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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황수일” 에 대한 검색결과 17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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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16)

사전(4)

  • 용강문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 조선 후기의 학자 ()의 시문집. [내용] 4권 2책. 목활자본. 1775년(영조 51) 무렵 외손 남용섭(南龍燮)이 편집하고, 후손 진실(晉宲)ㆍ재주(載疇)ㆍ상현(相鉉) 등이 1889년(고종 26)에 간행하였다. 권두에 정범...
  • 퇴암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명 2편, 권6에 별편(別編)으로 낙민언경록(洛閩言敬錄)과 후서, 권7에 부록으로 행장‧묘갈명‧묘지명 각 1편, 만사 17수 등이 수록되어 있다. 서(書)에는 스승인 이현일(李玄逸)을 비롯하여 이재(李栽)‧() 등과 성리설(性理說)에 관하여 문답한 것...
  • 정시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異論)의 입장을 전개하였다. 이 논변은 한원진(韓元震)과 이간(李柬) 사이의 인물성론인 호락논쟁(湖洛論爭)에 선행한 것이었다. 그의 문하에서는 이식‧()‧이만부(李萬敷)‧권두경(權斗經) 등 많은 학자들이 배출되었다. 저서로는 문집인 『우담집(愚潭集)』...
    이칭별칭 군익(君翊)| 우담(愚潭)
  • 갈암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고, 시사(時事)‧경학‧성리학‧예학(禮學) 등의 내용이 주를 이룬다. 예학에 관해서는 권두경‧()‧정만양(鄭萬陽), 조카 이만(李槾) 등과의 왕복이 두드러지는데, 이의 답서는 예서(禮書)의 백미인 이유원(李猷遠)의 『안릉세전(安陵世典)』, 유장원(柳長源)의...

고서·고문서(11)

  • 36 第三十六統統首 [울산호적의 기초조사 및 전산화 (2단계) | 울산대학교]
    1858년_내상면(內廂面) 1858년 내상면(內廂面) 第四北洞里 36 第三十六統統首 第一戶 幼學年參拾參丙戌本平海父及第在榮祖學生鶴聞曾祖學生致 耈外祖學生吳鳳來本海州妻崔氏年參拾參丙戌本慶州父學生震根祖學 生柱赫曾祖學生雲起外祖學生김鳴九本김海婢年...
    연도_면이름1858년_내상면(內廂面) | 면이름내상면(內廂面) | 마을이름第四北洞里
  • 용강선생문집(龍岡先生文集) [해외소장 한국전적의 해제 및 디지털화를 통한 공유화 사업(1단계) | 고려대학교]
    내용분류교육/문화-문학/저술-문집 | 형식분류고서-문집 | 현소장처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리치몬드 문고)
  • 酬崔虞山 [여유당전서 정본 사업 | 다산학술문화재단]
    ?DCI=ITKC_MP_0597A_0060_020_0250_2014_001_XML 001 蛬啾蚓喞未堪聞,洛誦淸聲逈不群。穿過碧漪千頃水,捲來陂雲。菊花糕煖開芳宴,荏子燈深討舊文。遠憶東樊西到浿,鴈天遼闊惜離分。 540쪽
    권차명詩集 卷六 | 문체詩類|詩類 | 저자정약용(丁若鏞, 1762 ~ 1836) | 자료문의다산학술문화재단(http://www.tasan.or.kr )
  • 病弟 埏의 簡札 01 [조선시대 영남지역 종가생활문화자료 집성 및 DB화 | 경북대학교]
    하였다. 이외에 鄙族인 洪應이 아직도 鴨洞에서 객지생활을 하고 있으며, 이웃에 사는 이가 名人이 되어 橫出作梗(올바르지 못하고 못된 행실)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자료구분고문서 | 현소장처천주교 대구 대교구 | 자료문의경북대학교 우인수 교수
  • 右擣篩爲散每服四錢以水一中盞煎至六分去滓 三因方【如神散】治酒毒不散發黃久久浸漬流入淸氣道中宜引藥內鼻滴出黃水愈 苦瓠子去皮 苦胡蘆子去皮各三七介黃黍米三百粒安息香二皂子大 右爲末以一字搐入鼻中滴出二升忌勿吹或過多卽以黍穰燒灰麝香末各少許搐鼻立止 【百一選方】治酒疽【疸】 田螺七箇水養...
    서명鄕藥集成方 | 저자유효통(兪孝通)‧노중례(盧重禮)‧박윤덕(朴允德) 등 | 자료문의여주대학교 박현모 교수

신문·잡지(1)

주제어사전(1)

  • / [종교·철학/유학]

    1666년(현종 7)∼1725년(영조 1). 증조부는 황언주이다.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경서에 침잠하였으며, 이남령의 문인이 되었다. 정시한과 왕래하였으며, 이유장과 교유하며 더욱 절차탁마를 하였다. 특히 예제에 밝았으며 세간의 이록이나 부귀에는 관심이 없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