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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정 / 尹秉鼎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22∼1889). 1851년(철종 2) 문과정시 갑과급제 후 강원도관찰사·대사간·한성부판윤·공조판서 등을 지내다 임오군란 때 낙향하여 대원군정책에 반대되는 호포 혁파·서원 복설 등을 상소하였다. 복직 후 판돈령부사에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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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보선 / 尹潽善 [정치·법제/정치]
현대의 정치인(1897∼1990). 1948년 정부수립과 함께 서울시장으로 발탁되었고, 1949년 상공부장관이 되었다. 1957년 민주당 중앙위원회 의장에 선임되었다.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정부가 물러나면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5·16군사정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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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보선전대통령생가 / 尹潽善前大統領生家 [생활/주생활]
충청남도 아산시 둔포면 신항리에 있는 조선 말기의 주택. 중요민속자료 제196호. 윤보선 전 대통령의 생가인데 1907년 윤치소가 건립하였다고 한다. 이 집은 후대에 부분적으로 개조되었지만, 전형적인 중부지방의 평면구성을 잘 갖춘 상류주택이다.

종교·철학(42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