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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7년 장성군수(長城郡守) 보고서(報告書) 3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1897년 8월 28일에 장성군수김성규가 전라남도관찰사에게 올린 보고서이다. 김성규는 지난달 장성군내에 염객을 가칭하는 것을 순검하고 주구작폐하는 자가 없다고 보고하였다.내용분류정치/행정-보고-보고서 | 형식분류고문서-첩관통보류-보고서 | 현소장처동학농민혁명기념관
- 1897년 장성군수(長城郡守) 보고서(報告書) 4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1897년 8월 28일에 장성군수김성규가 전라남도관찰사에게 올린 보고서이다. 김성규는 서울의 훈령과 부의 칙령에 의거해 성책하여 올렸다고 보고하였다.내용분류정치/행정-보고-보고서 | 형식분류고문서-첩관통보류-보고서 | 현소장처동학농민혁명기념관
- 1897년 완도군수(莞島郡守) 첩보(牒報)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1897년 7월 15일에 완도군수이씨가 전라남도관찰사에게 올린 첩보이다. 완도군수는 이번 달 보름까지는 완도군에 소득이 없이 유리걸식하는 자와 도적질하는 자가 없다고 보고하였다.내용분류정치/행정-보고-첩보 | 형식분류고문서-첩관통보류-첩보 | 현소장처동학농민혁명기념관
- 1897년 진도군수(珍島郡守) 첩정(牒呈)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1897년 8월 28일에 진도군수이씨가 전라남도관찰사에게 올린 첩정이다. 진도군수는 진도군내에 있는 죄수와 관련된 것과 성책하라는 두 가지 내용의 감결이 도착하였다고 보고하였다.내용분류정치/행정-보고-첩정 | 형식분류고문서-첩관통보류-첩정 | 현소장처동학농민혁명기념관
- 1898년 마령면훈장(馬靈面訓長) 이씨(李氏) 품목(稟目)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1898년 10월에 마령면 훈장 이 아무개가 진안군수에게 올린 품목이다. 이 아무개는 마령면 사곡리에 사는 이도문의 물레방아 소지에 대하여 처결한 제음에 따라 죽엽평 물레방아와 구지의 물레방아 주인과 사화하도록 조치하였다고 보고하였다.내용분류사회-조직/운영-품목 | 형식분류고문서-첩관통보류-품목 | 현소장처동학농민혁명기념관
- 1899년 진재우(晉在祐) 고목(告目)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1899년 1월 25일에 임실군 예방 진재우가 하북면에 있는 태생원댁으로 보낸 고목이다. 진재우는 태생원댁의 누군가에게 다음달에 있는 사직대제의 집례관이 되었다고 알리고 있다.내용분류정치/행정-보고-고목 | 형식분류고문서-첩관통보류-고목 | 현소장처임실 지사 협계태씨가
- 1901년 임실군수(任實郡守) 첩(帖)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1901년 11월 30일에 임실군수가 태종현을 임실군 하북면의 강장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첩이다.내용분류정치/행정-임면-차첩 | 형식분류고문서-첩관통보류-첩 | 현소장처임실 지사 협계태씨가
- 1903년 관찰사서리전주군수(觀察使署理全州郡守) 권직상(權直相) 훈령(訓令)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1903년 11월 12일에 전라북도관찰사서리전주군수권직상이 태인군수손병호에게 보낸 훈령이다. 권직상은 내부 훈령 제 42호에 따라 13도 정리표를 각군에 반포하였으며, 동봉한 제 43호 훈령에 따라 이 정리표를 받은 보첩을 음력 9월 그믐까지 보고하라고 하였으므로, 금...내용분류정치/행정-명령-훈령 | 형식분류고문서-첩관통보류-훈령 | 현소장처동학농민혁명기념관
- 1903년 전라북도관찰사(全羅北道觀察使) 훈령(訓令) 1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1903년 12월 14일에 전라북도관찰사이성열이 태인군수손병호에게 내려 보낸 훈령 제159호이다. 이성열은 이번 가을과 겨울의 포폄시에 태인군에 대한 실사를 할 것이니 도임일로부터 음력 12월 초 10일까지의 일을 보고하라고 하였다.내용분류정치/행정-명령-훈령 | 형식분류고문서-첩관통보류-훈령 | 현소장처동학농민혁명기념관
- 1903년 전라북도관찰사(全羅北道觀察使) 훈령(訓令) 2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1903년 12월 12일에 전라북도관찰사이성열이 태인군수손병호에게 내려 보낸 훈령 제152호이다. 이성열은 이해 말로는 풍년이라 하나 실제로는 흉년이니, 답주가 풍년이라 하고 많은 도조를 거둘 수가 있으니 이를 하지 못하도록 하라고 하였다.내용분류정치/행정-명령-훈령 | 형식분류고문서-첩관통보류-훈령 | 현소장처동학농민혁명기념관

근현대 소실위기 재중동포 서신 DB화 및 생활문화 분석(178,6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