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총 22,1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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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내아 / 金堤內衙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조선후기 관리의 가족이 살림을 하던 관청.시도유형문화재.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61호. 내아는 동헌(東軒)의 외아(外衙)가 공무를 수행하는 곳인데 대하여, 관리의 가족이 살림을 하는 곳을 가리킨다. 1667년(현종 8)에 외아와 함께 지어진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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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헌 / 金堤東軒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조선후기 지방 수령이 공무를 보던 관청.시도유형문화재. 정면 7칸, 측면 4칸의 익공계(翼工系) 겹처마 팔작지붕건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0호. 동헌은 일반적으로 공무를 수행하는 외아(外衙)와 관리의 가족이 생활하는 내아(內衙)로 나누어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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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시 / 金堤市 [지리/인문지리]
전라북도 중앙부의 서쪽에 위치한 시. 동쪽은 노령산맥의 주능선을 경계로 완주군, 남쪽은 동진강을 경계로 정읍시·부안군, 북쪽은 만경강 및 그 하구를 경계로 익산시·군산시, 서쪽은 황해에 접하고 있다. 동경 126°40′∼127°05′, 북위 35°39′∼35°55′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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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신 / 金悌臣 [종교·철학/유학]
1438(세종 20)∼1499(연산군 5). 조선 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관찰사 자지, 아버지는 내자시윤 해, 어머니는 동지총제 성개의 딸이다. 1462년(세조 8) 식년 문과에 정과로 급제해 승문원권지정자, 집의, 좌승지, 예조참판, 병조참판, 대사헌 등을 역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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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월전리산성 / 金堤月田里山城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성곽.산성. 시도기념물. 전라북도 기념물 제85호. 금구면에서 동쪽으로 2km쯤 떨어진 해발 250m 정도 되는 봉두산(鳳頭山)의 정상부를 에워싸고 있으며, 이 봉두산이 옛 금구현(金溝縣)의 진산이다.남쪽으로는 벼락바위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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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전교비 / 金堤傳敎碑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김제시 황산면 신흥마을에 있는 조선후기 제19대 숙종의 교지를 기록한 비.교비. 시도유형문화재. 높이 170cm, 너비 55cm, 두께 25cm.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5호. 조선숙종의 교지를 기록한 비로 1680년(숙종 6) 10월에 건립되었다.당시 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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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평야 / 金堤平野 [지리/자연지리]
전라북도 김제시를 중심으로 정읍시·부안군·완주군 일부 지역을 포함한 지역에 펼쳐진 평야. 동진강(東津江)과 만경강(萬頃江) 유역에 발달된 충적평야와 그 주변의 넓은 야산지대를 중심으로 한 침식평야로 구성되어있다. 이른바 ‘김만경평야(金萬頃平野)’ 혹은 ‘김제만경평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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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향교 / 金堤鄕校 [교육/교육]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에 있는 향교. 1404년(태종 4)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1635년(인조 13)에 중건하였으며, 그뒤 몇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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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향교대성전 / 金堤鄕校大成殿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조선후기 공자와 선유의 위패를 모신 문묘.교육시설. 시도유형문화재.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집,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호. 1635년(인조 13)에 현재의 규모로 재건된 후 몇 차례의 중수가 있었고, 1986년 명륜당과 함께 대성전을 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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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순 / 金祖淳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65∼1832). 딸이 순조의 비로 봉해지자 영돈령부사로 영안부원군에 봉해지고, 이어 훈련대장·호위대장 등을 역임하였다. 시책문·옥책문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저서로《풍고집》이 있다. 양주 석실서원, 여주 현암서원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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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걸 / 金宗傑 [종교·철학/유학]
1628년(인조 6)∼1708년(숙종 34). 조선 후기 유학자·효자. 조부는 김흠, 부친 통덕랑 김해윤과 모친 금성현의 딸사이에서 태어났다. 12세에 사서를 읽었으며, 부친이 자리에 눕자 소태산에 제단을 쌓고 7일 낮밤을 금식하며 기도를 올려 꿈속에서 신령이 가르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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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 金鍾九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일제 지배 당시 금산면의 서기로 근무하였다.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3월 22일 상옥리의 김용술, 임승환 등은 각 지방에서 일어나는 3·1독립운동과 호응하여 금산군에서도 일대 시위운동을 전개할 것에 합의, 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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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덕 / 金宗德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1724∼1797). 1753년(영조 29)에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열중하였다. 저서로는《천사집》·《성학입문》·《예문일통》·《예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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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렬 / 金鍾烈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대한체육회 부회장,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체육인. 강원도 원주 출생. 1937년 배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영문학부에 입학하였다. 졸업 후 1942년 귀국하여 순천공립중학교 교사, 1948년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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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무시장 / 金宗武諡狀 [정치·법제]
조선 중기의 문신 김종무(金宗武)에 대해 시호를 추증하기 위해 1892년(고종 29) 8월 장석용(張錫龍)이 지어서 봉상시에 올린 시장. 이 시장은 그의 후손 김세동의 요청에 의해 공조판서 장석용이 지었다. 시장의 말미에는 예조의 당상관이 서압하고 낭청이 착함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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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 / 金宗瑞 [종교·철학/유학]
1383(우왕 9)∼1453(단종 1). 조선 전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지평 태영, 아버지는 도총제 추, 어머니는 대사헌 배규의 딸이다. 1405년(태종 5) 식년 문과에 동진사로 급제해 1415년 상서원직장을 지냈다. 우정언, 이조정랑, 함길도도관찰사, 우의정을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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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 / 金鍾秀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권신(1728∼1799). 할아버지는 참판 희로, 아버지는 치만, 어머니는 홍석보의 딸이다. 부인은 윤득경의 딸이다. 영조가 죽자 행장찬집당상이 되었고, 승지·경기도관찰사·평안도관찰사를 거치고, 규장각이 정비되면서 제학에 임명되었다. 사도세자를 위한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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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 연풍현감 해유문서 / 金宗壽 延豊縣監 解由文書 [정치·법제/법제·행정]
김종수 연풍현감 해유문서. 1809년(순조 9) 9월 일에 후임관이 겸순찰사에게 첩정을 올렸고, 동년 9월 17일에 수공충도관찰사겸순찰사가 호조에 문서를 이관, 1810년(순조 10) 1월 일에 호조에서 이조로 문서를 이관, 동년 1월 초10일 이조에서 김종수에게 조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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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정 / 金鍾正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유학자(1722∼1787). 아버지는 대사간 치후, 어머니는 이규수의 딸이다. 예조참판·도승지를 거쳐 의주부윤이 되고 이듬해 청천군에 봉해졌다. 대사헌·경기감사·병조참판·이조참판·성균관대사성·형조판서·이조판서·예조판서 등 많은 요직을 역임하였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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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직 / 金宗直 [종교·철학/유학]
1431-1492. 조선 성종 때의 성리학자. 김숙자의 아들로서 길재의 학문을 계승하였다. 영남학파의 종조로서 성종 당시 자신의 문인들을 관직에 많이 등용시켰다. 기성세력인 훈구파와 대립하였다. 무오사화로 부관참시를 당했다. 효제충신과 인정의 실시를 이상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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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직및김종직처조씨고신 / 金宗直─金宗直妻曺氏告身 [역사/조선시대사]
1481년 문신·학자 김종직에게 도승지를 제수한 교지. 교첩. 조선시대에는 문무관 4품 이상의 고신(사령장)은 교지를 내렸고, 5품 이하의 고신은 교첩을 내렸다. 문무품관(文武品官)의 부인은 남편의 품계에 따라 직첩을 주었다. 부인의 직첩은 당상관 부인에게는 교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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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 金鍾泌 [정치·법제/정치]
1926-2018 군인. 정치가. 충남 부여. 서울대 사대수학과 2년 수료 후 입대, 육사 8기생으로 입학하고 졸업 후 육군본부 정보국 전투정보과에 근무했다. 5.16군사쿠데타 당시 육군 중령으로 핵심적 역할을 하고, 초대 중앙정보부장을 지냈으며, 제3공화국 성립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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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후 / 金鍾厚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21∼1780). 신임사화 때 장헌세자를 궁지에 몰아넣은 모의에 가담하였다. 다시 장헌세자의 장인인 홍봉한을 공격하였다. 세도가 바뀌자 원빈의 오빠인 홍국영을 따랐다. 홍국영이 물러나자 그를 비난하였다. 저서로는《본암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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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휴 / 金宗烋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은사(1783∼1866). 사마시에 합격 후 귀향하여 후진 양성에 힘써 많은 제자들을 대소과에 합격시켰다. 관동지방의 명승고적을 돌아보고 남긴 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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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근 / 金左根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97∼1869). 순조비 순원왕후의 오라버니로 조정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형조판서·공조판서·호조판서를 거쳐 영의정에 세 번씩이나 보직되어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실록총재관으로《철종실록》편찬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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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명 / 金佐明 [종교·철학/유학]
1616(광해군 8)∼1671(현종 12). 조선 후기의 문신. 비 증손, 할아버지는 참봉 흥우, 아버지는 영의정 육, 어머니는 윤급의 딸이다. 1644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이조좌랑, 대사헌, 경기도관찰사,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귀계유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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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진 / 金佐鎭 [정치·법제/국방]
항일기의 독립운동가(1889∼1930). 부유한 명문대가 출신으로 15세 때 집안 노비를 해방할 정도로 진취적 개화사상이 강하였다. 1920년 10월 20~23일 청산리 80리계곡에서 유인되어 들어온 일본군을 맞아 백운평·천수평·마록구 등지에서 3회의 격전을 전개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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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진장군묘 / 金佐鎭將軍墓 [역사/근대사]
충청남도 보령시 청소면 재정리에 있는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의 묘. 충청남도 기념물 제73호. 1920년 청산리전투에서는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는 대 전과를 올렸다. 1930년 1월 24일 중동선 산시역 앞 자택에서 200m 거리에 있는 정미소에서 공산주의자 박상실의 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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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 / 金澍 [종교·철학/유학]
1512(중종 7)∼1563(명종 18).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성, 아버지는 안원군 공량, 어머니는 이팽수의 딸이다. 1539년(중종 34)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호당에 뽑혔다. 전라도·경상도의 관찰사 및 개성유수·대사헌을 지냈고, 예조참판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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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국 / 金柱國 [종교·철학/유학]
1710년(숙종 36)∼1771년(영조 47). 조선 후기 유생. 문충공 학봉 김성일의 후손, 증조는 김세기, 조부는 김이옥이다. 부친 김숙렴과 통덕랑 정연주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두 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첫째 부인은 장악원주부 이재의 딸, 둘째 부인은 이정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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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현 / 金周鉉 [종교·철학/유학]
1806∼1833. 부는 재곤, 어머니는 유경주의 딸이다. 사계 김장생의 9대손이다. 행장이나 묘지명이 없다. 다만 서승보의 서문에 따르면 저자가 서승보 자신보다 8년 앞서 태어났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어, 그의 생몰년과의 비교로 1806년(순조 6)에 태어났음을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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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용 / 金駿鏞 [종교·철학/유학]
1864(고종 갑자) ~ 1934. 아버지는 두규, 어머니는 김백선의 딸이다, 쌍벽당 언구의 후손이다. 일찍이 동호 서재정에게 거자업을 배워 입신양명을 꿈꾸었다. 신묘년 가을 백씨가 과거보러 갈 때 함께 가서 과거를 보았는데 합격하지 못하였다.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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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만장군공신록및교지 / 金重萬將軍功臣錄─敎旨 [언론·출판/출판]
1728년 무신 김중만을 분무공신 2등에 책록한 교서.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0호. 문서는 모두 3점으로, 교서 1점, 교지 2점이다. 1728년 7월에 작성된 교서(敎書, 공신록)에는 1등 공신에 오명항, 2등 공신에 김중만·박찬신(朴讚新)·박문수(朴文秀) 등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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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고신 / 金摯告身 [역사/조선시대사]
1410년 문신 김지에게 통정대부 예조우참의 보문각직제학 세자우보덕 등의 관직을 제수한 교지. 고신이란 조정에서 벼슬아치에게 내리는 임명사령장(任命辭令狀)을 말하는데, 『경국대전』에 의하면 4품 이상의 고신은 ‘교지(敎旨)’를 썼으나 조선 초기에는 ‘왕지(王旨)’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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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대 / 金之岱 [종교·철학/유학]
1190(명종 20)∼1266(원종 7). 고려 후기의 문신. 청도김씨의 시조. 1217년(고종 4) 3만명의 거란병이 침입하였을 때, 아버지를 대신해 출전하였다. 원수 조충이 이를 보고 중요한 자리를 주었다. 1218년 조충이 시험관으로서 지공거가 되어 그를 일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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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섭 / 金祉燮 [종교·철학/유학]
항일기의 독립운동가(1885∼1928). 의열단에 입단하였다. 조선총독부·동양척식주식회사·매일신보사 등을 파괴하려다가, 경찰에 탐지되어 실패하였다. 일왕의 궁에 폭탄을 투척하다 붙잡혔다. 무기징역을 언도 받고 옥사하였다.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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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직재 / 金直哉 [종교·철학/유학]
?∼1612(광해군 4). 조선 중기의 문신. 아버지는 흠이다. 선조 때 성균관학록으로 있다가 그만두었다. 광해군 때는 다시 늙은 어머니를 학대하였다 하여 돌려받았던 직첩을 다시 환수당하였다. 1612년 아들 백함이 왕을 제거하고 진릉군 태경을 추대하려는 역모에 연루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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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 / 金璡 [종교·철학/유학]
1500(연산군 6)∼1580(선조 13). 조선 중기의 학자. 할아버지는 진사 만근, 아버지는 교위 예범, 어머니는 군수 신명창의 딸이다. 안동에서 살았다. 어려서부터 재능이 뛰어나고 뜻이 높아 기묘명유들을 찾아 가르침을 배워 견문을 넓히고 학업에 정진하였다. 안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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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걸 / 金振傑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한국무용협회 이사 및 고문, 국립무용단 초대 지도 위원, 한성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한 무용가.한국무용가·신무용가. 서울에서 출생하였고, 본명은 김형표(金亨杓)이다. 이채옥 현대무용연구소, 길목 무용연구소, 장추화 무용연구소에서 수학하였다. 1955년 동양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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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규 / 金鎭圭 [종교·철학/유학]
1658(효종 9)∼1716(숙종 42). 조선 후기의 문신. 반 증손, 할아버지는 증 영의정 익겸, 아버지는 영돈녕부사 만기, 어머니는 한유량의 딸이다. 누이 동생이 숙종비 인경왕후이다. 송시열의 문인이다. 1686년 정시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대사성, 예조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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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동 / 金鎭東 [종교·철학/유학]
1727년(영조 3)∼1800년(정조 24). 조선 후기 유학자·문장가. 증조는 김성구, 조부는 김여당, 부친은 김경린이다. 생부 김경온과 생모 이수겸의 딸 진성이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이만영의 딸 연안이씨이다. 이수연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동암 유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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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옥 / 金鎭玉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고조부는 장생, 할아버지는 이조판서 익희, 아버지는 승지 만균이다. 송시열의 문인이다. 음보로 기용된 뒤에 1714년(숙종 40)에 청주목사가 되었는데, 읍민을 잘 돌보아 조정으로부터 포상을 받았다. 1718년에는 수원부사가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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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옥전 / 金振玉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책. 국문필사본·활자본. 50여 종의 필사본이 현존하고 있으며, 국문활자본으로도 1916년 덕흥서림을 비롯하여 1917년 박문서관, 1920년 대창서원, 보급서원, 1929년 태화서관 등에서 발행한 것이 있다. 이 소설은 전반부에서는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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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우 현풍현감 해유문서 / 金鎭右 玄風縣監 解由文書 [정치·법제/법제·행정]
김진우 현풍현감 해유문서. 1846년(헌종 12) 5월 일에 후임관이 겸순찰사에게 첩정, 동년 5월 24일에 경상도관찰사겸순찰사가 호조에 문서를 이관, 동년 윤5월 일에 호조에서 이조로 문서를 이관, 동년 윤5월 초10일에 이조에서 김진우에게 조흘하였다. 1834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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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태 / 金振泰 [문학/고전시가]
조선 숙종·영조 때의 가인(歌人). 이형상(李衡祥)의 가집인 『악학습령(樂學拾零)』의 작가 목록에 신분이 서리(胥吏)로 밝혀져 있다. 1766년(영조 42)에 증보한 『해동가요』의 부록인 『청구가요(靑丘歌謠)』에 김수장(金壽長)이 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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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하 / 金鎭河 [종교·철학/유학]
1786년(정조 10)∼1865년(고종 2).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김세진, 조부 김구환이다. 부친 김기중과 모친 김구련의 딸 의성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805년(순조 5) 증광시 생원 3등 48위로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841년(헌종 7) 정시 병과 6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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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형 / 金鎭衡 [문학/고전시가]
조선 후기의 문신. 아버지는 김종수(金宗壽)이다. 1850년(철종 1)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1853년(철종 4)홍문관교리로 있을 때 이조판서서기순(徐箕淳)의 비행을 탄핵하다가 수찬남종순(南鍾順)에게 몰려 한때 명천(明川)으로 유배되었다. 1856년(철종 7)문과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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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화 무장현감 해유문서 / 金鎭華 茂長縣監 解由文書 [정치·법제/법제·행정]
김진화 무장현감 해유문서. 1849년(헌종 15) 3월 22일 수전라도관찰사겸순찰사가 호조에 문서를 이관, 동년 5월 일에 호조에서 이조로 문서를 이관, 동년 5월 19일에 이조에서 김진화에게 조흘하였다. 김진화는 학봉의 10대 주손(胄孫)으로 종수(宗壽)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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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화 원주판관 해유문서 / 金鎭華 原州判官 解由文書 [정치·법제/법제·행정]
김진화 원주판관 해유문서. 1842년(헌종 8) 11월 일에 후임관이 겸순찰사에게 첩정을 올렸고, 동년 11월 일에 강원도관찰사겸순찰사가 호조에 문서를 이관, 1843년(헌종 9) 1월 일에 호조에서 이조로 문서를 이관, 동년 1월 초6일에 이조에서 김진화에게 조흘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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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화 청송도호부사 해유문서 / 金鎭華 靑松都護府使 解由文書 [정치·법제/법제·행정]
김진화 청송도호부사 해유문서. 1841년(헌종 7) 8월 일에 후임관이 겸순찰사에게 첩정, 동년 8월 23일에 경상도관찰사겸순찰사가 호조에 문서를 이관, 1842년(헌종 8) 4월 일에 호조에서 이조로 문서를 이관, 동년 4월 26일 이조에서 김진화에게 조흘하였다. 김

종교·철학(42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