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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정희왕후” 에 대한 검색결과 152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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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143)

사전(129)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즉위는 예종이 죽은 바로 그날 이루어졌다. 이는 조종조(祖宗朝)에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齊安大君)이 어렸고, 또 성종에게 형 월산대군(月山大君)이 있었는데도 바로 그 날 즉위한 것은 의 결단에 의한 것이었다. 성종이 즉위할 때의 나...
    이칭별칭낙랑부대부인(樂浪府大夫人)
  • TD_E1_D_0100 왕실 仰視, 被罪, 臨朝, 羣臣, 積威, 震懾, 俯伏 廢朝, 沈順門 儒先錄 D_10_04_06 대동운부군옥 10권 4장 6절
    출전대동운부군옥 | 수록위치10권 4장 6절 | 자료문의고려대학교 박종천 교수
  • 성봉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의] 1401(태종 1)∼1474(성종 5). 조선 전기의 문신. [개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효부(孝夫)ㆍ유행(攸行). 아버지는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엄(?)이며, 부인은 세조비 ()의 동생이다. 문음(門蔭)으로
    이칭별칭 효부(孝夫), 유행(攸行)| 양정(襄靖)
  • 윤씨부인 [한국 고전소설 캐릭터 사전 | 국민대학교]
    분야문화‧생활 | 유형인물
  • 이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곧 예조좌랑(禮曹佐郞)에 체직되면서 (, 세조비)의 신주를 종묘에 안치할 때 그 실무를 담당하고 봉훈랑(奉訓郞)에 승진하였다. 1489년 남원도호부판관 재직 중 예조정랑에 발령되었다가 곧 공조정랑에 개수(改授)되자, 머뭇거리다가는 다시...

고서·고문서(13)

  • 42690 B042690 대장경판 大藏經板 문화 成宗實錄 十八年(1487) 十一月 성종실록_11811008_002 ○傳曰: “政院其招問之。” 學祖詣承政院, 啓曰: “臣曾受懿旨, 欲重創海印寺大藏經板堂。 然功鉅力微, 遷延歲月, 風摧雨漏, 頹圮殆盡。 請更擇年少僧掌之...
    출처전거成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1481년 상원사(上院寺) 입안(立案) [한국학자료센터 중앙허브 구축(1단계) | 한국학중앙연구원]
    상원사와 낙산사는 각각 세조와 예종을 위한 사찰로 정해져 궁중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절이었다. 1481년 즈음 부유한 낙산사에 비해 형편이 어려웠던 상원사를 딱하게 여긴 세조의 비 가 낙사사가 해마다 거두어들이는 수입을 상원사와 나누어 쓰라는 지시를
    내용분류법제-소송‧판결‧공증-입안 | 형식분류고문서-증빙류-입안 | 현소장처국립중앙박물관
  • , 時未書啓。 而領議政獻議中, 結語以爲: ‘曾於急遽之際, 未及考出實錄。 之於睿宗大王, 文定王后之於仁宗大王, 已行之制, 竝宜詳考參定。’ 今者浚吉疏中, 亦有考出實錄之語, 請令春秋館擧行。” 春秋館啓曰: “取考江華府所藏實錄之簿, 睿宗末年及明宗初年, 俱未成帙。 赤裳山城所...
    출처전거顯宗改修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76247 B076247 동래 東萊 정치행정 燕山君日記 二年(1496) 正月 연산군일기_10201012_003 臣等聞, 世祖歲給楡岾寺米五十碩, 而與成宗, 同聽政之時, 特命除之, 以其非經遠持久之事耳。 成宗於《續錄》刪定時, 凡可行條件, 無不講究。 給鹽一事, 豈獨遺...
    출처전거燕山君日記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 》服制, 長子妻朞年, 衆子妻大功, 承重與否, 不爲擧論。 以此觀之, 大王大妃殿服制, 似當爲大功。 而事體重大, 之於章順王后, 昭惠王后之於恭惠王后之喪, 必有已行之制, 請令春秋館, 考出實錄。” 王以實錄在江都, 未易考出, 令更會獻議後, 考出實錄。 壽恒、壽興等, 又以《大典...
    출처전거顯宗實錄 | 자료문의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홍영의 교수

신문·잡지(1)

주제어사전(9)

  • / [종교·철학/유학]

    1418(태종 18)∼1483(성종 14). 조선 제7대 왕 세조의 비. 윤번의 딸이다. 1428년(세종 10)에 가례를 행하였다. 처음에는 낙랑부대부인에 수봉되었다. 1455년(세조 1) 왕비에 책봉되었다. 성종이 즉위할 때의 나이가 13세였으므로 가 7년

  • 시책문 / 諡冊文 [역사/조선시대사]

    시책문. 1483년(성종 14)에 대왕대비의 상례를 마치고 나서 '정희(貞熹)'라는 존시를 올리고 애도하는 내용의 책문이다. 원문은《성종실록》14년(1483) 5월 25일(병진) 조에도 보인다.

  • 애책문 / 哀冊文 [역사/조선시대사]

    애책문. 1483년(성종 14)에 대왕대비의 상례를 마치고 애도하는 내용의 책문으로 점필재 김종직이 찬술하였다. 원문은《성종실록》14년(1483) 6월 12일(계유) 조와 김종직의《점필재집》권1에 보인다.

  • 광릉 / 光陵 [역사/조선시대사]

    왕릉. 광릉(光陵)은 조선시대 세조(世祖)의 능으로, ()를 부장(附葬)하였으며, 양주(楊州)의 동쪽 41리 되는 지점인 주엽산(注葉山) 직동(直洞)의 남쪽에 있다. 서울에서 60리 쯤 떨어진 거리이다.

  • 세조 / 世祖 [역사/조선시대사]

    1417(태종 17)∼1468(세조14). 조선 제7대 왕. 세종의 둘째 아들, 문종의 아우, 어머니는 소헌왕후 심씨이다. 왕비는 윤씨이다. 1452년 5월에 문종이 죽고 어린 단종이 즉위하였다. 이에 7월부터 그는 심복인 권람·한명회 등과 함께 정국 전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