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토관직” 에 대한 검색결과 총 123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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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101)
사전(98)
- 토관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정의] 고려 말기부터 조선 초기까지 평안도‧함경도‧제주도 등지의 토착인에게 주었던 특수 관직. [내용] 고려 초기의 향직에서 유래된 것으로, 고려 말기에 평양‧화주‧제주도에 두었다. 조선 초기에는 설치 지역이 확대되어 평안도의 영변‧의주‧강계,...
- 부여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정의] 조선시대 서반(西班) 종6품의 토관직(土官職). [내용] 서반 종6품의 품계를 가진 관직이다. 영흥부의 진북위(鎭北衛)에 2인, 평양부의 진서위(鎭西衛)에 2인, 영변대도호부(寧邊大都護府)의 진변위(鎭邊衛)에 2인, 경성도호부(鏡城都護府...
- 장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정의] 조선시대 동반(東班) 종7품의 토관직(土官職). [내용] 수지국(收支局)의 장으로, 관계(官階)는 주공랑(注功郎)이다. 『경국대전(經國大典)』
- 교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정의] 조선시대 동반 정6품의 토관직. [내용] 그 관계(官階)는 선직랑(宣職郎)이다. 토관직은 고려시대 평양에 처음 설치된 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새로이 정비되었다. 즉, 1429년(세종 11) 6월에 평양부에만 두었던 토관직이 함흥부ㆍ영변...
- 전례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정의] 조선 초기 토관직(土官職) 동반관서(東班官署). [내용] 예악(禮樂) 등의 일을 관장하여 맡았다. 토관직이 설치된 고을 중 작은 고을에서는 사객(使客)의 접대‧연회 등의 일을 관장하였다. 평양부의 경우, 건국초에 예의사(禮儀司)와...
고서·고문서(3)
- 豆滿江 [고려~조선 변경(邊境) 지명 DB구축 및 전자 지도 제작 | 덕성여자대학교]更詳熟議."上曰"人戶,以下三道鄕吏驛子公私賤勿論,如有自募者,放役入居,或除土官職,以充軍額何如?" 黃喜等曰"咸吉道 咸興以北人民,爲先抄出入居,不足則以附近他道人民,抄出入居爲便." 孟思誠曰"《詩》云'昔召公日(鬪) 國百里.'此乃傷今思古,憤激而言也.惟我璿源,世居孔州,今也鞠爲茂草,爲野...출처전거『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 자료문의서울대학교 정요근 교수
- 인재집 [영남학파의 사유세계와 역사인식 -영남학파 문집 상세 해제 및 주요저작 번역- (2단계) | 한국국학진흥원]사를 행하여 발생하는 폐단보다는 勸善懲惡에 따른 교화의 이로움이 더욱 크니‚ 작은 폐단 때문에 큰 이로움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청하고 있다. 請免金土官職疏 14 金土에게 제수한 관직이 부당함을 아뢴 疏이다. 4品의 金土에게 지금 典農判事를 超授하였는데‚ 金土는 남...분야문학 | 유형문헌
- 유금강록(遊金剛錄) [금강산유람록 번역 및 주해 | 경상대학교]천민(朴天敏)과 선도(善道)이며 회양의 지인(知印) 지인(知印) : 조선 시대 지방관의 관인을 보관하고 날인의 일을 맡던 토관직을 말한다. 승천(勝千), 관리(官吏) 1명, 나장(羅將) 1명, 동행한 역졸(驛卒) 2명이다. 2일(병인). 아침을 먹고 천천히 가서 1리...구분금강산 유람기 | 저자신즙(申楫) | 자료문의경상대학교 장원철 교수 연구팀
주제어사전(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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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관직 / 土官職 [정치·법제/법제·행정]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평안도·함경도·제주도 등지의 토착인에게 주었던 특수 관직. 고려 초기의 향직에서 유래된 것으로, 고려 말기에 평양·화주·제주도에 두었다. 조선 초기에는 설치 지역이 확대되어 평안도의 영변·의주·강계, 함경도의 길주·경성·회령·부령·종성·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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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 / 校簿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동반 정6품의 토관직. 그 관계는 선직랑이다. 토관직은 고려시대 평양에 처음 설치된 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새로이 정비되었다. 즉, 1429년(세종 11) 6월에 평양부에만 두었던 토관직이 함흥부·영변대도호부·경성대도호부·강계도호부 등 12개소로 확대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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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용도위 / 奮勇徒尉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서반 정8품 토관계의 위호. 토관직은 함경도·평안도에 거주하는 토착세력들을 회유하기 위해 특별히 마련한 관직으로서 타도의 향리들과 달리 품관체계로 편입한 것이었다. 이러한 종류의 서반토관직은 병마절도사의 추천으로 임명되나 대간의 서경을 거치도록 하였다.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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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직 / 副勵直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서반 종5품의 토관직. 영흥부의 진북위에 1인, 평양부의 진서위에 1인, 영변대도호부의 진변위에 1인, 경성도호부의 진봉위에 1인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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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랑 / 供務郎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동반 정8품 토관계 위호. 1466년(세조 12) 토관직 및 토관계가 ≪경국대전≫에 법제화됨에 따라 토관 동반 정8품의 관계로서 확정되었다. 공무랑은 영흥부의 도무사, 영흥부와 경성도호부의 융기서·사창서·영작서의 관사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