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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4년 조영만(趙泳萬) 서간(書簡)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
    1904년(광무8) 1월 7일에 조영만(趙泳萬)이 기우만(奇宇萬)에게 보낸 편지이다. 내용은 기우만의 편지를 받고 느낀 바를 시로 지어서 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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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4년 조영만(趙泳萬) 서간(書簡)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
    1904년(광무8) 6월 입추(立秋)에 조영만(趙泳萬)이 기우만(奇宇萬)에게 보낸 편지이다. 스승인 기정진(奇正鎭)에게 시호(諡號)를 내리는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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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4년 정의림(鄭義林) 서간(書簡)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
    1904년(광무8) 1월 16일에 정의림(鄭義林)이 기우만(奇宇萬)에게 보낸 편지이다. 스승 기정진(奇正鎭)의 문집 간행과 관련된 분란이 잠잠해졌는지 묻고, 『대곡집(大谷集)』을 보내주어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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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4년 정의림(鄭義林) 서간(書簡)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
    1904년(광무8) 3월 6일에 정의림(鄭義林)이 기우만(奇宇萬)에게 보낸 편지이다. 영남지역에서 소란스럽게 떠들어대던 심태에 대해 한탄하고 있으며, 영귀정(詠歸亭)의 강회(講會)에 꼭 와달라는 부탁도 덧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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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4년 정의림(鄭義林) 서간(書簡)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
    1904년(광무8) 8월 7일에 정의림(鄭義林)이 기우만(奇宇萬)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번 가을 강회에는 꼭 참석하여서 선비의 풍속을 진작시켜달라는 부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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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4년 정의림(鄭義林) 서간(書簡)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
    1904년(광무8) 8월 15일에 정의림(鄭義林)이 기우만(奇宇萬)에게 보낸 편지이다. 왜 멀리 이사를 하였는가를 먼저 묻고, 영귀정(詠歸亭)에 한 번 와주라는 부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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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5년 유창수(柳昌秀) 서간(書簡)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
    1905년 2월 10일에 유창수(柳昌秀)가 기우만(奇宇萬)에게 보낸 편지이다. 최익현(崔益鉉)의 상소문을 다 베꼈으면 보여 달라는 부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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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5년 조영만(趙泳萬) 서간(書簡)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
    1905년(광무9) 1월 18일에 조영만(趙泳萬)이 기우만(奇宇萬)에게 보낸 답장 편지이다. 유건영(柳健永)에게 선조의 묘갈문(墓碣文)을 지어줄 것을 부탁하면서 유인석(柳麟錫)이 의병(義兵)을 모집하는 일에 관해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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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5년 조영만(趙泳萬) 서간(書簡)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
    1905년(광무9) 4월 13일에 조영만(趙泳萬)이 기우만(奇宇萬)에게 보낸 편지이다. 주인규(朱仁圭)가 부탁하는 묘갈문(墓碣文)을 지어줄 것을 당부하면서 옥호정(玉壺亭)의 기문을 보내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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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5년 조영만(趙泳萬) 서간(書簡)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
    1905년(광무9) 10월 7일에 조영만(趙泳萬)이 기우만(奇宇萬)에게 보낸 편지이다. 그리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다는 말과 건물을 짓는 일에 관해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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