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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76616 B076616 동래 東萊 정치행정 英祖實錄 十四年(1738) 二月 영조실록_11402014_002 矣。” 寅明曰: “元時正門之號, 乃大明門; 明時則改以太淸門, 今淸則又改以太極門, 西靼之國號爲極云, 此說雖似傅會, 亦不無慮矣。” 其後儒臣李成中奏曰: “西靼通和淸國...출처전거英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76617 B076617 동래 東萊 정치행정 英祖實錄 二十七年(1751) 正月 영조실록_12701003_001 ○辛丑 / 慶尙監司閔百祥上疏, 其略曰:○臣向以革罷不緊各鎭, 移補他鎭之意, 具由狀達。 遂以單驂發巡, 遍審沿海各鎭, 招致海防故老, 問其海路險夷、沿革故事。 又與左右...출처전거英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76618 B076618 동래 東萊 정치행정 英祖實錄 二十年(1744) 八月 영조실록_12008011_002 ○上引見大臣、備堂, 命停摠戎廳巡操, 以所屬邑多赴陵役故也。 又敎曰: “今番改修之役, 莊陵後初也。 因追慕躬審童事都監之役。 幸行供給, 一時幷擧, 畿甸窮民, 豈不困也?...출처전거英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76619 B076619 동래 東萊 정치행정 英祖實錄 三十一年(1755) 五月 영조실록_13105024_001 ○丁酉 / 上御內司僕親鞫。 問柳壽垣、趙載敏等, 載敏, 致雲所告也。 載敏供: “臣果知致雲, 而未嘗追隨, 不知其家在何處。 而臣爲東萊府使時, 作肅敬齋, 以敎鄕人士矣...출처전거英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76620 B076620 동래 東萊 정치행정 英祖實錄 三十一年(1755) 五月 영조실록_13105025_004 ○敎曰: “我國南道尙儒術, 北道尙武習, 而北關與古有異。 此雖故相勸儒術之意, 而予則謂不然矣。 至於東萊, 卽邊地也, 敦尙節義可也, 豈有三百年所無之書齋乎? 今聞趙載...출처전거英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76621 B076621 동래 東萊 정치행정 英祖實錄 二十七年(1751) 正月 영조실록_12701003_001 ... 此則置而勿論。 固城之蛇梁、晋州之赤梁, 俱是絶島之單鎭, 固城之舊所非, 爲右水營舊基而設, 南海之彌助項、平山浦, 或深入遠海, 緊於報警, 或對湖南左水營, 聲...출처전거英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76622 B076622 동래 東萊 정치행정 英祖實錄 四十八年(1772) 正月 영조실록_14801014_002 : “具善復固是可仗之將臣, 而若其當飭之處, 何可無飭乎? 旣有其子之往探, 敢曰在家不知, 重臣申晦荐被譴罷, 則其在國體, 不可仍置, 罷職宜矣。” 上從之。 致仁曰: ...출처전거英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76623 B076623 동래 東萊 정치행정 英祖實錄 二十年(1744) 八月 영조실록_12008026_001 ○庚午 / 引見大臣、備堂。 以 ‘東萊田雨章査事, 府使金漢喆不報營門, 直自處斷, 晩始謄報於封啓之後, 邊臣之自顓, 有非嚴邊情重體統之道。 且其狀本, 或稱殘劣, 或稱騃...출처전거英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76624 B076624 동래 東萊 정치행정 英祖實錄 二十七年(1751) 正月 영조실록_12701003_001 ... 、機張以北, 初無潮汐水進退, 而波濤自相蕩洶, 掀打岸上。 且其岸石嵯峩廉利, 我國船隻則雖或有間間可泊處, 而如輕薄之倭船, 初無成群齊泊之所。 倭船之最怕者, 無...출처전거英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76625 B076625 동래 東萊 정치행정 英祖實錄 四十八年(1772) 正月 영조실록_14801025_003 絶稀之蔘種, 供日重之蔘役, 江州之民, 於是大困矣。 歲分丹黃兩節, 丹把則六月入山, 七月下山, 黃把則七月入山, 九月下山。 掃境內棄農業, 捨性命探虎穴, 幾危者數, ...출처전거英祖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근현대 소실위기 재중동포 서신 DB화 및 생활문화 분석(178,647)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76,8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