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홍해성” 에 대한 검색결과 총 27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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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24)
사전(17)
- 홍해성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다. 극예술연구회에서는 무대수련을 쌓은 유일한 연출가였기 때문에 창립공연인 <검찰관>으로부터 제7회 공연까지 계속 연출하였는데, 1934년 말까지의 홍해성 연출 전담시기가 바로 극예술연구회의 제1기에 해당된다. 이 시기에 유치진(柳致眞)‧서항석(徐恒錫)‧허남실(...
- 근대신어 : 스타트(스타-트 ) [한국 근대 신어의 성립과 변천에 대한 정보의 체계적 구축 | 한국방송통신대학교]32037 스타트 사항 스타-트 Start 出發 출발 如斯히 우리 新劇俳優는 그 (스타(-)트/스탙트)를 그르첫다。(洪海星) 이와 같이 우리 신극배우는 그 스타트를 그르쳤다(洪海星) 蓮波 常識外...출전新人間[新人間社] | 계통분류 [예술감각] 스포츠, 행위 | 자료문의방송통신대학교(연구책임자 : 송찬섭 교수)
- 극예술협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요 회원은 김우진(金祐鎭)‧조명희(趙明熙)‧유춘섭(柳春燮)‧진장섭(秦長燮)‧홍해성(洪海星)‧고한승(高漢承)‧조춘광(趙春光)‧손봉원(孫奉元)‧김영팔(金永八)‧최승일(崔承一) 등 10여 명이었다. 1921년 여름 동경의 한국 고학생과 노동자들의 모임인...
- 김진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했다. 귀국 후 경성제국대학 도서관 촉탁의 일을 보면서 1931년 윤백남(尹白南)ㆍ홍해성(洪海星)ㆍ유치진(柳致眞) 등과 극예술연구회를 조직하는 등 연극운동에 참여했다. 1947년 첫 수필집 『인생예찬』에 이어 1948년 그의 문명을 떨치게 한 제2수필집 『생활인의 철학...이칭별칭청천(聽川)
- 김선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1935년 동양극장이 세워지고 청춘좌가 창단되면서부터였다. 홍해성(洪海星)으로부터 정식으로 연기수업을 받은 그녀는 스스로 분장술을 익혀서 혈액에 맞추는 분장법과 눈화장을 잘 했다. 근면‧성실했던 그녀는 작품분석력과 화술이 뛰어났으며 우리말을 아름답게 다듬어 토해...
신문·잡지(7)
- 신동아_1931_01_02 [국내외 근현대 신문잡지 자료의 조사, 수집 해제 및 DB화 | 성균관대학교]어둠의 힘에 대하야 홍해성 60 페트루키오와 카트리나 연출에 대하야 홍해성 62 해당기사는 63쪽까지. 파일수정요망. 세전 분극의 밤을 평함, 홍해성,...발행국가한국 | 발행연도1931
- 자유문학_1958_03_05 [국내외 근현대 신문잡지 자료의 조사, 수집 해제 및 DB화 | 성균관대학교]초창기의 학생극운동략사(1921~1935) 홍해성 178 pp. 178~179, "한_자유문학_1958_03_05_177~178"파일명을 수정해야 함 잔조 김종문 ...발행국가한국 | 발행연도1958
- 신가정_1935_07 [국내외 근현대 신문잡지 자료의 조사, 수집 해제 및 DB화 | 성균관대학교]름 조은경 124 회유 행주산성 무영 131 명희곡의 추억 (2)-<말괄량이 길드리기> 홍해성 138발행국가한국 | 발행연도1935
- 신가정_1935_05 [국내외 근현대 신문잡지 자료의 조사, 수집 해제 및 DB화 | 성균관대학교]민 83 필요한 국제상식 고영환 86 안톤 체-홉흐 작 <누화원>을 더듬어 홍해성 91 향곡...발행국가한국 | 발행연도1935
- 신가정_1935_06 [국내외 근현대 신문잡지 자료의 조사, 수집 해제 및 DB화 | 성균관대학교]홍해성 44 이박사의 뚜노 신부인 52 녹음의 북평 정래동 52 바람 윤복진 ...발행국가한국 | 발행연도1935
주제어사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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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성 / 洪海星 [예술·체육/연극]
1893-1957. 연출가. 본명은 재원(在遠). 대구 출생. 1920년 봄에는 김우진(金祐鎭)·조명희(趙明熙) 등과 함께 극예술협회를 조직하였다. 1921년에는 이 회원들이 주동이 된 동우회 순회연극단의 일원으로서 조명희가 쓴 〈김영일(金英一)의 사(死)〉의 연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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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무대 / 實驗舞臺 [예술·체육/연극]
극론, 배우론 등의 강의 및 실제 훈련을 받고 수료와 동시에 11월 8일 전속극단을 조직했다. 1932년 5월 4일부터 3일간 조선극장에서 고골리의 <검찰관>을 함대훈 역, 홍해성 연출로 상연했다. 그후 제3회 공연부터는 극예술연구회 이름으로 상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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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연극사 / 朝鮮演劇舍 [예술·체육/연극]
전속극작가 박영호, 임성규와 당시 최고의 연출가였던 홍해성이 가담함으로써 다시 연극계를 독주하였다. 1935년 7월 조선극장에서 <범죄의 도시>, <모범 강짜>, <섬색씨>, <상경 제일보>를 공연하고 해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