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전체] “수” 에 대한 검색결과 총 13,447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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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찬 / 閔丙讚 [역사/근대사]
1885-1926.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민찬옥(閔璨玉)·민병찬(閔丙贊)·민병찬(閔丙璨)이다. 본적은 강원도 홍천(洪川)이다. 1919년 4월 2일 홍천군 동면(東面) 성수리(城壽里)에서 민씨(閔氏) 문중이 주동이 되어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계획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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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평 / 林平 [역사/근대사]
1908-194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1925년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普成高等普通學校)에 입학하여 수학하였다. 이후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현 고려대학교)에 입학하여 1929년까지 수학하였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光州學生運動)이 발생하여 전국적으로 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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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홍 / 張鎭弘 [역사/근대사]
년들을 규합, 군사훈련을 실시하였다. 1919년 귀국하여 3·1운동 당시 각지로 순회하며 일제가 우리민족에게 행한 학살·고문·만행의 자료를 수집 정리, 그 진상을 세계에 알리기 위하여 이해 7월 인천에 입항한 미국군함의 하사 김상철(金相哲)에게 주어 이를 번역하여 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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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국성 / 蔡國成 [역사/근대사]
) 사이에서 니항군대 편입문제로 갈등이 일어나자, 니항군대와 간도 지역의 독립군부대를 마사노프로 강제 이주시키고, 명령에 응하지 않은 자유대대 장교들을 무장해제 또는 체포하여 지방수비대로 강제로 편입시켰다. 이때 자유대대의 최고려·오하묵 등은 임시고려혁명군정의회(臨時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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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리 / 韓良履 [역사/근대사]
하였다. 이에 이기하(李起夏) 등으로 결사대를 조직하여 경성에 잠입해서 거사를 진행하던 중 비밀이 폭로되어 피신하다가 예천군 용궁(龍宮)에서 일본헌병에게 붙잡혀 3년 동안 옥고를 치렀다. 1919년 동지 이응수(李應洙)·서상업(徐相業)·김찬규(金燦奎) 등과 거사를 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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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순 / 玄楯 [역사/근대사]
있어 한국의 독립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를 상세히 설명하여 평화회의에 참석하는 각국 대표에게 한국독립을 찬성하도록 고조하는 한편, 한국과 파리와의 통신연락을 취하였다. 1919년 3·1운동 이후 국내외의 독립지사가 상해에 모이자 이광수(李光洙)·선우 혁(鮮于赫) 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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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애 / 金淳愛 [역사/근대사]
爀)·장덕수(張德秀)·여운형(呂運亨) 등과 함께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을 조직하여 이사로 취임, 국내와 만주를 내왕하며 독립운동을 하였다. 그리고 흑룡강 국립여자사범학교 학감을 지냈다. 같은해 7월 상해에서 대한애국부인회를 조직하여 회장에 선출되었으며, 독립전쟁이 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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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 / (傳)原州興法寺址廉居和尙塔 [예술·체육/건축]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 승탑와 유사한 형태를 보이는 실상사 승탑(보물 제33호)와 비교해보면 잘 알 수 있다. 형태는 크게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의 세 부분으로 짜여져 있다.현재의 기단부는 상대석·중대석·중대받침(하대석으로 보기도 함)으로 구성되었으며, 중대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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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금보 / 歌曲琴譜 [역사/조선시대사]
조선시대 가곡과 기악곡의 반주곡을 수록한 악보.거문고악보·양금악보. 인천의 거문고 풍류객이었던 김태영(金兌英)에 이어 이세환(李世煥, 2020년 별세)이 소장하였다. 한글로 표기된 거문고 육보(肉譜)이며, 일부 악곡에는 양금보가 병기되었다.공책에 철필로 적은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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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묘 / 家廟 [사회/가족]
조선시대의 사대부들이 고조(高祖) 이하의 조상의 위패를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던 집안의 사당. 가묘는 유교의 가례 중 특히 제례를 수행하던 곳으로서, 그 성립은 고려 말에 전래된 주자학의 보급과 관련된다. 즉, 고려 말기의 주자학자 정몽주(鄭夢周) 등이 이의 설립을 제

종교·철학(27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