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어사전 총 22,1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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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능인 / 金陵人 [예술·체육/대중음악]
1911-미상. 대중가요 작사가. 본명은 승응순(昇應順). 천도교 가정에서 성장하면서 동시를 쓰며, 동인회 ‘희망사’를 조직하여 그 회장으로 활약하였다. 아동문학가 윤석중(尹石重)과 청소년시절을 함께 보낸 문필가로 한때 신문사 기자생활도 하였다. 1920년대 후반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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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담 / 金淡 [종교·철학/유학]
1416(태종 16)∼1464(세조 10). 조선 세종 때의 천문학자. 할아버지는 고려 때 중랑장 김로, 아버지는 현감 김소량, 어머니는 평해황씨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독서를 좋아했으며, 1435년(세종 17) 정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정자로 임명되었다.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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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 金大建 [종교·철학/천주교]
조선 후기의 천주교인·신부(1822∼1846). 1831년 조선교구 신학생으로 발탁되어 마카오에서 철학과 신학 과정을 이수하였다. 1845년에 귀국했다가 상해로 건너가서 주교 페레올의 집전하에 신품성사를 받고 정식 신부가 되었다. 1846년 서양성직자 잠입해로를 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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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비훈민전 / 金大妃訓民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교훈서. 국문필사본. 목판본이나 활자본은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김동욱(金東旭) 소장본(현 단국대학교 율곡기념도서관 소장)의 필사본만 전한다. 필사자와 필사 연도는 작품 말미의 후기로 보아, 권소저(權小姐)가 12세 때인 병진년에 필사하였음을 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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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유 / 金大有 [종교·철학/유학]
1479(성종 10)∼1551(명종 6). 조선 중기의 문신. 김극일의 증손, 할아버지는 집의 김맹, 아버지는 직제학 김준손, 어머니는 사도시정 고태익의 딸이다. 김일손의 조카이다. 조광조·조식 등과 친교를 맺었다. 1519년 현량문과에 3등과로 급제한 뒤 성균관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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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 金大中 [정치·법제/정치]
1925~2009. 정치가. 전남 신안 출신. 1953년 건국대학 정치외교학과 3년 중퇴, 1969년 경희대학교 대학원 수료, 1950년 <목포일보>사장, 1960년 민의원에 당선된 후 1971년까지 제, 6,7,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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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납치사건 / 金大中拉致事件 [정치·법제/정치]
1973년 8월 8일 일본 도쿄에서 한국 야당지도자 김대중이 납치되어 한일간의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된 사건. 사건 당일 김대중은 통일당 당수 양일동을 만나러 그랜드 팔레스 호텔에 갔다가, 대기하고 있던 한국 정보기관 요원 5명에게 납치, 수장 직전 극적으로 구출되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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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지 / 金大池 [역사/근대사]
1891(고종 28)-1942. 독립운동가. 1917년 만주의 길림·봉천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위한 비밀결사 조직하려다 발각, 1918년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4개월을 언도받고 복역하였다. 그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독립운동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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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진 / 金岱鎭 [종교·철학/유학]
1800년(정조 24)∼1871년(고종 8). 조선 후기 학자. 부친은 김복수, 생부 미산 김창수와 모친 권형의 딸사이에서 2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 김진상이 있다. 김화와 김홍규의 문하에서 수학, 교유인물은 유치명·조언관·이만각·이수영 등이 있다. 18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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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기임명문서 / 金德起任命文書 [정치·법제]
1907년(광무 11) 6월 20일. 9품 종사랑 김덕기(金德起)를 소녕원 수봉관 판임관 5등에 서임하는 임명장. 소녕원은 숙종의 후궁이며 영조의 생모인 숙빈최씨의 묘소이다. 이문 서를 통해 대한제국기의 수봉관은 판임관 5등에 서임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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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령설화 / [문학/구비문학]
조선 중기의 명장 김덕령에 관한 설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보지도 못하고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김덕령을 주인공으로 하는 인물전설이다. 문헌설화는 『연려실기술』·『동야휘집(東野彙輯)』·『풍암집화(楓巖輯話)』·『대동기문(大東奇聞)』 등에 전하며, 구전설화는 전국적으로 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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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령장군의복 / 金德領將軍衣服 [생활/의생활]
1965년 광주광역시 무등산에 있던 김덕령(金德齡:1567∼1596) 장군의 묘를 이장할 때 출토된 16세기 후기의 복식류. 1965년 7월에 광주광역시 무등산 이치(梨峙)에 있던 충장공(忠壯公) 김덕령(金德齡:1567∼1596) 장군의 묘를 이장할 때 16세기말 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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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목 / 金德穆 [역사/근대사]
1913-1977. 독립운동가. 본관은 의성. 평안남도 용강 출신.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운영하던 인성소학교(仁成小學校) 및 상해 육청중학(育靑中學)을 졸업하였다. 그뒤 흥사단 단원으로 활약하였으며, 애국비밀단체인 동방구락부 간부로 중국학생항일구국회에 참가하여 항일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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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영 / 金德永 [역사/근대사]
1887-1921.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경상북도 상주(尙州)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황해도 재령(載寧)이다. 중국 상하이에 소재한 대한민국 임시 정부 자금 후원을 목적으로 조직된 임시군사준비단(臨時軍事準備團)에 가입하였다. 이후 군자금을 모으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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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운 / 金德運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87∼1767). 송애 김경여 증손, 조부는 김방신, 부친은 통덕랑 김중석이다. 7살에 어머니 함평이씨를 여의고 중부인 도정공 김창석의 밑에서 자랐다. 신임사화 때 사형 당한 윤지술이 1725년(영조 1)에 신원되어 이조판서에 추증되자, 모든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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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원묘 출토 의복 일괄 / 金德遠墓出土衣服一括 [생활/의생활]
1972년 서울에 소재한 조선 후기의 문신 김덕원(金德遠)과 그의 부인 전주이씨의 합장묘에서 출토된 17세기 후반의 복식류 53점. 출토된 유물은 상복겉[常服表] 1점과 상복안[裏] 1점(단령 1점에 해당한다), 철릭 1점, 창의류 12점[창의 2점, 중치막 8점,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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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윤 / 金德潤 [역사/근대사]
1919-2006.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함경남도 평양시(平壤市)이다. 평양의 숭인(崇仁) 상업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36년 6월 동학생 박윤옥(朴潤玉)·연광용(延光榕) 등과 함께 결의를 하고 항일결사단체 일맥회(一麥會)를 결성하였다. 이 모임을 통해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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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제 / 金德濟 [역사/근대사]
생몰년 미상. 한말의 의병장. 1907년 8월 군대해산 당시 원주진위대(原州鎭衛隊) 정위로 8월 1일 서울 양시위대 항전의 소식을 전해 들은 진위대의 애국병사들은 봉기하려 하였으나 대대장인 참령 홍유형(洪裕馨)의 무마로 일시 중단되었다. 그러나 홍유형이 상경하자 특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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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준 / 金德俊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 심판으로 국제심판 공로상을 받은 체육인. 함경남도 함흥출생. 6세 때 캐나다 선교사의 영향을 받아 축구를 시작하여 함흥 영생중학교 3학년 때 선수가 되었고 연희전문학교에서 활약하였다.축구계의 기인으로 불린 그는 남다른 집념과 열정으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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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진 / 金德鎭 [역사/근대사]
1864-1947. 항일기의 의병. 자는 경명(景明). 호는 낙계(樂溪). 민종식의 부대가 열세에 처하였을 때, 여러 의병들과 함께 재기를 도모하였다. 이때 일본군의 습격을 받아 공주경찰서에 투옥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복역 중 석방되었다. 사후, 1963년에 대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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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함묘 및 신도비 / 金德諴墓─神道碑 [예술·체육/서예]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에 있는 조선후기 학자 김덕함의 무덤.신도비. 시도기념물. 경기도 기념물 제144호. 조선시대의 학자 김덕함의 묘와 신도비이다. 묘역은 200여 평으로 정부인(貞夫人) 경주 이씨(慶州李氏)와 합장된 봉분 1기, 신·구 묘비 2기, 상석(床石)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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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현 / 金德賢 [역사/근대사]
1880(고종 17)-1920. 독립운동가. 함경북도 회령 출신. 1910년 국권을 일본에 의해 빼앗기자 북만주 길림성 화룡현(吉林省和龍縣)으로 망명하여, 단군의 건국이념과 배일사상을 가르칠 목적으로 학성학교(學成學校)를 설립하고 교장으로 있으면서, 동포 자녀들에게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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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 / 金濤 [종교·철학/유학]
?∼1379(우왕 5). 고려 후기의 문신. 1370년(공민왕 19) 8월 박실·유백유 등과 함께 향공으로 뽑혀 정조사 권균을 따라 명나라에 갔다. 이듬해 급제해 동창부 구현의 승에 임명되었다. 1379년 그의 가노가 연경궁 옛터의 돌을 훔친 일로 이인임의 탄핵을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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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곤 / 金道坤 [역사/근대사]
1890-1947.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가옥(金可玉)이다. 본적은 경상북도 청도(淸道)이다. 1919년 5월 7일 경상북도 에서 일본인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당한 이종현을 보고 군중 300여 명을 모아 일본인 3명을 구타하는 등의 항일 운동을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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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규 / 金道珪 [역사/근대사]
1885(고종 22)-1967. 한말의 의병장. 본관은 김해. 자는 인언(仁彦). 전라남도 보성 출신. 아버지는 형국(炯國)이다. 젊었을 때 병서를 즐겨 읽고 진을 치는 법을 익혔다. 1908년 2월 안규홍(安圭洪)이 보성 동소산(桐巢山)에서 의거하자, 그 의병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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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명 / 金道明 [종교·철학/유학]
1803년(순조3)∼1873년(고종10년). 조선 후기의 학자. 아버지는 김성로이며, 어머니는 의성김씨로 김한운의 딸이다. 처음에 유심춘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며, 뒤에 유태좌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석학 이한응·이휘녕·유치명 등과 교유하였다. 권엽의 유문을 편집,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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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산 / 金陶山 [예술·체육/연극]
1891(고종 28)-1922. 연극인·영화인. 본명은 영근(永根). 서울 충무로 초동에서 태어나 상동(尙洞) 예배당 안에 있던 상동학교를 나왔으며, 일찍이 연극에 뜻을 두어 신극운동의 선구자인 이인직(李人稙) 밑에서 신극에 참여하였다. 이인직의 원각사(圓覺社)가 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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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수 / 金道洙 [종교·철학/유학]
?∼1742(영조 18). 조선 후기의 문신. 음보로 공조정랑·지례현감·통천군수를 역임하였다. 저서로는『춘주집』과『창선감의록』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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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숙 / 金道淑 [역사/근대사]
1872(고종 9)-1943. 한말의 의병. 별명은 제헌(濟憲). 전라남도 나주 출신. 1907년 11월 의병장 심남일(沈南一)이 의병을 일으키자 휘하에 들어가 도통장(都統將)이 되었다. 1908년 전라남도 강진 오치동전투, 남평 장담원전투, 해남 성내전투 등에 참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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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원 / 金道源 [역사/근대사]
1895-1923.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무장독립단체인 대한독립보합단(大韓獨立普合團)에 들어간 후 군자금을 모으는데 힘썼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서울지방법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1923년 집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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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태 / 金道泰 [역사/근대사]
1891-1956.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오산학교(五山學校)를 졸업하고 명신중학교(明新中學校)에서 교사로 재직하면서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날 수 있었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경성여자상업학교의 교장과 조선지리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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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행 / 金道行 [종교·철학/유학]
1728년(영조 4)∼1812년(순조 12). 조선 후기 성리학자. 약봉 김극일의 후손, 부친은 김정탁, 모친은 이제태의 딸이다. 백부 김성탁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백부가 광양에 유배되자, 종형 김낙행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경전과 사서를 두루 익혔다. 1765년(영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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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 / 金道賢 [역사/근대사]
1893-미상.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황해도 장연(長淵)이다. 1919년 장규섭(長奎燮) 등이 결성한 비밀 결사단체 대한적십자사청년단(大韓赤十字社靑年團)에 가담하였다. 이때 권총을 구입하여 일본 경찰 및 친일인사들을 처단하고, 임시 정부가 발행한 독립공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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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 / 金道鉉 [역사/근대사]
1852(철종 3)-1914. 조선 후기의 의병장. 일제의 침략 의도가 드러나자 의병을 모아 함창·태봉·삼척 등지에서 일본군과 접전하였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뒤에도 의병을 일으켰으나 결국 영해의 관어대(觀魚臺)에서 투신하였다. 저서로 <벽산선생창의전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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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화 / 金道和 [종교·철학/유학]
1825년(순조25) ∼1912. 조선 후기의 학자·의병장. 안동군내 유림대표로 거의통문을 발표하였다. 1896년 의병장에 추대되어 안동관찰부를 점령하고 무기를 빼앗았다. 태봉전투에 참전하였다. 항의문과 규탄문을 통하여 일제에 항거하였다. 1983년 건국포장이 내려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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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돈희 / 金敦熙 [예술·체육/서예]
항일기의 서예가(1871-1937). 자는 공숙(公叔). 호는 성당(惺堂). 서화협회(書畵協會)를 창립했던 일원으로 제4대 회장으로 추대되었고 조선미술전람회의 심사위원을 역임하였다. 안진경·황정견 풍의 해서에 뛰어났고 서예에 관련된 이론을 연구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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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리 / 金東里 [문학/현대문학]
1913년∼1995년. 일제 강점기 소설가·시인. 자는 시종(始鐘)이고, 호는 동리(東里)인데 호를 이름으로 사용하였다. 다른 이름으로 김창봉(金昌鳳)·김창귀(金昌貴)·김태창(金泰昌)이 있다. 본관은 선산(善山)이고, 출신지는 경상북도 경주(慶州)이다. 부친 김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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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삼 / 金東三 [역사/근대사]
1878-1937.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일송(一松). 1913년 여준·이상룡 등과 함께 부민단을 조직했으며, 1918년 지린성 왕칭현에서 서일·여준·유동열·김좌진 등 39명이 민족대표로 서명한 ‘무오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1927년 김좌진·이청천 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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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 / 金東洙 [역사/근대사]
1916-1982.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광복군 제5지대 간부로 산시성 타이항산에서 적 후방공작을 전개하였다. 충칭에서 광복군총사령부 경위대장에 취임하여 활동하였다. 사단장 등을 역임하고 육군준장으로 예편하였다. 1963년에 건국훈장국민장이 수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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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 / 金東植 [역사/근대사]
1883-1945년.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중화 출신. 천도교인으로 1919년 상원(祥原) 지방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3월 1일 천도교 중화교구의 전도사로부터 독립선언서를 받아서 만세운동계획을 세웠다. 3월 2일에 상원교구 앞에서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한 수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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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신 / 金東臣 [역사/근대사]
1871-1933. 의병장. 자는 원표(元表), 호는 청암(淸菴). 충청남도 회덕 출신. 고종 때 무과에 올라 통정대부(通政大夫) 비서승(秘書丞)을 제수받았다. 1905년 10월 22일 사직소를 올렸으나 윤허를 받지 못하였다. 1906년 봄 최익현(崔益鉉)과 민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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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엽 / 金東燁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프로야구 해태타이거즈 창단감독, 서울방송 전속야구해설위원 등을 역임한 체육인. 황해도 봉산 출생. 아버지는 선경(善慶)이고, 어머니는 정국화(鄭國華)이며, 3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황해도 사리원(沙里院) 송화인민학교, 송화고등중학교 2학년을 마치고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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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우 / 金東寓 [역사/근대사]
1896-1988.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다른 이름은 김일선(金一鮮)이다. 본적은 경상남도 남해군(南海郡) 창선면(昌善面)이다. 1919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공원(현 탑골공원) 독립선언식에 참가하여 독립만세운동에 가담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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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원 / 金東元 [역사/근대사]
1882-미상. 독립운동가. 평안남도 대동 출신. 1903년에 평양일어학교를 졸업하였다. 1906년에 일본으로 유학하여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과 전문부에 입학하였으나 1년 후 신병으로 중퇴, 귀국하였다. 1910년부터 6년 동안 평양의 숭실학교(崇實學校)·대성학교(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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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은 / 金東垠 [역사/근대사]
1908-1978. 독립운동가. 전라남도 보성 출신. 1929년 6월 광주고등보통학교 5학년 재학중 김종섭(金鍾燮)·박기원(朴基源)·장재성(張載性) 등과 무등산에서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회합을 갖고 광주고보독서회를 조직하였다. 독서회는 1926년 이후 학생비밀결사로서 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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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 金東仁 [문학]
1900-1951. 소설가. 평남 평양 사람. 일본 메이지학원 중학부와 가와바타 미술학교를 졸업했다. 1919년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하고 귀국, 출판법 위반혐의로 4개월간 투옥되었다. 출옥 후 신경향파 및 프로문학에 맞서 예술지상주의를 주장했다. 19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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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 金東鎭 [종교·철학/유학]
1866년(고종3년)~1952. 저자는 19세기 구한말의 대표적인 유학자이다. 저자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있지 않다. 다만 소수서원 원장을 3번이나 역임하고, 후진의 양성을 위해 도강서당을 세웠다는 기록 정도만 남아 있다. 저자는 김흥락의 말년 제자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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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철 / 金東轍 [예술·체육/체육]
1893-미상. 체육인. 경상남도 마산 출생. 마산공립보통학교를 거쳐 선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20년 동아일보 기자로서 조선체육회 발기인회에 참가하였으며 조선체육회 창립준비위원으로 선정되어 조선체육회 창립을 위하여 활약하였고, 그해 조선체육회가 창설되자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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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필 / 金東弼 [역사/근대사]
1860-1944. 항일기의 애국지사. 1905년부터 일제침략을 규탄하는 상소운동을 벌였으며, 을사조약 체결 후에는 반대투쟁을 전개하였다. 1907년 ‘자신회’를 조직하고, 1924년 조선노동총동맹 중앙위원, 1930년 2월 신간회 집행위원으로 보선되었다. 19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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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하 / 金東河 [예술·체육/체육]
해방 이후 제1상륙 사단장, 해병중장, 국가재건최고회의최고위원 등을 역임한 군인. 체육인. 함경북도 무산(茂山) 출신. 일본강점기에 유년기와 청년기를 만주에서 보냈고 1941년에는 만주 신경(新京)에 위치한 4년제 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하여 소위로 임관하였다.광복과 함께

종교·철학(42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