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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한 / 金東漢 [예술·체육/무용]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최초의 사교무용학원인 조선예술학원을 설립한 무용가. 러시아 해삼위(海蔘威,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생했다. 1921년 해삼위학생음악단이 고국 방문 순회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이후, 동년(同年) 김동한은 해삼위동포연예단을 이끌고 고국을 방문해 우리나라

  • 김동헌 / 金東獻 [종교·철학/유학]

    1791년(정조 15)∼1869년(고종 6). 조선 후기의 문신. 증조부는 김치후, 조부는 김종정, 부친은 김명연이다. 모친은 남홍억의 딸이다. 처부는 이희곤의 딸이다. 1832년에 세자익위사부수를 거쳐 오위사과·사복시주부·충훈부도사 등을 지냈으며, 외직으로 임실현감

  • 김동협 / 金東鋏 [역사/근대사]

    1920-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평안남도 순천군(順川郡) 선소면(仙沼面)이다. 일본이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후 강제 징용과 각종 수탈을 만행하자, 일본의 강압적 행위에 대한 분노로 조선 독립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하였다. 1943년 조종희(趙

  • 김두만 / 金斗萬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의주 출신. 1919년 4월 2일 수진면 고향에서 3·1운동을 주도한 뒤 동지들과 같이 만주로 망명하여, 만주 안동현(安東縣)에 설립된 독립운동단체인 임시의사회(臨時議事會)의 중심인물로 활동하였다. 그는 관전현(寬甸縣)을 근거지로 하

  • 김두명 / 金斗明 [종교·철학/유학]

    1644(인조 22)∼1706(숙종 32). 조선 후기의 문신. 김추의 증손, 할아버지는 김흥진,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김준, 어머니는 소동헌의 딸이다. 윤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말과 행동이 신중하고 침착하여 칭찬을 받았다. 1671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 김두봉 / 金枓奉 [정치·법제/정치]

    1889년(고종 26)∼1961?. 독립운동가·한글학자·정치가. 연안파 공산당의 지도자. 17살에 서울로 올라와 배재학교. 보명중학에서 공부하고, 한글학자 주시경 밑에서 연구한 후 각지의 한글강습회와 보성, 중앙, 휘문고보에서 가르쳤다. 1929년 임시정부 의정원 의

  • 김두우 / 金斗牛 [역사/근대사]

    1898-193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황해도 평산(平山)이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태극기 등을 비밀리에 제작하였다. 3월 31일 황해도 평산군 인산면(麟山面) 기린리(麒麟里)에서 김예식(金禮植)·서홍균(徐洪均)·정학규(鄭學奎) 등과 함께

  • 김두찬 / 金斗燦 [역사/근대사]

    1919-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택달(金澤達)이다. 본적은 평안남도 강동(江東)이다. 1936년 평양의 숭실중학교(崇實中學校) 재학 중, 일본이 강압적으로 시행했던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운동을 주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연행되었다. 1938년 김길순

  • 김득명 / 金得鳴 [역사/근대사]

    1923-2009. 일제 강점기 광복군. 본적은 황해도 봉산군(鳳山郡) 사리원(沙里院)이다. 일본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발발시키고 군사력 보충을 위해 조선인을 강제 징집하였다. 김득명(金得鳴)은 이때 강제 징병되어 중국 상해에 주둔한 일본 군대에 배속되었다. 그러

  • 김득신 / 金得臣 [문학/한문학]

    1604년(선조 37)∼1684년(숙종 10).조선 후기의 시인. 아버지는 경상도관찰사를 지낸 김치(金緻)이며, 어머니는 사천 목씨(泗川睦氏)로 목첨(睦詹)의 딸이고, 부인은 경주 김씨이다.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아 노둔한 편이었으나, 아버지의 가르침과 훈도를 받아 서서

  • 김득연 / 金得硏 [종교·철학/유학]

    1555(명종 10)∼1637(인조 15). 조선 중기의 학자. 성균관 생원 김언기의 맏아들로서 어머니는 영양남씨 세용의 딸이다. 첫돌 전에 어머니를 여의고 조모 안씨에게서 자랐으며, 아버지에게서 글을 배웠다. 1602년(선조 35) 생진양시에 급제하였으나 벼슬하지 않

  • 김득추 / 金得秋 [종교·철학/유학]

    1562(명종 17)∼1660(현종 1). 조선 중기의 무신. 아버지는 부사과 김건, 어머니는 김수문의 딸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영양·창암·노항 등지에서 적과 싸워 많은 공을 세웠다. 이때의 공으로 훈련주부에 임명되었다. 훈련

  • 김려 / 金鑢 [문학/한문학]

    조선 후기의 문인·학자. 할아버지는 김희(金喜), 아버지는 김재칠(金載七)이다. 집안이 노론계의 비중 있는 명문이다. 당쟁의 화를 많이 당했다. 1780년(정조 4) 15세에 성균관에 들어갔으며, 당시에 유행하던 패사소품체(稗史小品體)의 문장을 익혔다. 그리고 김조순(

  • 김령 / 金坽 [종교·철학/유학]

    1577(선조 10)∼1641(인조 19). 조선 중기의 문신. 김효로의 증손, 할아버지는 김유, 아버지는 현감 김부륜, 어머니는 평산 신씨로 부호군 신수민의 딸이다. 1612년(광해군 4)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에 등용된 뒤 여러 벼슬을 거쳐 주서 등을 역

  • 김륵 / 金玏 [종교·철학/유학]

    1540(중종 35)∼1616(광해군 8). 조선 중기의 문신. 김만칭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 좌승지 김우, 아버지는 진사 김사명, 백부인 형조원외랑 김사문에게 입양되었다. 이황의 문인이다. 1576년(선조 9)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대표적 관직으로 영

  • 김리만 / 金履萬 [종교·철학/유학]

    1683(숙종 9) - 1758(영조 34) 김득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 호조참판 김단이고, 아버지는 경주부윤 김해일, 어머니는 이은진의 딸이다. 1713년(숙종 39) 사마시에 합격하고 같은해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부정자가 되었다. 1718년(숙종 44)에 6

  • 김립시집 / 金笠詩集 [문학/한문학]

    조선 후기의 시인 김병연(金炳淵)의 시집. 김립(김삿갓)은 그의 별명이다. 이응수(李應洙)에 의해 각지에 흩어진 시편들이 수집되어 나온 이래 여러 종이 전한다. ① 이응수의 『김립시집』1939년 2월 학예사에서 발행하였다. 이응수는 대학시절부터 김삿갓에 흥미를 가지고

  • 김마리아 / 金瑪利亞 [역사/근대사]

    1891-1944. 항일기의 독립운동가·교육자. 1919년 2·8운동과 3·1운동에서 활약하였고, 이후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회장·상해애국부인회 간부 등을 지냈다.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한 이후 1965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 김막동 / 金莫同 [역사/근대사]

    1887-미상. 일제 강점기 의병·독립운동가. 본적은 전라북도 임실군(任實郡)이다. 일제에 의해 고종 황제가 퇴위를 당하고 강압적으로 군대가 해산되자,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에 가담하면서 전국적으로 의병활동이 진행되었다. 1909년(융희 3) 김동구(金東九) 의진(義陣

  • 김막인 / 金漠人 [예술·체육/무용]

    해방 이후 조선무용예술협회 현대무용부의 임원을 역임한 무용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모던댄스를 수학 후, 해방 후 서울에서 전위무용을 시도한 신흥무용가이다. 본명은 김해성(金海星)으로 부친이 목사였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이시이미도리무용연구소에서 수학했고, 귀국 후 악극

  • 김만균 / 金萬均 [종교·철학/유학]

    1631(인조 9)∼? 조선 후기의 문신. 형조참판 김장생 증손, 할아버지는 참판 김반, 아버지는 이조판서 김익희, 어머니는 이덕수의 딸이다. 송시열의 문인이다. 1654년(효종 5)에 춘당대문과에 병과로 급제, 병조좌랑에 기용, 그 뒤 정언·수찬·검토관·부교리·교리를

  • 김만기 / 金萬基 [종교·철학/유학]

    1633(인조 11)∼1687(숙종 13). 조선 후기의 문신. 형조참판 김장생의 증손, 할아버지는 참판 김반, 아버지는 생원 김익겸, 어머니는 해평 윤씨로 참판 윤지의 딸이다. 인경왕후의 아버지이자 작은아버지인 김익희에게서 수학했으며, 송시열의 문인이다. 1652년(

  • 김만삼 / 김만삼 [사회/사회구조]

    일제강점기 카자흐공화국에서 선봉 콜호즈를 중심으로 활동한 교민.고려인, 농업지도자. 1928년 이후에 연해주의 콜호즈(kolkhoz)에서 활동하다가, 1937년에카자흐(Kazakh)공화국으로 강제이주된 뒤에는 선봉(先鋒) 콜호즈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벼의 재배

  • 김만수 / 金萬秀 [역사/근대사]

    1894-1924.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자는 회일(會一). 일제에 의해 국권이 강탈되자 만주로 망명하여, 이후 서로군정서에 가담했다. 1924년 최병호·유기동 등과 함께 하얼빈에서 일본 총영사와 일본경찰 10여명을 사살하고 순국했다.

  • 김만식 / 金晩植 [정치·법제/정치]

    조선 후기의 문신(1834∼1900). 유신환의 문인으로 1869년(고종 6) 정시문과에 급제하였다. 동지사. 조불수호통상조약 전권대신 등 여러 벼슬을 거쳐 1882년에는 서양어 교육기관인 영어학교의 장교가 되었고, 1883년 ‘박문국’을 신설하고, 신문발간을 추진

  • 김만와 / 金晩窩 [역사/근대사]

    1898-1967. 독립운동가. 일명 순학(舜鶴). 함경북도 무산 출신. 1919년 만주에서 철혈광복단(鐵血光復團)에 입단하였으며, 1922년에는 대한독립단에 입단하여 독립군자금 조달과 독립군의 전투에 참가하였다. 그뒤 1926년 고려혁명당에 가입하여 정의부(正義府)의

  • 김만중 / 金萬重 [문학/한문학]

    1637년(인조 15)∼1692년(숙종 18). 조선 후기의 문신·소설가. 조선조 예학의 대가인 김장생의 증손, 충렬공 익겸의 유복자이다. 김만중은 그는 어머니로부터 엄격한 훈도를 받고 14세인 1650년(효종 1)에 진사초시 합격, 16세인 1652년(효종 3)에 진

  • 김만풍 / 金萬豊 [역사/근대사]

    1886-1962.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 본관은 광산(光山)이고 제주도 서귀포 성산읍(城山邑) 오조리(吾照里)에서 출생하였다. 1927년 5월 성산포(城山浦)에서 면민씨름 대회를 개최하였을 때 씨름을 구경하던 일본어선단 선원 2백여 명과 지방민과 격투가 벌어져 김명

  • 김매순 / 金邁淳 [종교·철학/유학]

    1776(영조 52)∼1840(헌종 6).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아버지는 참봉 김이수, 어머니는 죽산안씨로 안종주의 딸이다. 1795년(정조 19)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사인을 거쳐 초계문신이 되었고, 그뒤 예조참판을 거쳐 1821년(순조 21) 강화부유

  • 김맹 / 金孟 [종교·철학/유학]

    1410(태종 10)∼1483(성종 14). 조선 전기의 문신. 김항의 증손, 할아버지는 김서, 아버지는 김극일, 어머니는 한성부윤 이간의 딸이다. 1441년(세종 2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감찰·김천도찰방·예조좌랑이 되었다. 이후 오위도총부경력을 역임하였다.

  • 김맹권 / 金孟權 [종교·철학/유학]

    생몰년 미상. 조선 전기의 학자. 아버지는 감찰 김중로. 일찍이 진사가 되고 문명이 높아 집현전학사로 뽑혔다. 세종의 신임을 받아 뒤에 단종이 된 왕세손의 보필을 부탁받았으나, 1455년(세조 1) 수양대군이 왕위를 빼앗자, 그날로 고향으로 돌아가 끝내 과거를 보지 않

  • 김면 / 金沔 [종교·철학/유학]

    1541년(중종 36)∼1593년(선조 26). 조선 중기의 학자·의병장. 아버지는 경원부사 김세문, 어머니는 김해 김중손의 딸이다. 조식과 이황의 문인이다. 1592년(선조 25)임진왜란이 일어나자 5월에 조종도·곽준·문위 등과 함께 거창과 고령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 김명권 / 金明權 [역사/근대사]

    1889-1923. 독립운동가. 본관은 김해. 평안남도 덕천(德川) 출신. 이근(利根)의 아들이다. 소학교를 졸업한 뒤 기독교에 입교하여 장로가 되었다. 3·1운동에 참가하였다가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청년단(大韓靑年團)에 가입하여 군자금을 모금하기 위하여 국내에 특파되

  • 김명규 / 金明奎 [역사/근대사]

    1893-1977년. 독립운동가. 경상남도 밀양 출신. 1919년 3·1운동의 일환으로 그해 4월 동래고등보통학교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였다. 시위 도중에 붙잡혀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언도받았다. 1920년 서울의 황상규(黃尙奎, 일명 白民)의

  • 김명동 / 金明東 [역사/근대사]

    1902-1950. 독립운동가·제헌국회 의원. 충청남도 공주 출신. 1919년 3·1운동에 참가하였다. 1927년 신간회(新幹會)가 결성될 때 발기인 34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창립에 기여하였으며, 그뒤 중앙집행위원으로 활약하였다. 1945년 광복 후 민족통일총본부 사

  • 김명립 / 金命立 [역사/근대사]

    1893-1978. 한말의 의병·독립운동가. 일명 유근(有根). 경상북도 봉화 출신. 성원(聖元)의 아들이다. 1907년부터 의병장 이강년(李康埏)의 부대에서 활동하던 아버지를 귀가시키고 뒤를 이어 의병진에 가담하였다. 경상북도 일대에서 여러 차례 전투에 참가하였으며

  • 김명복 / 金明福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체육지도서』, 『체육개론』 등을 저술한 학자. 평안북도 정주 출생. 오산중학교를 거쳐 1935년 일본체조학교를 졸업하고 모교인 오산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였다. 1947년부터 평양교원대학 교수, 1954년 경희대학교 체육대학장·교육대학원장·부총장을 역임하였

  • 김명석 / 金命錫 [종교·철학/유학]

    1675년(숙종 1)∼1762년(영조 38). 조선 후기 유학자. 부친 김태중과 모친 홍극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갈암 이현일의 문인으로 향시에는 여러 번 장원하였으나 대과에서 연이어 낙방한 뒤로는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고향에 머물면서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 김명세 / 金明世 [역사/근대사]

    미상-192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만주(滿洲)로 이주하였다.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에서 활동 중이던 독립운동단체에 가담하였다. 세린하(細鱗河)에서 조직 활동을 하던 중 일본군에게 체포되었

  • 김명심 / 金明心 [역사/근대사]

    1881-미상. 일제 강점기 의병·독립운동가. 본적은 충청북도 청주시(淸州市)이다. 일제에 의해 고종 황제가 퇴위를 당하고 강압적으로 군대가 해산되자,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에 가담하면서 전국적으로 의병활동이 진행되었다. 1908년(융희 2) 평소 지니고 있던 반일의식

  • 김명열 평산도호부사 해유문서 / 金命說 平山都護府使 解由文書 [정치·법제/법제·행정]

    김명열 평산도호부사 해유문서. 1669년(현종 10) 12월 26일 수황해도관찰사겸순찰사가 호조로 문서를 이관, 1670년(현종 11) 6월 일에 호조에서 이조로 문서를 이관한 후에, 동년 6월 초5일에 이조에서 김명열(金命說)에게 조흘한 문서이다. 김명열은 홍원의 아

  • 김명우 / 金明友 [역사/근대사]

    1887-195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기도 화성군(華城郡) 장안면(長安面)이다. 1919년 이영쇠(李永釗)·장소진(張韶鎭)·장제덕(張濟悳)·차희식(車喜植)·차병한(車炳漢)·차병혁(車炳爀) 등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2월 이순모(李順模) 등과

  • 김명원 / 金命元 [종교·철학/유학]

    1534(중종 29)∼1602(선조 35). 조선 중기의 문신. 김치세의 증손, 할아버지는 직제학 김천령, 아버지는 대사헌 김만균, 어머니는 순흥안씨로 현감 안준의의 딸이다. 이황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61년 식년 문과에 갑과로 급제해 평안병사·호조참판·전라감사·

  • 김명제 / 金命濟 [역사/근대사]

    1863-1926. 독립운동가. 경기도 화성 출신. 1919년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홍면(洪) 등이 전개한 수원군 송산면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3월 26일부터 송산면 사강리의 면사무소에서 1백여 명의 주민과 함께 태극기를 게양하고 독립만세시위운동에 참

  • 김명진 / 金命鎭 [역사/근대사]

    1908-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농민운동가. 본적은 경상북도 영주(榮州) 평은(平恩)이다. 1923년 영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농업에 종사하며 영주청년동맹 평은지부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1932년 10월 경상북도 영주에서 적색농민조합재건투쟁준비위원회(赤色

  • 김명희 / 金明熙 [역사/근대사]

    미상-192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만주(滿洲)로 이주하였다. 그곳에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가담한 후, 곽문(郭文)·김동삼(金東三)·김응섭(金應燮)·김형식(金衡植)·남정섭(南廷燮)·양규열(梁圭

  • 김몽화 / 金夢華 [종교·철학/유학]

    1723년(경종 3)∼1792년(정조 16). 조선 후기 문신. 증조는 김상주, 조부는 김형섭이다. 부친 김유수와 모친 이석망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형 김몽의가 있다. 청대 권상일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54년(영조 30) 증광시 생원 3등 37위로 합격, 1

  • 김무분깃문기 / 金務分─文記 [경제·산업/경제]

    1429년 12월 김무가 자녀에게 자신 소유의 노비를 상속한 문서. 분재기. 문서의 구성은 분재에 관한 서언(序言), 분재당사자의 서명, 자녀별 분재노비의 표시로 되어 있다. 서언에는 노비의 소전래(所傳來)·분배기준·유루(遺漏), 도망노비의 처리방법, 증조 사원(士元

  • 김무석 / 金武錫 [역사/근대사]

    1887-1960.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제주도 좌면(左面) 월평리(月坪里) 432 출신이다. 1918년 10월 5일 제주도 남제주(南濟州) 법정사(法井寺)에서 승려 김연일(金連日), 강창규(姜昌奎), 방동화(房東華) 등이 주도한 항일 무력

  • 김문기 / 金文起 [종교·철학/유학]

    1399(정종 1)∼1456(세조 2). 조선 전기의 문신. 김알지 후손, 아버지는 김관. 1426년(세종 8)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문관검열, 병조참의, 형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791년(정조 15)에 단종을 위해 충성을 바친 여러 신하들에게 ≪어정배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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