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진무공신” 에 대한 검색결과 총 77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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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74)
사전(55)
- 지계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난이 일어나 왕은 남행(南幸)한 뒤였다. 그는 군사를 사현(沙峴)에 주둔시켰다가 정충신(鄭忠信)ㆍ남이흥(南以興)ㆍ이수일(李守一) 등과 더불어 난군을 맞아 싸워서 적을 섬멸시켰다. 이 전공으로 진무공신(振武功臣) 3등이 되고 충성군(忠城君)에 봉해졌다. 뒤에 서흥...이칭별칭 언숙(彦叔)|충성군(忠城君)
- 진무공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재에서 크게 패하고 도망가다가 부하에게 참수당하였다. 난이 진압된 뒤 그 해 3월 토벌에 따른 행상(行賞)을 3등으로 구분, 공신으로 책록하였다. 1등은 장만‧정충신(鄭忠信)‧남이흥(南以興) 등 3인으로 갈성분위출기효력진무공신(竭誠奮威出氣效力振武功臣)이라 하였고...
- 진무공신(振武功臣) [조선왕조실록 전문사전 편찬 | 한국학중앙연구원]진무공신 진무공신 振武功臣 공신(功臣) 정공신(正功臣), 정훈공신(正勳功臣), 원종공신(原從功臣) 이괄(李适)의 난 정치인사/녹훈 개념용어 대한민국 조선 인조 신명호 [정의] 이괄의 난을 진압...상위어공신(功臣) | 하위어정공신(正功臣), 정훈공신(正勳功臣), 원종공신(原從功臣) | 관련어이괄(李适)의 난
- 유효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음해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키자 좌협장(左協將)으로 출전하여 황주전투에서 패하였으나, 늦추지 않고 도성을 향하는 반란군을 추격하여 길마재[鞍峴]에서 대파하고, 소수의 기병으로 도성을 빠져나가 도망치는 반란군을 추격하여, 그 전공으로 진무공신(振武功臣) 2등에 책록되...이칭별칭 성백(誠伯)| 장의(莊毅)
- 김경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데, 몸을 돌보지 않고 앞장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이때의 공으로 진무공신(振武功臣) 2등에 훈록되고, 화산군(花山君)에 봉해졌으며, 그 특전이 자손에게 세습되었다.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이칭별칭화산군(花山君)
고서·고문서(19)
- 고언백묘(高彦伯墓)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25657 B025657 고언백묘 高彦伯墓 사회교육 京畿道邑誌 喬洞郡邑誌 喬洞郡 塚墓 ... [在大牛洞]. 求禮縣監李元春墓[在府西五里大雅村里金星山]. 上護軍朴蘭墓[在大雅村天守峴]. 濟興君高彦伯墓[在府西二十里水晶山]. 監察黃泰彬墓[在鹽州洞]. 靖社功臣黃景祺, 振武功臣黃...출처전거京畿道邑誌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고읍리(古邑里) [한국역사상 도서(섬) 관련 고・중세 기초자료 DB 구축과 활용 | 국민대학교]25673 B025673 고읍리 古邑里 정치행정 京畿道邑誌 喬洞郡邑誌 喬洞郡 塚墓 ...水晶山]. 監察黃泰彬墓[在鹽州洞]. 靖社功臣黃景祺, 振武功臣黃後憲墓[在㖜串里]. 忠臣黃景禮墓[在府北十里 古邑里 中峴]. 都事安汝至墓[在松家島上主山南麓]. 持平金光瑞墓[在府東十里 㖜...출처전거京畿道邑誌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1841년 노광석(盧光奭) 등 소지(所志) 1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1841년 윤 3월에 전라도 남원부에 사는 노광석 등 62인이 연명하여 예조판서에게 올린 상서(上書)이다. 인조반정의 정사공신 1등에 녹훈되었고, 이괄의 난 때에는 진무공신 2등으로 녹훈된 박세중이 아직 포양(褒揚) 받지 못한 것을 애석해 하며 그를 포양할 것을 건의...내용분류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 형식분류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 현소장처남원향토박물관
- 1841년 노광석(盧光奭) 등 소지(所志) 3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1841년 7월에 전라도 남원부에 사는 노광석 등 전라도 유생 35인이 연명하여 남원부사에게 올린 상서(上書)이다. 인조반정의 정사공신 1등에 녹훈되었고, 이괄의 난 때에는 진무공신 2등으로 녹훈된 박세중이 아직 포양(褒揚) 받지 못한 것을 애석해 하며 그를 포양할내용분류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 형식분류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 현소장처남원향토박물관
- 1842년 노광석(盧光奭) 등 소지(所志)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터 구축(2단계) | 전북대학교]1842년 7월에 전라도 남원부에 사는 노광석 등 전라도 유생 30인이 연명하여 암행어사에게 올린 상서(上書)이다. 인조반정의 정사공신 1등에 녹훈되었고, 이괄의 난 때에는 진무공신 2등으로 녹훈된 박세중이 아직 포양(褒揚) 받지 못한 것을 애석해 하며 그를 포양할내용분류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 형식분류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 현소장처남원향토박물관
주제어사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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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무공신 / 振武功臣 [역사/조선시대사]
조선 인조 때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운 사람에게 내린 칭호 또는 그 칭호를 받은 사람. 1등은 장만·정충신·남이흥 등 3인으로 갈성분위출기효력진무공신이라 하였고, 2등은 이수일·김기종·변흡·유효걸·김경운·이희건·조시준·박상·성대훈 등 9인으로 갈성분위효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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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회 / 文晦 [종교·철학/유학]
뒤 진무공신 3등에 책록, 가선대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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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괄의 난 / 李适의 亂 [정치·법제/정치]
환도한 뒤 이괄의 반란 평정에 공을 세운 장만·정충신·남이흥 등 32인을 진무공신으로 포상하고, 난의 수습책을 마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