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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진지석리지석묘 / 康津支石里支石墓 [역사/선사시대사]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지석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모두 10여기가 분포되어 있으나 그 중 1기만 국립박물관에 의해 1967년에 발굴되었다. 이 고인돌은 원래 일본인 후지다(藤田亮策)에 의해 북방식 고인돌로, 그리고 위치도 해남군 옥천면 소재로 잘못 알려져왔다.

  • 강진해 / 姜鎭海 [역사/근대사]

    항일기의 독립운동가(1896-1933). 1919년 만주로 망명, 독립단체 정의부의 서란총관으로 활동했다. 1933년 한국독립군 별동대장으로서 동녕현(東寧縣) 진공작전에 참가, 일본군과 격전 끝에 전사했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강진향교 / 康津鄕校 [교육/교육]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동성리에 있는 향교. 1398년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서 창건되었다. 1613년에는 이 지역출신 입방자(入榜者)들이 의금(義金)을 내고 군수 정인(鄭寅)의 도움을 받아 사마재(司馬齋)를 건립

  • 강진희 / 姜璡熙 [예술·체육/회화]

    1851-1919. 서화가. 본관은 진주. 호는 청운(菁雲). 1886년 일본공사접응관차(日本公使接應官差)를 거쳐, 1887년 주미공사수원(駐美公使隨員)으로 미국에 다녀온 뒤 법부주사(法部主事)를 지내고, 1905년에는 학부위원(學部委員)을 역임하였다. 1911년에 설

  • 강찬 / 姜𧄽 [종교·철학/유학]

    1849년(헌종 15)∼미상. 조선 고종 때의 문신. 세황 5세손, 기 손자, 준수의 아들이다. 1871년(고종 8) 정시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871년 홍문관부교리와 수찬을 거쳐 1872년에는 규장각직각이 되었다. 1883년 이후에는 예조참의·이조참의, 우

  • 강창보 / 姜昌輔 [역사/근대사]

    1902-1945.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사회주의운동가. 본적은 전라남도 제주(濟州: 현 제주특별자치도 소속)이다. 1920년대 초 서울의 청년학관에서 사회과학에 대한 공부를 마친 후, 1924년 고향 제주에서 조직한 사상단체 신인회(新人會)의 교육부 간사를 지내면

  • 강창제 / 姜昌濟 [역사/근대사]

    1898-1965.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주. 호는 창산(蒼山). 평안북도 창성 출신. 아버지는 시홍(時洪)이다. 1919년 3·1운동 때 향리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뒤 상해로 망명하여 1922년에 독립신문사(獨立新聞社)기자로 활약하였고, 1924년에는 임

  • 강천각소하록 / 江天閣銷夏錄 [문학/한문학]

    조선 후기에 심익운(沈翼雲)이 여러 사람의 글을 모아 엮은 잡록(雜錄). 1책(47장). 한문필사본. 편찬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현재거사묘지(玄齋居士墓志)」가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심사정(沈師正)이 죽은 뒤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된다. 편자가 묘지·제문·시·서(書)

  • 강천사석탑 / 剛泉寺石塔 [예술·체육/건축]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강천사(剛泉寺)에 있는 고려후기 에 건립된 석조 불탑.시도유형문화재.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2호. 1316년(충숙왕 3)에 덕현선사(德賢禪師)가 강천사 중건과 함께 화강암으로 정교하게 조각하여 건립한 것으로 전하는 5층석탑이다. 건립연대에 대하

  • 강천성곡 / 降天聲曲 [예술·체육/국악]

    신라시대 옥보고(玉寶高)가 지은 거문고 곡. 『삼국사기』악지에 거문고의 명인 옥보고가 지은 30곡의 곡명이 전하는데 그 중 한 곡이다. 가사와 악보가 전하지 않아 내용을 알기 어려우나, 곡명으로 보아 서정적이며 다분히 불교적인 색채를 풍기며 세련됨을 알 수 있다. 다만

  • 강철구 / 姜銕求 [역사/근대사]

    1894-1943. 독립운동가. 충청남도 부여 출생. 1917년 대종교신도로 만주에 건너가 동간도의 천영학교(天英學校) 교사가 되어 제2세 민족교육에 정열을 쏟았다. 1920년 1월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총재 서일(徐一)과 뜻을 같이하여 북로군정서에 가입하여 총재비서

  • 강철규 / 姜徹奎 [역사/근대사]

    1873-1920.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독립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만주(滿洲)로 이주하였다. 중국 길림성(吉林省) 혼춘현(琿春縣)의 한민회(韓民會)에 가담하였다. 박면하(朴冕河)·이창민(李昌敏)·임종영(林鍾英)·정정협(鄭正協

  • 강철호 / 姜哲鎬 [역사/근대사]

    1860-1947년.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 호는 농은(農隱)이다.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제주도 대정(大靜)에서 태어났다. 제주 대정상무사(大靜商務社)의 중심인물중 한 사람으로 채구석(蔡龜錫)·송희수(宋希洙) 등과 함께 학문에 몰두하였다. 1910년(융희 4)에

  • 강첨 / 講籤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식년문과의 복시 초장과 명경과의 초시·복시에서 강경의 채점용 제비. 강경 채점은 통(通, 2점)·약(略, 1점)·조(粗, 0.5점)·불(不, 0점)의 네 종류로 구분되었다.

  • 강초유고 / 江樵遺稿 [종교·철학/유학]

    조선후기 학자 구연해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24년에 간행한 시문집. 2권 2책. 목활자본. 1924년 그의 후손인 창서(菖書)·달서(達書)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서찬규(徐贊奎)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서석종(徐錫宗) 등의 발문 3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 강촌별곡 / 江村別曲 [문학/고전시가]

    조선 중기에 차천로(車天輅)가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가사. 은거자의 한적한 생활을 노래한 가사이다. 『고금가곡』과 홍만종(洪萬宗)의 『순오지(旬五志)』에 차천로의 작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김천택(金天澤)의 『청구영언』이나 필사본의 『악부(樂府)』·『가집(歌集)』에는

  • 강촌유원지 / 江村遊園地 [지리/자연지리]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강촌리에 있는 유원지. 강촌유원지는 북한강 강변의 아름다운 경치와 서울에서 2시간 이내의 거리, 경춘선 철도강촌역에 인접한 편리한 교통 여건 등을 바탕으로 현재 젊은이들의 M.T 장소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젊음의 장소로 인지도가 높은 휴양지이다.

  • 강태공전 / 姜太公傳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이 작품은 중국 주나라의 재상 강태공을 주인공으로 한 역사소설이다. 중국 은나라 때 동해 허주땅에 별호가 태공인 강자아라는 사람이 있었다. 강태공은 곤륜산에서 40년간 도를 닦고 세상에 내려와 마씨와 혼인하여 점을 보아주면서 살았다. 그러던

  • 강태동 / 姜泰東 [역사/근대사]

    1889-1946. 독립운동가. 일명 석룡(錫龍). 함경남도 이원 출생. 1911년 105인사건에 연루되어 김구(金九) 등과 같이 붙잡혀 황해도 해주형무소에서 복역한 바 있으며, 향리에서 3·1운동을 주동하여 고문을 받은 바 있다. 이어 그는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로 가

  • 강태수 / [문학/현대문학]

    소련에서 활동한 고려인 시인·작가. 20여 년동안의 유배 생활과 가택 연금 생활을 당하면서도, 200여 편의 시, 단편, 수필 등을 한글로 써서 발표한 소련의 대표적인 고려인 시인이자 작가이다. 1908년 8월 26일에 함경북도 이원군에서 출생하였고, 1927년에 소련

  • 강태홍 / 姜太弘 [예술·체육/국악]

    1897-1957. 가야금산조의 명인. 호는 효산(曉山). 전라남도 무안 출신. 원각사에서 창극활동을 하던 명창 용안(龍安)의 셋째 아들이다. 아홉살 때부터 가야금을 배웠으며, 가야금산조의 창시자로 알려진 김창조(金昌祖)에게서 전수받았다. 거주지를 대구로 옮겨 살면서

  • 강파집 / 江坡集 [종교·철학/유학]

    조선후기 문신·학자 권상임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75년에 간행한 시문집. 3권 1책, 목활자본. 1775년(영조 51) 후손들이 편집, 간행하였다. 이만인(李晩寅)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이장로(李長老)의 후서가 있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권1·2에 시 25수, 만

  • 강포문집 / 江浦文集 [종교·철학/유학]

    조선후기 학자 유홍원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56년에 간행한 시문집. 3권 1책. 석인본. 권상규(權相圭)의 편집을 거쳐 1956년에 후손 영희(泳熙)가 간행하였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권상규의 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전주유씨수곡파지문헌총

  • 강필효 / 姜必孝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학자(1764∼1848). 성리학을 연구하였으며, 1800년부터 제자를 모아 학문을 가르쳤다. 1803년 유일로 천거되어 순릉 참봉, 1814년 세자익위사세마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하였다. 1842년 조지서별제를 거쳐 충청도도사를 역임하였으며, 돈령부

  • 강학년 / 姜鶴年 [종교·철학/유학]

    1585(선조 18)∼1647(인조 25). 조선 중기의 문신. 할아버지는 강운상, 아버지는 대사헌 강첨이다. 1623년(인조 1) 학행으로 천거되어 연기현감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1626년 사어가 되고, 이듬해 신령현감에 임명되어 부임하려 할 때 후금이 침입

  • 강학청 / 講學廳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 후기 세자나 세손으로 책봉되기 전의 원자나 원손의 조기교육을 위하여 설치한 임시관서. 그 체제나 운영은 대체로 시강원의 규례를 모방하였다. 정식으로 강학청이 설치된 것은 1665년(현종 6) 숙종이 원자로 있을 때부터였다.

  • 강학청일기 / 講學廳日記 [교육/교육]

    조선시대 강학청에서 왕실 원자(元子)에게 행한 강학 내용과 문답을 기록한 일기. 전 7책. 필사본. 1665년(현종 6) 6월부터 12월까지 1책 39장, 1796년(정조 20)부터 1800년까지 4책, 1876년(고종 13)부터 1879년까지 2책 등으로 구성되어 있

  • 강한수 / 姜漢秀 [역사/근대사]

    1921-1944. 독립운동가. 전라남도 담양 출신. 학생비밀결사인 무등회(無等會)를 조직,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옥사한 애국지사이다. 1938년 광주서중학교 3학년 재학중 학우 주만우(朱萬尤)·유몽룡(劉夢龍) 등과 함께 서중독서회(西中讀書會)를 조직하여 배일운동에 참가

  • 강한집 / 江漢集 [종교·철학/유학]

    조선후기 문신·학자 황경원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90년에 간행한 시문집. 32권 18책. 고활자본[芸閣活字]. 1790년(정조 14)에 간행되었다. 서문과 발문이 모두 없다. 규장각 도서 등에 있다. 권1·2에 부(賦) 3편, 시 196수, 권3·4에 교유(敎諭)

  • 강항 / 姜沆 [종교·철학/유학]

    1567(명종 22)∼1618(광해군 10). 조선 중기의 문신. 좌찬성 강희맹 5대손, 할아버지는 강오복, 아버지는 강극검, 어머니는 통덕랑 김효손의 딸이다. 성혼의 문인이다. 1593년 전주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교서관정자가 되었다. 이듬해 가주서를 거쳐 15

  • 강해석 / 姜海錫 [역사/근대사]

    1904-1973. 일제 강점기 애국계몽운동가·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주(晋州)이고, 본적은 전라남도 광주(光州)이다. 부친 강호일(姜浩一)과 모친 박씨(朴氏) 사이에서 7남 4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둘째 형은 대한인국민회 지부에서 활동하며 3·1운동에 참여한 강석

  • 강해승사록 / 江海乘槎錄 [문학/한문학]

    1818년(순조 18) 최두찬(崔斗燦)이 지은 표해기행록(漂海紀行錄). 1917년최두찬의 증손 최지영(崔址永)이 목판본으로 간행하였다. 책머리에는 1917년 서정옥(徐廷玉)이 쓴 서문과 1918년 중국인 심기잠(沈起潛)이 쓴 서문·목록을 싣고 있다. 책 끝에는 최지영의

  • 강해집 / 江海集 [종교·철학/유학]

    조선후기 문신·학자 장심학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07년에 간행한 시문집. 7권 3책. 목활자본. 1907년 그의 재종질인 익홍(翊弘)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김도화(金道和)의 서문과 권말에 신재석(申在錫)·익홍의 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권1∼3에

  • 강해집 / 江海集 [종교·철학/유학]

    조선후기 학자 김좌영의 시·서·제문·애사 등을 수록한 시문집. 4권 2책. 목판본. 서문이 없고, 권말에 이중철(李中轍)의 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성균관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권1은 시, 권2는 서 13편, 권3은 서(書)·제문 14편, 권4는 애사 4편, 서

  • 강헌규 / 姜獻奎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97∼1860). 제자백가서를 비롯해 《좌전》·《국어》·《장자》·《이소》·《한서》·《사기》 등의 책을 두루 섭렵하였다. 1822년(순조 22) 식년시 진사 3등 32위로 합격해 성균관에 출입했다.

  • 강혁호 / 康奕豪 [역사/근대사]

    1892-미상.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가. 본관은 곡산(谷山)이고, 제주도 성산(城山)에서 태어났다. 1927년 5월 16일 제주 정의현중앙청년회 주관으로 성산면에서 체육대회가 개최되었다. 이때 열린 씨름 대회에서 심판의 판정에 승복하지 않은 일본인 선원의 도발에 의하여

  • 강혜원 / 康蕙園 [역사/근대사]

    1885-1982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본적은 평안남도 평양시(平壤市)이다. 동생은 강영승(康永昇)이고, 남편은 김성권(金聲權)이다. 1905년 가족과 함께 하와이로 노동 이민을 가서 사탕농장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였다. 1912년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하였으며,

  • 강호가도 / 江湖歌道 [문학/고전시가]

    조선시대 시가 문학에 널리 나타난 자연 예찬의 문학 사조. 조윤제(趙潤濟)가 처음으로 개념을 정립하였다. 조선시대의 시가 작품, 예컨대 「강호사시가」·「상춘곡」·「어부사시사」·「창랑곡 滄浪曲」 등으로, 제목 자체부터 그 내용이 자연 예찬임을 짐작하게 한다. 자연 예찬은

  • 강호능소화 / 江湖陵霄花 [과학/식물]

    북한의 행정구역상 황해남도 배천군 강호리에 있는 능소화. 황해남도 배천군 강호리에 있는 북한 천연기념물 제162호. 이 능소화는 북한 국보급 제77호인 고려시대 사찰인 강서사(江西寺) 경내의 대웅전 앞마당에 있다. 강서사 정원에서 자라는 이 능소화의 동쪽에는 낮은 산이

  • 강호별곡 / 江湖別曲 [문학/고전시가]

    작자·연대 미상의 가사(歌辭). 모두 약 50구. 조선 고종 때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악부(樂府)』·『가집(歌集)』 등에 수록되어 전한다. 서두에서 “세상공명(世上功名) 부운(浮雲)이라 강호어옹(江湖漁翁) 되오리라.”고 한 것처럼, 세상의 부귀공명을 모두 떨쳐버리고

  • 강호사시가 / 江湖四時歌 [문학/고전시가]

    조선 초기에 맹사성(孟思誠)이 지은 시조. 4수로 된 연시조이다. 형식은 3·4, 3·5, 4·3에서 약간 벗어나는 형태이며, 초장은 모두 ‘강호(江湖)’라는 말로 시작되고, 종장 3·4구에서는 각 작품 모두가 ‘역군은(亦君恩)이샷다’로 끝난다. 연시조 형태로는 최초이

  • 강호실기 / 江湖實記 [종교·철학/유학]

    조선전기 학자 김숙자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34년에 간행한 시문집. 실기. 5권 2책. 목활자본. 그의 문헌은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로 거의 소실되었으나, 1934년 후손 진식(鎭植)이 유문 몇 편과 관계문헌을 모아 출판하였다. 서문은 없고, 후손 진채(鎭采)의 발문이

  • 강호연군가 / 江湖戀君歌 [문학/고전시가]

    조선 중기에 장경세(張經世)가 지은 시조. 전체 12수로 된 연시조로, 전6곡(前六曲)과 후6곡(後六曲)으로 되어 있다. 『사촌집(沙村集)』에 전한다. 창작동기는 사람들이 이 시조를 읊조림으로써 우국충정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데 있다고 하였으며, 작자가 언급하듯이 이황의

  • 강호염주나무 / 江湖念珠─ [과학/식물]

    북한의 행정구역상 황해남도 배천군 강호리에 있는 염주나무. 피나무류와 비슷한 염주나무는 1913년에 발견된 특산식물로 북한 천연기념물 제161호. 배천읍에서 동남쪽으로 약 10㎞ 정도 가면 예성강 기슭에 백마산이 있다. 백마산 남쪽 기슭에 고려시대의 강서사가 있는데,

  • 강호정 / 江湖亭 [예술·체육/건축]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에 있는 조선후기 의병장 정세아가 건립한 누정.시도유형문화재.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1호. 임진왜란 때 의병대장으로 영천·경주 양성을 수복하는 데 큰 전공을 세운 정세아(鄭世雅)가 국가에서 수여하는 모든 영예를 사양하고 고향인 용산동에 이 정자를

  • 강혼 / 姜渾 [종교·철학/유학]

    1464(세조 10)∼1519(중종 14). 조선 중기의 문신. 강우덕 증손, 할아버지는 집의 강숙경, 아버지는 강인범, 어머니는 호군 여인보의 딸이다. 김종직의 문인이다. 1486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호당에 들어가 사가독서함으로써 문명을 떨쳤다. 대제학, 공

  • 강홍립 / 姜弘立 [종교·철학/유학]

    1560(명종 15)∼1627(인조 5). 조선 중기의 문신. 강온 증손, 할아버지는 우의정 강사상, 아버지는 참판 강신, 어머니는 정유의 딸이다. 1597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 한성부우윤, 순검사, 오도원수 등을 역임하였다.

  • 강홍중 / 姜弘重 [종교·철학/유학]

    1577(선조 10)∼1642(인조 20). 조선 중기의 문신. 강온 증손, 할아버지는 강사필, 아버지는 승지 강정, 어머니는 정응규의 딸이다. 장현광의 문인이다. 1606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등용되었으며, 청송부사, 동지의금부사, 성천부사 등을 역임

  •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 / 江華 甲串里─ [과학/식물]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갑곶리에 있는 탱자나무. 천연기념물 제78호. 높이 4m, 지상부의 줄기둘레 1m인 노거수로서, 나이는 400년 정도로 추정된다. 줄기는 밑에서부터 두 개로 갈라져 있으며, 가지의 길이는 동쪽 1.5m, 서쪽 4.4m, 남쪽 3.3m, 북쪽 2

  • 강화 고려궁지 / 江華 高麗宮址 [예술·체육/건축]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 있는 고려시대 몽골 침입 당기에 사용하던 궁궐터.사적. 고려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여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한 시기인 강도(江都) 시기(1232~1270년)에 사용하던 궁궐터다. 1232년(고종 19) 6월 강화에 궁궐을 창건하였다고 전하는데

  • 강화 매화마름군락지 / 江華梅花─群落地 [지리/자연지리]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에 위치한 논습지. 강화 매화마름군락지는 2008년 10월 13일에 오대산국립공원습지, 물장오리오름습지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아홉 번째로 람사르습지에 등록되었다. 논습지로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등록되었는데, 등록면적은 3,015㎡이다.

  • 강화 볼음도 은행나무 / 江華 乶音島 銀杏─ [과학/식물]

    인천광역시 강화군 서도면 볼음도리에 있는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304호. 높이 24.5m, 가슴높이둘레 8m인 노거수로서, 나무의 나이는 추정하기 어렵다. 가지의 길이는 동쪽 13.5m, 서쪽 12.2m, 남쪽 12.8m, 북쪽 10.3m이다. 이 은행나무는 바닷가의

  • 강화 사기리 탱자나무 / 江華 砂器里─ [과학/식물]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에 있는 탱자나무. 천연기념물 제79호. 높이 3.8m, 뿌리 근처의 지름 53㎝인 노거수로서 나이는 400년으로 추정하나 확실하지 않다. 가지는 동쪽으로 4m, 남쪽으로 2.7m, 북쪽으로 3.9m 정도 퍼져 있다. 서쪽에서 불어오는 강

  • 강화 선원사지 / 江華 禪源寺址 [예술·체육/건축]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있는 고려시대 대몽항쟁 당시 고려대장경 목판을 조각하던 곳으로 추정되는 사찰터.사적. 사적 제259호. 선원사는 고려시대에 몽골의 침략을 받아 강화도로 도읍을 옮긴 후 1245년(고려 고종 32)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최우(崔瑀)가 자신의 원찰(願刹

  • 강화 외성 / 江華外城 [예술·체육/건축]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에 있는 고려후기 강도시기에 축조된 토축 성곽.산성. 사적. 강화외성(江華 外城)은 고려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여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한 시기인 강도(江都) 시기(1232~1270년)에 조성된 성으로, 강화군 동해안(선원면, 불은면, 길상면)

  • 강화 장정리 오층석탑 / 江華長井里五層石塔 [예술·체육/건축]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에 있는 고려후기 일반형 석조 불탑.석탑. 보물. 보물 제10호. 높이 3.5m. 일찍이 쓰러져 파손되었던 것을 1960년에 각 부재를 수습하여 보수 재건하였다. 파손이 심하고 없어진 부재도 적지 않아 현재는 3층 이상의 옥신(屋身)과 5층 옥개

  • 강화 전등사 대웅전 / 江華傳燈寺大雄殿 [예술·체육/건축]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전등사에 있는 조선후기 에 중건된 사찰건물.불전. 보물. 보물 제178호. 전등사는 강화도의 남쪽 끝 정족산의 한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정족산의 세 봉우리와 능선을 따라 삼랑성(三郞城, 일명 정족산성)이 있는데, 이 성은 단군이 세 아들에게

  • 강화 전등사 약사전 / 江華傳燈寺藥師殿 [예술·체육/건축]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전등사에 있는 조선후기 다포계 팔작지붕의 사찰건물.불전. 보물. 보물 제179호. 전등사는 강화도 삼랑성(三郞城, 일명 정족산성) 안에 있는 사찰이다. 약사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다포계 단층 불전으로 대웅전의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 강화 전성 / 江華塼城 [예술·체육/건축]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해안가에 있는 조선후기 벽돌로 축조된 성곽.전성. 시도기념물. 강화 전성(江華塼城)은 조선 영조 때 강화유수 김시혁(金始㷜)이 벽돌로 쌓은 성으로, 고려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여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한 시기인 강도(江都) 시기(1232~127

  • 강화 정수사 법당 / 江華淨水寺法堂 [예술·체육/건축]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정수사에 있는 조선전기 에 중창된 사찰건물.불전. 보물. 보물 제161호. 정면 3칸, 측면 4칸의 겹처마 맞배지붕건물. 1957년 보수공사 때 발견된 1689년(숙종 15) 수리 당시에 만든 상량문에 의하면 1423년(세종 5)에 중창하였음을

  • 강화 중성 / 江華中城 [예술·체육/건축]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과 선원면 일원에 있는 고려후기 강도시기에 축조된 성곽. 강화 중성(江華 中城)은 고려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여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한 시기인 강도(江都) 시기(1232~1270년)에 조성된 성으로, 강화군 강화읍과 선원면 일원에 걸쳐 있다.

  • 강화 참성단 소사나무 / 江華塹星壇─ [과학/식물]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문산리 참성단 내에 소재한 소사나무. 2009년 9월 16일에 천연기념물 제502호로 지정되었다. 수령은 약 150년으로 추정된다. 나무의 높이는 4.8m, 뿌리 근처의 줄기둘레는 2.74m이다. 수관 폭은 동서 방향이 7.2m, 남북 방향이

  • 강화갑곶돈 / 江華甲串墩 [예술·체육/건축]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 있는 조선후기 갑곶나루에 설치한 돈대.성곽시설. 사적. 강화도 해안에 설치된 53돈대(墩臺) 가운데 하나이다. 1637년(인조 15) 병자호란이 끝난 뒤 조선 정부는 강화도 방어책의 하나로 12진보(鎭堡)를 설치하였고, 그 뒤 진보와 진보 사

  • 강화광성보 / 江華廣城堡 [예술·체육/건축]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에 있는 조선후기 신미양요와 관련된 성곽.진보. 사적. 강화 12진보(鎭堡) 가운데 하나이다. 1658년(효종 9)에 강화유수 서원이(徐元履)가 설치하였다. 그 뒤 1679년(숙종 5)에 축조된 오두(鰲頭)·화도(花島)·광성 등의 돈대(墩臺)와

  • 강화군 / 江華郡 [지리/인문지리]

    인천광역시 북서부 한강의 입구 황해에 위치한 군. 동쪽은 경기도 김포시, 남쪽은 인천광역시 옹진군, 북쪽은 경기도 개풍군과 황해도 연백군에 접하고 있다. 동경 126°2′∼126°33′, 북위 37°31′∼37°48′에 위치한다. 면적은 411.33㎢이고 인구는 6만

  • 강화대교 / 江華大橋 [경제·산업/교통]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면 갑곶리와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성내리를 잇는 다리. 1969년에 완공된 구교가 노후되어 전면 재시공을 통하여 1997년 완공하였다. 1965년 7월에 착공하여 1969년 12월에 완공된 구교는 폭 10m(차도 7m, 보도 3m), 교장 694m

  • 강화대산리지석묘 / 江華大山里支石墓 [역사/선사시대사]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대산리 서촌마을에 있는 지석묘.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31호. 1기. 강화읍에서 고려궁지(高麗宮址)를 지나 강화읍성(江華邑城) 북문에 이르면 북문 밖, 한강어구 너머로 멀리 북한지역의 산봉우리가 선명하게 보인다. 대산리 고인돌은 고려산의 동쪽

  • 강화도 / 江華島 [지리/자연지리]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있는 섬.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큰 섬으로 강화군의 주도(主島)이다. 면적은 305.75㎢이고 해안선 길이는 106.5㎞이다. 경기만 북쪽의 한강 하구에 있으며, 동쪽의 염하(鹽河)를 사이에 두고 경기도 김포시와 접해 있다. 강화도는 원래 김포반도의

  • 강화도조약 / 江華島條約 [역사/근대사]

    1876년 2월 강화부에서 조선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조약. 조약의 체결로 조선은 개항 정책을 취하게 되어 점차 세계 무대에 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으나, 불평등조약이었기에 일본의 식민주의적 침략의 시발점이 되었다. 한편, 이 조약은 척사위정세력과 개화 세력 사이의

  • 강화만 / 江華灣 [지리/자연지리]

    경기도 서쪽 해안에 있는 만. 한강의 하류부 해역, 즉 강화도 주변의 경기만 일부를 말한다. 강화만에 접하는 행정구역은 경기도 개풍군·김포시·시흥시·화성시·인천광역시 강화군·옹진군이며, 만(灣) 내에는 강화도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섬들이 많다. 인천광역시의 확장과 더불

  • 강화반닫이 / 江華- [예술·체육/공예]

    강화지역에서 제작된 의복·옷감·제기 등을 넣어 두는 반닫이. 표준치수 높이 80∼100㎝, 앞 너비 90∼100㎝, 옆 너비 45∼50㎝. 과거의 왕실용 반닫이를 이곳에서 주로 제작하였던 까닭에 그 구조가 특이하고 정교하여 반닫이 가운데 가장 화려하고 비싸다.다른 반닫

  • 강화부 / 江華府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수도 방위를 목적으로 강화에 설치되었던 특수 행정기관. 조선왕조는 수도 방위를 위해 한성부 주변의 행정적·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에 주·부·군·현의 일반적인 행정 체계와는 별도로 특수 행정 체계인 유수부를 설치, 운영했다.

  • 강화부근리점골지석묘 / 江華富近里─支石墓 [역사/선사시대사]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 점골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지석묘.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32호. 1기. 점골 고인돌의 고임돌의 장축(서쪽)의 방향은 거의 편북(10°)으로 놓여 있다. 서쪽 고임돌의 크기는 길이 2.55m이고, 너비(실제로 높이에 해당) 1.55m이며,

  • 강화부지 / 江華府志 [지리/인문지리]

    1783년(정조 7) 강화유수 김노진(金魯鎭)이 편찬한 경기도 강화부(지금의 인천광역시 강화군) 읍지. 2권 1책. 목판본. 장서각 도서·규장각 도서·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이밖에 고종 때 편찬된 『강화부지』 3종이 규장각 도서에 있다. 내용 구성은 심부전도(沁

  • 강화산성 / 江華山城 [예술·체육/건축]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있는 고려후기 몽골 침입 당시에 축조된 성곽.산성. 사적. 강화산성은 고려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여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한 시기인 강도(江都) 시기(1232~1270년)에 조성된 산성으로, 강화읍과 내가면, 하점면 일대에 걸쳐 있다. 강화산성에는

  • 강화삼거리유적 / 江華三巨里遺蹟 [역사/선사시대사]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삼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과 집터유적. 1966년 국립박물관이 발굴하였는데, 5기의 북방식 고인돌과 그 부근에는 고인돌로 보이는 10여개의 괴석(塊石)이 흩어져 있었다. 발굴이 이루어진 5기의 고인돌은 돌방의 장축이 북서쪽에서 남동쪽(A

  • 강화삼랑성 / 江華三郞城 [예술·체육/건축]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에 있는 고려시대 이후 개경과 한양의 방어 역할을 한 성곽.산성. 사적. 정족산은 5개의 산봉우리로 이어져 있는데, 산성은 능선과 계곡을 아우른 포곡식으로 축조되었다. 둘레는 2.3㎞ 정도로, 성곽은 산정상부에서 남문쪽 해발 75m 정도의 능선까

  • 강화석수문 / 江華石水門 [예술·체육/건축]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 있는 조선후기 강화산성의 내성에 연결된 문(門).수문(水門).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0호. 수문의 길이 10m, 높이 3.8m, 너비 4m. 세 개의 수문으로 되어 있는데, 각 수문은 화강석을 다듬은 선단석(扇單石)을 4단 내지 5단으로

  • 강화순 / 姜和淳 [역사/근대사]

    1873-미상. 일제 강점기 의병·독립운동가. 본적은 서울이다. 1907년(융희 1) 일제에 의해 고종 황제가 퇴위를 당하고 강압적으로 군대가 해산되자,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에 가담하면서 전국적으로 의병활동이 진행되었다. 1908년 1월 11일 당시 의병활동을 하던

  • 강화온수리성공회사제관 / 江華溫水里聖公會司祭館 [예술·체육/건축]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에 있는 대한제국기 성공회의 사제들이 거쳐하던 건물.사제관·성공회한옥. 강화 온수리 성공회의 사제들이 거처하는 한옥 건물로, 2002년 2월 4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1호로 지정되었다. 건물 형식은 ㄷ자 모양의 연와구조의 한옥 건물로, 면적

  • 강화온수리성공회성당 / 江華溫水里聖公會聖堂 [예술·체육/건축]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에 있는 대한제국기 에 건립된 성당.성공회성당·목조건물. 강화군 온수리 성공회의 본채인 예배당 건물과 2층 종탑 건물로, 2003년 10월 27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2호로 지정되었다. 성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중앙 1칸을 2층 종

  • 강화유수부 이방청 / 江華留水府 吏房廳 [예술·체육/건축]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 있는 조선후기 강화유수부의 6방 중 하나인 관청.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6호. 한식 목조 단층기와집으로 ㄷ자형인데, 온돌방이 8칸이고 우물마루로 된 청마루가 12칸이며 부엌이 1칸으로 모두 21칸이다. 팔작지붕에 민도리 홑처마로 건평은 2

  • 강화유수부동헌 / 江華留守府東軒 [예술·체육/건축]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 있는 조선시대 강화유수부의 관청.시도유형문화재.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5호. 정면 8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건물. 건물이 있는 터는 고려 고종 때에 임시수도로 궁궐이 있던 곳이었는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그 자리에 유수부의 동헌을 지었다

  • 강화지석묘 / 江華支石墓 [역사/선사시대사]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지금까지 발견된 북방식 고인돌 가운데 대형에 속하는 것으로, 지상에서의 높이 2.6m,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7.1m, 너비 5.5m이며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부근리 고인돌은 모두 10기(基)로, 비지정인

  • 강화향교 / 江華鄕校 [교육/교육]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 위치한 향교. 1127년(인종 5) 3월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고려산(高麗山) 남쪽 기슭에 창건되었다. 1232년(고종 19)에 지금의 갑곶리(甲串里)로 옮겼다가 몽고군의 침입으로 다시

  • 강화황촌리지석묘 / 江華黃村里支石墓 [역사/선사시대사]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황촌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황촌리마을 뒷면의 낮은 구릉에 3기가 일렬로 분포되어 있는데 1967년 국립박물관에 의하여 조사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남쪽에 위치한 것은 지상에 노출된 뚜껑돌의 크기가 세로 2.1m, 가로 1.2m, 두께

  • 강활 / 羌活 [과학/식물]

    산형과에 속하는 2∼3년생 숙근초(宿根草). 키가 2m쯤 되고, 잎은 어긋나며 난형이고 끝이 뾰족하고 세번 깃모양으로 갈라지며 작은 잎자루와 톱니가 있다. 8∼9월에 복산형화서(複傘形花序: 꽃대 끝에 부채살모양으로 갈라져 피는 꽃차례)가 가지와 원줄기의 끝에 10∼30

  • 강효원 / 姜孝元 [종교·철학/유학]

    1603∼1639(인조 17). 조선 중기의 서리. 아버지는 겸사복 강희룡이다. 1637년 소현세자가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을 때 시강원서리로 배종하였다. 필선 정뇌경이 당시 조선인으로서 후금의 통역관이 되어 온갖 횡포를 자행하던 정명수를 제거하려 할 때 적극 참가하였

  • 강희맹 / 姜希孟 [종교·철학/유학]

    1424(세종 6)∼1483(성종 14). 조선 전기의 문신. 강시 증손, 할아버지는 동북면순무사 강회백, 아버지는 지돈녕부사 강석덕, 어머니는 영의정 심온의 딸이다. 형이 인순부윤이자 화가 강희안이며, 이모부가 세종이다. 1447년(세종 29) 24세로 친시문과에

  • 강희맹사안 / 姜希孟事案 [사회/가족]

    조선시대 성종 때에 있었던 양자(養子)제도와 관련된 문제의 논의. 우리나라의 양자제도에 의하면, 이성불양(異姓不養)의 원칙에 따라 양자는 동성(同姓)으로 하되 동항렬의 근친자로 하였고, 일단 입양되면 그 집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양자로 입양되었다 하더라도 친가

  • 강희자전 / 康熙字典 [언어/언어·문자]

    소학류(小學類). 명석정에 소장되어 있는 책이다. 책수는 6책, 판종은 석인본(石印本)이다. 규격은 20.0×13.5cm, 반곽은 16.9×11.7cm이다. 표제와 판심제는 강희자전(康熙字典)이다. 권수는 10권 6책이다. 장옥서(張玉書), 진정경(陳廷敬) 등이 청(淸

  • 개가 / 改嫁 [사회/가족]

    과부나 이혼녀가 다시 시집가는 것. 부부 중 어느 일방이 사망하거나 이혼으로 인하여 부부관계가 해소되면 재혼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전통사회윤리는 그렇지 못했다. 조선시대에는 재혼은 거의 남성에게만 국한되어 있었다. 즉, 남성의 재혼과 여

  • 개간 / 開墾 [경제·산업/산업]

    산림·황무지·하천부지 등을 농경지 등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관개시설·제방·도로 등을 신설 또는 조성하는 일. 개간의 형태에는 대체로 계단식 개간, 원지형 개간(原地形開墾), 개답(開畓) 등이 있다. 계단식 개간은 경사지 개발의 한 형태로서, 등고선에 따라 흙을 정지하고

  • 개고국문학사 / 改稿國文學史 [문학/현대문학]

    김사엽(金思燁)이 지은 국문학사서. 제1편 개설(槪說)에서는 ‘문학(文學)의 의의(意義)’와 ‘국문학(國文學)의 성립(成立)’ 등 2장으로 나누어 문학의 개념과 국문학의 성립 과정을 개관하였다. 제2∼6편에서는 국문학의 발달사를 단계화하여 기술하고 있다. 먼저 제2편

  • 개곡유집 / 開谷遺集 [종교·철학/유학]

    조선후기 문신·학자 이이송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11년에 간행한 시문집. 5권 2책. 목판본. 1780년(정조 4) 전후 그의 현손인 춘보(春溥)·택중(澤仲) 등이 유고를 모아 편집한 것을 1811년(순조 11) 후손인 종해(宗楷) 등이 간행하였다. 권두에 이광정(

  • 개과몽선록 / 改過夢仙錄 [문학/고전산문]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1책. 국문필사본. 단국대학교 율곡기념도서관 나손문고에 소장되어 있다. ‘과몽션녹’이라는 제목으로 엮어진 이 책에는 「노쳔녀가」와 「보응녹」이 실려 있으며 필사연대는 1901년이다. 이 작품은 잘못을 고치면 복되고 영화로운 삶을 얻는

  • 개국기년 / 開國紀年 [역사/근대사]

    조선 말기 갑오개혁 때 채택한 연호.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1392년을 원년으로 하고 채택년인 1894년을 503년으로 산정하였다. 군국기무처는 6월 28일 신분, 제도, 관습의 개혁과 아울러 모든 국내외의 공문서에 개국기년을 사용할 것을 의결하였다. 이 제도는 이듬

  • 개국사석등 / 開國寺石燈 [예술·체육/건축]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 개국사에 있었던 고려전기 4각 형태 석등. 높이 4m. 1936년개성역사박물관으로 옮겨 세워졌다. 대석(臺石)·간주석(竿柱石)·화사석(火舍石)주 01)·옥개석(屋蓋石)으로 이루어져 있고, 기본적인 형태는 사각형이다. 대석에는 복련(覆蓮)을 두툼하게

  • 개국원종공신 / 開國原從功臣 [역사/조선시대사]

    조선시대 개국공신을 늘리려는 의도에서 원종공신에게 내린 칭호 또는 그 칭호를 받은 사람. 조선에 들어와 신포상 제도로서 마련된 것이다. 정공신인 개국공신을 늘리려는 의도가 변경되어 28인의 원종 공신을 책봉한 데서 비롯되었다.

  • 개권희희 / 開卷嬉嬉 [문학/구비문학]

    편자 미상의 소담집(笑譚集). 1912년신문관(新文館)에서 발행된 『절도백화 絶倒百話』와 합본되어 있다. 두 책 모두 국한문 혼용으로 되어 있으며, 짤막한 이야기 각 100편씩을 싣고 있다. 『개권희희』의 편찬자가 누구인가는 확실하지 않으나, 본문 첫머리에 ‘개권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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