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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10663 B010663 강도 江都 정치행정 承政院日記 英祖 19年 8月 3日_032 越添, 若將垂絶, 束帶供職, 斷無其望。 噫, 淸朝風憲之任, 固非篤老衰耗之人所能堪承。 況臣風眩癱瘝之症, 已無陽界上意思, 朝著賢彥, 豈無其人? 而强策以決無可堪之人者, 不亦羞當世而辱朝廷耶。...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10664 B010664 강도 江都 정치행정承政院日記 英祖 20年 11月 7日_017 ·申思喆進伏。 上曰, 王子七歲封爵, 宗十五封爵乎? 樴曰, 然矣。 上曰, 王子封爵, 事體甚重, 雖國忌, 特命開政。 庚辰初封延礽君, 而下批則臘月爲之, 實則七歲也。 俄者以己卯書之, 後世見之...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10665 B010665 강도 江都 정치행정 承政院日記 英祖 38年 5月 21日_1_011 蓋欲嚴杜而然也。 予有一心, 君臣之間, 當直言之矣。 予於領府事, 予已曲保之矣。 鳳漢飮涕對曰, 臣固認聞之矣。 領府事聞此下敎, 必當感泣, 雖死無憾矣。 上曰, 卿果認聞之, 故亦感泣矣,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10666 B010666 강도 江都 정치행정 承政院日記 英祖 38年 11月 14日_017 ... 黃海兵使張志恒, 催促下送。 出榻敎 鳳漢曰, 此江華留守沈星鎭狀啓也。 以爲地部所劃本府軍餉米一萬石, 依朝令盡數發送, 而見今餘存, 只是四萬餘石, 莫重軍餉, 漸歸耗虛。 今此京運之代,...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10667 B010667 강도 江都 정치행정 承政院日記 英祖 47年 2月 17日_042 , 以錢還分民間, 待秋成以米收捧矣。 莫重軍餉, 至今以錢留置, 實爲未安, 民願如此, 則許施無妨。 右相之意, 本自如此, 而糶糴體重, 不可壇許, 故敢達矣。 上曰, 右相意然乎? 尙喆曰, 莫...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10668 B010668 강도 江都 정치행정 承政院日記 英祖 50年 6月 29日_022 ... 則惠廳亦甚苟簡, 無可推移, 若以江都米四千石, 禁營米五千石, 姑先區劃貸用, 明春軍作米上來後, 各使還報, 似好矣。 行副司直李潤成曰, 此固軍門之糧餉之積久者, 事體自別, 明年雖還報...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10669 B010669 강도 江都 정치행정 承政院日記 英祖 1年 11月 19日_021 ... 以本廳京倉所儲, 趁臘月運致接濟事, 才已定奪, 故自本廳募得船隻, 方令裝載之際, 一夜之間, 日寒猝緊, 江水合氷, 萬無運出海口之路, 事無奈何。 島民賑救之資, 不可不及時載送, 而他無...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10670 B010670 강도 江都 정치행정 承政院日記 英祖 3年 10月 17日_021 故營門只利其有剩於目前, 而不覺其全失於日後, 作一痼弊, 轉輾至此, 事之寒心, 莫此爲甚。 今方摧捉各人輩, 刻日督捧, 本不宜以此等事, 仰瀆上聽, 而但念若無榻前陳達之擧, 則渠輩全不惕念,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10671 B010671 강도 江都 정치행정 承政院日記 英祖 5年 2月 16日_022 馬, 皆有待之之道, 或以果肉, 或以芻豢, 臣有何廉退之節, 而猶以廉退待之, 到今一向挽泥, 則曾前待之之道, 皆歸文具, 推之他事, 似無實效矣。 上曰, 若欲仕宦而强留, 則然矣, 而今予之心,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강도(江都)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10672 B010672 강도 江都 정치행정 承政院日記 英祖 6年 8月 2日_026 ○梁廷虎, 以備邊司意啓曰, 湖南貿置米二萬石, 劃給江都, 以爲留作軍餉事, 旣已榻前定奪矣。 江都則已定差員下送, 當待其出給, 卽爲領運, 而涉海之地, 不可使一差員, 獨爲輸來, 令湖南, 亦定差員...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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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76,8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