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총 22,1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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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 / 道藏 [종교·철학/도교]
집대성한 도교경전. 오늘날 유행하는 도장은 명나라 때 간행된 <정통도장>과 청나라 때 간행된 <도장집요>를 말한다. 도장은 통진, 통현, 통신의 삼통과 태현, 태평, 태청, 정일의 사보로 분류된다. 도교전적은 삼통삼십육류와 사부로 분류된다. 오늘날 유행하는 <정통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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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 / 導掌 [역사]
조선 후기 궁방전을 관리하고 조세를 거두는 사무를 담당한 궁방의 청부인. 조선 후기 각사의 장토(庄土)는 궁방이 직접 그 직원을 파견하는 곳도 있었으나 청부인에게 그 수세 또는 운영권을 위임하는 곳도 있었다. 도장이 그 기능을 다하려면 궁방으로부터 임명장인 도서첩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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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공 / 塗裝工 [사회/사회구조]
도장기기와 설비를 사용하여 건물의 내·외부 표면과 장식물 등에 도료를 칠함으로써 건물과 기타 구조물을 보호 또는 장식하는 전문직. 전문적인 도장공은 페인트가 처음으로 사용된 일제강점기에 비로소 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때의 페인트공은 막일꾼으로서 하루 노동시간이 1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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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교 / 都將校 [정치·법제/국방]
고려시대의 무관 보직. 무신집권기 이후의 각종 금군 부대에서 그 존재가 확인된다. 오군의 경우는 중군에만 있었는데, 중군을 통솔하는 병진도지유와 나란히 기술된 점으로 보아 이의 참모 내지 부관이었던 듯하다. 한편 1278년(충렬왕 4) 왕이 원에서 돌아올 때 견룡·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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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무늬토기 / 印花文土器 [역사/선사시대사]
돋을새김 무늬를 새긴 도장[印]을 표면에 찍어 오목새김 무늬로 장식한 토기. 도장무늬[印花文]토기로 일컬어지는 것은 역사시대 이후 등장하지만, 도구로 표면을 눌러 무늬를 새기는 수법은 이미 신석기시대부터 활용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은 남해안지역 신석기시대 전기를 대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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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재고 / 都齋庫 [종교·철학/민간신앙]
고려시대 제사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 문종 때 설치된 것으로 보이는데, 산천·일월·성신 등에 제사하는 제물을 취급, 보관하던 특수 창고로 추측된다. 관원으로는 사 1인, 부사 3인, 판관 2인 등이 있었으며, 이속으로는 기사 4인, 기관 1인, 급사 2인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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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 渡田 [경제·산업/경제]
조선시대 서울 주변 큰 강의 요로에 설치된 도진에 나누어 지급되어 있던 토지. 각 도진에는 지휘관원으로 도승(渡丞)과 뱃사공으로서의 진척(津尺)을 두고 각기 늠급위전(廩給位田)과 진척위전(津尺位田)을 절급하였다. 이 둘을 합칭한 것이 도전이다. 도진제도는 세종 때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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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절제사 / 都節制使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 후기 양계지역에 파견되었던 외관직. 1389년(공양왕 1)에 도순문사(都巡問使)가 개정된 것이다. 그 후 1390년(공양왕 2)부터는 양계에도 도관찰출척사를 두고 도절제사를 겸임하도록 하였으며, 고려가 멸망하기 3개월 전인 1392년 4월에 전국의 도관찰출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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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 / 都正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의 종친부와 훈련원에 설치된 정3품 당상관직. 훈련원의 도정(都正) 2원 가운데 1원은 녹관으로서 관아의 실질적인 최고 책임자였다. 종친부와 돈녕부에만 둔 정3품 상위직으로 도정(都正)을 거치지 않고서는 봉군이 안되는 종반 중의 화직으로 왕의 특지가 있어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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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 / 都定 [경제·산업/경제]
조선 후기 소작료 산정 및 징수방법. 매년 작황을 조사하여 일정액의 소작료를 산정하던 방법으로, 주로 궁방전의 소작지에서 행하여졌다. 이는 조선 후기에 정액지대인 도조법(都租法)이 행해지면서 나타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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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사 / 都正司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전곡의 출납을 관장하던 관서. 1014년(현종 5)에서 1023년까지 존속하였다. 1014년에 무신 김훈·최질 등이 난을 일으켜 권신 황보유의·장연우 등을 축출하고 실권을 장악하였다. 이와 함께 일련의 제도개혁을 실시하였는데 이때 종전의 삼사를 도정사로 바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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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산 / 渡正山 [지리/자연지리]
함경북도 경성군 상온포리의 북서쪽 연사군과의 경계에 있는 산. 도정산의 높이는 2,200m이고, 관모봉(冠帽峰, 2,541m)ㆍ입석산(立石山)ㆍ남하석산(南下石山)과 더불어 함경산맥 동북쪽에 솟은 고봉으로서 무산군ㆍ경성군의 분수령을 이룬다. 약 10㎞에 걸쳐서 북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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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서원 / 道正書院 [교육/교육]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면 도정리에 있었던 서원. 1700년(숙종 26)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정탁(鄭琢)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786년(정조 10)에 정윤목(鄭允穆)을 추가배향하여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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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제고 / 都祭庫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제사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 인종 때 설치되어 1391년(공양왕 3) 혁파되었다. 관원으로는 사·부사·판관이 있었다. 녹봉지급의 상황으로 보아 사는 4품 이상, 부사는 6품 이상, 판관은 갑과권무로 추정된다. 이속도 기사 4인, 기관 1인, 급사 2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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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제제도 / 徒弟制度 [사회/사회구조]
수공업적 기능의 후계자를 양성하는 제도. 우리나라의 전통사회에서도 동업조합과 도제제도가 존재하였으나, 유럽과는 사회적 조건이 달라서 그 운영 방법이나 후계자 확보 방법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도제제도는 대체로 가족과 결합된 성격을 지녔기 때문에, 가족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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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제조 / 都提調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육조의 속아문이나 군영 등에 두었던 정1품 자문직. 조선 전기에 육조 속아문 가운데 왕권이나 국방·외교 등과 연관되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기관에 도제조를 두어 인사나 행정상 중요한 문제 등에 관하여 자문에 응하도록 하였다. 이와 같이 현직이나 퇴직한 의정(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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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조 / 陶彫 [예술·체육/공예]
일상의 쓰임에 기초한 전통적 도자기 형식을 현대미술 개념으로 바꾸어 재구축한 도자공예의 경향.도자조형·조형도자. 전통적 도자공예의 기형을 파괴하여 조각의 영역에 다가가는 실험은 미술대학에 속한 도자공예학과에서 주도하였다. 구미 유학생들의 귀국으로 더욱 활성화되어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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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권 / 賭地權 [경제·산업/경제]
조선 후기 17세기경부터 농민들이 농민적 토지소유를 성립시켜 나가면서 획득한 소작지에서의 부분소유권. 도지권 성립의 배경은 신분제도의 붕괴과정에서 소작농의 지위향상과 화폐경제의 발달로 인한 지주와 소작인의 경제적 계약관계의 형성을 들 수 있다. 도지권은 전국 각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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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무 / 都鎭撫 [정치·법제/국방]
고려말 조선초에 설치되었던 군직. 1389년(공양왕 1) 도순문사가 도절제사로 개칭된 이후 도절제사 밑에도 도진무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이때 같은 도진무라도 양계 도절제사의 도진무는 정3품인 상호군 이상으로 임명하는 경우가 많았고, 남도에서는 조선 세조초에 와서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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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무사 / 都鎭撫司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시대 원나라 지배하에 설치된 정동행중서성 산하 관서. 원나라 세조는 일본을 정복하기 위하여 개경에 행성을 설치하고 그 사무를 관장시켰다. 그 뒤 이문소등 여러 기구가 설치될 때 도진무사도 설치되었다. 임무는 군사사무를 관장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임명된 관리는 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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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찰원 / 都察院 [역사/근대사]
조선 말기 내외백관의 선악과 공과를 규찰하여 의정부에 알리고, 상벌을 공정하게 행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의정부 산하 관서. 1894년 6월 군국기무처에서 의정부 이하 각 아문에 대한 중앙관제개혁안을 제출하여 왕의 재가를 얻어 시행하였는데, 이 때 의정부 소속관청으로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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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천수관음가 / 禱千手觀音歌 [문학/고전시가]
신라 경덕왕 때 희명(希明)이 지은 향가. 전체 노래가 10구절로 나누어지므로 흔히 십구체(十句體) 향가로 인정받고 있다. 현대어로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무릎을 곧게 하고 두 손바닥을 모아 천수관음(千手觀音) 앞에 비옵나이다. 천 손의 천 눈을 하나를 놓아 하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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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첨의사사 / 都僉議使司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 후기 백관의 서무를 관장하던 중앙행정관청. 1275년(충렬왕 1)에 원나라의 간섭으로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과 상서성을 병합하여 첨의부(僉議府)를 설치하였는데, 1293년에 도첨의사사로 고쳤다. 1356년(공민왕 5)에 문종 때의 구제(舊制)에 따라 중서문하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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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첩 / 度牒 [정치·법제/법제·행정]
관청에서 발급한 승려 허가서. 고려시대에 도첩제가 시행되었는데 이는 충숙왕대의 일이다. 이어서 공민왕 20년(1371)에는 정전으로 포 50필을 바치는 자에 한하여 도첩을 발행하는 법령을 제정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태조 원년(1392)에 배극렴·조준의 시무책 32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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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첩제 / 度牒制 [정치·법제/법제·행정]
승려가 출가할 때 국가가 그 신분을 공인해 주던 제도. 도첩제는 고려 말기부터 제도화되어 조선 초기에 강화되었다. 조선시대의 도첩체는 억불숭유정책을 그 배경으로 자유로운 출가를 제한하고 불교를 국가적인 통치하에 예속시키기 위해서 시행되었다. 세조 때 개정된 도첩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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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 / 都廳 [정치·법제]
조선 시대 가례도감ㆍ책례도감ㆍ존호도감 등 국가의 중요 의례 행사를 위하여 설치하였던 임시 관서의 관직. 정원은 2인이었다. 품계는 3∼5품관을 차출하였는데, 보통은 홍문관의 응교ㆍ교리가 임명되었다. 그들은 도감의 실무 책임자들로서 행사의 준비와 시행을 총괄하는 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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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체찰사 / 都體察使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의정이 맡은 임시관직. 왕의 명을 받아서 할당된 지역의 군정과 민정을 총괄하여 다스렸다. 도체찰사 직명은 고려 공민왕 때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면서 처음 등장하였다. 정1품은 도체찰사, 종1품은 체찰사, 정2품은 도순찰사 등으로 부르다가 세조 때 품계에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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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초도 / 都草島 [지리/자연지리]
전라남도 신안군 도초면에 속하는 섬. 동경 125°57′, 북위 34°42′에 위치하며, 목포에서 서남쪽 54.5㎞ 지점에 있다. 면적은 42.38㎢, 해안선 길이는 42.0㎞이다. 2007년 말 현재 인구는 2,970명(남 1,474명, 여 1,496명)이고 세대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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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초도소작쟁의 / 都草島小作爭議 [역사/근대사]
1925년 전라남도 무안군 도초면(현 신안군 도초면)에서 일어난 소작쟁의. 도초소작인회는 처음엔 지주들을 투쟁의 대상으로 삼았으나, 이 사건 이후 소작쟁의의 구체적인 투쟁대상이 일본 무장경관으로 변하였다. 무안군은 도초도 외에 암태도 등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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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총관 / 都摠管 [정치·법제/국방]
조선시대 오위도총부의 정2품 무관직. 1409년(태종 9) 삼군진무소가 설치되고 1457년(세조 3) 오위진무소로 개칭되었다. 이 책임자를 도진무라 하였다. 오위진무소는 1466년(세조 12) 오위도총부로 바뀌면서 도진무가 도총관으로 바뀌었다. 도총관의 수는 5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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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총도감 / 都摠都監 [정치·법제/국방]
고려시대 병력동원을 위하여 설치되었던 임시관서. 고려 말기 정규병력만으로는 극렬해진 왜구의 침입과 노략질에 대처할 수 없게 되자, 1363년(공민왕 22) 개경5부의 인민으로 구성된 방리군을 조직하여 왜구의 침략에 대처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대호와 중호의 경우는 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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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총섭 / 都摠攝 [정치·법제/법제·행정]
나라에서 내렸던 승려에 대한 직책 중 최고의 승직. 왕사 나옹이 선교도총섭의 직명을 가졌던 것으로 보아 고려 말에도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직명이 널리 보편화된 것은 선조 때부터이다. 이 승직은 국가적인 성격을 강하게 띠었던 것으로 조정에서 직명을 내리는 것이 상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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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총제사 / 都摠制使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 후기 삼군도총제부의 최고지휘관. 삼군도총제부는 1391년(공양왕 3)에 이성계가 당시 중앙 및 지방의 여러 원수에게 분할되어 있던 병권을 통합하여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종래의 전투군 편제인 오군에서 전군과 후군을 없애고 삼군으로 편성한 것이다. 이성계가 초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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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치법 / 倒置法 [언어/언어/문자]
수사법 중 변화법의 하나. 도치법에는 “보고 싶어요, 그녀가……”, “꽃이 지네, 한 잎, 한 잎” 에서처럼 문장 성분을 바꿔 놓는 경우뿐만 아니라, “그립구나, 헤어지고 나니……” 에서처럼 절 내지는 문장을 바꿔 놓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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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신오쿠보한인촌 / 東京新大久保韓人村 [지리/인문지리]
도쿄(東京)도 신주쿠(新宿)구에 위치한 한국식의 음식점, 주점, 패션 가게, 잡화점 등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 행정 구역으로 말하자면 도쿄(東京)도 신주쿠(新宿)구의 오쿠보(大久保) 1~2정목(丁目) 및 햐쿠닌초(百人町) 1~2정목을 중심으로 한국식의 음식점, 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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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정서 / 도쿄의정서 [역사/근대사]
1898년 4월 25일 도쿄에서 러시아와 일본이 체결한 한국문제에 관한 러일의정서. 1898년 4월 8일 일본 외무대신 니시 도쿠지로는 러시아정부에 협상 초안에 관한 일본정부의 입장을 제시, 양국은 한국의 주권과 독립을 인정하며 국내문제 간섭을 자제하고 러시아와 일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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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묵 / [생활/식생활]
도토리녹말을 물에 풀어 끓인 다음 굳힌 음식. 우리 민족은 석기시대부터 도토리를 식용하여 왔다. 그것은 이 시대의 유적지인 서울 강동구 암사동, 경기도 하남시 미사동, 황해도 봉산군 지탑리 등에서 모두 야생도토리가 나오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일찍부터 식용되어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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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통사 / 都統使 [정치·법제/국방]
고려 후기 출정군의 최고사령관. 1360년(공민왕 9) 왜구가 대규모로 침입하자 좌정승 유탁을 경기병마도통사로 임명하여 동강 및 서강의 병마사들을 지휘토록 한 것이 최초의 출현이다. 지휘체계의 제도 정비는 1369년 북원과의 외교를 단절하고 그에 대한 대비책으로 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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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투락 / 都多益 [생활]
조선 시대 원삼이나 활옷의 혼례복을 입고 족두리나 화관을 쓴 뒤 쪽 뒤에 길게 늘이는 댕기의 일종. 다홍색이나 검정색 사 또는 단으로 만든다. 형태를 보면 10-12㎝폭으로 만들어 중앙에서 제비 부리 형으로 접어두 가닥이 되게 한다. 가운데 뾰족한 부분에서 가로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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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평의사사 / 都評議使司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 후기 국가의 최고 정무기관. 도병마사는 중서문하성과 중추원의 양부에서 임명된 판사와 사·부사·판관으로 구성되어 양계의 국방·군사 문제만을 논의하던 임시회의기관이었다. 도평의사사는 중앙의 여러 관청을 총령하고, 지방의 제도안렴사(諸道按廉使)에게 공문을 보내며,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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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포 / 道袍 [생활/의생활]
선비들이 평상시에 입던 겉옷. 조선 중기 이후 많이 착용하였으며, 관리들도 관청에 나아갈 때를 제외하고 사사로이 외출할 때에는 일반적으로 착용하였다. 도포의 기원에 대하여 ≪성호사설≫과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는 도교나 불교에서 나온 것으로, 원래는 승려의 권투(圈套)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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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포서원 / 道浦書院 [교육]
강원도 춘천시 서면 신매리에 있었던 서원. 1650년(효종 1)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신숭겸(申崇謙)·신흠(申欽)·김경직(金敬直)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1868년(고종 5)에 흥선대원군의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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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안사 / 到彼岸寺 [종교·철학/불교]
불교 사찰의 하나.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의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이다. 강원도 철원군 동송면 관우리 화개산에 있다. 865년 도선이 창건하였다. 국가의 비보사찰 가운데 하나였다. 1898년 화재로 소실된 후 주지 월운이 중수하였다. 문화재로는 국보 제63호인 도피안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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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할사 / 都轄司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평안도·함경도 등 특수지방에 설치한 토관의 관서. 세종 때에는 함흥부·평양부의 경우와 같이 5품아문인 도부사(都府司)로 일컬어오던 것이, 1462년(세조 8) 토관제를 개편할 때 의주·회령을 비롯한 경원·경성·온성·부령·강계 등지에는 정6품아문인 도감사(都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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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항사 / 都航司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 전기 수군을 관장하던 관서. 918년(태조 1)에 한찬 벼슬에 있던 귀평이 도항사령으로 임명된 것으로 보아 태봉 때 설치된 기구를 이어받은 것 같다. 그 임무는 대체로 수군을 관장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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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해가 / 渡海歌 [문학/고전시가]
조선 고종 때 조희백(趙熙百)이 지은 기행가사. 내용은 4단으로 짜여 있다. 기사(起詞)에서는 함라태수(咸羅泰守)에 제수되어 임지에 부임하여 집무하는 사실을 노래하였으며, 승사(承詞)에서는 팔읍봉세(八邑捧稅)의 세곡 조운을 위하여 서울로 향하여 출발하는 사실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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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호부 / 都護府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조선시대 지방 행정기구. 대도호부와 도호부의 두 가지가 있다. 도호부는 고려의 제도를 이어온 지방관의 명호로, 태종(太宗) 6년에 지방행정체계가 정비되면서 대도호부(大都護府)·목관(牧官)은 정3품으로 도호부(都護府)는 종3품으로 정해져서, 도호부(都護府)는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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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 / 道化 [지리/인문지리]
전라남도 고흥 지역의 옛 지명. 본래 보성군 타주부곡(他州部曲)이었는데, 1088년(선종 5) 도화로 고쳐 현으로 승격시켰다. 1441년(세종 23) 흥양현(興陽縣)에 예속시키면서 폐현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고흥군이 되어 도화면이 되었다. 남단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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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녀비형랑설화 / [문학/구비문학]
신라 진지왕 때 미녀 도화랑(桃花娘)과 그의 아들 비형(鼻荊)에 관한 설화. 이물교구설화(異物交媾說話) 중 사자교혼(死者交婚)에 속하는 설화이다. 구전되어 오기보다는 문헌에 기록되어 전승된다. 이 도화녀비형랑의 경우 이미 죽은 왕이, 불가시적(不可視的)인 존재까지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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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서 / 圖畫署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에 그림 그리는 일을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 도화서에 관한 제도적 규정은 ≪경국대전≫에 보인다. 도화서는 종6품 아문으로서 그 직능은 ‘장도화(掌圖畫)’라고만 되어 있다. 여기에는 정직으로서 제조 1인과 종6품인 별제 2인, 잡직으로서 화원 20인과

종교·철학(42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