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총 22,1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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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 金日成 [정치·법제/정치]
1912년 4월 15일∼1994년. 현대 정치가. 부친 김형직과 모친 강반석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5년 10월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조직 책임비서로 선출, 1946년 2월에 창설된 북조선인민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1946년 북조선노동당의 당명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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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손 / 金馹孫 [종교·철학/유학]
1464(세조 10)∼1498(연산군 4). 조선 전기의 학자·문신. 할아버지는 극일, 아버지는 집의 맹, 어머니는 이씨이다. 1486년(성종 17) 생원에 수석으로 합격, 이 해 진사시에 2등으로 합격하였다. 이어 같은 해에 식년 문과 갑과 제2인으로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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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군유사 / 金將軍遺事 [역사/조선시대사]
조선후기 문신·학자 이시항이 김경서의 행적을 모아 1738년에 편찬한 전기. 1책. 목판본. 1738년(영조 14)에 간행되었다. 김경서 사후에 가승(家乘)도 없어지고 국사에도 그의 사적이 애매하게 됨을 염려하여 이시항이 여러 책을 모아 편찬하였다. 이 책의 요목(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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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군전 / 金將軍傳 [역사/조선시대사]
조선시대 문신 박희현이 무신 김응하의 행적을 모아 엮은 전기. 1책. 목판본·활자본이 있다. 박희현(朴希賢)이 편찬하였다. 김응하는 안동사람으로 박승종(朴承宗)의 천거에 의해 관직에 나아가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선천군수(宣川郡守)로 조방장(助防將)이 되어 부원수(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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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생 / 金長生 [종교·철학/유학]
1548-1631. 조선 선조, 광해군 때의 성리학자. 예학자.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 그는 임진왜란, 병자호란과 당쟁이 격심하던 시대에 살았다. 이러한 시기에 주자학의 이념으로 재정비하려고 시도했다. 그의 저술은 현존하는 조선 예서 중에서 창시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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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생문묘배향교지 / 金長生文廟配享敎旨 [언론·출판/출판]
1717년 문신·학자 김장생의 문묘 배향을 교명한 교지. 1점.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8호. 이 교지의 내용은 일종의 교서(敎書)에 해당하는데, 머리에 ‘敎贈領議政文元公金長生從祀文廟書(교증영의정문원공김장생종사문묘서)’라 하였고, 지키고 행하여야 할 교명(敎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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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경 / 金在敬 [종교·철학/유학]
1841년(헌종 7) 12월 11일∼1926년 12월 10일. 조선 말기 유학자. 증조부는 김상구, 조부는 김진호, 아버지는 김치명. 외조부는 김만중, 처부는 김필균이다. 평생 덕성을 이루는 데 힘을 기울여 문장을 꾸미는 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천문과 지리, 의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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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 金載圭 [정치·법제/정치]
1926년∼1980년. 군인·정치가·행정관료. 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에 입교하여 1946년 12월 제2기생으로 졸업. 1954년 제5사단 제36연대장, 1957년 육군대학부총장, 1963년 제6사단장, 1966년 제6관구 사령관, 1968년 육군보안사령관, 1971년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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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로 / 金在魯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82∼1759). 숙종 대에 관직을 지내며 여러 사건으로 파직되고 복직되기를 여러번 했다. 1731년 신임사화로 죽은 노론 김창집·이이명을 신원되게 하고, 1746년 김종서·황보인의 복관을 건의하여 신원되게 하였다. 저서로는 《천의소감언해》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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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로 영정 / 金在魯 影幀 [예술·체육/회화]
조선 후기의 문신 김재로(金在魯)를 그린 영정. 비단 바탕에 채색.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되었다가 2001년 4월 2일에 문화재에서 해제되었다. 김재로의 영정은 현재 중국본과 한국본의 두 벌이 함께 전해지고 있어 조선 후기 초상화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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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일 휘릉별검 해유문서 / 金載一 徽陵別檢 解由文書 [정치·법제/법제·행정]
김재일 휘릉별검 해유문서. 1791년(정조 15) 6월 일에 후임관이 호조로 첩정을 보내고, 동년 월 일에 호조에서 이조로 이관한 문서이다. 김재일(金載一)은 1788년(정조 12) 12월 21일에 본직을 제수받고 동월 30일에 홍전문(紅箭門)에서 숙배한 뒤에 도임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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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준 / 金在俊 [종교·철학/개신교]
1901년∼1987년. 신학자·목사. 1923년 중동학교 고등과를 졸업하고 김익두의 전도로 기독교에 입신하였다. 1928년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톤신학교를 거쳐 1932년 웨스턴신학교에서 구약학으로 신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1933년부터 평양 숭인상업학교 성서교사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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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 / 金在顯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08∼1899). 1858년(철종 9) 식년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경기도관찰사로 부임하여 산군에도 포군을 설치하여 국방을 튼튼히 하였다. 이조판서·한성부부윤 등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문장이 매우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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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전전 / 金銓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권 1책. 한문필사본. 결미 부분에 ‘가경(嘉慶) 2년’이라는 필사연대를 기입해 놓았다. 가경 2년은 정조 21년(1797)이므로, 조선 중기(선조∼숙종)에 쓰여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은 전반부는 영웅소설과 비슷하면서도 계모형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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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 / 金淨 [종교·철학/유학]
1486(성종 17)∼1521(중종 16).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호 증손, 할아버지는 처용, 아버지는 호조정랑 효정, 어머니는 윤고의 딸이다. 1507년 증광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해 성균관전적에 보임, 수찬·병조좌랑을 거쳐 정언으로 옮겨졌다. 이어 병조정랑·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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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견 / 金廷堅 [종교·철학/유학]
1576(선조 9)∼1645(인조 23). 조선 후기의 학자. 아버지는 담수이다. 정구·정경세의 문인이다. 1612년(광해군 4)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향리에서 학문 연구에 힘썼다. 임진왜란의 와중에서도 경의의 연마에 힘쓰고 후진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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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국 / 金正國 [종교·철학/유학]
1485(성종 16)∼1541(중종 36). 조선 중기의 학자·문신. 아버지는 예빈시참봉 연, 어머니는 허지의 딸, 안국의 동생이다. 김굉필의 문인이다. 1509년(중종 4)에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경상도관찰사, 예조참판, 형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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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근 / 金禎根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조선 말기의 문신. 1895년 지방관제 개혁 때 강계부관찰사를 지냈다. 1898년 11월 경무사로 임명, 이상재·방한덕·남궁억·정교 등 독립협회 간부 17명을 체포하였다. 또한 독립협회 사무실을 수색하는 등 독립협회 탄압에 앞장섰다. 이후 독립협회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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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묵 / 金正默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1739∼1799). 김장생의 후손이다.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힘쓰면서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성리학 예설에 밝았으며 한원진의 논술이 이이·송시열에 위배됨을 지적하였다. 저서로는《과재유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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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 金鼎運 [종교·철학/유학]
1677년(숙종 3)∼1735년(영조 11). 조선 중기의 문신. 조부는 문정공 김경여, 부친은 청주진병마첨절제사를 지낸 통훈대부 김창석, 생부는 청주목사 김명석이다. 호조정랑을 거쳐 합천군수를 역임하였다. 이인좌의 난 때 반란군이 합천, 삼가 등지를 장악하자 의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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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 金正日 [정치·법제/정치]
1942~ 2011. 북한의 정치가. 김일성과 김정숙의 장남으로 태어나 해방 후 북한에 들어와 평안남산고급중학, 만경대 혁명학원, 김일성 종합대학 정치경제학부에서 수학했다. 1964년 대학졸업과 동시에 당중앙위원회에 배치, 1973년 9월 당중앙위 비서, 197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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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집 / 金鼎集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08∼1859). 할아버지는 좌의정 사목, 아버지는 선공감부정 영수, 어머니는 조헌진의 딸이다. 1827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한성판윤·에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정조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황해도관찰사로 재직 중 김대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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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 金正浩 [지리/인문지리]
생몰년 미상. 조선 후기의 실학자 겸 지리학자. 당대의 실학자 최한기와 친교가 깊었고, 《대동여지도》의 재간과 《대동지지》의 간행연도가 모두 1864년(고종 1)인 것으로 보아 1800년경에서 1864년경까지 살았으며, 순조·헌종·철종대에 걸친 사람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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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 金正喜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실학자·서화가(1786∼1856). 1819년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대사성·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학문에서는 실사구시를 주장하였고, 서예에서는 독특한 추사체를 대성시켰으며, 특히, 예서·행서에 새 경지를 이룩하였다. 저서에는《완당집》·《금석과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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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영정 / 金正喜影幀 [예술·체육/회화]
이한철(李漢喆) 등이 김정희를 그린 영정. 1857년(철종 8)작. 비단바탕에 채색. 세로 131.5㎝, 가로 57.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예산김정희종가유물(보물 제547호) 중의 하나이다. 오사모(烏紗帽, 沙帽)를 쓰고 쌍학문양(雙鶴文樣)의 흉배를 착용한 정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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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종가 유물 / 金正喜宗家遺物 [예술·체육/공예]
조선 말기의 선비이며 서화가였던 김정희의 일괄 유물. 보물 제547호. 이 유물들은 원래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김정희 종가인 김성기(金聲基)의 집에 소장되어 있었으나, 보존 관계상 국립중앙박물관에 기탁, 보관되어 있다. 김정희 종가 유물은 생전에 그가 지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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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선생고택 / 金正喜先生故宅 [예술·체육/건축]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에 있는 조선후기 서예가이자 금석학자인 김정희 관련 주택.시도유형문화재. 2동(棟).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3호. 조선 후기 서예가이며 금석학자인 김정희의 고택으로, 증조부인이자 영조의 부마(駙馬) 김한신(金漢藎)에 의하여 건립되었다고 전한다.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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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선생유물 / 金正喜先生遺物 [언론·출판/출판]
충청남도 예산군 신안면 용궁리에 소장된 문서. 유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4호. 혼서지(婚書紙)·생원시권(生員試券)·농상지실(農祥之室)의 3점이 지정되어 있다. 혼서지는 김정희가 67세 때인 1852년(철종 3) 11월 21일에 쓴 것으로, 아들 상무(商懋)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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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선생유적 / 金正喜先生遺蹟 [예술·체육/건축]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에 있는 조선후기 문신·서화가 김정희의 생가와 무덤 등의 복합유적.시도기념물. 충청남도 기념물 제24호. 전체면적 18,308㎡, 이곳에는 김정희의 고택을 비롯하여 화순옹주(和順翁主)와 김한신(金漢藎)부부의 합장묘, 홍문(紅門), 김흥경(金興慶)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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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필 세한도 / 金正喜筆歲寒圖 [예술·체육/회화]
조선 말기의 화가 김정희(金正喜)가 그린 문인화. 국보 제180호. 세로 23㎝, 가로 69.2㎝. 종이 바탕에 수묵. 지위와 권력을 박탈당하고 제주도 유배지에서 귀양살이하고 있었던 김정희가 사제간의 의리를 잊지 않고 두 번씩이나 북경(北京)으로부터 귀한 책들을 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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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해서묵소거사자찬 / 金正喜楷書默笑居士自讚 [예술·체육/서예]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친우 김유근(金逌根, 1785∼1840)이 지은 「묵소거사자찬(默笑居士自讚)」을 해서(楷書)로 쓴 서축(書軸). 보물 제1685호. 가로로 긴 두루마리로 장황되어 있다. 붉은색 바탕의 종이에 해서로 4자씩 21줄에 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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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귀신사 대적광전 / 金堤歸信寺大寂光殿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귀신사에 있는 조선후기 에 창건된 사찰건물.불전. 보물. 보물 제826호. 귀신사는 신라 때인 678년(문무왕 16) 의상대사가 세운 사찰이다. 귀신사는 고려 말에 왜구 300여 명이 이곳에 주둔했을 만큼 규모가 커서 주변 일대에 전각과 암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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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금산사 금강계단 / 金堤金山寺金剛戒壇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에 있는 고려전기 에 건립된 계의식 관련 계단.사리탑. 보물. 보물 제26호. 김제 금산사 금강계단은 경내 송대(松臺)라고 부르는 높은 대지 위에 형성된 2중 방형기단 위의 중앙부에 석종형 사리탑이 세워져 있는 모습이다. 계단은 기단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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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금산사 노주 / 金堤金山寺露柱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에 있는 고려시대 바닥돌, 받침돌, 상륜부 등으로 구성된 돌기둥.노주. 보물. 윗부분에 놓여 있는 보주(寶珠)만 없으면, 불상을 받치는 네모난 대좌(臺座)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특이한 모습이다.노주는 몸돌이 없이 바닥돌, 받침돌, 상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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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금산사 당간지주 / 金堤金山寺幢竿支柱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깃대기둥.당간지주. 보물. 높이 3.55m. 두 개의 지주가 남북으로 마주보고 있으며, 당간을 받쳤던 간대(竿臺)와 지주를 놓은 받침돌 등은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다.긴 네모난 모습의 받침은 1층으로 구성되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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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금산사 대장전 / 金堤金山寺大藏殿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에 있는 조선시대 에 창건된 사찰건물.불전. 보물. 보물 제827호.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건물. 이 건물은 본래 미륵전 앞에 세웠던 팔각원당형 목조탑으로서 장경각(藏經閣)으로 사용했던 것인데, 임진왜란 후에 수문(守文)이 중창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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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금산사 미륵전 / 金堤金山寺彌勒殿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에 있는 조선후기 에 창건된 사찰건물.불전. 국보. 국보 제62호. 1층과 2층은 정면 5칸, 측면 4칸이고, 3층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된 팔작지붕건물이다. 거대한 미륵존불을 봉안한 불전으로, 일명 용화전(龍華殿)·산호전(山呼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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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금산사 석등 / 金堤金山寺石燈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에 있는 고려시대 에 조성된 석등.보물. 보물 제828호. 높이 3.9m. 미륵전 건너편의 대장전(大藏殿) 앞뜰에 자리하고 있으며, 바닥돌부터 상륜부까지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다.석등은 단면이 8각으로, 네모난 바닥돌 위에 아래받침돌, 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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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금산사 심원암 삼층석탑 / 金堤金山寺深源庵三層石塔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에 있는 고려시대 3층 석조 불탑.보물. 높이 4.5m. 2층 받침돌 위에 3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세운 석탑으로, 머리장식인 상륜부(相輪部)는 노반(露盤)만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모습을 따르고 있지만 일부에는 고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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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금산사 오층석탑 / 金堤金山寺五層石塔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에 있는 고려시대 에 건립된 5층 석조 불탑.보물. 보물 제25호. 높이 7.2m. 화강암으로 만든 석탑으로, 미륵전 오른쪽의 ‘송대(松臺)’라고 불리는 높은 언덕 위에 있다. 이곳은 부처의 사리를 모신 금강계단(金剛戒壇, 보물 제26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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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금산사 육각 다층석탑 / 金堤金山寺六角多層石塔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에 있는 고려시대 흑백의 점판암으로 만든 육각다층 불탑.보물. 보물 제27호. 높이 2.18m. 석탑은 원래 금산사에 속한 봉천원(奉天院)에 있었던 것을 현재의 자리인 대적광전(大寂光殿) 앞의 왼쪽으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받침돌은 6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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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금산사 일원 / 金堤 金山寺 一圓 [지리/인문지리]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 시기에 창건된 금산사의 사찰일원.사적. 사적 제496호. 김제시에 위치하고 있는 모악산(母岳山, 해발794m)의 서쪽 기슭에 건립되어 있는 사찰이다. 금산사는 미륵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도량이다. 백제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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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금산사 혜덕왕사탑비 / 金堤金山寺慧德王師塔碑 [예술·체육/서예]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에 있는 고려전기 에 건립된 혜덕왕사의 탑비.보물. 보물 제24호. 비신의 높이 277㎝, 너비 149㎝, 두께 17㎝, 글자 크기 약 2㎝. 1111년(예종 6)에 세워졌다.현재 비수(碑首)는 유실되었고 비문의 마멸이 심하여 판독이 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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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종덕리 왕버들 / 金堤 從德里─ [과학/식물]
전라북도 김제시 봉남면 종덕리에 있는 왕버들. 천연기념물 제296호. 높이 16m, 가슴높이의 둘레 8m이며, 가지의 길이는 동서가 13.4m, 남북이 16.8m인 노거수로서 나무의 나이는 약 300년 정도로 추정된다. 줄기는 땅에서 2m 정도 올라가 크게 두개로 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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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행촌리 느티나무 / 金堤 幸村里─ [과학/식물]
전라북도 김제시 봉남면 행촌리에 있는 느티나무. 천연기념물 제280호. 높이 15m, 가슴높이의 둘레 8m인 노거수로서 나무의 나이는 약 600년으로 추정된다. 뿌리 근처의 둘레는 17m, 가지 밑의 높이는 5m에 달하고 가지의 길이는 동쪽 6m, 서쪽 7.4m, 남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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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갑 / 金悌甲 [종교·철학/유학]
1525(중종 20)∼1592(선조 25). 조선 중기의 문신. 고려의 명장 방경의 후손, 할아버지는 언묵, 아버지는 진사 석, 어머니는 기형의 딸이다. 이황의 문인이다. 1553년(명종 8)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홍문관의 정자, 병조좌랑, 정언을 거쳐 158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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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겸 / 金濟謙 [종교·철학/유학]
1680(숙종 6)∼1722(경종 2). 조선 후기의 문신. 동지중추부사 광찬 증손, 할아버지는 영의정 수항, 아버지는 영의정 창집, 어머니는 박세남의 딸이다. 작은아버지 창흡에게 수학하였다. 1719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정언이 되었다. 그 뒤 헌납, 응교,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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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군 관아와 향교 / 金堤郡 官衙와 鄕校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조선시대 김제군의 동헌과 내아 등의 관청.향교. 사적. 사적 제482호. 김제향교는 김제시 성산공원 남쪽에 있으며 향교의 동쪽 130m 지점에는 김제관아가 자리하고 있다. 현재 김제관아에는 수령이 업무를 보는 동헌(東軒)과 수령의 살림집인 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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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군지 / 金堤郡誌 [지리/인문지리]
1918년 조찬성이 전라북도 김제군(현 김제시)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지방지. 1책. 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이밖에도 조선 정조 연간에 편찬된 것으로 보이는 『김제군읍지(金堤郡邑誌)』가 규장각 도서에 있다. 내용 구성은 갑신구지서(甲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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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남 / 金悌男 [종교·철학/유학]
1562(명종 17)∼1613(광해군 5).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안도, 아버지는 증 영의정 오, 어머니는 권상의 딸이다. 선조의 장인이다. 1594년 의금부도사·공조좌랑을 거쳐, 1596년 연천현감을 지냈다. 1597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601

종교·철학(42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