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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병조선” 에 대한 검색결과 9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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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9)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숙주를 전선색의 책임자인 제조(提調)로 임명함으로써 의 개발은 시작되었다. 당시의 군선은 왜구(倭寇)를 육상에 상륙시키지 않고 해상에서 무찌르기 위한 방안으로 계속 증강되어 조선 초기에 막강한 세력이 되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나타난 군선은 다음 표에서...
  • 전선색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1년(세조 7)에는 한때 전선색이라고도 하였다. 세조 때에는 군선의 개량이 모색되던 때로서 세조 7년에 좌의정 신숙주(申叔舟)가 한 척의 선박으로 군선과 조선을 겸용할 것을 건의하였으므로, 전선색에서 전투와 조운(漕運)에 겸용할 수 있는 구조의 ()을...
  • 초마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이 개발되고, 맹선(猛船)의 제도가 확립되어 조운이 그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세조 이후에 초마선은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다.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世宗實錄)』 『한국선박사연구』(김재근, 서울대학교출판부, 19...
  • 맹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군선들이 증강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들 군선이 일정한 규격 없이 건조되어 군선으로서 쓸모가 없었으므로 1461년(세조 7) 10월 신숙주(申叔舟)가 각지의 군선을 개량하여 군용과 조운에 겸용할 수 있도록 하자고 주장하였다. 이에 1465년에 ()이 개...
  • 조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5척, 성당창(聖堂倉)에 11척, 법성창(法聖倉)에 28척, 군산창(群山倉)에 17척, 그리고 좌수참에 15척이 배속되었고 나머지는 사선(私船)으로 임운되었다. 배 형태는 대체로 병선과 유사했을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이라 하여 겸한 경우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