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정희량” 에 대한 검색결과 총 136건의 검색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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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성과물(128)
사전(79)
- 정희량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정의] 1469(예종 1)∼? 조선 중기의 문신. [개설]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순부(淳夫), 호는 허암(虛庵). 동지중추부사 충석(忠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호조참의 침(忱)이고, 아버지는 철원부사 연경(延慶)이다. 어머니는 경간(慶侃...이칭별칭 순부(淳夫)| 허암(虛庵)
- 정희량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정의] ?∼1728(영조 4). 조선 후기의 역신. [개설] 본명은 준유(遵儒). 본관은 초계(草溪). 아버지는 참봉 중원(重元)이다. 명문의 자손으로 안음(安陰)에 거주하면서 부귀를 누리다가 순흥으로 이사하였다. [내용] ...이칭별칭준유(遵儒)
- 정희량 [한국 고전소설 캐릭터 사전 | 국민대학교]영조 때 영남에서 난을 일으킨다.분야문화‧생활 | 유형인물
- 鄭希良 [조선시대 유서(類書) 기반 지식 DB 및 지식지도 구축 | 고려대학교]TD_L14_D_3945 鄭希良 인물 放逸, 陰陽學, 筭命, 遁世之志, 登第, 藝文館檢閱, 丁憂, 守墓, 散步 戊午 海州, 義州 淳夫, 虛庵, 燕山 D_17_02_27 대동운부군옥 17권 2장 27절출전대동운부군옥 | 수록위치17권 2장 27절 | 자료문의고려대학교 박종천 교수
- 혼돈주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개정증보 | 한국학중앙연구원][정의] 조선 중기에 정희량(鄭希良)이 지은 한시. [구성 및 형식] 글자수가 일정하지 않은 잡체시이며, 『속동문선』에 전한다. [내용 및 평가] ‘혼돈주’는 거르지 않고 마시는 막걸리라고 서(序)에서 설명하였는데, 천지만물과 자기...
고서·고문서(49)
- 허암선생유집(虛庵先生遺集) [해외소장 한국전적의 해제 및 디지털화를 통한 공유화 사업(1단계) | 고려대학교]내용분류교육/문화-문학/저술-문집 | 형식분류고서-문집 | 현소장처미국 버클리대학교 동아시아도서관(리치몬드 문고)
- 허암선생유집(虛庵先生遺集) [해외소장 한국전적의 해제 및 디지털화를 통한 공유화 사업(2단계) | 고려대학교]내용분류교육/문화-문학/저술 | 형식분류고서-문집 | 현소장처일본 동양문고(東洋文庫)
- 1825년 문간공위토사실영초건(文簡公位土事實營草件) [장서각 국가전적 자료센터 구축사업(1단계) | 한국학중앙연구원]1819년에 정희량사건으로 혼입되어 적몰된 문간공 정온의 위토를 환급해 주도록 하였다. 그런데 박사인의 증조인 충원군 동향이 무신년 정희량사건의 적변 시에 양무공신으로 정희량의 적몰된 토지를 사패지로 받았으며, 권철진의 증조 화원군 희학도 정희량의 적몰된 토지를 사패...내용분류법제-소송/판결/공증-등급 | 형식분류고문서-치부기록류-문중기록 | 현소장처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1825년 안의현감(安義縣監) 문간공위토사실영초건(文簡公位土査實營草件) [한국학자료센터 중앙허브 구축(1단계) | 한국학중앙연구원]1819년에 정희량사건으로 혼입되어 적몰된 문간공 정온의 위토를 환급해 주도록 하였다. 그런데 박사인의 증조인 충원군 동향이 무신년 정희량사건의 적변 시에 양무공신으로 정희량의 적몰된 토지를 사패지로 받았으며, 권철진의 증조 화원군 희학도 정희량의 적몰된 토지를 사패...내용분류법제-소송‧판결‧공증-등급 | 형식분류고문서-치부기록류-문중기록 | 현소장처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1817년 김노경(金魯敬) 장계(狀啓) 초본 [한국학자료센터 중앙허브 구축(1단계) | 한국학중앙연구원]1817년 12월 20일에 경상도관찰사김노경이 정희량 역적사건으로 적몰된 문간공 정온의 위토를 돌려줄 것을 건의하여 올린 장계를 베껴 쓴 것이다.내용분류국왕‧왕실-보고-계 | 형식분류고문서-소차계장류-계 | 현소장처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주제어사전(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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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량 / 鄭希亮 [종교·철학/유학]
?∼1728(영조 4). 조선 후기의 역신. 아버지는 중원. 명문의 자손으로 안음에 거주하면서 부귀를 누리다가 순흥으로 이사하였다. 1728년이인좌·박필현 등과 공모하여, 영조 즉위 후 벼슬에서 밀려난 소론일파의 호응을 얻어 밀풍군 탄을 추대, 왕통을 바로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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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술원 / 李述原 [종교·철학/유학]
1679(숙종 5)∼1728(영조 4). 조선 후기의 무신. 할아버지는 중길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가 난을 일으켜 청주를 점령하고 서울로 북상할 때 안의의 정희량도 이에 호응하여 안의의 남리에서 난을 일으키니 현감 오수욱은 현을 버리고 도망가 버렸다. 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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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주가 / 渾沌酒歌 [문학/한문학]
조선 중기에 정희량(鄭希良)이 지은 한시. 글자수가 일정하지 않은 잡체시이며, 『속동문선』에 전한다. ‘혼돈주’는 거르지 않고 마시는 막걸리라고 서(序)에서 설명하였는데, 천지만물과 자기자신이 분별을 넘어선 상태에 있다는 것까지 상징한다. 술을 마시고 취해서 그런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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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익 / 愼溟翊 [종교·철학/유학]
1676(숙종 2)∼1728(영조 4). 조선 후기의 의병. 거창 향임으로 1728년 이인좌의 난 때, 정희량의 반란군이 거창으로 들어오자 반군의 기밀을 탐지하여 병영에 정보를 제공하여 적을 무찌르는 데 크게 공을 세웠으나 적에게 잡혀 죽음을 당하였다. 저서로『보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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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혁 / 李普赫 [종교·철학/유학]
조선 후기의 문신(1684∼1762). 1728년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우방장으로 영남에서 기병한 정희량의 난을 토벌한 공으로 분무공신 3등이 됐으며 인평군에 봉하여졌다. 1733년에 동의금·호조참판을 거쳐, 병조참판을 역임했다. 1738년 공홍도관찰사로 재직 중