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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산가 / 陽山歌 [문학/고전시가]

    신라시대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노래. 가사는 전하지 않으며, 제작동기가 『삼국사기』 열전(列傳) 제7 김흠운조(金歆運條)에 전하며, 같은 내용이 축약되어 『증보문헌비고』 권106 악고(樂考) 17에 옮겨져 있다. 655년(태종무열왕 2) 낭당대감(郎幢大監) 김흠운이 백

  • 양산남부동패총 / 粱山南部洞貝塚 [역사/선사시대사]

    경상남도 양산시 남부리에 있는 삼국시대 전기(원삼국시대)의 조개더미[貝塚]유적. 이 양산패총은 동래패총·김해패총 등과 함께 농경과 야철(冶鐵), 그리고 사슴사냥 등을 통해 풍요로운 생업 경제를 영위했던 당시 낙동강 강안 일대 주민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생활 유적이다.

  • 양산다방동패총 / 梁山多芳洞貝塚 [역사/선사시대사]

    경상남도 양산시 다방동에 있는 원삼국시대의 조개더미. 구릉 정상부의 대지에 형성되어 있다. 입지조건이 이와 비슷한 것으로는 김해·웅천 패총 등이 있는데, 이렇게 높은 위치는 당시의 해수면을 고려해 보아도 높은 위치로서 그 형성목적이 방어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 양산대성암소장동인시화 / 梁山大聖庵所藏東人詩話 [문학/한문학]

    경상남도 양산시의 대성암에 소장되어 있는 서거정의 시화집.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인 사가정(四佳亭)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이 편찬한 시화집으로, 우리나라의 시와 시인을 소재로 쓴 문학비평서이다. 서거정의 나이 57세 때인 1477년(성종 8)에 간행된 초간

  • 양산대성암소장두공부시범덕기비선 / 梁山大聖庵所藏杜工部詩范德機批選 [문학/한문학]

    경상남도 양산시의 대성암에 소장되어 있는 청강 범덕기의 두공부시 비평서. 1410년(태종 10, 영락 8)에 해주목사 유은지(柳隱之)의 지원으로 간행되었으며, 영락 8년 경인년 11월에 연안부(延安府)의 유학교수관(儒學敎授官) 송석견(宋石堅)이 발문을 썼다는 간기가 뚜

  • 양산대성암소장집주두공부초당시 / 梁山大聖庵所藏集註杜工部草堂詩 [문학/한문학]

    1431년(세종 13) 경상도 밀양에서 두공부시의 주석서인 남송본를 번각한 목판본. 중국 남송의 채몽필(蔡夢弼)이 두보(杜甫)의 시에 대한 여러 주석을 모아 편집한 책이다. 선덕 6년 신해, 즉 1431년(세종 13) 11월에 경상도 밀양에서 남송본을 그대로 번각한 목

  • 양산도해 / 量山度海 [언론·출판/출판]

    자부(子部) - 천문·산법류(天文·算法類) 편자미상, 필사본, 불분권 1권(29장). 행수법(行數法), 구일법(求一法), 구귀법(求歸法) 등 수학 법칙에 대한 설명과 예시, 그림 등을 필사해 놓은 수학책이다.

  • 양산백전 / 梁山柏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권 1책. 「양산백전」은 산백과 양대가 혼사장애에 부딪혀 초현실적인 ‘죽음과 재생’을 통해 애정을 성취하는 결연담과, 산백의 영웅적 활약을 그린 영웅담을 결합시킨 소설이다. 이 작품은 다른 작품보다 초현실적이고 신비적인 요소를 두드러지게

  • 양산산업단지 / 梁山産業團地 [지리/인문지리]

    경상남도 양산시 유산동에 있는 산업단지. 양산천과 유산천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양 하천을 따라 입지하며 부산에서 15㎞, 경부고속도로 양산인터체인지에서 1㎞의 거리에 있다. 인접한 부산의 도시화와 공업화로 인한 부산 시내에서의 공장용지 부족과 지가 앙등으로 공업용지에 대

  • 양산산업단지 / 梁山産業團地 [경제·산업/산업]

    경상남도 양산시 유산동에 있는 산업단지. 산천과 유산천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양 하천을 따라 입지하며 부산에서 15㎞, 경부고속도로 양산인터체인지에서 1㎞의 거리에 있다. 인접한 부산의 도시화와 공업화로 인한 부산 시내에서의 공장용지 부족과 지가 앙등으로 공업용지에 대한

  • 양산서원 / 梁山書院 [교육/교육]

    전라남도 보성군 문덕면 양동리에 있었던 서원. 1712년(숙종 38) 지방유림의 공의로 염세경(廉世慶)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1868년(고종 5)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 양산원적산봉수대 / 梁山圓寂山烽燧臺 [경제·산업/통신]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석계리에 있는 봉수대. 경상남도 기념물 제118호.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봉수대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면, 양산 원적산봉수는 남쪽으로는 동래현 계명산봉수, 북쪽으로는 언양현 부로산봉수와 연락한다고 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나 『경상도지리지』

  • 양산팔경 / 陽山八景 [지리/자연지리]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의 여덟 군데의 경승지. 영국사(寧國寺)·강선대(降仙臺)·비봉산(飛鳳山)·봉황대(鳳凰臺)·함벽정(涵碧亭)·여의정(如意亭)·자풍당(資風堂)·용암(龍巖) 등 8개의 경승지이다. 영국사는 양산면 누교리의 지륵산(智勒山) 중턱에 있는 신라의 고찰로 660

  • 양산향교 / 梁山鄕校 [교육/교육]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에 있는 향교. 1406년(태종 6)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나 위패는 유생 정호인(鄭好仁)이 송림정결처(松林淨潔處)에 매안(埋安)하여 화를 면하였다. 1603년(선조

  • 양성 / 陽城 [지리/인문지리]

    경기도 안성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의 사복홀(沙伏忽)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적성(赤城)이라 고치고 백성군(白城郡)의 영현으로 하였다. 고려 초양성(陽城)으로 고쳤고, 현종 때 수주(水州)에 예속되었으며, 명종 때 양성현이 되어 감무를 두었다. 1413년(태종

  • 양성향교 / 陽城鄕校 [교육/교육]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동항리에 있는 향교. 조선 숙종 때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창건연대 및 자세한 연혁은 미상이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대성전, 명륜당·내삼문·외삼문 등이

  • 양소저전 / 楊小姐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책. 국문필사본. 필사자는 윤승희, 필사연대는 정해(丁亥, 1887?)로 되어 있다. 이 작품은 양소저의 기구한 일생을 중심으로, 다양한 설화적 요소들을 삽입한 이야기이다. 전처의 자식들을 모해하는 계모, 남복으로 변장하여 도망하는 처녀

  • 양수리 / 兩水里 [지리/자연지리]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의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곳. 양수리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해 한강을 이루는 곳이다. 북한강은 금강산에서 발원해 남쪽으로 흐르면서 강원도 철원에서 금성천을 합한다. 이후 화천군 화천읍을 지나 남쪽으로 흐르다가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에서

  • 양신화답가 / 良辰和答歌 [문학/고전시가]

    작자·연대 미상의 가사. 형식은 2율각(律刻) 1구로 헤아려 모두 83구이다. 음수율은 4·4조가 52구로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3·4조가 28구이며, 2·4조, 3·3조, 4·3조가 각 1구씩으로 되어 있다. 좋은 계절을 맞이하여 김소저(金小姐)와 박주사(朴

  • 양씨아미본풀이 / 梁氏─本─ [문학/구비문학]

    제주도 무속의 조상본풀이의 하나. 서귀포시 남원읍 예촌(禮村: 지금의 신례리·하례리)의 양씨집안에 계승되는 수호신의 내력담이다. 이들 집안에서 굿을 할 때 심방(무당)에 의하여 불려진다. 현재 1편이 채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 예촌 양좌수 집안에

  • 양양 오색리 오색약수 / 襄陽五色里五色樂水 [지리/자연지리]

    강원도 양양군 서면 오색리에 있는 약수터. 천연기념물 제529호. 양양 서쪽 20㎞, 한계령 동남쪽 5㎞ 지점에 위치하며, 설악산 대청봉에서 서남쪽으로 8㎞ 지점에 있다. 약수마을에서 개울을 따라 200m 정도 가다 보면 대구집교라는 다리 밑 너럭바위 위의 암반에서 약

  • 양양 포매리 백로와 왜가리 번식지 / 襄陽 浦梅里 白露─繁殖地 [지리/인문지리]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포매리에 있는 백로 및 왜가리 번식지. 천연기념물 제229호. 면적 267,892㎡. 양양에서 남쪽으로 국도를 따라 약 25㎞ 지점에서 서쪽으로 600m, 해안에서는 700m 떨어진 구릉에 번식지인 적송림이 올려다 보인다. 백로와 왜가리는 70∼8

  • 양양가평리주거지 / 襄陽柯坪里住居址 [역사/선사시대사]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가평리에 있는 초기철기시대의 주거지. 내부시설로는 상면의 동북모서리 부분에 진흙더미 속에 묻힌 노지(爐址)가 드러났다. 노지의 구조는 불확실하나 부뚜막과 같은 시설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길이 20∼30㎝, 두께 5㎝ 정도의 네모진 벽돌모양의 돌이

  • 양양곡 / 襄陽曲 [문학/한문학]

    조선 중기에 이달(李達)이 지은 한시. 봄날의 한가한 서정을 강원도 양양 지방의 풍물에 담아 노래한 시이다. 칠언절구로, 『손곡집(蓀谷集)』과 『국조시산(國朝詩刪)』 권3 등에 수록되어 있다. 1·2구에서는 큰 둑의 서쪽 너른 호수에 해가 지려고 하는데, 꽃 아래 노니

  • 양양광산 / 襄陽鑛山 [지리/인문지리]

    강원도 양양군 서면 장승리에 있었던 자철광산(磁鐵鑛山). 지질은 편마암(片麻岩)·섬장암(閃長岩)·변질석회암(變質石灰岩)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접촉광상(接觸鑛床)으로서 대체적인 경사는 50∼70°NE이며, 광맥이 일정하지 않고 변동이 심하다. 일제강점기부터 소규모로 개

  • 양양국제공항 / 襄陽國際空港 [지리/인문지리]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공항로에 있는 국제공항. 양양국제공항 부지는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및 한국 공군의 임시 이착륙을 위한 활주로였던 곳이다. 1986년부터 영동지역 관광산업 발전 및 교통편의 개선을 위하여 신 국제공항 건설을 추진하기 시작하였으며, 1996년 2월 기

  • 양양향교 / 襄陽鄕校 [교육/교육]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임천리에 있는 향교. 고려 충혜왕때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당시 존무사(存撫使) 안축(安軸)이 양양부 구교리(舊校里)에 설립하였다 하며, 조선시대에 와서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1682년(

  • 양어 / 養魚 [경제·산업/산업]

    물고기의 습성에 맞도록 인위적인 시설과 수단을 가하여 물고기를 기르는 일. 정부 차원에서 내수면 개발을 위해 양어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은, 1915년 경상남도 밀양군 산외면 다죽리 앞에 온수성 양식용 도립 양식어장을 시설하여 처음으로 잉어새끼를 생산하여 민가에 배부한

  • 양역 / 良役 [경제·산업/경제]

    조선시대 역역(力役)징발과 재정확보를 위해 양인 등에게 부과하던 신역의 통칭. 양역의 주된 형태가 군사활동과 관련된 군역이고 군역이 노비 등 천인을 제외한 양인에게만 부과되었기에 흔히 군역과 구별 없이 혼용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속오군의 편성으로 군역 부담자

  • 양역이정청 / 良役釐整廳 [정치·법제/법제·행정]

    1703년 양역 쇄신을 위해 설치되었던 관서. 임진왜란 이후 양인 장정들은 대부분 군포를 바치는 납포군으로 바뀌게 되었다. 숙종초부터 양역변통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었다. 마침내 1703년 9월에 이를 전담하는 기구로 양역이정청을 설치하였다. 이후 1750년(영

  • 양우규 / 梁禹圭 [종교·철학/유학]

    1629년(인조 7)∼1714년(숙종 40). 조선 후기 유생. 증조는 양산욱, 조부는 양효용이다. 부친 양지남과 모친 성산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이향신의 딸이다. 김성로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거문고와 책을 즐기며 후원에 커다란 살구나무 아래 누워 지내면서 ‘

  • 양원 / 良媛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세자궁의 종3품 내관. 조선 초기 세종 때의 동궁내관제도에 의하면 양원은 세자의 후궁 중 양제 다음의 등급인 정3품이었으나, ≪경국대전≫에 의하면 세자의 후궁 중 두번째 서열로 종3품의 품계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세자가 왕위에 오르면 내명부 내관으로서 품

  • 양위릉청명제홀기 / 兩位陵淸明祭笏記 [정치·법제]

    능에서 지내는 청명제의 의식 순서를 적은 홀기. 끝에 작은 글씨로 "단 복장은 흑단령, 모, 대, 흑피화로 한다"고 적혀 있다. 일본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일제강점기 이왕직에서 작성하였다.

  • 양윤식 / 楊潤植 [정치·법제/법제·행정]

    1902년∼1977년. 법률가. 호는 일청(一靑), 본관은 청주(淸州), 서울 출신이다. 1924년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27년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하여 서울에서 변호사생활을 시작하였다. 광주학생사건에 관련된 사람들과 민족운동이나 사회운동을 하다가 구속된 사람

  • 양응수 / 楊應秀 [종교·철학/유학]

    1700년(숙종 26)∼1767년(영조 43). 조선 후기 유학자. 부친 양처기와 모친 최휴지의 딸이다. 권집의 문하에서 수학, 중년에는 이재에게서 학문의 폭을 넓혔다. 일찍이 벼슬길을 버리고 오로지 경학과 성리학에 전념하여〈사서강설〉을 남겼으며, 천문학에도 밝아〈혼

  • 양응정 / 梁應鼎 [종교·철학/유학]

    1519(중종 14)∼1581(선조 14). 조선 중기의 문신. 담 증손, 할아버지는 이하, 아버지는 팽손, 어머니는 김화의 딸이다. 응태의 아우이다. 1552년(명종 7)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되고, 공조좌랑, 진주목사, 공조참판, 대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 양이목사본풀이 / 梁─牧使本─ [문학/구비문학]

    제주도 무속의 조상본풀이의 하나. 제주양씨(濟州梁氏) 명월파(明月派) 집안에 계승되는 수호신의 내력담이다. 이 집안에서 굿을 할 때, 이 수호신의 원한을 풀고 수호를 빌기 위하여 심방(무당)에 의하여 불려진다. 옛날 양이목사가 제주목사로 부임하였다. 당시는 해마다 제주

  • 양잠경험촬요 / 養蠶經驗撮要 [언어/언어/문자]

    1415년(태종 15) 태종의 뜻에 따라 원나라의 농서인 『농상집요(農桑輯要)』에서 양잠에 관한 부분을 번역한 책. 불분권 1책. 우대언(右代言) 한상덕(韓尙德)이 이두로 번역하였고, 경상도관찰사인 안등(安騰)이 주선하여 경주에서 간행하였다. 현재 원간본은 전하지 않고

  • 양잠조합 / 養蠶組合 [경제·산업/경제]

    1910년대 초에 일제가 조선을 잠업원료공급지로 개편하기 위해 만든 조합. 일제는 잠사원료의 원활한 확보를 위해서 조선에 양잠장려정책을 강압적으로 실시하였고, 이를 담당할 기구로 양잠조합을 각 군과 도(島) 단위로 설치하였다. 그러나 농민들은 뽕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고

  • 양재의식 / 禳災儀式 [종교·철학/불교]

    불교에서 행하는 천재지변의 소멸을 기원하는 종교의식. 양재를 목적으로 하는 불교의식은 문두루법(文豆婁法), 다라니의 송주 등 밀교의 비법으로 행하여진다. 고려시대에는 양재를 위한 불교의식이 궁전에서 자주 행하여졌다. 그것은 국왕의 정치적 기능이 천재지변에 대응한다는 데

  • 양재천 / 良才川 [지리/자연지리]

    경기도 과천시에서 발원해 서울특별시 서초구와 강남구를 지나 탄천(炭川)으로 유입하는 하천. 『한국지명총람』에 따르면 양재동은 쓸 만한 인재들이 모여 사는 동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양재천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공수천(公需川),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 양재홍 / 梁在鴻 [역사/근대사]

    1881-미상. 독립운동가. 전라남도 화순 출신. 1910년 경술국치 이후 국권회복에 뜻을 품고 1917년 김교락(金敎洛)·정동근(鄭東根)·문재교(文在敎)·김영하(金榮夏)·고성후(高成厚) 등과 동지적 결합을 이룬 뒤, 나주·함평·화순·순천 등 주로 전라남도 지역에서 자

  • 양전 / 量田 [경제·산업/경제]

    조세 부과를 목적으로 한 전지의 넓이를 측량. 양전의 방식은 조세법과 함께 변천하였다. 조선초기 양전법은 세종 26년(1444)에 공법이란 이름아래 전분육등·연분구등의 정액세법으로 변경. 전지의 등급이 여섯으로 세분되는 한편, 척의 길이도 종래 농부의 수지에 의거하던

  • 양전백 / 梁甸伯 [역사/근대사]

    1869∼1933.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 호는 격헌(格軒), 평안북도 선천 출신이다. 26세에 기독교에 입교하여, 1897년 예수교장로회 전도사가 되었고, 1907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여, 선천 북교회에서 성직자 생활을 하였다. 1919

  • 양전편고 / 兩銓便攷 [언론·출판]

    저자 고종(1852-1919). 목활자본. 2권 2책. 책은 구성은 1책은 62장, 2책은 41장이다. 이 책은 1865년(고종 2) 고종의 명으로 편찬된 인사 행정에 관한 법규와 관례를 모은 업무 지침서이다. 제목에 '양전'은 이조와 병조를 합한 것이며, '편고'는

  • 양정온천 / 楊亭溫泉 [지리/인문지리]

    함경북도 명천군 양정리에 있는 온천. 명천군의 서쪽 경계는 함경산맥에서 뻗어온 만탑산줄기로 이루어져 있다. 이 산줄기와 나란한 방향으로 화대천이 남동쪽으로 흐르는데, 양정온천은 화대천의 서쪽 기슭에 위치해 있다. 명천읍에서 남쪽으로 10㎞ 떨어진 곳이다. 온천의 이름은

  • 양정재집 / 養正齋集 [문학/한문학]

    조선 후기의 문인 김도응(金道凝)의 문집. 1권 1책. 목활자본. 저자가 죽은 지 180년 뒤에 9세손 종협(種協) 등이 간행하였다. 권두에 심응태(沈膺泰)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7세손 현구(顯龜)와 9세손 용배(容培)·종협의 발문이 있다. 시 94수, 부(賦) 3편

  • 양제안 / 梁濟安 [역사/근대사]

    1860-1929. 의병장·독립운동가. 본관은 남원(南原). 호는 벽도(碧濤). 경상북도 영일 출신. 1876년(고종 13) 병인양요 때 격문을 만들어 척양척왜를 주장하였으며, 1894년 충청북도 진천에 의병총본영을 설치하고 의병을 모집, 훈련시켜, 1895년 이기찬(

  • 양조통상수호사은예부자 / 襄助通商修好謝恩禮部咨 [정치·법제]

    조선이 1882년 미국과 체결한 조미통상수호조약을 청이 도와준 것에 대해 고종이 사은표를 청 황제에게 전달해주기를 요청하기 위해 청 예부에 보낸 자문.

  • 양조통상수호사은표 / 襄助通商修好謝恩表 [정치·법제]

    조선이 1882년 미국과 체결한 조미통상수호조약을 청이 도와준 것에 대해 사은하기 위해 조선에서 청에 보낸 사은표. 지제교 이응진(李應辰)이 지었다.

  • 양조통상수호사은표수미 / 襄助通商修好謝恩表首尾 [정치·법제]

    조선이 1882년 미국과 체결한 조미통상수호조약을 청이 도와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고종이 청 황제에게 사은한 표문의 수미. 표문은 제술관 홍우일(洪祐逸)이 지었다.

  • 양주 / 楊州 [문학/고전시가]

    고려시대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요. 가사내용과 창작동기는 전하지 않으며, 단지 노래의 소용과 불린 장소만이 『고려사』 권71 악지(樂志) 속악조(俗樂條)에 전하고, 같은 내용이 『증보문헌비고』 권106 악고(樂考) 17에 옮겨져 있다. 양주는 고려시대의 한양부(漢陽府

  • 양주 / 梁州 [지리/인문지리]

    경상남도 양산 지역의 옛 지명. 신라 때삽량(歃良)이었는데, 665년(문무왕 5) 상주(上州)와 하주(下州)를 합쳐 삽량주로 하였다. 757년(경덕왕 16) 한화정책(漢化政策)으로 지명을 한자명으로 고칠 때 양주(良州)가 되었고 헌양(巚陽)을 속현으로 하였다. 940년

  • 양주동 / 梁柱東 [문학]

    1903-1977 국문학자. 1928년 일본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평양 숭실전문 교수가 되었다. 카프문학운동에 맞서 국민문학운동을 전개, 신라 향가를 연구 국어학 분야에 큰 업적을 남겼다. 1945년 동국대 교수, 1954년 학술원 종신회원, 1958년 연세대

  • 양주백수현가옥 / 楊州白壽鉉家屋 [생활/주생활]

    경기도 양주군 남면 매곡리에 있는 조선 말기의 주택. 중요민속자료 제128호. 명성황후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피난할 집으로 지었다고 하는데, 현재 안채의 일곽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원래 사랑채와 별당채가 더 있었다고 하며 안채, 행랑채 밖에 사랑채의 터전이 남아

  • 양주봉전 /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국문 필사본·활자본. 양주봉과 장소저는 어려서 혼약한 사이이다. 간신 왕승상의 참소로 양주봉의 가족이 흩어져 위기에 빠지자, 장소저의 부모도 세상을 떠난다. 장소저는 왕승상 부자의 핍박을 피하여 남장을 하고서 방랑하다가 장군 서운경의 제자로

  • 양주삼 / 梁柱三 [종교·철학/개신교]

    1879-미상. 목사·사회사업가. 평안남도 용강 출신. 20세에 기독교에 입교하고 상경, 양잠전습소(養蠶專習所)에 다니던 중 미국인 선교사의 주선으로 외국유학길에 올랐다.1901년 상해(上海) 중시학원(中西學院)에 입학하여 감리교세례를 받았으며, 1905년 이 학교를

  • 양주소놀이굿 / 楊州─ [문학/구비문학]

    경기도 양주 일대에서 전승되고 있는 굿 형식의 연희(演戱). 중요무형문화재 제70호. 소굿·쇠굿·소놀음굿·마부타령굿 등으로 불리기도 하며, 경사굿의 일부로 제석거리에 이어 행해진다. 「양주소놀이굿」은 단순한 농경의례나 무속에서 벗어나 무당과 원마부·곁마부 사이의 대화와

  • 양주향교 / 楊州鄕校 [교육/교육]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에 있는 향교. 1401년(태종 1)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6·25 때 폐허화되었던 것을 1959년에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무(東廡)·서무(西廡)·내삼문(內三門)·

  • 양준명 / 梁濬明 [역사/근대사]

    1876-1949.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선천 출생. 1912년 데라우치(寺內正毅)조선총독암살사건 연루 혐의로 일본경찰에 잡혀 1심에서 징역 7년을 언도받았다가 2심에서 무죄로 풀려났다. 1919년 2월 신성중학교(新星中學校)교사 때 이승훈(李昇薰)의 지시로 교회목사

  • 양지 / 陽智 [지리/인문지리]

    경기도 용인 지역의 옛 지명. 본래 수주(水州)의 양량부곡(陽良部曲)이었는데, 1399년(정종 1) 양지현으로 고쳐 감무를 두었고, 1413년(태종 13) 현감을 두고 치소를 광주의 추계향(秋溪鄕)으로 옮겼다. 이 때 죽주(竹州)의 고안(高安)·대곡(大谷)·목악(木岳)

  • 양지설 / 良知說 [종교·철학]

    양명학의 핵심 개념. 주희가 <대학>의 '격물치지'의 '지'를 '지식'의 개념으로 풀이한 것에 대해 왕양명은 '양지'의 개념으로 풀이했다. 그가 말하는 양지는 맹자의 '양지', '양능'을 기본으로 한다. 그는 이 두 개념을 일원적으로 파악하여 주체와 객체의 주재로 삼았

  • 양지아문 / 量地衙門 [역사/근대사]

    구한말 전국의 토지를 측량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서. 1898년 탁지부 내에 설치되었다. 1901년 전국적인 흉년으로 양전사업이 중단되었고 양지아문은 1902년 지계아문에 통합되었다. 관원으로 총재 3인, 부총재관 2인, 기사원 3인, 서기 6인 등이 있었다.

  • 양지향교 / 陽智鄕校 [교육/교육]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에 있는 향교. 1523년(중종 18)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대성전과 명륜당·내삼문(內三門)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 양창을 / 梁昌乙 [역사/근대사]

    1900-193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평안북도 희천군(熙川郡) 북면(北面)이다. 1919년 3·1운동 이후 상해 임시 정부의 국내주재(國內駐在) 대원(隊員)으로서 천마대(天摩隊)에 가입하여 평안북도 위원(渭原) 일대에서 군자금 모금을 담당하였고, 또

  • 양처제 / 梁處濟 [종교·철학/유학]

    1643년(인조 21) 5월 14일∼1716년(숙종 42) 12월 5일. 조선 후기 유학자. 증조부는 양희, 조부는 양홍주, 아버지는 양원이다. 처부는 장선연이다. 박세채와 윤증을 사사하여 학문의 요지와 비결을 얻었다. 동몽교관으로 있으면서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하

  • 양천 / 陽川 [지리/인문지리]

    서울특별시 강서 지역의 옛 지명. 본래 고구려의 제차파의현(齊次巴衣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공암(孔巖)으로 고쳐 율진군(栗津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1018년(현종 9) 수주(樹州)에 속하였고, 1310년(충선왕 2) 양천현이 되어 현령을 두었다. 조선시대

  • 양천서원 / 良川書院 [교육/교육]

    경상북도 군위군 군위읍 내량리에 있는 서원. 1786년(정조 10)에 홍언박(洪彦博, 1309∼1363)과 홍위(洪瑋, 1559∼1624)를 제향하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1798년(정조 22)에 홍관(洪灌, ?∼1126)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에

  • 양천주 / 養天主 [종교·철학/천도교]

    사람의 몸에 한울님을 기른다는 뜻으로, 동학의 근본사상 가운데 하나. 사람의 몸에 이미 모시고 있는 바 그 한울님을 항시 끊임없이 힘써 길러야만 된다는 최시형의 주장이다. 양천주는 동학의 사상적인 극의로서의 시천주의 자각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볼 때, 이것은 시천주사상의

  • 양촌선생문집 / 陽村先生文集 [언론·출판/출판]

    집부(集部) - 별집류(別集類) 권근(權近) 저, 조선사편수회 편, 영인본, 조선총독부, 1937, 40권 8책. 여말선초의 양촌(陽村) 권근의 시문집이다. 경성제국대학장본 목판본을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조선사료총간(朝鮮史料叢刊) 第13》으로 영인한 책이다.

  • 양촌응제시 / 陽村應制詩 [문학/한문학]

    명나라 태조가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 권근(權近)에게 친제하여 하사한 ‘태조고황제어제시(太祖高皇帝御製詩)’ 3수와 권근이 명 태조의 명에 의하여 지은 응제시(應製詩) 24수를 모아 간행한 책. 1책. 목판본. 보물 제1090호. 1462년(세조 8)에 간행되었다. 13

  • 양태노래 / [문학/구비문학]

    갓양태를 결으면서 부르는 민요. 이 노래는 갓양태가 이루어지던 영·호남지방에 띄엄띄엄 분포되었지만 조선조 때부터 갓양태 겯기를 주요 부업으로 일삼아오던 제주도 부녀자들에 의하여 주로 전승된다. 삼양(三陽)·화북(禾北)을 비롯한 제주시 일대와 신촌(新村)·와흘(臥屹) 등

  • 양파담원 / 暘葩談苑 [문학/한문학]

    조선 후기에 임렴(任廉)이 편찬한 시화총집(詩話叢集). 8권 8책. 필사본. 1824년(순조 24)에 편집되었다. 권두에 자서(自序)가 있다. 편자는 자서에서 자신의 고조부 방(埅)이 찬(撰)한 『수촌만록(水村漫錄)』이 너무 소략하여 제가(諸家)의 것을 보태어 만들었다

  • 양팽손 / 梁彭孫 [종교·철학/유학]

    1488(성종 19)∼1545(인종 1). 조선 중기의 문신. 사위 증손, 할아버지는 담, 아버지는 이하, 어머니는 최혼의 딸이다. , 1516년 식년 문과에 갑과로 급제했으며, 또 현량과에 발탁되었다. 교리, 정언, 용담현령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학포유집≫ 2

  • 양평대심리유적 / 楊平大心里遺蹟 [역사/선사시대사]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대심리에 있는 초기철기시대의 유물포함층 유적. 팔당댐이 완공된 후 수몰되었다. 1972년팔당댐 수몰지구 유적발굴조사의 일환으로 서울대학교박물관과 고고학과에 의해 발굴되었다. 유적지는 남한강에 있는 표고 약 30m의 얕은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19

  • 양평도 / 襄平道 [지리/인문지리]

    고구려시대의 교통로. 양평도란 남도를 가르키는 말이며, 수양제가 고구려를 쳐들어 올 때 우군(右軍)이 이 길로 진군했다. 광개토왕과 비려(碑麗)의 싸움은 태자하(太子河) 상류에서 벌어졌고 이곳은 바로 두 길의 중간지점으로 양평도에서 몇 십리 밖에 안 된다. 양평도는 비

  • 양풍운전 / 楊豊雲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책. 국문 목판본·필사본·활자본. 「양풍운전」은 전반부에서는 가정소설적 성격을, 후반부에서는 영웅소설적 성격을 지닌 작품으로 이해되어왔다. 그러나 이 작품은 교첩의 간교한 마음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가정문제의 여러 변수를 제시하고 있다는

  • 양한나 / 梁漢拿 [역사/근대사]

    1893-1976. 독립운동가·사회사업가. 부산의 기독교 가문에서 태어나 상경하여 진명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학비조달의 어려움으로 부산으로 돌아가 1911년 일신여학교(日新女學校)제1회졸업생이 되었다. 마산 의신여학교(義信女學校)에서 7년간 교사로 근무하였으며,

  • 양한묵 / 梁漢默 [역사/근대사]

    항일기의 독립운동가(1862-1919). 1902년 동학에 입교하고, 손병희 등과 함께 이용구로 하여금 진보회를 결성하게 했다. 1905년 귀국하여 헌정연구회를 조직했다. 1919년 2월 27일 김상규의 집에서 천도교 대표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 3월 1일 오후

  • 양한위 / 梁漢緯 [역사/근대사]

    1883-1949. 독립운동가. 충청북도 옥천 출생. 1910년 8월 나라를 잃게 되자 만주로 망명하였다. 그곳에서 독립운동에 뜻을 둔 맹보순(孟甫淳)·양기탁(梁起鐸)·이병옥(李秉玉) 등 10여명과 수시로 회합, 협의하면서 독립운동의 기본방략을 수립하고 그 기반 조성을

  • 양향청 / 糧餉廳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 후기 훈련도감 소속의 재정 관서. 1593년(선조 26) 훈련도감의 발족과 함께 설치되었다. 훈련도감에서 소용되는 의복·무기·비품 등의 물품을 조달하고, 급료 등의 재정을 관리, 운영하였다. 관제로는 도제조 1원, 제조 3인, 낭청(종사관) 1인의 관원을 두었다

  • 양헌수승전비 / 梁憲洙勝戰碑 [역사/근대사]

    1873년 강화군민들이 1866년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에 침공한 프랑스군대를 격퇴한 양헌수장군의 전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화강암으로 건립된 비 앞면에는 ‘순무천총양공헌수승전비(巡撫千摠梁公憲洙勝戰碑)’라고 음각되어 있고, 비 뒷면에는 병인양요 양헌수 장군의공적이 수

  • 양현고 / 養賢庫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성균관 유생들의 식량·물품 공급을 담당한 기관. 1392년(태조 1) 양현고에 2인의 판관을 두어 관리하게 하였다가 태종 때에 판관제도를 폐지하고 사·승·녹사 각 1인씩을 두어 관리하도록 하였다. 영조 때 편찬된 ≪속대전≫에 따르면 대폭 줄여 학전 400결로

  • 양현문직절기 / 楊賢門直節記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24권 24책. 국문필사본. 이 작품은 중국 현종조의 인물인 장구령·한유·이임보·안녹산·고역사·안경서·이광필·곽자의 등을 등장시켜 사건을 구성해 놓았는데, 이는 「금향정기(錦香亭記)」와 같다. 작자가 사건 전개에 역사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 양현전심록 / 兩賢傳心錄 [종교·철학/유학]

    정조의 명으로 송대의 주희와 조선 숙종 때의 송시열의 문집 속에서 심법에 관한 내용을 뽑아 엮은 책. 8권 4책. 목판본. 1774년(영조 50) 정조가 동궁이었을 때 이시원 등에게 명해 편찬하도록 하였으며, 1795년에 간행되었다. 1856년(철종 7)에는 중간본이

  • 양화나루·잠두봉유적 / 楊花나루·蠶頭峰遺跡 [종교·철학/천주교]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천주교 순교 유적. 사적 제399호. 1866년에 제1차 병인양요가 일어나면서 양화나루와 잠두봉은 천주교와 관계를 맺게된다. 이 해 로즈(Roze)가 이끄는 프랑스 극동 함대가 조선 원정을 시도한 끝에 8월 18일 양화진을 거쳐 서강

  • 양화대교 / 楊花大橋 [지리/인문지리]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과 영등포구 양평동을 연결하는 다리. 양화대교는 두 차례에 걸쳐서 건설되었는데, 구교인 제2한강교는 한강 위에 가설된 세 번째 교량이다. 이후 교통량이 증가함에 따라 확장공사를 실시하였으며, 서울의 서부지방과 인천·김포공항·인천공항 등을 연결하는

  • 양화사 / 楊花詞 [문학/고전시가]

    고려 충목왕 때 한종유(韓宗愈)가 지은 가요. 가사는 전하지 않으며, 노래에 대한 내력과 한역가(漢譯歌)가 『고려사』 열전(列傳) 한종유조(韓宗愈條)에 전한다. 한종유는 어릴 때부터 풍채가 뛰어나고, 한때 이름 있는 사람들과 친교하면서 술을 마시고 놀았는데, 이들을 양

  • 양화진 / 楊花津 [지리/자연지리]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지역의 한강 북안에 있었던 나루터. 조선 시대 삼진(三鎭)의 하나였던 양화진(楊花鎭)이 위치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양천(陽川)을 지나 강화로 가는 조선 시대 주요 간선 도로상에 위치하였던 교통의 요지였으며, 삼남 지방에서 한강을 통하여

  • 양희지 / 楊熙止 [종교·철학/유학]

    1439(세종 21)∼1504(연산군 10).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미, 아버지는 맹순, 어머니는 정시교의 딸이다. 1474년(성종 5)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 부수찬, 경연관, 교리, 예조좌랑, 병조좌랑, 상의원정, 직제학, 좌부승지, 대사간, 충

  • 어 / 敔 [예술·체육/국악]

    음악을 마칠 때 연주하는, 서쪽에 위치한 타악기. 나무로 만든 호랑이를 형상화하여 받침대에 올려놓고 대나무로 된 채를 가지고 호랑이 머리를 세 번치고 호랑이 등에 있는 27개의 톱니를 머리에서 꼬리 쪽으로 긁어 소리 낸다. 악기의 소리에 연유하여 갈이라고도 한다. 호

  • 어간 / 語幹 [언어/언어/문자]

    일반적으로 단어의 굴절(屈折)에 있어서 변화하지 않는 기간부(基幹部). 굴절(어미변화)의 두 유형에는 곡용과 활용이 있다. 이에 따라 이론상으로는 곡용어간과 활용어간이 있으나 실제로 곡용어간은 어간 자체가 자립형식인 체언이나 체언상당어구(體言相當語句)이므로 그냥 체언이

  • 어강서원 / 漁江書院 [교육/교육]

    경상남도 의령군 용덕면 정동리에 있었던 서원. 1820년(순조 20)에 임진왜란 당시 전사한 충렬공(忠烈公) 강수남(姜壽男, 1552∼1592)을 제향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처음에는 어강사(漁江祠)로 창건하였다가 어강서원(漁江書院)으로 승원하였다. 1868년(고종

  • 어골문 / 魚骨文 [예술·체육/공예]

    토기·도자기 등의 표면에 주로 표현되는 물고기의 뼈와 같은, 즉 생선의 가시 같은 무늬. 본래는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에 주류를 이루었던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에서 나타나는 특징적인 무늬 형식인데, 그것은 마치 빗살[櫛齒] 같은 시문 도구(施文道具)로 그어서 나타낸 것이

  • 어공원 / 御供院 [역사/근대사]

    구한말 왕실의 토지개간, 종식, 천택, 강해 및 국왕에게 진상하는 사무 등을 관리하던 관청. 1904년 궁내부에 설치되었고, 경, 서무과장 각 1명, 위원 2명, 주사 3명 등을 두었다. 그러나 즉시 폐지되었다.

  • 어근 / 語根 [언어/언어/문자]

    단어형성(單語形成, word-formation) 요소의 하나로서, 더 이상 분해하면 최소의 의미를 잃게 되는 최소의미 단위. 단어에서 모든 파생접사(派生接辭)와 굴절접사(屈折接辭)를 제거한 뒤에 남는 요소를 말한다. 공시적(共時的)으로는 어간(語幹)과 같이 굴절어미(屈

  • 어기 / 語基 [언어/언어/문자]

    단어형성(單語形成)의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 중의 하나. 실질적으로 어간(語幹)을 형성하는 근본이 된다. 단어는 일반적으로 어근(語根)을 기본으로 하여 그 앞이나 뒤에 접두사나 접미사가 붙어 어간이 되고 다시 거기에 어미(語尾)가 붙는다. 그런데 어근은 대체로 역사적인

  • 어달산봉수대 / 於達山烽燧臺 [경제·산업/통신]

    강원도 동해시 대진동에 있는 봉수대. 봉수는 변경 지역의 긴급한 상황을 중앙 또는 변경의 다른 기지에 신속히 알리려는 군사적인 목적으로 설치한 것으로, 서로 잘 보이는 산봉우리에 봉수대를 설치하고 밤에는 횃불(熢)로, 낮에는 연기(燧)로 신호하였다. 이 봉수의 명칭은

  • 어두자음군 / 語頭子音群 [언어/언어/문자]

    단어의 첫머리에 있는 둘 또는 그 이상의 자음. 현대국어에는 이러한 자음군이 없다. 그런데 훈민정음이 창제된 뒤 이 문자로 표기된 문헌들을 보면 어두 위치에 서로 다른 둘 또는 세 초성을 나란히 쓴 예들이 발견된다. 이렇게 쓰는 법을 합용병서(合用竝書)라고 하였다. 그

  • 어둥이놀이 / [문학/구비문학]

    경기도 남부 지역 도당굿 중 뒷전에서 연희되는 굿놀이. 안성·수원·인천 등지의 세습무권에서 남자 무당인 화랭이들에 의하여 굿의 맨 마지막에 굿에 따라든 잡귀를 풀어먹이는 목적으로 연행된다. 인원은 2명으로 놀이의 주역인 어둥이를 맡는 화랭이를 뒷전꾼이라고 하고 상대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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