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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최만리” 에 대한 검색결과 35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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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32)

사전(25)

  • [한국 고전소설 캐릭터 사전 | 국민대학교]
    집현전 부제학이다. 세종이 훈민정음 창제에 몰두하여 지방 행행 때에도 그 일을 놓지 않고 정사를 문종에게 맡기다시피 하자, 이미 중국의 한자가 있는데 새로이 언문을 만드는 것은 옳지 않다며 상소문을 올린다.
    분야문화‧생활 | 유형인물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조목에 따라서는 한글창제의 불필요성, 한글의 무용론을 주장한 것으로 사대주의적 성향이 짙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진의는 세종의 한자음 개혁에 반대한 것이 된다. 즉, 세종의 에 대한 친국내용을 보면, “내가 만일 이 운서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이칭별칭 자명(子明)| 강호산인(江湖散人)
  • TD_L14_D_1375 인물 弘文館, 副提學, 烏紗帽, 例冠, 觀察使 海州, 中朝 我英廟 D_09_04_116 대동운부군옥 9권 4장 116절
    출전대동운부군옥 | 수록위치9권 4장 116절 | 자료문의고려대학교 박종천 교수
  • () [조선왕조실록 전문사전 편찬 | 한국학중앙연구원]
    학자관료/문신 인물 한국 조선 세종 계승범 박종국 2013 자명(子明) 강호산인(江湖散人) 공혜(恭惠) ...
  • 훈민정음통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등이 쓰였음과 세종 25년 12월에 훈민정음이 창제되어 세종 28년 9월에 반포되었음을 밝혔다. 이어 『훈민정음』 해례본의 본문인 예의편(例義篇)을 소개하고, 정인지(鄭麟趾)의 훈민정음 서문의 원문과 번역문, () 등의 훈민정음창제 반대상소문의 원문과...

고서·고문서(7)

  • 新註無寃錄 新註無寃錄 卷下 跋文_ 최치운(崔致雲) 등 45 夫無冤錄眞司獄者指南也若檢復一失則雖使皐陶治之必未得其要領刑獄之差皆由於此恭惟我殿下深念于茲爰命文臣等將古註无寃錄更詳訓釋又抽出檢屍格例與法式別爲襃然後開卷瞭然如示諸掌歲己未春迺命監司臣兪孝通鋟梓以廣其傳卽令鳩工聚材將刊于原州...
    서명新註無寃錄 | 저자최치운(崔致雲) 등 | 자료문의여주대학교 박현모 교수
  • 1512 0809_03 輓詞 03 문화ㆍ생활 문헌 조선 장말손 종가, 일상생활, 문중생활, 시문류, 만사 한자 고문서 SJ212.hwp 兒啼慈哭弱孀哀奄見蓮池玉朶 鵬圖人已許九衢騏步鬼何猜前秋入洛憐同 病今歲看花誰共盃此去玉樓須汝記人...
    자료구분고문서 | 현소장처장덕필(종손) | 자료문의경북대학교 우인수 교수
  • 3세가량, 녀동생, 60세가량, 남동생, 57세가량, 사촌오빠, 동생들, 현제, 충천북도, 청주군, 청주, 살다가, 12세, 나, 1936년, 3월, 남성면, 추정니, 살티, 남씨, 시집, 살다가, 아버지, 이주, 16세, 이국, 들어왔습니다, 어머님, 찾어서,...
    대표표제어현제나이 | 성씨
  • 養·李愚在·李憲琦·申在明·成東一, 副司直單金逌根·李泰淳, 副司果單姜世白·白時昌, 孫世隆爲柔院僉使, 朴尙烈爲西林僉使, 李一倜爲兎城僉使, 文禧福爲德浦僉使, 爲西北僉使, 副護軍單權思億·金星翼, 崔釆雲爲恃寨僉使, 李鍾穆爲北評事, 王允澤爲雲寵萬戶, 宋昌殷爲平山浦萬戶, 朴興...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柱鉉, 慶尙左水虞候林致浩, 別害僉使權思奎, 古群山僉使朴宗文, 蝟島僉使具始芳, 車嶺僉使金道全, 宣沙浦僉使陳珣, 牛峴僉使柳漢忠, 柔院僉使孫世隆, 德浦僉使文禧福, 西林僉使, 雲寵萬戶王允澤, 楸坡萬戶崔應鉉, 鎭東萬戶安思賢, 平山浦萬戶宋昌殷, 鹿島萬戶洪元鐸, 安骨萬戶朴興道...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주제어사전(3)

  • / [언어/언어/문자]

    ?∼1445(세종 27). 조선 초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자명(子明), 호는 강호산인(江湖散人). 고려시대 해동공자로 불리던 최충(崔沖)의 12대손이며 하(荷)의 아들이다. 1419년(세종 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그 이듬해 집현전박사로 임

  • 고전모방설 / 古篆模倣說 [언어/언어/문자]

    ‘훈민정음’이 옛 전서체의 한자 모양을 본떠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훈민정음 기원설의 하나. 『조선왕조실록』 ‘세종 25년 12월조 기사’에 “언문 28자는 고전을 본떴다(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라 하였고, 1444년 2월에 ‘ 등 집현전 학사들이 올린 상소문

  • 자방고전 / 字倣古篆 [언어/언어/문자]

    방고전(其字倣古篆).”이라는 구절이 나오고, 1444년 2월의 ‘ 등 집현전 학사들이 올린 상소문’에도 “자형수방고지전문(字形雖倣古之篆文)”이라고 한 구절이 나온다. ‘자방고전’은 “글자는 옛 전자를 본떴다.”라는 뜻으로, 흔히 ‘상형(象形)’과 함께 한자 문화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