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105인사건” 에 대한 검색결과 총 68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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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58)
사전(54)
- 이유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정의] 1885(고종 22)∼1945. 독립운동가. [내용] 일명 우필(祐弼). 호는 춘산(春山). 평안북도 의주 출신.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하였고, 신민회에 가담하였다. 1911년 이른바 105인사건(百五人事件)에 연루되어 윤치호(尹致昊)ㆍ...이칭별칭우필(祐弼)|춘산(春山)
- 105인사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문당, 1994) 『이유필연구(李裕弼硏究)』(이현희, 동방도서, 1994) 『105인사건(人事件)과 신민회연구(新民會硏究)』(윤경로, 일지사, 1990) 『한민족광복투쟁사연구(韓民族光復鬪爭史硏究)』(이현희...이칭별칭신민회사건
- 이명룡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券) 소유를 주장하였다. 1903년 정주서면교회 집사가 되었으며, 1911년에는 일본시찰단의 일원으로 일본 각계를 직접 돌아보았다. 1912년 일제가 날조한 105인사건에 연루되어 3년간 복역하였다. 1916년 덕흥교회 장로가 되...이칭별칭 춘헌(春軒)
- 임치정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동하다 일제가 애국인사들을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양기탁 등 보안법위반사건’과 ‘105인사건’, 즉 ‘데라우치(寺內正毅) 총독모살미수사건’에 연루되어 1911년 일본 경찰에 잡혔다. 혹독한 고문 끝에 주모자 6인 중 한 사람으로 지목되어 1912년 9월 경성지방...이칭별칭 춘곡(春谷)
- 데라우치암살미수사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음문화사, 1988) 『105인사건(人事件)을 통해본 신민회연구(新民會硏究)』(윤경로, 일지사, 1988) 「105인사건(人事件)의 한 연구(硏究)」(윤경로, 『한성사학(漢城史學)』 1, 1983) 「10...
고서·고문서(2)
- 전협 외 인 판결문(경성지방법원) 송세호 외 8인 판결문(1920년 형공제35호‧40호, 경성복심법원) 윤종석 외 2인 판결문(1920년 형상제68호, 고등법원)( 全 協 外 35人 判決文(大正9年公刑第1003號,第1013號, 京城地方法院) 宋世浩 外 8人 判決文(大正10年刑控第35號‧40號, 京城覆審法院) 尹鍾奭 外 2人 判決文(大正10年刑上第68號, 高等法院)) [일제강점기 형사사건기록의 수집․정리․해제․DB화 | 동국대학교]하고 한성근위대와 궁성수비대에서 근무했다. 1905년 강화진위대자으 1907년 군대해산령 이후 강화진위대를 중심으로 의병봉기를 밀의하다 체포되어 유배되었다가 석방되기도 하였다. 1911년 ‘105인사건’에 연류되어 유배되었다가 탈출하여 연길현 용정 명동촌으로 망명하였다...제목 전협 외 인 판결문(경성지방법원) 송세호 외 8인 판결문(1920년 형공제35호‧40호, 경성복심법원) 윤종석 외 2인 판결문(1920년 형상제68호, 고등법원)( 全 協 外 35人 判決文(大正9年公刑第1003號,第1013號, 京城地方法院) 宋世浩 外 8人 判決文(大正10年刑控第35號‧40號, 京城覆審法院) 尹鍾奭 外 2人 判決文(大正10年刑上第68號, 高等法院)) | 사건유형 정치범처벌령 위반,출판법 위반,보안법 위반 및 사기 사건 | 소장처국가기록원
- 고윤상 외 94인 판결문( 高允相 外 94人 判決文(昭和2年刑公第427號 - 439號, 1059-1087號), ) [일제강점기 형사사건기록의 수집․정리․해제․DB화 | 동국대학교]1928.3.10., 『조선일보』1928.3.4.-1928.3.26.에도 전문이 실려있고, 안동독립운동기념관에서 발행한 『권오설1-신문기사와 신문‧공판조서』(푸른역사, 2010)에도 일부가 실려 있다. 조선공산당사건은 1911년 ‘105인사건’ 또는 ‘데라우치총...제목 고윤상 외 94인 판결문( 高允相 外 94人 判決文(昭和2年刑公第427號 - 439號, 1059-1087號), ) | 사건유형 치안유지법위반 사건 | 소장처고등법원검사국
신문·잡지(2)
- 교사의벗_1973_10_04 [국내외 근현대 신문잡지 자료의 조사, 수집 해제 및 DB화 | 성균관대학교]마태복음 연구(2) 서춘웅 27 이야기 한국교회사(15)-한국교회와 105인사건 김차생 31 부활의 넉두리들 임동 ...발행국가한국 | 발행연도1973
- 조선신문_1947_0218_03 [한국전쟁기 미군노획문서철 중 북한신문자료의 수집.해제.데이터베이스 구축 | 이화여자대학교]일본인은 조선 애국자들을 추방하였다. 그들은 해방운동을 태초 발생 시에 발근하려고 시도하였다. 홍기주는 시내 총독의 경관이 소위 105인사건이 청년을 어떻게 검거하여 그들을 어떻게 잔혹하게 고문하든 바를 회상한다. 그 가운데서 20인은 죽었고 남어지 인사들은 횡행 중...대표표제어조선신문_1947_0218_03 | 책임주필쁘·아·부듸낀
주제어사전(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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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인사건 / 百五人事件 [역사/근대사]
1911년 일제가 무단통치의 일환으로 민족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사건을 확대 조작, 최후로 105명의 애국지사를 투옥한 사건. 일제는 안악 사건을 계기로 애국지사들에 대한 탄압에 자신을 가지게 되었고, 비밀결사인 신민회의 관련 인사, 정책 등을 알아낼 수 있었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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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강렬 / 片康烈 [역사/근대사]
1892∼1928. 항일기의 독립운동가. 호는 애사(愛史). 이강년(李康埏)의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1907년 선봉장 겸 소모장이 되어 구국항일운동에 가담하였다. 1908년 ‘서울진공작전’에 참여하였고, 1911년 ‘105인사건’과 1919년 ‘구월산주비단사건’ 등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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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덕기 / 全德基 [종교·철학/개신교]
서 목사안수를 받고 담임목사가 되면서 당시 상동교회를 ‘민족운동의 요람’으로 만드는 데 공헌하였다. 1912년 이른바 ‘105인사건’으로 불리는 ‘신민회사건’이 연루되어 고문을 받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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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탁 / 金世鐸 [역사/근대사]
1874-1920년. 독립운동가. 일명 봉수(鳳洙). 평안북도 정주 출신. 신민회(新民會)회원으로 1911년 일제가 날조한 이른바 105인사건으로 징역 5년을 언도받아 복역하던 중 1913년 제2심에서 무죄로 석방되었다. 1914년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新興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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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규찬 / 姜奎燦 [종교·철학/개신교]
1874년∼1945년. 장로교 목사. 평안북도 선천 출신. 예수교장로회 선교부가 경영하는 선천 신성중학교(信聖中學校)에서 봉직하면서, 민족정신을 함양하는 교육자로 활동하였다. 그때 백낙준·박형룡·정석해 등이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1911년 105인사건에 연루되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