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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 1,548,274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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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62년 이진사댁노(李進士宅奴) 찬상(贊尙)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영남 자료권역센터 구축(2단계) | 한국국학진흥원]
    1762년 1월 28일, 향리 김태구가 부동읍돌정동원에 있는 논밭을 화폐 101냥을 받고 이진사댁 남자종 찬상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해준 토지매매계약서이다. 이 해에 이진사댁에서는 남자종 찬상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부동읍돌정동원에 있는 논밭을 대거 매입한다. 이는 안동지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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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69년 옥매(玉梅)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영남 자료권역센터 구축(2단계) | 한국국학진흥원]
    1769년 2월 7일, 외삼촌 월섬이 안동오현원에 있는 논밭을 화폐 10량을 받고 조카 옥매에게 팔면서 작성해준 토지매매계약서이다. 일반적으로 토지매매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시기는 추수를 끝낸 농한기인 10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이며, 특히 농사철이 가까워지는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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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89년 김취득(金就得)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영남 자료권역센터 구축(2단계) | 한국국학진흥원]
    1789년 ◯월 6일, 종인 성복택이 화폐 50냥을 받고 동읍에 있는 논을 김취득에게 팔면서 작성해준 토지매매계약서이다. 성복택이 논을 파는 이유는 ‘절실하게 쓸 데가 있어서’라고만 하고 구체적 사유를 들지 않았는데, 조선후기에는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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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95년 송치운(宋致雲)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영남 자료권역센터 구축(2단계) | 한국국학진흥원]
    1795년 11월 19일, 배중인이 안동남선음곡원에 있는 논을 화폐 70량을 받고 송치운에게 팔면서 작성해준 토지매매계약서이다. 배중인의 토지매매사유는 ‘이매(移買)’라고 하였다. ‘이매’는 다른 토지를 사기 위해 방매하는 것으로, 이러한 현상은 16세기 이후에 본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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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99년 이노(李奴) 맹창(孟昌)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영남 자료권역센터 구축(2단계) | 한국국학진흥원]
    1799년 11월 18일, 김백창이 성황당원에 있는 밭을 화폐 8량을 받고 고성이씨의 종인 맹창에게 팔면서 작성해준 토지매매계약서이다. 조선시대에는 양반이 직접 매매에 관여하지 않고 집안의 종에게 위임하는 경우가 있었고, 매매를 전문으로 하는 종이 있기도 했다. 맹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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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00년 이일부리(李日夫里)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영남 자료권역센터 구축(2단계) | 한국국학진흥원]
    1800년 10월 28일, 김대복이 부동읍전시동원에 있는 논을 화폐 120냥을 받고 이일부리에게 팔면서 작성해준 토지매매계약서이다. 김대복이 논을 파는 이유는 '많은 빚을 갚을 길이 없기 때문에'라고 하여 구체적인 이유를 들고 있다. 고성이씨 집안에 전해오는 토지매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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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14년 서대(徐大)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영남 자료권역센터 구축(2단계) | 한국국학진흥원]
    1814년 12월 19일, 이일부리가 부동읍전시동원에 있는 논을 화폐 120냥을 받고 서대에게 팔면서 작성해준 토지매매계약서이다. 이 논을 파는 이일부리는 1800년 10월 28일에 김대복에게서 이 논을 120냥을 주고 사들였었다. 그런데 이때에 와서 다시 서대에게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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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14년 이생원댁비(李生員宅婢) 복랑(福娘)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영남 자료권역센터 구축(2단계) | 한국국학진흥원]
    1814년 3월 3일, 이일흥이 안동부동읍척도동원의 밭을 화폐 25량을 받고 이생원댁 여자종 복랑에게 팔면서 작성해준 토지매매계약서이다. 이일흥이 파는 토지는 죽은 형이 샀던 것으로, ‘긴요하게 쓸데가 있어서’ 팔게 되었다. 이일흥이 파는 토지는 이생원 댁의 여자종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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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15년 윤순암(尹順岩)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영남 자료권역센터 구축(2단계) | 한국국학진흥원]
    1815년 11월 19일, 유성복이 조곡원의 밭과 음곡원의 논을 화폐 40냥을 받고 윤순암에게 팔면서 작성해준 토지매매계약서이다. 유성복이 논밭을 파는 이유는 ‘큰 흉년으로 빚을 갚을 길이 전혀 없어서’이다. 조선전기에는 토지거래가 법률적으로 제한되어서 관으로부터 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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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16년 강돌(姜乭)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영남 자료권역센터 구축(2단계) | 한국국학진흥원]
    1816년 11월 4일, 서대가 부동읍전시동원에 있는 논을 강돌에게 팔면서 작성해준 토지매매계약서이다. 이 논을 파는 서대는 1814년 12월 19일에 이일부리에게서 이 논을 120냥을 주고 사들였었다. 그런데 이때에 강돌에게 130냥을 받고 판 것이다. 논을 파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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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16년 이생원댁노(李生員宅奴) 손대(孫大)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영남 자료권역센터 구축(2단계) | 한국국학진흥원]
    1816년 12월, 김응옥이 마평원에 있는 밭을 화폐 130냥을 받고 이생원댁 남자종 손대에게 팔면서 작성해준 토지매매계약서이다. 이 계약서는 ‘가경22년병자12월’에 작성되었다. 연도는 청의 연호를 먼저 쓰고, 간지를 나중에 썼다. 그 다음 월과 일을 쓰는데,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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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27년 김도원(金道源)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영남 자료권역센터 구축(2단계) | 한국국학진흥원]
    1827년 12월 20일, 강돌이 부동읍전시동원에 있는 논을 화폐 130냥을 받고 김도원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해준 토지매매계약서이다. 강돌이 방매하는 이 논은 이미 이전에 4차례의 매매가 이루어져 그동안 작성되었던 구(舊)계약서만도 몇 장이 된다. 매매 토지와 관련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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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27년 이생원(李生員)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영남 자료권역센터 구축(2단계) | 한국국학진흥원]
    1827년 1월 16일, 유영춘이 창곡원의 밭을 화폐 48냥을 받고 이생원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해준 토지매매계약서이다. 토지를 파는 이유는 ‘이매(移買)’이다. 해당 토지를 팔고 거주지 주변의 토지를 사려는 것이다. 이는 16세기 이후의 토지 경영방식의 변화를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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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27년 김점삼(金點三)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영남 자료권역센터 구축(2단계) | 한국국학진흥원]
    1827년 12월 12일, 김효원이 부동박곡원의 논을 화폐 170냥을 받고 김점삼에게 팔면서 작성해준 토지매매계약서이다. 계약서 본문에서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은 파는 이유인데 ‘이요차(移要次)’라고 했다. ‘이요차’는 ‘이매(移買)’와 비슷한 의미로 소유한 토지가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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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28년 옥매(玉梅)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영남 자료권역센터 구축(2단계) | 한국국학진흥원]
    1828년 1월 10일, 옥매가 안동오현원에 있는 논밭을 화폐 15량을 받고 팔면서 작성해준 토지매매계약서이다. 그런데 옥매가 팔면서 작성한 이 토지매매계약서에는 사는 사람의 이름이 표기되어 있지 않다. 사는 사람이 파는 사람과 서로 잘 아는 사이여서 별도로 표기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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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28년 권도일(權道一) 토지매매명문(地賣買明文) [영남 자료권역센터 구축(2단계) | 한국국학진흥원]
    1828년 12월 2일, 손영대가 안동남선내리신목원에 있는 밭을 화폐 83냥을 받고 권도일에게 팔면서 작성해준 토지매매계약서이다. 손영대가 권도일에게 토지를 파는 이유는 이사를 가기 때문이다. 이사를 가게 되면 해당 토지가 거주지에서 멀어지기 때문에 관리하기가 어려워질...
    내용분류경제-매매/교역-토지매매명문 | 형식분류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 현소장처한국국학진흥원
  • 1830년 정수(定秀) 노비매매명문(奴婢賣買明文) [영남 자료권역센터 구축(2단계) | 한국국학진흥원]
    1830년 2월, 기수가 4구의 노비를 화폐 90냥을 받고 종형 정수에게 매매하면서 작성해준 노비매매계약서이다. 거래일은 ‘도광11년경인2월일’로 표기하였다. 조선시대 일기를 비롯한 개인적인 문서에는 간지만 기재하는 경우가 많은데, 매매계약서에는 중국의 연호를 쓴 다음...
    내용분류경제-매매/교역-노비매매명문 | 형식분류고문서-명문문기류-노비매매명문 | 현소장처한국국학진흥원
  • 1836년 김계종(金啓宗)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영남 자료권역센터 구축(2단계) | 한국국학진흥원]
    1836년 1월 8일, 공생(貢生) 김도원이 부동읍전시동원에 있는 논을 화폐 130냥을 받고 김계종에게 팔면서 작성해준 토지매매계약서이다. 김도원이 논을 파는 이유는 ‘요긴하게 쓸 데가 있어서’라고 하여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조선후기 토지매매시의 일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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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47년 권귀학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영남 자료권역센터 구축(2단계) | 한국국학진흥원]
    1847년 1월 7일, 김계종이 부동읍전시동원에 있는 논을 화폐 130냥을 받고 권귀학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해준 토지매매계약서이다. 이 계약서는 한글과 한문이 병용되었는데,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은 한문을 써서 작성하였다. 즉, 토지 소재지와 면적, 이전의 계약서 수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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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47년 김최빈(金最彬)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영남 자료권역센터 구축(2단계) | 한국국학진흥원]
    1847년 2월 11일, 권귀학이 부동읍전시동원에 있는 논을 화폐 130냥을 받고 김최빈에게 팔면서 작성해준 토지매매계약서이다. 파는 사람인 권귀학은 한 달 전인 1월 7일에 김계종에게 이 논을 사들였었는데, 얼마 안 되어 다시 판 것이다. 논을 파는 이유는 ‘긴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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