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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조세창” 에 대한 검색결과 61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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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59)

사전(18)

  • [한국 고전소설 캐릭터 사전 | 국민대학교]
    조겸과 주씨부인의 아들이다. 명나라에 마선이 쳐들어오자 직접 전쟁터로 나가려는 영종황제의 행동을 만류하다 귀양간다. 이후 정잠, 정인성 등의 노력으로 영종황제가 돌아오자 풀려나 부모님과 함께 상경한다. 정명염과 혼인하여 정효증, 정재증, 정계증, 정필증 정교혜, 정월염...
    분야문화‧생활 | 유형인물
  • 육재 [한국 고전소설 캐릭터 사전 | 국민대학교]
    의 종이다.
    분야문화‧생활 | 유형인물
  • 맹탁 [한국 고전소설 캐릭터 사전 | 국민대학교]
    의 노비이다.
    분야문화‧생활 | 유형인물
  • 조겸 [한국 고전소설 캐릭터 사전 | 국민대학교]
    의 아버지이다.
    분야문화‧생활 | 유형인물
  • 정명염 [한국 고전소설 캐릭터 사전 | 국민대학교]
    의 아내이자 정잠의 첫째 딸이다.
    분야문화‧생활 | 유형인물

고서·고문서(40)

  • 1779 B001779 가배량 加背梁 군사교통 承政院日記 英祖 28年 10月 29日_002 ○下直, 咸興判官沈師周, 雲山郡守金處恒, 龜山僉使金光演, 濟州判官朴昌鳳, 越松萬戶尹纘, 永達萬戶趙東琦, 梨洞萬戶吳德建, 防垣萬戶徐後亮, 加背梁萬戶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1812 B001812 가배량 加背梁 군사교통 承政院日記 英祖 28年 10月 29日_002 ○下直, 咸興判官沈師周, 雲山郡守金處恒, 龜山僉使金光演, 濟州判官朴昌鳳, 越松萬戶尹纘, 永達萬戶趙東琦, 梨洞萬戶吳德建, 防垣萬戶徐後亮, 加背梁萬戶
    출처전거承政院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1 第一統統首崔斗有 [울산호적의 기초조사 및 전산화 (2단계) | 울산대학교]
    1864년_청양면(靑良面) 1864년 청양면(靑良面) 第三十四達睦里 1 第一統統首崔斗有 第一戶 業武崔斗有年肆拾柒戊寅本慶州父萬得祖鶴翼曾祖通政大夫載元外祖李命 壽本慶州妻鄭姓年肆拾肆辛巳本奉化父東煥祖元興曾外祖李尙太本 慶州等辛酉戶口相准 第二戶 水軍鰥夫...
    연도_면이름1864년_청양면(靑良面) | 면이름청양면(靑良面) | 마을이름第三十四達睦里
  • 4 第四統統首李用世 [울산호적의 기초조사 및 전산화 (2단계) | 울산대학교]
    史年貳拾貳 辛卯女年玖甲辰等己酉戶口相准 第二戶 驛吏李太仁年柒拾捌乙未本慶州父進鶴祖石哲曾祖奉尙外祖姜貴卜本晋州妻張召史年柒拾肆己酉本仁同父次 石祖進守曾祖致根外祖李命鶴本慶州率子爾白年參拾壹壬午女年貳拾參庚寅女年玖甲辰等己酉戶口相准 第三戶 寡金召史年伍拾陸丁巳本金海父太仲祖介屎曾...
    연도_면이름1792년_청양면(靑良面) | 면이름청양면(靑良面) | 마을이름第一豆王堂里
  • 3133 중국 총서 송원과거삼록 001 충숙왕(忠肅王) 후2 1333 宋元科擧三錄 元統元年進士錄 漢人南人第二甲 十五名 賜進士出身 授承事郎 李毅 貫高麗國楊廣道韓州 易[經] 字中父 行四 年 ● 六 七月十八日 曾祖將眞 本州戶長 ...
    국가중국 | 서명송원과거삼록 | 왕대충숙왕(忠肅王)  후2

기타자료(1)

  • 주세창;朱世昌;남;南 [근대 한국의 학력 엘리트 데이터베이스 구축 | 한국교원대학교]
    080766 남한 충북 청주농업학교 2-51 청주공립농업학교동창회원명부 1943―02―28 19면 주세창;朱世昌;남;南 滿洲國 安東市 안동지방법원 제8회 1920년 3월
    학교소재지역충북 | 학교명청주농업학교 | 자료문의한국학교원대학교 교육박물관 한국근대교육사 연구센터

주제어사전(2)

  • / [경제·산업/산업]

    조운할 전세를 보관하는 창고. 초기의 조창은 아래 세주에 명기되었다. 그 가운데 황해도의 금곡포창과 조읍포창 등은 경기우도 수운판관이 겸하는 벽란도승의 관장 아래 수참선으로 전운되었다. 금곡포창은 배천군의 동쪽 20리에 소재하며, 배천·해주·연안·풍천·강령·옹진·장연

  • 남창 / 南倉 [정치·법제/법제·행정]

    조선 후기 현종 때 충청도 안흥의 남쪽 해안에 잠시 있었던 고. 경상도와 전라도의 세미를 이곳으로 조운하여 보관하였다가, 10리 떨어진 북창(北倉)까지 육로로 운반하여 다시 서울까지 조운하도록 하였다. 이는 안흥 앞바다에서의 잦은 침몰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