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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69662 B069662 동래 東萊 정치행정 承政院日記 仁祖 24年 10月 11日_005 ○備邊司啓曰, 淸國出送漂倭, 交付日本形止, 久無回報, 則淸國不無致訝之患。 彼先發端以問, 則不如自我先言, 漂倭入送後, 彼中所答如何, 及已爲得達江左處置, 令東萊府使, 從便善探於館倭等處...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69663 B069663 동래 東萊 정치행정 承政院日記 仁祖 20年 8月 10日_004 ○禁府, 鄭光弼 東萊府定配, 李坦 金化生有驛, 韓灝 平山寶山驛, 徒二年半定配。 啓。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69664 B069664 동래 東萊 정치행정 承政院日記 仁祖 24年 10月 12日_003 ○備邊司啓曰, 以本司草記, 傳曰, 漂倭入往江戶之奇, 曾前不爲出來乎? 問于該曹以啓事, 傳敎矣。 前日啓下禮曹東萊府使狀啓, 漂倭入送書契改撰齎去之後, 本書契今始出送。 彼中事情探問, 則漂倭...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69665 B069665 동래 東萊 정치행정 承政院日記 仁祖 24年 10月 12日_003 ○備邊司啓曰, 以本司草記, 傳曰, 漂倭入往江戶之奇, 曾前不爲出來乎? 問于該曹以啓事, 傳敎矣。 前日啓下禮曹東萊府使狀啓, 漂倭入送書契改撰齎去之後, 本書契今始出送。 彼中事情探問, 則漂倭...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69666 B069666 동래 東萊 정치행정 承政院日記 仁祖 9年 7月 1日_007 ○又書目, 東萊呈, 調興與義成相隔, 情形探問事。 啓。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69667 B069667 동래 東萊 정치행정 承政院日記 仁祖 24年 10月 12日_004 ○政院啓曰, 以備邊司東萊府使島主慰問定奪事狀啓粘目, 傳曰, 島主甲申年入往, 是乎? 承旨察啓事, 傳敎矣。 問于該曹, 則倉卒之間, 未能考出積年文書, 轉問洪喜男, 則島主甲申年十一月分離發,...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69668 B069668 동래 東萊 정치행정 承政院日記 仁祖 9年 7月 2日_009 ○吏批, 以金壽賢爲大司諫, 李必行爲刑曹佐郞, 趙贇爲正言, 申得淵爲江原監司, 洪雴爲東萊府使, 申埈爲楊州牧使。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69669 B069669 동래 東萊 정치행정 承政院日記 仁祖 16年 1月 22日_012 ○傳曰, 東萊來別紙, 何至今不爲回啓乎?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69670 B069670 동래 東萊 정치행정 承政院日記 仁祖 25年 10月 16日_024 邊將曰, 如此則倭寇雖至, 邊將萬無戰捕之理。 勅使招出漢人, 與邊將使之對辯。 漢人出一囊開示曰, 此白色之物, 非爾等得於我船中, 而問於我者乎? 吾等因置懷中, 以爲證驗之地矣。 鄭勅曰, 船中...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동래(東萊)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69671 B069671 동래 東萊 정치행정 承政院日記 仁祖 12年 3月 21日_003 ○鄭百昌, 以戶曹言啓曰, 詔使之行, 適出於民窮財盡之時。 三結之木, 不得不分定於民, 而計之以銀, 比之前日詔使時, 則太半不足。 紬苧·人蔘, 臨時給價, 貿得之物, 亦甚浩大, 而只有空手茫然...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근현대 소실위기 재중동포 서신 DB화 및 생활문화 분석(178,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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