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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판자촌” 에 대한 검색결과 19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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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16)

사전(11)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 즉 무허가 정착지(Squatter Settlement)와는 전혀 다른 사회과정의 결과이다. 일반적으로 제3세계 도시에서 공식 건축허가와 토지에 대한 법적 권리 없이 건축자 자신이 노동력과 시장가치가 거의 없는 저질의 건축자재를 이용하여 건축한 무단점...
  • 평화시장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평화시장은 서울의 도심지를 흐르는 청계천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 시장이 청계천 인근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은 한국전쟁 직후 초창기에 청계천 주변에 형성된 에서 사업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형성 및 변천] 평화시장은 한국전쟁 때 남쪽으로...
  • 제정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 1944∼1999. 도시빈민운동가. [개설] 경상남도 고성 출생. 1972년부터 서울 청계천 에서 도시빈민운동을 시작해 일생을 도시빈민의 생존권‧인권 보호운동을 전개하여 ‘빈민의 벗’, ‘빈민운동의 대부’로 불렸다. ...
  • 조철씨의어떤행복한아침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 한용환(韓龍煥)이 지은 단편소설. [개설] 1971년 『현대문학(現代文學)』 7월호에 발표되었고, 그 뒤 1977년 왕문사(旺文社)에서 같은 표제로 된 소설집에 수록하였다. 작품은 1960년대 의 삶의 고통과 지식인의
  • 인도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그러나 1940년 9월 그의 사망을 계기로 교단이 여러 갈래로 분파되었으며, 교단 간부들마저 일경(日警)에 체포됨으로써 교세는 크게 위축되고 말았다. 8ㆍ15광복 후 김종수(金鐘洙) 등 20여 세대가 귀국하여 전주시 금암동에 을 건설하고 집단생활을 하였지만...
    이칭별칭삼성교(三聖敎)|천인교(天人敎)|신농사(神農社)

구술자료(3)

  • 이숙자 [월남민 구술생애사 조사연구 | 연세대학교]
    천 이주 시도 7. 외삼촌이 머슴살이하던 김해로 다시 이동 8. 김해 에서 생활과 부산에서 혼인 9. 혼인 이후 인천으로 이주 10. 남편의 사업 실패로 동대문 시장에서 숙녀화 가게를 시작 11. 가게에서 화재가 발생, 그 원인을 둘러싸고 항소 끝에 무죄를 선고받
    구술자이숙자 | 직업자영업 | 지역황해도
  • 김용인 [월남민 구술생애사 조사연구 | 연세대학교]
    있는 용매도로 피난 - 미군이 용매도의 피난민들을 대거 여수 돌산면으로 이주 - 서울 노량진에 있는 종합학교를 다니다 기차 사고가 난 이후 인천의 영화중학교를 다님 - 서대문구 영천에서 오촌 친척의 집()에서 머물며 한양공고를 다님 - 중앙대학교 신문학과를 졸업
    구술자김용인 | 직업장로 | 지역황해도
  • 천 시내에서 3키로 가면 있어. 거기는 지금 탄약부대가 있는데. 거기에 지금은 몇 년 전만해도 하코방이 있었어. 우리말로 하면 . 이 몇 년 전까지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는데. 지금은 없어졌고. 거기에 몇 천 명은 몰라도 사오백 명은 있 었어.
    조사지역강원 홍천 | 조사일2013년 3월 3일

기초학문(1)

  • 사회사적 관점에서 본 우리나라 도시빈민의 형성배경과 주거문화 - 개항이후 토막민촌부터 한국전쟁 직후 까지 [한국연구재단 기초학문자료센터 | 한국연구재단]
    저자 : 전남일, 게재일 : 2007
    03098 전남일 일반논문 한국연구재단 한국주거학회 2007 사회사적 관점에서 본 우리나라 도시빈민의 형성배경과 주거문화 - 개항이후 토막민촌부터 한국전쟁 직후 까지 https://www.krm.or.kr/krm
    유형논문 | 게재일2007

신문·잡지(1)

주제어사전(3)

  • / [사회/사회구조]

    판자 이외의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건축한 무허가 불량주택이 밀집된 무허가 정착지. 한국의 근대적 도시의 불량촌(불량주택 밀집지역)의 기원은 일제시대의 토막민촌이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월남민 및 도시 이재민들의 주거 형태로서 이 확산되었다. 판자집은 19

  • 부산용두산공원 / 釜山龍頭山公園 [지리/인문지리]

    고목들은 불에 타 초라해졌다. 또 6·25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을 형성하였으나 2차에 걸친 화재로 다 소실되어 민둥산이 되었다. 4·19의거 이후 다시 용두산공원으로 불리게 되었고, 공원 내에는 대원군이 세운 척화비·이충무공동상·충혼탑·4·19의거기념탑·부산탑 등

  • 평화시장 / 平和市場 [사회/촌락]

    이 청계천 인근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은 한국전쟁 직후 초창기에 청계천 주변에 형성된 에서 사업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