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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채선견” 에 대한 검색결과 8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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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6)

사전(3)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 생몰년 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개설]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명보(明甫). 호는 양전헌(兩傳軒). 아버지는 응린(應麟)이다. [개설] 정구(鄭逑)와 조호익(曺好益)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스스로 호를 양전헌이...
    이칭별칭 명보(明甫)| 양전헌(兩傳軒)
  • 성재서당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 대구광역시 중구 미대동에 있는 서당. [내용] 대구광역시유형문화재 9호. 이 곳은 ()이 정자(亭子)를 짓고 만년에 학문을 강론(講論)하던 곳이다. 그 뒤 후손들이 선생의 높은 덕행을 널리 기리고자 새로 수축하고
    연계항목성재서당(盛才書堂)
  • 석병문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는 1624년(인조 2) 이괄(李适)과 한명련(韓明璉)이 군대를 일으켜 도성을 점거하자 ()‧민겸(閔謙)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키고 군량미를 모아 적의 공세에 대비하다가 이괄이 죽음을 당하고 난이 평정되자, 궁궐에 남은 군량미 60석을 바치는 내용을 담은...

고서·고문서(3)

주제어사전(2)

  • / [종교·철학/유학]

    1574∼1644. 조선 후기의 문신. 아버지는 응린이다. 정구와 조호익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스스로 호를 양전헌이라고 하였다. 진사 출신으로 참봉을 지냈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전 현감 이종문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나 토벌에 참여하기

  • 성재서당 / 盛才書堂 [교육/교육]

    대구광역시 중구 미대동에 있는 서당. 대구광역시유형문화재 9호. 이 곳은 ()이 정자(亭子)를 짓고 만년에 학문을 강론(講論)하던 곳이다. 그 뒤 후손들이 선생의 높은 덕행을 널리 기리고자 새로 수축하고 그 이름을 성재서당이라 개칭하였다. 은 채응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