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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어사전 [전체] “수” 에 대한 검색결과 13,447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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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동방동와요지군 / 慶州東方洞瓦窯址群 [예술·체육/공예]

    을 밝힐 있었다.가마의 형태는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는 구릉사면을 옆으로 파 들어가 구축한 지하식굴가마로서 아궁이와 연도(煙道)를 잇는 가마의 주축(主軸)이 W-15°-E 방향이다. 가마는 잔존 길이가 10.5m이고 소성실(燒成室)의 최대 너비가 1.74m 가량인 큰

  • 경주보문리사지 / 慶州普門里寺址 [예술·체육/건축]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사찰터.사적. 사적 제390호. 지정면적 88,485㎡. 이곳에서 ‘普門(보문)’이라고 새긴 평기와가 출토되고 있어 보문사가 있었음을 알 있다.현재 금당지(金堂址)·동서목탑 등의 건물터와 석조(石槽)·당간지주(幢竿支柱)

  • 경주불국사경내 / 慶州佛國寺境內 [예술·체육/건축]

    만 8,879㎡였다.불국사는 신라 경덕왕 때 김대성(金大城)의 발원으로 중창되어, 번창 당시의 건물가 80여동에 달하였다. 그 뒤 조선 중기까지 절의 모습이 지켜져 오다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뒤 1659년(효종 10) 대웅전 등 극히 일부 건

  • 경주월성 / 慶州月城 [예술·체육/건축]

    을 옮겼음을 알 있다.이 성은 신라 역대 왕들의 궁성이 되었으며 나라가 커짐에 따라 부근 일대가 편입되기도 하였는데, 특히 문무왕 때 안압지(雁鴨池)·임해전(臨海殿)·첨성대 일대가 편입, 확장되는 등 신라의 중심지였다. 동서길이 900m, 남북길이 260m이며 성

  • 경주천관사지 / 慶州天官寺址 [예술·체육/건축]

    지 않겠다”고 하였다. … 현재 절터는 모두 경작지로 변하여, 당시 절의 전체적인 규모와 건물의 배치 등은 알 없다. 다만 곳곳에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석탑의 일부분과 기와 조각들이 논두렁의 잡석 틈에 끼여 남아 있다. 이 가운데에는 돋을새김된 2단의 굄대가 8각을

  • 경주천군동사지 / 慶州千軍洞寺址 [예술·체육/건축]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사찰터.사적 절터는 경주 서라벌초등학교에서 동쪽으로 약 100m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는데, 3층석탑 2기가 남아 있다. 절의 이름은 알 없지만, 석탑의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1938년에

  • 경주효불효교지 / 慶州孝不孝橋址 [예술·체육/건축]

    들이 잠들기를 엿보아서 가곤 하였다. 그 아들들이 서로 말하기를 ‘어머니가 밤에 물을 건너 다니니 자식된 자의 마음이 편안할 있는가’ 하고 드디어 돌다리를 놓으니 어머니가 부끄럽게 여겨 행실을 고쳤다. 그 때의 사람들이 그 다리를 효불효교라 불렀다”는 내용이다. 또

  • 경주흥륜사지 / 慶州興輪寺址 [예술·체육/건축]

    사찰이기도 하였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이 절의 금당에는 선덕여왕 때의 승상(丞相) 김양도(金良圖)가 조성한 미타삼존상(彌陀三尊像)이 있었다고 하며, 아도(我道)·이차돈·혜숙(惠宿)·안함(安含)·의상(義湘)·표훈(表訓)·사파(蛇巴)·원효(元曉)·혜공(惠空)·자

  • 경현록 / 景賢錄 [역사/조선시대사]

    ), 이적(李績)이 쓴 행장, 김굉필의 시부문(詩賦文), 추증(贈)·포증(褒贈)·가증(加贈)·청종사(請從祠) 등의 순으로 실려 있고, 하권에는 부록으로 이황 등 유학자들과의 서간문이 있다.

  • 계녀어 / 戒女語 [종교·철학/유학]

    조선후기 혼인하는 여자가 경계해야 할 사항들을 모아 엮은 교훈서.여훈서. 계녀어(戒女語)는 혼인하는 여자가 경계해야 할 사항들을 모아 딸을 교훈(敎訓)할 목적으로 지어진 글로, 저자와 정확한 저작 연대는 알 없다. 다만 대부분의 계녀서(戒女書)들이 18세기 중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