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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좌유선” 에 대한 검색결과 16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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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14)

사전(11)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 조선시대 세손강서원(世孫講書院)의 관직. [내용] 정원은 1인이다. 3품 당하관 이상 종2품 이하의 관원 중에서 임명하였다. →세손강서원 『속대전(續大典)』 『대전회통(大典會通)』
  • 정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였으며, 1756년 안동부사, 1761년 (), 이듬해 예문관제학이 되었다. 1764년 강화부유수에 이어 홍문관제학ㆍ도승지가 되고, 대제학ㆍ형조참판을 거쳐 1767년 호조판서ㆍ지경연사 (知經筵事)를 역임하였으며, 이듬해 평안도관찰사를 거쳐...
    이칭별칭 공화(公華)| 염재(念齋)| 문정(文靖)
  • 윤득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4) 특지(特旨)로써 경상도도사ㆍ영해부사에 임명되고, 공조참의ㆍ승지ㆍ형조참판ㆍ대사간ㆍ대사성에 이어 예조참판 겸 ()에 이르렀다. 순조가 즉위하자 그의 사당에 사제(賜祭)하고 아들에게 음직(蔭職)을 내렸다. 『정조실록(正祖實...
    이칭별칭 사휴(士休)| 신재(信齋)
  • 통훈대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될 때 정3품 상계는 통정대부, 하계는 통훈대부로 정하여져 『경국대전』에 그대로 법제화되었다. 당하관에 해당되는 관직으로는 정(正)‧직제학‧편수관‧()‧우유선‧판교(判校)‧좌통례(左通禮)‧우통례‧제거(提擧)‧찬선(贊善)‧상호군(上護軍)‧목사‧대도호부사...
  • 유선(諭善) [조선왕조실록 전문사전 편찬 | 한국학중앙연구원]
    유선 유선 諭善 세손강서원(世孫講書院), 정삼품아문(正三品衙門) 우유선(右諭善), ()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위종사(衛從司), 황태손강서원(皇太孫講書院) 정치행정/관직·관품 직역 대한민국 조선 신명...
    상위어세손강서원(世孫講書院), 정삼품아문(正三品衙門) | 하위어우유선(右諭善), 좌유선(左諭善) | 관련어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위종사(衛從司), 황태손강서원(皇太孫講書院)

고서·고문서(3)

  • 동유록(東遊錄) [금강산유람록 번역 및 주해 | 경상대학교]
    子船, 泝洄中流, 主守追到共舟, 流下五里. 至渡頭送別, 遵海南行七里, 路右有小湖, 湖中有島, 島上有巖. 其西南有石峰, 卽九仙峰之北枝也. 行數百步, 路舟巖. 扶杖步上, 石峰臨海. 盤石陂陁, 上有奇巖, 下覆如屋宇, 其狀彷彿張盖, 四阿低垂若幡幢之脚. 其中嵌空穹隆, 入其...
    구분금강산 유람기 | 저자이세구(李世龜) | 자료문의경상대학교 장원철 교수 연구팀
  • 가오고략 [규장각 도서자료 연구사업(2단계) | 서울대학교]
    , 이는 갓난아기였을 때나 혹은 유복자로 태어난 경우에 해당하는 것일 뿐으로 李滉과 尹拯이 모두 추복에 대해 부정적이었다고 했다. 任-憲晦-招延書 (79) 世孫講書院의 (종2품) 任憲晦(1811∼1876)를 부르는 편지다. 임금이 특별히 史官을 보내 敦...
    분야문학 | 유형문헌
  • 추안급국안 : 대역부도(大逆不道) 죄인 안기영(安驥泳) 등 심문기록(1) [<추안급국안> 정서화 및 DB 기반 구축 | 전주대학교]
    之會主人誰也則答曰主人卽李載 先也又問所會者何事則答曰討倭之事云問李載先旣 爲主人則尙不來何也答以患感不得來云矣矣身曰旣爲 主人則雖有身病率來可也李斗榮曰雖無亦無相妨云問 伐倭節次之何如則答以無乎而仍使任哲鎬錄之而其錄 橫書于達貞煥五百兩內三百精壯矣身問兩是何 謂則答曰非錢數也卽人數也曰人曰名...
    서명추안급국안(推案及鞫案) | 권책030 | 자료문의전주대학교(연구책임자 : 변주승 교수)

주제어사전(2)

  • /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시대 세손강서원의 관직. 정원은 1인이다. 3품 당하관 이상 종2품 이하의 관원 중에서 임명하였다.

  • 조인영 / 趙寅永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782∼1850). 1819년 식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다. 1826년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한 뒤로 이조참의·대사성·세손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1839년 천주교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주도하였고, 우의정에 올라《척사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