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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어사전 [전체] “수” 에 대한 검색결과 13,447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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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덕함묘 및 신도비 / 金德諴墓─神道碑 [예술·체육/서예]

    다. 또 봉분 앞 중앙에 상석을 2계절에 걸쳐서 놓았고, 계절석(階節石)은 상석의 좌우로 7개를 설치하였다.묘비의 비신은 68×24×152㎝이고, 기대(基臺)는 155×71×20㎝의 규모이다. 건립연대는 후면이 마모되어 알 없지만, 비문은 박세채(朴世采)가 짓고 증

  • 김동한 / 金東漢 [예술·체육/무용]

    와 사교춤을 가르쳤다.1923년 제1회 음악무도회를 종로 중앙기독청년회관(현재 YMCA)에서 개최하였는데, 당시 관객들이 1천 명 넘게 몰려와 대성황을 이루었다. 이는 조선 최초의 공개 무도회였다.1923년 조선예술학원의 강생은 1백여 명에 이르렀고, 1925년에는

  • 김두만 / 金斗萬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의주 출신. 1919년 4월 2일 진면 고향에서 3·1운동을 주도한 뒤 동지들과 같이 만주로 망명하여, 만주 안동현(安東縣)에 설립된 독립운동단체인 임시의사회(臨時議事會)의 중심인물로 활동하였다. 그는 관전현(寬甸縣)을 근거지로

  • 김민자 / 金敏子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최승희의 제자이며, 예그린악단의 안무가로 활동한 무용가. 1914년 서울 내동에서 아버지 김영제(金永濟)와 어머니 유운자(柳雲子) 사이의 1남 4녀 중 셋째 딸로 출생하였다. 본명은 우경(又璟), 민자는 예명이다. 14살 때 경기고녀(현 경기여고) 재학

  • 김봉률 / 金奉律 [역사/근대사]

    1897-194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가야면(伽倻面)이다. 해인사(海印寺)에서 학림학생(學林學生)으로 학하였다. 1919년 서울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 후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았다. 강재호(姜在鎬)·기상섭(奇尙燮)·송복만(宋福

  • 김시용 / 金時容 [역사/근대사]

    金時範)·김평원(金平遠)·안세훈(安世勳) 등과 함께 결의하여 소비조합(消費組合)을 활성화하는 데 주력하였다. 1937년 8월 농민조합운동을 전개하였으며, 각종 강습회를 통한 민족의식 고취와 일제의 강압적인 각종 부담금 및 군물자공출에 대한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러

  • 김유하 / 金有夏 [예술·체육/체육]

    로 덴마크에 유학하여 여성체육과 체조를 연구하였다.오테롭(Otterup)체육학교·코펜하겐국립체육학교·파움피더슨여자체육학교·코펜하겐대학 여자체육과 등에서 체조와 체조이론 및 여성체육을 전공했으며, 또 핀란드 체육대학원에서 학하였다. 귀국 후 숙명여자고등학교 교사를 지내

  • 남풍사 / 남풍사 [예술·체육/무용]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남풍사는 5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그 조직이 유지되고, 1926년에 해체되었다. 그 후 1940년 1월 15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황혜 여사의 주선으로 ‘무용단’이 조직되는 계기가 되었다.

  • 남화경 / 南華經 [종교·철학/도교]

    外篇) 15권, 잡편(雜篇) 11권으로 나누어졌는데, 내편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장자사상의 정가 포함되어 있다고 평가된다. 장자의 사상은 세속적인 관습과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여 자유로운 인간이 될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노자의 입장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노장사

  • 노량진 / 鷺梁津 [지리/인문지리]

    )·마포강(麻浦江)이었다. 이 나루에 속하였던 진선(津船)은 10척이었고, 관선(官船)은 15척이었다. 철교가 건설되기 이전에는 이 지역에 설치된 노량진역이 서울로 들어오는 관문으로서의 구실을 행하였고, 철교가 세워진 뒤에는 경부선 및 전철 제1호선 등이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