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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1년 전영숙(全永淑) 수표(手標)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1911년 전영숙이 가대와 전답을 제주양씨가에 팔면서 작성한 수표이다. 거래대금을 모두 받았기 때문에 해당토지에 관한 구문기를 넘겨주어야 하는데 답의 구문기가 중간에 유실되어 당장 넘겨주지 못하니 나중에 찾아서 넘겨주겠다는 의미로 이 수표를 작성해...내용분류경제-회계/금융-수표 | 형식분류고문서-증빙류-수표 | 현소장처원광대학교 박물관
- 1911년 박문오(朴文五) 수표(手標)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1911년 박문오가 전라남도 보성군 율어면 하일촌에 있는 논 2.4마지기를 제주양씨가 방매하면서 구문기를 대신해 작성해 준 수표이다. 구체적으로는 하일촌에 있는 정(亭) 1마지기에 대한 구문기 대신한 수표이다.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내용분류경제-회계/금융-수표 | 형식분류고문서-증빙류-수표 | 현소장처원광대학교 박물관
- 1912년 양장환(梁章煥) 전당문기(典當文記)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1912년 양장환이 전라남도 보성군 송곡면 가신동에 있는 가대를 전당잡히면서 작성한 전당문기이다. 전당잡힌 가대는 초가 3칸과 행랑 3칸이었으며, 빌린 돈 60냥을 대신 갚아주는 조건이었다.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내용분류경제-회계/금융-전당문기 | 형식분류고문서-증빙류-전당문기 | 현소장처원광대학교 박물관
- 1912년 이정순(李正淳) 계약서(契約書)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1912년 음력 8월에 전라남도 보성군 문전면 신운리에 사는 이정순이 돈을 빌리면서 작성한 차용계약서이다. 빌린 돈은 100원이며, 음력 12월 달까지 본전과 이자를 갚기로 하였다.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내용분류경제-회계/금융-차용증 | 형식분류고문서-증빙류-차용증 | 현소장처원광대학교 박물관
- 1912년 정효현(丁孝鉉) 전당문기(典當文記)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1912년 정효현이 전라남도 보성군 미력면 송림리에 있는 6마지기 밭을 전당잡히고 전문 50냥을 빌려쓰면서 작성한 전당문기이다. 내년 11월까지 갚지 못할 경우 이 밭은 수취인에게 넘긴다는 조건이다.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내용분류경제-회계/금융-전당문기 | 형식분류고문서-증빙류-전당문기 | 현소장처원광대학교 박물관
- 1913년 최문찬(崔文贊) 이유서(理由書)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1913년 6월 10일에 최문찬이 태영석에게 토지를 파는 과정에서 작성해 준 이유서이다. 최문찬은 남원군 지사면 안화리에 있는 밭 3승지와 논 7승지를 각각 2환과 4환을 받고서 팔았았는데, 이때 구문기를 넘겨주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이전에 화재를 당하여 소실되었기 ...내용분류경제-회계/금융-수기 | 형식분류고문서-증빙류-수기 | 현소장처임실 지사 협계태씨가
- 1913년 박종민(朴鍾敃) 전당문기(典當文記)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1913년 3월 초5일에 박종민이 보성군 조내면 용두리촌에 있는 논 1마지기 5되지기를 전당잡히고 돈을 빌리면서 작성한 전당문기이다. 거래된 토지의 소재지는 오늘날 전라남도 보성군 조성면 용전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내용분류경제-회계/금융-전당문기 | 형식분류고문서-증빙류-전당문기 | 현소장처원광대학교 박물관
- 1913년 최숙첨(崔淑瞻) 증서(證書)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1913년 5월 29일에 최숙첨이 조를 빌리면서 작성한 증서이다. 최숙첨이 조 12석을 빌리고 추수 후에 이자 몇 말을 지급하여 갚는 것으로 하였다. 빌린 곳은 보성군 내의 어떤 면으로 추정된다.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내용분류경제-회계/금융-증서 | 형식분류고문서-증빙류-증서 | 현소장처원광대학교 박물관
- 1917년 이도문(李道文) 영수증(領收證)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1917년 12월에 일본적십자사 조선본부 전주지부 진안군 사무위원이 8원을 받고서 마령면에 사는 이도문에게 작성해 준 영수증이다. 이 돈의 명목은 대정 4년(1915년) 2기부터 대정 6년 3기분까지의 적십자회비이다. 언제부터 준조세성격을 띠고 적십자비를 걷게 되었는지...내용분류경제-회계/금융-영수증 | 형식분류고문서-증빙류-영수증 | 현소장처동학농민혁명기념관
- 1917년 이도화(李道華) 영수증(領收證)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1917년 11월 1일에 마령면장송진환이 1원을 받고서 평지리에 사는 이도화에게 작성해 준 영수증이다. 이 돈의 명목은 뽕나무 묘목값이다. 일제는 1919년에는 ‘조선잠업령’을 제정, 공포하는 등 일제는 강압적 방법으로 잠업육성을 시도하였고 1925년...내용분류경제-회계/금융-영수증 | 형식분류고문서-증빙류-영수증 | 현소장처동학농민혁명기념관

근현대 소실위기 재중동포 서신 DB화 및 생활문화 분석(178,6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