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총 22,1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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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설화 / [문학/구비문학]
경주김씨의 시조 김알지에 관한 신화. 『삼국유사』 기이(紀異) 제2 김알지 탈해왕대조(金閼智脫解王代條)와 『삼국사기』 신라본기 탈해이사금조(脫解尼師今條)에 수록되어 있다. 알지는 열한(熱漢)을 낳고, 열한은 아도(阿都)를 낳고, 아도는 수류(首留)를 낳고, 수류는 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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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약국의 딸들 / 金藥局─ [문학/현대문학]
박경리(朴景利)가 지은 장편소설. 1962년 을유문화사에서 간행하였다. 얼킨 욕망과 운명에 의하여 지방의 유족한 한 가정이 몰락해가는 과정과, 한말에서 일제강점기까지 이르는 사이에 부(富)가 신흥세대로 이동하는 사회적 변동이 펼쳐지고 있다. 이 작품에는 욕망의 엇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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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약로 / 金若魯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94∼1753). 할아버지는 김징, 아버지는 대제학 김유, 어머니는 송박의 딸이다.《숙종실록》 보충의 잘못을 논하다가 유배당하였으나 이듬해에 석방되었다. 1744년 공조·호조·병조의 판서가 되었고, 1746년 우참찬, 이듬해 판의금부사를 거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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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약수 / 金若水 [정치·법제/정치]
1892년(고종 29)∼미상. 노동운동가·정치가. 서울의 휘문의숙과 경성공업학교를 졸업, 3·1운동의 소식이 중국에 전해지자 김원봉과 헤어져 이여성과 함께 귀국하였다. 1923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국내에 잠입한 정재달과 접촉하여 구금, 1924년 4월에는 김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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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경시집 / 金良鏡詩集 [문학/한문학]
고려 후기 문인 김양경(金良鏡, ?~1235)의 시문집(詩文集). 『김양경시집(金良鏡詩集)』에 관한 기록은 『허백당집(虛白堂集)』 권6과 『해동문헌총록(海東文獻總錄)』의 「제가시문집(諸家詩文集)」 등에 보인다. 성현(成俔, 1439~1504)이 「김양경시집서(金良鏡詩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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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보호성공신록 / 金良輔扈聖功臣錄 [언론·출판/출판]
1604년 무신 김양보를 호성공신 3등에 책록한 교서. 공신교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87호. 1604년(선조 37) 가의대부(嘉義大夫, 종2품) 내시부상호(內侍府尙弧)인 김양보를 충근정량호성공신(忠勤貞亮扈聖功臣) 자헌대부(資憲大夫, 정2품)인 삼등공신으로 한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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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선 / 金良善 [종교·철학/개신교]
1907년∼1970년. 장로교 목사·고고학자·교회사학자. 1907년 평안북도 의주군 비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관근은 장로교 목사였으며, 어머니 백관성은 홍준의 딸이다. 1921년 중원학교, 신성중학교와 숭실전문학교, 그리고 평양의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였다. 19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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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정 / 金養禎 [종교·철학/유학]
1785년(정조 9)∼1847년(헌종 13). 조선 후기 유학자. 부친 김해진의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동생 지암 김양식이 있다. 정종로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금시술·이원조·이휘녕·정상진·황반노 등과 도의로 교유하였다. 1834년(순조 34) 식년시 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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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행 / 金亮行 [종교·철학/유학]
1715(숙종 41)∼1779(정조 3). 조선 후기의 문신ㆍ학자. 아버지는 참판에 추증된 김신겸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로 좌의정 이이명의 딸이다. 민우수의 문인, 이간의 인물동성론에 동조한 김창흡의 영향을 받아 낙론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했다. 오직 학문연구에 전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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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억 / 金億 [문학/현대문학]
항일기의 시인·평론가(1896-?). 호는 안서·안서생(岸曙生)·A. S.. 한국 근대문학의 형성과정에 그가 남긴 공적은 매우 컸다. 특히, 1921년 간행된 우리나라 최초의 역시집 《오뇌의 무도》가 폐허 및 백조동인들의 초기시에 미친 영향은 더욱 주목된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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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억득 / 金億得 [예술·체육/국악]
생몰년 미상. 일제강점기의 국악가. 전라북도 남원시(南原市) 쌍교동(雙橋洞)에서 출생하였으며, 본명은 김사문(金士文)이다. 성품이 호협하고 생각이 진취적이며, 창의력이 뛰어나 문예활동이 왕성했다. 전국의 명창, 명기들을 모아 서울에서 협률사(協律社)를 조직하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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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건 / 金彦健 [종교·철학/유학]
1511(중종 6)∼1571(선조 4).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공저, 아버지는 장사랑 자, 어머니는 흥양이씨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어 어려운 과정에서 학문을 닦았고, 장년이 되자 노수신·임훈 등과 교유하였다. 저서로는『운정유집』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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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신관련고문서 / 金言愼關聯古文書 [언론·출판/출판]
조선전기 문신 김언신의 종손가에 소장된 문서. 종가문서. 김언신(1492∼1553)은 1532년(중종 27) 생원에 오른 후 경상도 밀양·청송·동래 등 7읍의 교수를 역임했다. 관련 고문서는 교지 8점으로, 2005년 5월 23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64호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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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진 / 金麗鎭 [역사/근대사]
1855-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황해도 수안(遂安)이다. 천도교구장이었던 안봉하(安鳳河)를 중심으로 나용일(羅龍一)·장성도(張聖道)·김동선(金洞宣)·이달하(李達河)·안창식(安昌植)·홍길재(洪吉載)·홍두익(洪斗益)·이응호(李應浩)·이윤식(李潤植) 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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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 / 金演 [종교·철학/유학]
1547(명종 2)∼1640(인조 18). 조선 중기의 의병. 아버지는 부장 두문, 어머니는 김우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자질이 뛰어나 그의 백형 길과 재종형 면과 합하여 김씨 삼군자라 칭송되었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면이 조종도·곽준·문위 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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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광 / 金練光 [종교·철학/유학]
1524(중종 19)∼1592(선조 25).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수련, 아버지는 영원군수 이상. 1555년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교리, 제용감첨정, 평양판관, 부현현감, 평창군수, 회양부사를 역임하였다. 저서로는『송암유고』 한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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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순 / 金演淳 [역사/근대사]
1881-1946.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기독교인. 본적은 경상북도 영덕(盈德)이다. 1919년 3월 19일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蒼水面) 창수동(蒼水洞)의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신기동(新基洞) 구장 이현설(李鉉卨)과 이수각(李壽珏)·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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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실전 / 金姸實傳 [문학/현대문학]
김동인(金東仁)이 지은 단편소설. 1939년 3월 『문장』 2집에는 ‘김연실전’, 5월에는 ‘선구녀(先驅女)’, 1941년 2월에는 ‘진주름’이라는 제목으로 같은 잡지에 3회에 걸쳐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당시 신여성 문학인이었던 김명순(金明淳)을 모델로 하였다고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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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 / 金瑛 [종교·철학/유학]
1475(성종 6)∼1528(중종 23).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계권, 아버지는 장령 영수, 어머니는 김박의 딸이다. 1506년(연산군 12) 별시문과에 정과로 급제, 예문관검열, 수찬, 정언, 교리, 장령, 경상도재상경차관, 김제군수, 강원도관찰사 등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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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국 / 金永國 [역사/근대사]
미상-1919.03.19.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3·1운동 이후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을 때, 황해도 문화면(文化面)에서 시작되어 신천군(信川郡)까지 확산된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 운동은 문창규·김명성 등의 기독교인과 천도교인 등 종교인들의 주도로 시작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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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근 / 金永根 [문학/한문학]
개항기 및 일제강점기의 유학자.우국지사. 김영근(金永根)은 1865년 전라남도 강진군 신기(新基, 현 칠량면 명주리 신기)에서 태어났다. 조상 대대로 이 곳에 세거하였으며, 부친 김도순(金道淳)은 절충장군(折衝將軍) 행용양위(行龍驤衛)와 금갑도(金甲島) 만호(萬戶)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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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근제유문 / 金永根提諭文 [정치·법제]
1853년(철종 4) 9월 10일. 철종이 신임 황해감사 김영근(金永根)을 소견하고 제유한 내용을 기록한 문서. 《철종실록》에 의하면, 철종은 새로 황해감사에 임명된 김영근이 1853년(철종 4) 9월 10일에 사폐할 때에, 그를 소견하고 감사의 임무를 잘 수행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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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길 / 金永吉 [예술·체육/대중음악]
1909-1985년. 일제 강점기 가수·영화배우. 창씨 개명한 이름은 나가타겐지로[永田絃次郞]이다. 출신지는 평안남도 강동군(江東郡)이다. 1928년 평양 제2중학교를 졸업하고, 1933년부터 1935년까지 동경일일신문음악콩쿠르 성악부문에서 3년 연속 입상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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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득 / 金榮得 [역사/근대사]
1908-1940.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유영(金幽影)이다. 본적은 경상북도 선산(善山)이다. 1927년 9월 서울에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 가입하여 1930년 4월경까지 열성 당원으로 활동하면서, 일제의 수탈과 탄압으로 땅을 빼앗기고 유랑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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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락 / 金榮洛 [종교·철학/유학]
1831년(순조 31)∼1906년(광무 10). 조선 말기 유학자. 이병불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노인직으로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를 받았다. 문집으로 손자 김정준이 편집 간행한《구계집》은 이충호가 서문을, 손자 김재준이 발문을 붙였다. 문집은 시가 주류를 이루는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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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 金永蘭 [역사/근대사]
1896-192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출신지는 평안남도 순천이다.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후 공성단(共成團)에 가입하였다. 같은 해 평양·순천 등지에서 독립활동을 위한 자금을 모금하고 비밀결사 숭의단을 창립하였다. 1920년 평남 등지에서 민족독립활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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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렬 / 金英烈 [종교·철학/유학]
?∼1404(태종 4). 조선 전기의 무신. 1394년에 전서로 있던 중 그해 경기우도수군첨절제사가 되었다. 1395년에 수군절제사로 발탁되었다. 1400년(정종 2)에 지삼군부사로 있을 때에 제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고 태종을 왕위에 오르게 한 공으로, 1401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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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목 / 金永穆 [종교·철학/유학]
1835(헌종 1)∼1910. 조선 말기의 문신. 주요 내직에 임명되다가, 1898년에 궁내부특진관에 칙임관 3등으로 올랐으며, 홍릉제조에 임명, 1899년에 전주 오목대비문 서사관, 인조대왕옥책문의 악장문제술관이 되었다. 1900년부터 2년 동안은 산릉도감 및 천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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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 金永三 [정치·법제/정치]
1927년 12월 20일 - 2015년 11월 22일. 정치가. 경남 거제 출신. 1952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철학과 졸업, 장택상 총리 인사담당 비서가 되었다. 1954년 26세의 최연소자로 제3대 민의원에 당선된 후, 제5, 6, 7, 8, 9, 10, 1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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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서 / 金永西 [역사/근대사]
1889-1959. 독립운동가. 일명 광오(光五). 경기도 안성 출신. 1919년 4월 안성군 원곡면과 양성면일대에서 이유석(李裕奭) 등이 계획하여 전개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4월 1일 외가천리에 있던 원곡면사무소 앞에서 1천여명의 만세시위군중들과 독립만세를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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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성 / 金永聲 [역사/근대사]
1867-1959. 한말의 의병장. 전라남도 흥양 출신. 1909년 3월 격문을 발하여 의병을 모집, 휘하에 30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3월부터 5월 사이에 흥양군 대강면·남양면·남면·서면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4월에는 사창호곡(社倉毫谷)에서, 8월에는 과역(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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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 / 金永肅 [역사/근대사]
1886-1952. 독립운동가. 본관은 광산. 호는 백주(白舟). 충청남도 결성군(지금의 홍성군) 출신. 1911년 중앙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졸업한 뒤, 잠시 서울 승동소학교(勝洞小學校)에서 교편을 잡다가 같은해 8월 만주로 망명하였다. 그곳에서 대종교의 윤세복(尹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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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순 / 金英順 [교육/교육]
1895-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교육자. 본적은 서울이다. 정신여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1919년 오현주(吳玄洲)의 권유로 비밀결사단체 대한민국애국부인회(大韓民國愛國婦人會)에 가입하여 항일독립운동을 하였다. 대한민국 애국부인회는 1919년 3월과 4월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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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 金永植 [역사/근대사]
1899-193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장성(長城)이다. 1919년 5월 김순호(金順皓)로부터 서울에서 신현구(申鉉九) 등을 중심으로 임시 정부 지원 등을 위해 결성된 대한독립애국단(大韓獨立愛國團)의 설립취지를 듣고서 대한독립애국단에 가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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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작 / 金永爵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802∼1868). 김홍집의 아버지로 주요 내외직에 임명되었다. 외직에 있을 때 선정으로 칭송을 받았는데, 정주·청주목사로 재임 시 대동미, 조운제도의 개혁을 시도하였다. 경사에도 밝았으며 시문에 더욱 능하였다. 저술로는《소정고》 6권과 《청묘의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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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재 / 金英哉 [역사/근대사]
1911-1965. 독립운동가. 별명은 왕영재(王英哉). 평안북도 용천 출신. 1931년 상해로 망명, 1932년 상해에서 한인청년당(韓人靑年黨)을 조직하여 항일특무공작활동을 하였다. 같은해 4월 윤봉길(尹奉吉)의 훙커우공원투탄의거(虹口公園投彈義擧)때, 윤봉길이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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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조 / 金榮祖 [종교·철학/유학]
1577(선조 10)∼1648(인조 26).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사의 농, 아버지는 산음현감 대현, 어머니는 전주이씨이다. 김성일의 사위이다. 9형제 중 5명이 문과에 급제하였다. 1612년(광해군 4)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정자를 거쳐 대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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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전 / 金英哲傳 [문학/고전산문]
조선 후기에 홍세태(洪世泰)가 지은 전(傳). 작자가 「김영철유사(金英哲遺事)」를 읽고 지은 전계(傳系) 소설로, 『유하집(柳下集)』에 실려 있다.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 사이에 창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은 17세기 명·청 교체기의 전란(戰亂)이 가져온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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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태 / 金榮泰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유태인이 사는 마을의 겨울』·『초개수첩』·『결혼식과 장례식』 등을 저술한 시인.화가·연극평론가·무용평론가. 서울 필운동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미대를 졸업했다. 1959년 『사상계』에 시 「시련의 사과나무」, 「설경」, 「꽃씨를 받아둔다」가 추천되어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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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 金榮漢 [정치·법제/정치]
1857년(철종 8) 6월 14일∼1927년 8월 19일. 일제 강점기 관료. 조선 말기 의금부도사와 탁지부주사로 관직생활을 시작하여 대한제국기에 법부참서관·중추원의관·탁지부 인쇄국장 등을 지냈다. 1921년부터 1927년까지 조선총독부의 중추원참의를 지냈다.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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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행 / 金令行 [종교·철학/유학]
1673년(현종 14)∼1755년(영조 31). 조선 후기의 문신. 아버지는 관찰사 김시걸. 김창흡의 문인이다. 1725년 영조가 즉위하자 풀려나 우사어로 다시 기용되고, 이어서 임천군수를 거쳐 첨지중추부사를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시문을 모은《필운유고》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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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직 / 金禮直 [종교·철학/유학]
1565∼1623. 조선 중기의 무신. 아버지는 첨정 희철, 광해군의 어머니인 공빈김씨의 동생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평범한 선비로서 왕을 의주까지 호종하였다. 다음 해 무과에 급제, 1604년평안도 용천군수를 거쳐 1610년(광해군 2) 첨지중추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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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남시조집 / 金午男時調集 [문학/현대문학]
김오남(金午男)의 시조집. 작자는 1930년 12월 『조선일보』에 「무제음사수(無題吟四首)」를 처음으로 발표한데 이어, 1930년대에 『조선문단』·『신가정』·『조선문학』·『중앙』·『신인문학』·『시원』·『여성』과 1945년 『여성문화』에 많은 양의 시조를 실었다.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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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 / 金玉均 [정치·법제/정치]
조선 후기의 정치가·개화운동가(1851∼1894). 갑신정변을 주도하였다. 갑신정변에 투영된 김옥균의 사상 속에는 문벌의 폐지, 인민평등 등 근대사상을 기초로 하여 낡은 왕정사 그 자체에 어떤 궁극적 해답을 주려는 혁명적 의도가 들어 있었다. 저서로는《기화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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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선생유허 / 金玉均先生遺墟 [역사/근대사]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에 있는 김옥균의 생가지. 충청남도 기념물 제13호. 조선 말기의 정치가. 김옥균의 생가를 비롯하여 8, 9호의 민가가 작은 촌락을 이루고 있었는데, 1900년대 초에 화재로 폐동(廢洞)되었다고 한다. 근년에 현대식으로 화강석대에 오석(烏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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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암살사건 / 金玉均暗殺事件 [역사/근대사]
1894년 3월 28일 김옥균이 상해에서 홍종우에 의해 저격되어 피살된 사건. 갑신정변의 실패로 일본에 망명한 김옥균, 박영효 등을 대역 죄인으로 규정. 동경에서 김옥균은 이일직의 계략에 빠져 홍종우와 함께 상해로 건너갔다가 미국 조계(租界) 안의 일본 여관 동화양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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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주 / 金玉珠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의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시 동래동에서 살았다. 소학교 졸업후 김자진(金子眞)으로부터 검무를 배워 23년간 무용계에 종사하였으며, 1967년 1월「진주검무」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이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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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 호종일기 / 金涌扈從日記 [역사/조선시대사]
조선시대 문신 김용이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하면서 보고 들은 사실들을 기록한 일지. 공무일기. 보물 제484호. 3책. 필사본. 이 책은 초서로 쓰여졌으며, 임진왜란 때 의주로 피난하는 선조를 호종하였을 때 직접 체험하고 보고 들은 사실들을 그대로 기록한 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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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겸 / 金用謙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문신(1702∼1789). 김시보에게서 수학하였다. 1748년에 선공감감역에 제수된 이후 여러 벼슬을 거쳐, 우승지·공조판서가 되었다. 정조와 경서·사기·백가로부터 국조헌장에 이르기까지 두루 토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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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 金龍圭 [종교·철학/유학]
1892년(고종 29)∼1964년. 조선 말기의 유학자. 보백당 김계행의 후손, 증조부는 김기순, 조부는 김찬근, 부는 김병희이다. 5세에 권상익 문하에서 수학, 이제상의 문하에서 성리를 탐구하였다. 유교경전에 박학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로 두문불출하고 경서

종교·철학(42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