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전체] “수” 에 대한 검색결과 총 13,447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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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수 / 金健壽 [종교·철학/유학]
1804년(순조 4)∼1866년(고종 3). 조선 후기 성리학자. 학봉 김성일의 후손, 부친은 김백찬이다. 부인은 전주유씨이다. 정재 유치명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37년(헌종 3) 식년시 진사 3등 67위로 합격하였다. 1847년(헌종 13)에 스승 유치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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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 金景壽 [종교·철학/유학]
1543(중종 38)∼1621(광해군 13). 조선 중기의 의병. 아버지는 의금부도사 응정, 어머니는 조숙견의 딸이다. 유년 시절에 큰아버지인 응두에게『효경』·『소학』 등을 배운 뒤 족형인 김인후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기효간·정운용·변이중 등과 학문을 강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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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극수 / 金極洙 [역사/근대사]
1898-미상.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충청북도 영동(永同)이다. 동생으로 사회주의운동가 김두수(金斗洙)와 항일운동 공훈으로 인해 정부로부터 2006년에 애족장에 추서된 김태수(金台洙)가 있다. 1921년 9월 영동청년회 학예부장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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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 / 金綺秀 [정치·법제/정치]
조선 후기의 문신(1832∼?). 1875년 별시 문과에 급제한 뒤 에조참의·홍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수신사로서 일본에 건너가 본 군사·교육시설 등을 조정에 보고하여 근대문물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1876년 일본 수신사로 파견되었다. 저서로는《일동기유》와《수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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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 / 金基洙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한국사상 처음으로 복싱동양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한 체육인. 함경북도 북청 출생. 6·25전쟁이 일어나자 당시 12세였던 나이로 전라남도 여수로 피난하여 여항중학교를 졸업하였다. 여수권투체육관 방호남(方虎男) 사범 밑에서 운동을 시작하였다. 선천적으로 권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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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수 / 金南洙 [역사/근대사]
1899(광무 3)-1945.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호는 학산(鶴山)이다. 본적은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예안면(禮安面)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경성부(京城府: 현 서울) 종로구(鍾路區) 견지동(堅志洞)이다. 양반가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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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수 / 金魯洙 [종교·철학/유학]
1878년(고종 15)∼1956년. 일제강점기 한학자·역사학자. 하서 김인후의 후손, 부친은 김갑중이다. 3살 때에 고창군 고수로 이사, 만년에는 부안으로 옮겨 살았다. 연재 송병선의 문인, 경성제국대학도서관에서 한국사를 연구하였는데 성리학이 주전공이었다. 저서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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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수 / 金道洙 [종교·철학/유학]
?∼1742(영조 18). 조선 후기의 문신. 음보로 공조정랑·지례현감·통천군수를 역임하였다. 저서로는『춘주집』과『창선감의록』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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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 / 金東洙 [역사/근대사]
1916-1982.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광복군 제5지대 간부로 산시성 타이항산에서 적 후방공작을 전개하였다. 충칭에서 광복군총사령부 경위대장에 취임하여 활동하였다. 사단장 등을 역임하고 육군준장으로 예편하였다. 1963년에 건국훈장국민장이 수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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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수 / 金萬秀 [역사/근대사]
1894-1924.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자는 회일(會一). 일제에 의해 국권이 강탈되자 만주로 망명하여, 이후 서로군정서에 가담했다. 1924년 최병호·유기동 등과 함께 하얼빈에서 일본 총영사와 일본경찰 10여명을 사살하고 순국했다.

종교·철학(27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