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필터

연구성과물 76,8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홈 > 검색결과
  • 565 B000565 가도 椵島 도서 평안북도 承政院日記 仁祖 12年 4月 24日_008 ... 九日椵島到泊言內, 詔使已於十二日來到, 距登州四十里地云, 然則十六日, 雖不得乘船, 而二十二日, 則乘船無疑, 如遇順風, 則來泊椵島之報, 不日將至, 接待諸事, 十分忙迫, 譯官張禮...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지역분류평안북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566 B000566 가도 椵島 도서 평안북도 承政院日記 仁祖 13年 6月 2日_005 而受之。 竊念皮島軍兵, 乃天朝之所常軫念, 今若沒數輸送皮島, 俾爲犒賞之資, 移咨督府, 以憑轉咨該府, 則是以皇朝之惠, 反爲皇朝之用, 求諸事理, 實爲便當。 臣等區區之意如此, 敢稟睿裁。 傳...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지역분류평안북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567 B000567 가도 椵島 도서 평안북도 承政院日記 仁祖 15年 閏4月 6日_007 ○備邊司啓曰, 從容就義, 昔人所難, 當淸兵入島之日, 沈都督, 不屈而死, 誠爲慘惻, 今承聖敎, 極爲允當, 今平日識面人, 帶同軍人, 入送椵島, 認是都督屍身, 卽爲收葬, 立標以待, 而其...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지역분류평안북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568 B000568 가도 椵島 도서 평안북도 承政院日記 仁祖 13年 6月 6日_008 ○崔葕, 以備邊司言啓曰, 以本曹草記, 答曰 知道。 送于椵島, 似或未妥, 量減民役, 使海外蒼生, 得蒙皇朝惠澤如何事, 傳敎矣。 聖上澤民之意至此, 臣等不勝感激。 但五千餘兩所減之役, 甚爲零...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지역분류평안북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569 B000569 가도 椵島 도서 평안북도 承政院日記 仁祖 7年 2月 21日_025 ○李景奭, 以備邊司言啓曰, 以平安監司金時讓狀啓, 本司回啓, 任世科處慰問之擧, 似不可已事。 傳曰, 都督處亦令慰問宜當, 斟酌指揮事, 判實蛇浦之變, 出於意慮之外, 雖任世科及軍兵, 乘船走避...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지역분류평안북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570 B000570 가도 椵島 도서 평안북도 承政院日記 仁祖 6年 5月 18日_023 ... 必叛中原, 其時我國, 必受其害矣。 忠信曰, 毛將之心, 凡三變, 魏忠賢當權時, 自結於忠賢, 及新皇帝卽位, 欲爲自全之計, 潛通于虜, 因致曲虎來到, 而其心欲觀勢, 猶豫未定, 及黃戶...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지역분류평안북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571 B000571 가도 椵島 도서 평안북도 承政院日記 仁祖 7年 7月 11日_015 ○沈詻, 以摠戎廳言啓曰, 春初米貴之日, 本廳欲貿唐糧, 委定軍官李英耋等用銀數千兩入送椵島, 則米價極高, 計不如意, 不得已皆以靑布貿得, 留置安州, 陸運難便, 尙未處置矣。 今者李英耋移除本道...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지역분류평안북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572 B000572 가도 椵島 도서 평안북도 承政院日記 仁祖 6年 5月 18日_023 ... 椵島之說, 皆毛也做出, 以聞於天朝, 宜卽奏聞以自辨。 上曰, 卿言是缺 然不可輕易爲之。 忠信曰, 毛將之情狀, 武之望洞知, 缺載於其題本中, 至以安史爲比云矣。 上曰, 其題本中缺來乎?...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지역분류평안북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573 B000573 가도 椵島 도서 평안북도 承政院日記 仁祖 13年 1月 8日_017 道, 所當竭力應副, 而物力殘盪, 四十隻之數, 亦必不滿於監軍之意, 若或所送船隻, 不爲堅緻, 則尤爲未安, 故極擇精造完固船, 計物精備入送事, 已爲, 申飭于各道。 當初行會之時, 慶尙道十隻,...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지역분류평안북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574 B000574 가도 椵島 도서 평안북도 承政院日記 仁祖 13年 1月 8日_017 ... 或以軍官, 別定差使員, 交付于海州結城倉泊船之所, 仍令黃海道, 方便設策, 鱗次入送于椵島矣。 臣等反復商議, 各道之納于結城倉者, 深念下道之弊, 而四十隻格軍, 當用五百餘名, 則黃海...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지역분류평안북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페이지 / 7684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