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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흥 / 金振興 [예술·체육/서예]

    조선후기 「대학장구」·「전해심경」 등의 작품을 낸 서예가. 본관은 선산(善山). 1654년 역과(譯科)에 급제하였는데, 글씨를 잘 써 전문학관(篆文學官)에 등용되었으며, 관직은 호군(護軍)에 이르렀다. 여이징(呂爾徵)에게 전(篆)을 익혔고,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

  • 김질 / 金質 [종교·철학/유학]

    1496(연산군 2)∼1555(명종 10). 조선 중기의 학자. 안변부사 언룡 증손, 할아버지는 을만, 아버지는 통례원찬의 복중, 어머니는 주부 이원경의 딸이다. 그의 인물됨을 높이 사서 김인후는 그의 집을 영모라 하였으며, 유희춘도 그의 행위를 경모하였다. 한때는 기

  • 김질 / 金礩 [종교·철학/유학]

    1422년(세종 4)~1478년(성종 9) 개국공신 김사형(金士衡)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김승(金陞)이고,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김종숙(金宗淑)이며, 어머니는 이양직(李良直)의 딸이다.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의 집현전 학사와 함께 단종 복위를 꾀하는 모

  • 김질간 / 金質幹 [종교·철학/유학]

    1564(명종 19)∼1621(광해군 13).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광우, 아버지는 성균박사 응구, 어머니는 노경기의 딸이다. 1601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병조좌랑 등 내외의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가 1608년(광해군 즉위년)에 지평, 1612년 병조정랑

  • 김집 / 金集 [종교·철학/유학]

    1574-1656. 조선 효종때의 예학자. 성리학자. 김장생의 아들이다. 아버지와 송익필에게서 예학을 전수받았다. 대사헌을 거쳐 이조판서가 되어 효종과 함께 북벌을 계획하였다. 부친 김장생과 함께 조선예학의 기본적 체계를 완비하였다. 저서로는 <신독재유고>, 편서로는

  • 김징 / 金澄 [종교·철학/유학]

    1623(인조 1)∼1676(숙종 2). 조선 후기의 문신. 계 증손, 할아버지는 인백, 아버지는 공조정랑 극형, 어머니는 정호의 딸이다. 어릴 때 이식에게 글을 배웠고, 그 뒤 송준길의 문인이 되었다. 1652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학유, 주서,병조좌랑, 정언

  • 김창룡 / 金昌龍 [정치·법제/국방]

    항일기의 군인(1920∼1956). 1941년부터 일본 헌병대 군속으로 근무하다가 관동군 헌병대에서 대공사찰을 담당했다. 광복 후엔 경비사관학교에 입교하여 소령·육군특무대장·준장·소장으로 진급했고, 특무대장 재직 때에는 공산당 색출과 군내의 적색분자 제거에 공헌했으나

  • 김창서원 / 金昌書院 [교육/교육]

    평안북도 삭주군(현재의 대관군) 외남면 송남동에 있던 서원. 1707년(숙종 33)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선우협(鮮于浹)·이문삼(李文三)·김익호(金翼虎)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 김창숙 / 金昌淑 [정치·법제/정치]

    현대의 유학자·독립운동가·정치인(1879∼1962). 김구와 함께 민족분열을 막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이승만 정권 때는 독재를 막기 위한 투쟁을 벌였다. 성균관대학교 초대 총장에 취임하였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수여되었다. 저서로는《심산만초》와《벽옹만초》가 있다.

  • 김창언 / 金昌彦 [역사/근대사]

    1899년(광무 3)∼1930년 7월 21일.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거주지는 함경남도 단천군(端川郡) 하다면(何多面)이다. 함경남도 단천군 하다면‧복귀면‧수하면‧이중면 지역 주민들은 평소 땔나무를 팔고 숯을 만들어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 치하의

  • 김창즙 / 金昌緝 [종교·철학/유학]

    1662(현종 3)∼1713(숙종 39).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아버지는 영의정 수항, 어머니는 나성두의 딸이다. 여섯 형제 중 다섯째로 태어났는데, 형 창집·창협·창흡·창업과 함께 문장대가로 당시 육창이라 불렸다. 조봉원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왕자사부, 예빈시주

  • 김창집 / 金昌集 [종교·철학/유학]

    1648(인조 26)∼1722(경종 2). 조선 후기의 문신. 좌의정 상헌 증손, 할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광찬, 아버지는 영의정 수항, 어머니는 호조좌랑 나성두의 딸이다. 창협·창흡의 형이다. 이른바 노론 4대신으로 불린다. 정언, 지돈녕부사, 우의정, 좌의정, 영의

  • 김창하 / 金昌河 [예술·체육/무용]

    조선후기 가전악, 전악, 집박악사 등을 역임한 음악인. 본관은 경주(慶州). 서울 출신. 전공은 가얏고와 정재(呈才)이다. 대대로 음악의 명문 집안에서 정조 때의 악사 대건(大建)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1816년(순조 16) 가전악(假典樂)에 임명되었고, 1827년

  • 김창협 / 金昌協 [종교·철학/유학]

    1651-1708. 조선 숙종 때의 성리학자. 김수항의 아들, 김창집, 김창흡의 형제이다. 송시열의 문인. 1682년 과거급제하여 이조정랑 등의 벼슬을 하였다. 사단칠정과 이기의 문제에 있어서는 이황의 입장을 따라 사단이 주리이고, 칠정이 주기라고 보았다. 저서로는

  • 김창흡 / 金昌翕 [종교·철학/유학]

    1653(효종 4)∼1722(경종 2). 조선 후기의 학자. 좌의정 상헌의 증손자, 아버지는 영의정 수항, 어머니는 나성두의 딸이다. 형은 영의정을 지낸 창집과 예조판서·지돈녕부사 등을 지낸 창협이다. 이단상의 문인이다. 저서로는『삼연집』·『심양일기』등이 있다.

  • 김채옥 / 金彩玉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계속 살았다. 최완자(崔完子)에게 검무를 배웠으며, 진주국악원의 무용지도교사로 봉직하였다.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인 「진주검무(晉州劍舞)」의 예능보유

  • 김책 / 金策 [정치·법제/정치]

    1903-1951 공산주의 운동가, 정치가. 합북 학성군(현재 김책시) 사람. 중국 동북 연길지방으로 이주, 중학교 때 반제지하청년단체에 참가, 1931년 출옥 후 김일성의 항일유격대에 들어갔다. 1945년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중앙위원회 정치위원, 1946년 평양

  • 김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 / 金泉葛項寺址東·西三層石塔 [예술·체육/건축]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시대의 석조 불탑.국보. 국보 제99호. 2기(基). 동탑 높이 4.3m, 서탑 높이 4m. 본래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오봉리금오산 서쪽 기슭의 갈항사터에 동서로 세워져 있던 것으로, 1916년 경복궁으로 옮겨

  • 김천 직지사 대웅전 / 金泉 直指寺 大雄殿 [예술·체육/건축]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직지사에 있는 조선후기 에 중건된 사찰건물.불전. 보물 제1576호. 앞면 5칸, 옆면 3칸의 단층건물로,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조선 전기에는 대웅대광명전(大雄大光明殿)이라고 불린 2층의 건물이었지만, 임진왜란 때 불타서 조선 후기에 단층건물로

  • 김천 청암사 수도암 동·서 삼층석탑 / 金泉靑巖寺修道庵東·西三層石塔 [예술·체육/건축]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청암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조성된 2기의 석조 불탑. 보물. 보물 제297호. 2기. 동탑 높이 3.76m, 서탑 높이 4.25m. 화강석 석탑으로, 법당인 적광전(寂光殿)을 사이에 두고 그 전면 좌우에 동서로 2기의 석탑이 나란히

  • 김천도 / 金泉道 [지리/인문지리]

    경상도 찰방도(察訪道) 중의 하나. 태종(太宗) 13년 11월에 김천도(金泉道) 역승(驛丞)이 가치된 후 세종대에는 김천도승(金泉道丞) 소관역(所管驛)으로 세조(世祖) 8년 개편 이후로는 김천찰방도(金泉察訪道) 속역으로 늘려졌다.

  • 김천리 개국원종공신녹권 / 金天理開國原從功臣錄券 [역사/조선시대사]

    1395년 공신도감에서 김천리를 개국원종공신에 녹훈하며 발급한 녹권. 보물 제1076호. 1축. 필사본. 개국원종공신은 1392년(태조 1)부터 1397년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1,400명에게 봉해졌는데, 김천리가 녹권을 받을 때에는 695인이 받았다. 그 때 그들에

  • 김천서 / 金天瑞 [종교·철학/유학]

    1712년(숙종 38)∼1777년(정조 1). 조선 후기 문신·효자. 고려 김취려와 도원수 김상의 후손, 고조는 예빈시참봉 김승서, 증조는 김상정, 조부는 김옥이다. 부친 김성려와 모친 흥양유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두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첫째 부인은 태인허씨, 둘

  • 김천시 / 金泉市 [지리/인문지리]

    경상북도 서부에 위치한 시. 동쪽은 구미시와 칠곡군, 서쪽은 소백산맥을 경계로 충청북도 영동군과 전라북도 무주군, 남쪽은 성주군과 경상남도 거창군, 북쪽은 상주시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7°52′∼128°18′, 북위 35°49′∼36°15′에 위치한다. 면적은 1,

  • 김천택 / 金天澤 [문학]

    생몰년 미상. 조선 후기의 시조작가·가객. 김천택의 신분에 관해『해동가요』의 작가제씨에는 숙종 때의 포교라 소개되어 있다. 당시 가객들의 신분이 대부분 그러했듯이, 그도 역시 중인계층으로서 관직생활은 젊었을 때 잠시 지냈고, 거의 평생을 여항에서 가인·가객으로 지낸 것

  • 김천흥 / 金千興 [예술·체육/무용]

    일제강점기 이왕직 아악부 아악수, 아악수장 등을 역임한 국악인. 서울시 남대문 양동 출생.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고, 정동보통학교를 졸업 후 1922년에 이왕직 아악부 아악생양성소 2기생으로 입소했다. 1923년 순종 황제 오순탄신연에 무동으로 참가하였고, 해금을 전공,

  • 김철희 / 金喆熙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45∼1922). 1874년(고종 11)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수찬·집의·대사성·승지·이조참의·의주부윤을 거쳐 경모궁제조·궁내부특진관을 지냈으며, 서화에도 능하였다.

  • 김총리유고 / 金總理遺稿 [역사/근대사]

    대한제국기 관료·정치가 김홍집의 서(書)·차·제문·행장 등을 수록한 시문집. 8책. 필사본. 권두에 정인보(鄭寅普)의 서문이 있다. 1∼5책에 차(箚) 40편, 주(奏) 16편, 의(儀) 4편, 서(序) 11편, 서후(書後) 5편, 명 2편, 찬 1편, 설 2편, 제

  • 김추길 / 金秋吉 [종교·철학/유학]

    1603∼1686. 조선후기 학자. 아버지는 률, 어머니는 봉화 금씨이다. 1678년(숙종 4) 통정대부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에 제수되고 1684년 장렬왕후 주갑의 해에 추로의 은혜를 입어 가선대부 행용양위 부호군에 가자되었다.

  • 김춘광 / 金春光 [예술·체육/연극]

    1901년∼1949년. 극작가 겸 연출가. 본명은 김조성(金肇盛), 황해도 평산 출신이다.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에서 연극과 영화를 공부했다. 1935년 극단 예원좌(藝苑座)를 조직하여 「남북애화」‧「독초」‧「암흑가」‧「교정」 등 수많은 작품을 쓰면서 공연활동을 벌

  • 김춘택 / 金春澤 [종교·철학/유학]

    1670(현종 11)∼1717(숙종 43). 조선 후기의 문신. 생원 익겸의 증손, 할아버지는 숙종의 장인인 만기, 아버지는 호조판서 진구이다. 증조모 윤씨에게서 학업을 익히고, 종조부 만중으로부터 문장을 배웠다. 시재가 뛰어나며 문장이 유창하였고, 김만중의 소설「구운

  • 김충 / 金冲 [종교·철학/유학]

    1513(중종 8)∼1572(선조 5).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삼산, 아버지는 전적 옹, 어머니는 정구의 딸이다. 1551년(명종 6) 별시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전적에 임명된 뒤, 태상주부·형조좌랑·감찰·춘추관·기주관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저서로는『서대이문

  • 김충장공유사 / 金忠壯公遺事 [역사/조선시대사]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덕령의 행록과 시문을 수록하여 1796년에 간행한 시문집. 3권 1책(부록 포함). 목판본. 김덕령은 원래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다가 이몽학(李夢學)의 난에 연루되어 죽음을 당하였다. 이 책은 그뒤 1694년(숙종 20) 왕명에 따라 편찬

  • 김충현 / 金忠顯 [예술·체육/서예]

    해방 이후 「윤봉길 열사 기의비」·「백범 김구 선생 묘비」·「사육신 묘비」 등의 작품을 낸 서예가. 921년 5월 9일(음력 4월 2일) 김윤동(金潤東)의 차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安東), 김창집(金昌集)의 6형제 중 막내 김창립(金昌立)의 후예로서,

  • 김취경전 / 金就景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이 작품은 비록 허구이지만 「육미당기(六美堂記)」처럼 삼국시대 전쟁을 표현하여 당나라와 고구려의 싸움, 고구려와 백제의 전쟁을 그렸으며, 또 실제 역사적 인물을 등장시켰다. 이처럼 특이하게 현실성을 띠려고 하였으나, 사건 전개에 있어서는 다

  • 김취로 / 金取魯 [종교·철학/유학]

    1682(숙종 8)∼1740(영조 16). 조선 후기의 문신. 공조정랑 극형 증손, 할아버지는 관찰사 징, 아버지는 이조참판 유, 어머니는 송박의 딸이다. 1710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문학, 지평, 부수찬, 대사헌, 대사간, 도승지, 호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 김취문 / 金就文 [종교·철학/유학]

    1509(중종 4)∼1570(선조 3).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제, 아버지는 광좌, 어머니는 임무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형 취성과 함께 박영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배워 그 학통을 이었고 문장을 잘하여 이름이 높았다. 1537년(중종 32)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 김취성 / 金就成 [종교·철학/유학]

    1492(성종 23)∼1551(명종 6). 조선 중기의 학자. 아버지는 증이조참판 광좌, 어머니는 임무의 딸이다. 만년에는 당시의 대학자이며 재상이었던 김정국과 이언적의 추천으로 네 차례나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직하고 한번도 부임하지 않았다. 저서로는『진락당집』

  • 김치 / [생활/식생활]

    무·배추·오이 등과 같은 채소를 소금에 절이고 고추·파·마늘·생강 등 여러 가지 양념을 버무려 담근 채소의 염장 발효식품. 사람은 비타민이나 무기질이 풍부한 채소의 섭취가 필요한데 채소는 곡물과 달라서 저장하기가 어렵다. 물론 채소를 건조시켜 저장할 수는 있지만 건조시

  • 김치룡 / 金致龍 [종교·철학/유학]

    1654(효종 5)∼1724(경종 4). 조선 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절, 아버지는 문경현감 남갑, 어머니는 관찰사 홍득일의 딸이다. 1675년(숙종 1) 생원·진사에 모두 합격하고, 1691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전적, 감찰, 예조정랑, 병조정랑, 공조참

  • 김치인 / 金致仁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16∼1790). 1738년(영조 14) 생원시 합격, 1748년 춘당대 문과에 장원해 예문관전적과 정언을 거쳐 1766년 좌의정. 영의정이 됐으나 1772년 당파를 조성했다는 죄로 유배당했다. 정조가 즉위하자 승습주청사의 정사로서 청나라에 다

  • 김치후 / 金致垕 [종교·철학/유학]

    1692(숙종 18)∼1742(영조 18). 조선 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우참찬 간, 아버지는 태로, 어머니는 강석하의 딸이다. 1722년(경종 2) 영소전참봉이 되고, 1726년(영조 2)에 의금부도사가 되었다. 그 해에 알성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전적이 되었다.

  • 김태로 / 金泰魯 [종교·철학/유학]

    1668년(현종 9)∼1692년(숙종 18). 조선 후기 유학자. 조부는 참봉 김수, 부친 우참찬 증 영의정 문경공 김간과 모친 증 참판 박호원의 딸 음성박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교관 강석하의 딸 진양강씨이다. 학자로 명망이 높았던 부친의 영향을 받아서 학문

  • 김태석 / 金台錫 [예술·체육/서예]

    대한제국기 「승사인보」·「청유인보」 등을 제작한 서예가.전각가. 본관은 낙안(樂安), 김태석은 대한민국 국새 1호의 인고(印稿)를 작성하였고, 중화민국의 임시 초대 총통을 지낸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옥새를 새긴 것으로 유명한 서예가이자 전각가이다. 김태석은 30세에 궁

  • 김태식 / 金泰植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체육담당 교수, 대한수상경기연맹 부회장 등을 역임한 체육인.교육자. 충청남도 공주 출생. 경성제이고등보통학교, 일본 동경고등사범학교 체육과를 졸업하였다. 1929년 8월 조선체육회와 동아일보사가 공동주최한 제1회 수영강습회를 마치고 이원식(李元植)

  • 김태일 / 金兌一 [종교·철학/유학]

    1637(인조 15)∼1702(숙종 28). 조선 후기의 문신. 윤안의 증손, 할아버지는 득선, 아버지는 단, 뒤에 곤에게 입양되었다. 1660년(현종 1)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장령·헌납·문학·보덕을 차례로 역임하였고, 1694년 사간으로 있을 때 서인인 한중혁

  • 김태중 / 金台重 [종교·철학/유학]

    1649년(인조 27)∼1711년(숙종 37). 조선 후기 유학자. 숭정처사 표은 김시온의 후손이다. 1693년(숙종 19) 갈암 이현일의 천거로 건원릉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은 채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1679년(숙종 5)에 병자호란 때 창의한 선조 김시온

  • 김택영 / 金澤榮 [종교·철학/유학]

    항일기의 학자(1850∼1927). 홍문관 찬집소에 보직되어 문헌비고 속찬위원으로 있으면서 통정대부에 올랐다. 학부 편집위원이 되었으나 사직하였다. 계몽사상가 양계초·장병린 등과 교유가 있었다. 저서로는《한국소사》등 다수가 있다.

  • 김평묵 / 金平默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1819∼1891). 홍필직의 문하에 있다가 1852년(철종 3) 스승이 죽은 뒤 이항로의 학설을 따라 심즉리의 설에 기울여졌다. 1900년 규장각제학에 추증됐고 미원서원·보산서원에 배향됐다. 저서로는 《중암선생문집》·《중암고》·《근사록부주》·《학통

  • 김평묵특증문서 / 金平黙特贈文書 [정치·법제]

    1910년(융희 4) 8월 19일. 선공감감역 고 김평묵(金平黙)을 정2품 자헌대부 규장각제학에 특증하는 임명장. 경술국치 10일 전의 문서이다. 이 문서에는 1910년 규장각제학에 추증되었고, 미원서원 및 보산서원에 배향되었다.《중암선생문집》을 비롯하여 많은 저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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