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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함화진” 에 대한 검색결과 48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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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46)

사전(34)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1961) 1884(고종 21)∼1948. 한말, 일제강점기의 음악인. 국립국악원 소장.
    이칭별칭 순중(舜重)| 오당(梧堂)|화진(華鎭)
  • 장인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 1908∼1980. 민족항일기와 광복 후에 활약한 거문고의 대가. [내용] 초명은 정봉(丁鳳). 서울 출신. 1922년 이왕직아악부 제2기생으로 입소하여 ()‧이수경(李壽卿)에게서 거문고를 배웠다. 사람됨이 방정하였고, 굳세고...
  • 현금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이 아악부에서 소장하고 있던 악보를 제공하여 새로이 필사, 제작된 악보이다. 이 악보의 편자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 없으나 이왕직아악부시대를 이끌었던 아악사장들의 업적 및 당시의 정황을 미루어볼 때, 기존음악들을 정간보로 옮겨 악보화(樂譜化)...
    이칭별칭아악부 현금보
  • 안덕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공석이었고, 명완벽(明完壁)ㆍ김영제(金寗濟)의 두 아악사(雅樂師) 밑에 ()ㆍ이수경(李壽卿)ㆍ최순영(崔淳永) 등 쟁쟁한 우방(右坊)의 중진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제치고 아악수장의 직책을 수행할 정도로 뛰어난 악인이었다. 『한국악기대관』(장사...
  • 최정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翠)‧조백조(趙白鳥) 등이 그들이다. 광복 후에는 ()과 함께 대한국악원을 중심으로 활약하였다. 「민요‧잡가‧입창」(이보형‧한만영, 『문예총감』, 한국문화예술진흥원, 1976)

고서·고문서(3)

  • 記録材料・宮内省省報 [근현대 구(舊)황실 관련 자료 조사 집성 | 한국학중앙연구원]
    내성의 인사명령 중 이왕직에 관련된 부분이다. 4월 13일에 明完壁을 雅樂師長에, 金寧濟와 을 아악사에, 崔淳永, 李壽卿, 劉儀錫, 姜熙鎭, 朴德鉉, 朴德仁, 高益三, 安德秀를 雅樂手長에 임용하였다. 장신 2015. 11. 30
    소장처국립공문서관 | 조사일2015. 11. 30 |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記録材料・宮内省省報 [근현대 구(舊)황실 관련 자료 조사 집성 | 한국학중앙연구원]
    2일 참봉 李澤承이 면직되었다. 4월 8일 이왕직 속 劉時爀이 의원면관 하였다. 4월 15일 雅樂師 은 아악사장으로 승진하고, 조선총독부 도경부 李秉浩는 이왕직 전사 장신 2015. 12. 04
    소장처국립공문서관 | 조사일2015. 12. 04 | 자료문의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擣和醋炒以細布裹用繩繫垂入喉中腫處良久引出則惡涎淸水流出愈若惡涎未盡再用【又方】赤芍藥塗蜜含之【又方】大蒜一瓣細嚼含口內若腫滿不能嚼則細硏納口效【又方】桔梗射干薄荷等分○右細末煉蜜丸如龍眼大每一丸以綿裹液下喉卽效 【經驗方】治纏喉風及喉痺牙宣牙癰口瘡 蠶退紙不計多少燒存性煉蜜和丸如鷄頭大含化...
    서명鄕藥集成方 | 저자유효통(兪孝通)‧노중례(盧重禮)‧박윤덕(朴允德) 등 | 자료문의여주대학교 박현모 교수

신문·잡지(9)

주제어사전(2)

  • / [예술·체육/국악]

    1884-1948년. 한말·일제강점기의 음악인. 원명은 화진(華鎭). 자는 순중(舜重), 호는 오당(梧堂). 본관은 양근(楊根). 뛰어난 이론가이며 전공은 거문고였으나 가야금에도 출중하였다. 세습적인 악사집안으로 증조부 윤옥(潤玉)은 순조·헌종 때의 악사, 할아버지

  • 최경식 / 崔景植 [예술·체육/국악]

    잡가 등을 정확하고 원숙한 창법으로 불러 대가를 이루었다. 서울의 남녀 소리선생은 거의 그로부터 시조나 가사·잡가를 배웠다고 할 정도로 많은 제자들을 두었고, 사례를 받지 않고 가르친 것으로 유명하다. 광복 후에는 ()·박헌봉(朴憲鳳) 등과 대한국악원을 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