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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창극좌” 에 대한 검색결과 19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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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15)

사전(14)

  • 김준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가객으로 있다가 1935년 상경하여 조선성악연구회에 참가하였다. 1936년에는 ()에서 창극공연을 하였다. 1939년에는 동일창극단(東一唱劇團)에 참가하여「심청전」에서 심봉사역을 잘하여 호평을 받았다. 1947년 이후에는 국악사(國樂社)에서 창극활동을 하는...
  • 박녹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반에 취입하여 명성이 전국으로 퍼졌다. 1933년 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硏究會) 결성에 참가하였고, 1936년 동양극장에서 창극 「춘향전」의 춘향역을 맡았다. 그뒤 송만갑‧이동백(李東伯)‧오태석(吳太石) 등과 ()에 입단하여 창극운동에 가담하였으나,...
  • 강장원(姜章沅) [한국전통연희사전 | 고려대학교]
    판소리 공부를 시작했다. 22세에 상경해 이동백(李東伯, 1866-1949)으로부터 소리를 다시 학습했다. 25세 때, 명창대회에서 이동백에게 배운 〈적벽가〉 중 ‘삼고초려’를 불러 이름을 알렸다. 조선성악연구회 및 조선창극단에서 창극 배우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대분류판소리 | 자료문의고려대학교 전경욱 교수
  • 김연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丁貞烈)로부터 「적벽가」ㆍ「춘향가」 전편을 배웠다. 1935년 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硏究會)에 가입하였고, 1937년에는 이사로 선임되었으며, 조선(朝鮮) 대표로 선임되었다. 같은 해 일본 빅타레코드사에서 판소리 다섯마당 중 중요 대목을...
    이칭별칭 동초(東超)
  • 조선성악연구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렬 편극, 김용성 극본에 의하여 <심청전>이 공연되었는데 역시 크게 성공하였다. 1936년 2월에는 정남희‧오태석‧조상선(趙相鮮)‧임방울(林芳蔚)‧김연수‧박녹주‧박초월‧김소희 등 소장파들이 주동이 되어 조선성악연구회 직속극단으로 를 조직하고 그 해 4월, 총지휘...

고서·고문서(1)

  • 而飛驌驦相此青之爪若觜兮猶忠臣烈士之材良天厨臠飼之禁篽兮珠臂鞲其顔行國家賴英傑之力兮其報亦有以異乎尋常猗我定翁武烈傳芳簾垂元祐族大以聖元紀於旂常南斗之南窮夫海洋千百頭其鰐魚兮迎公舶而徜徉凡天戈之所指兮威振武夫八荒沐雨露以潤澤兮胥枯起而槁昂占臘暹而闍婆兮俾悉梯而悉航嵗在辛丑春日載陽乃錫此青來自上...
    국가중국 | 서명동강속집 | 왕대기타  

주제어사전(4)

  • / [예술·체육/연극]

    1936년 2월 조선성악연구회 직속으로 조직되어, 본격적인 창극운동을 전개한 극단. 단원들은 오태석, 조상선, 정남희 등 남녀 중견급 창극인들이었다. 총지위는 이동백, 기획은 김용구가 담당했다. 1936년 4월 창립 공연으로 정정렬 편극인 <흥보전>을 서울 서대문에 있

  • 화랑창극단 / 花郞唱劇團 [예술·체육/연극]

    것이다. 신라시대를 배경으로 호화스러운 궁궐의 무대장치와 화려한 금관, 의상, 소품 등이 이채를 띠었고 극내용도 흥미본위로 다루어 전국의 주요도시는 물론 당시의 만주까지 순회공연을 하며 유명한 창극단으로 호평을 받았다. 1942년 조선총독부 경무국의 압력으로

  • 흥보전 / 興甫傳 [예술·체육/연극]

    1936년 4월 조선성악연구회 직속으로 가 조직되어 창립공연으로 상연한 정정렬 편극의 작품. 창극으로서의 <흥보전>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서울 서대문에 있던 공양극장에서 첫선을 보였는데 관중의 갈채를 받았는데, 오태석의 공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오태석은 흥보로

  • 춘향전 / 春香傳 [예술·체육/연극]

    나누어 상연하였고, 이러한 형식의 <춘향전>은 30여 년간 계속되었다. 1935년 봄 조선성악연구회 시절에 정정렬이 <춘향전>을 편극할 때 시대감각에 알맞도록 윤색하고 대사를 많이 삽입하여 대본을 만들기도 하였다. <춘향전>의 인기가 전국적으로 대단하자 , 화랑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